萍 - 창고 ㅈ ~ ㅎ/퍼스트 펭귄

1 김용덕 테라로사 사장

浮萍草 2014. 2. 10. 06:30
    이 사람의 집념 … 강릉 어촌을 커피1번지로 만들었다
    김용덕 테라로사 사장이 4일 강릉시 구정면 ‘커피 공장’에서 세계 상위 10% 안에 드는 고급 생두를 로스팅(roasting)하는 과정을 보여주고 있다.
    [강릉=변선구 기자]
    “그러니까, 퐁파두르 부인 같은 커피를 만들겠다는 겁니다.” 고작 ‘어떤 커피를 만들고 싶으냐’고 물었을 뿐인데 속절없는 답이 건너온다. 고개를 갸웃했더니 김용덕(54) 테라로사 사장이 말을 이었다. “미모와 지성을 겸비한 데다, 당대 최고 권력자의 사랑을 쟁취하기까지 했던 그런 여성을 딱 떠올릴 수 있는 한 잔의 커피 말이에요.” 마담 드 퐁파두르(1721~1764)는 1741년 르노르망 데티올르와 결혼을 한 ‘유부녀’였다. 야심이 컸던 그녀는 사냥을 나선 프랑스의 국왕 루이 15세를 유혹해 23세의 나이에 왕의 공식 정부가 됐다. 왕의 여자로 20년간 권력과 예술계까지 프랑스 전역에 영향을 미쳤던 여성이다. 그런 여성을 맛으로 승화시켜 한 잔 커피에 담겠다니. 4일,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은 멀었다. 강릉 시내를 지나 20여 분 구불구불한 산길이 시작된다. 마침내 눈에 들어온 ‘테라로사’ 표지판마저 없었다면 “도대체 어디에 커피 공장이 있는 거야” 투덜거리며 운전대를 돌렸을 터였다. 표지판을 따라 쪽길로 들어서니 이내 자작나무가 둥글게 에워싼 공터가 드러난다. 차문을 열고 내려서는데 커피 볶는 단내가 먼저 코를 간지럽혔다. 김용덕. 그는 대한민국 국민이 경포대의 ‘푸른 바다’로 기억하는 강릉을 일약 ‘커피 도시’로 바꿔놓은 사람으로 꼽힌다. 송성진 강릉문화재단 예술사업팀장은 “강릉 커피 애호가들에겐 두 개의 ‘계(界)’가 있다”고 말했다. 하나는 테라로사계고, 또 다른 하나는 보헤미안계다. 커피 도시 강릉의 역사는 보헤미안계를 이끄는 박이추(65) 커피보헤미안 사장이 2000년 커피숍을 내면서 시작됐다. 일본에서 태어난 박 사장은 무게감 있는 드립커피를 국내에 퍼트린 커피 문화의 1세대 대표 인물이다.
    복층 형식으로 설계된 커피공장 한쪽엔
    김 사장이 전 세계를 돌며 수집한 생두와 커피
    관련 집기,미술 서적들이 전시돼 있다.
    강릉=변선구 기자
    박 사장과 정반대 스타일인 유럽식 커피를 선보이는 김 사장은 박 사장보다 2년 늦게 사업을 시작했다. 그는 남들이 ‘커피점’을 차릴 때 ‘공장’을 세웠다. 그것도 산지의 독특한 기후 환경에 따라 특이한 향미를 품고 있는 고급 커피를 볶는 우리나라 최초의 공장이었다. 커피를 파는 것은 부업이다. 본업은 커피 원두를 볶아 이를 호텔에 납품하는 일이다. 그의 커피 공장에선 하루 500~600㎏의 커피콩이 볶아져 나온다. 한 잔에 25g의 원두가 들어가니 최대 2만4000잔 분량인 셈이다. 김 사장은 공을 들여 생두를 솎고, 볶고, 커피를 내려, 손님의 테이블까지 가져가는 전 과정을 그를 찾아온 모든 사람에게 가르쳤다. 커피점 한쪽엔 아예 교육장을 만들기까지 했다. 이렇게 그를 거쳐간 이른바 ‘문하생’들이 퍼져 나가면서 자연스럽게 강릉 지역엔 커피점이 늘었다. 올 1월 기준 강릉시가 집계한 커피점은 모두 194개 이 중 100여 개가 직접 콩을 볶아 커피를 내려 파는 로스팅 카페다. 커피 자판기 몇 대가 있었을 뿐 커피와 거리가 멀었던 강릉항 해변길(옛 안목해변)엔 3~4년 전부터 커피점이 들어서기 시작해 이제는 20여 곳에 이른다. 2009년부터는 매년 10월 커피문화축제도 열린다. 안정철 강릉시 계장은“지난 5년간 커피축제기간에만 강릉을 찾은 관광객이 100만 명을 넘는다”며“선구자 한두 분이 길을 뚫은 덕에 여름 휴가철 반짝 장사에만 목을 매던 지역사회 전체가 또 다른 블루오션을 찾게 된 셈”이라고 말했다. 김 사장이 처음부터 커피 공장을 차리려 했던 것은 아니다. 강릉 토박이인 그는 가난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아침엔 신문배달, 낮엔 잡지 팔이, 저녁엔 도서관 허드렛일까지 해 가며 강릉상고를 다닌 건 순전히 “은행에 취직할 수 있다”는 선생님 말씀 때문이었다. 꿈에 그리던 은행 문턱을 밟게 된 건 졸업을 반 년이나 앞둔 77년 6월이었다. 입사 후 21년은 쏜살같이 지나갔다. 억대 연봉을 받는 소위 ‘잘나가는’ 은행원이었지만 행복하진 않았다. 외환위기로 다니던 은행이 명예퇴직 신청을 받자 첫날 사표를 냈다. 그리고 그 다음 날 학원에 등록해 어린 시절부터 꿈꿨던 미술 공부를 시작했다. 1년을 백수로 지내고 난 뒤 속초에 돈가스집을 차렸다. 하지만 벌이가 신통찮았다. “공부를 해보자”는 마음에 퇴직금을 털어 세계 최고로 불리는 맛집을 돌기 시작했다. 공부의 끝은 후식인 ‘커피’에 이르러서 ‘광(狂)’의 경지가 됐다. “국산 와인 ‘마주앙’만 마시다 세계에서 가장 희귀하고 비싼 ‘로마네 콩티’를 접하면 그동안 몰랐던 신세계가 열리지 않습니까? 커피도 그렇습니다. 일반인은 ‘커피가 거기서 거기지’라고 생각하지만 세계 제일의 커피는 맛이 다릅니다.” 세계 최정상의 커피점을 찾아 일본 고베의 ‘하기하라’ 커피점에 들렀을 때였다. 숯불로 생두를 볶아내는 80년 전통의 커피전문점. 주인에게 부탁해 커피를 볶는 공장을 구경할 기회가 주어졌다. 그는 깜짝 놀랐다. 직원들은 생두 자루에서 일일이 썩은 콩을 골라내고 초음파까지 동원해 3단계에 걸쳐 세척을 했다. 그는 “먼지 한 톨도 허용하지 않는 깐깐함을 보고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2001년 가을, 한국으로 돌아온 그는 속초에서 하던 파스타집을 정리하고 강릉에 ‘커피 공장’을 지었다. 남들과 같아선 안 된단 생각에 세계 커피시장에서 상위 10% 이내의 ‘고급 커피 공급업’을 선택했다. 세계 최고의 커피를 만들어도 사람들이 맛을 몰라주면 안 되니 커피교실도 차렸다. 하지만 투자에 비해 거래처가 하나도 없었다. 2006년엔 빚이 25억원에 이르렀다. 목숨을 끊을까 생각했던 날들이 이어졌다. 숨통이 트인 건, 은행지점장이던 한 친구 덕이었다. 친구의 보증으로 대출을 받아 급한 돈을 막고 서울에서 가장 잘나가는 레스토랑인 청담동 ‘안나비니’ 공략에 들어갔다. “강남 최고에서 통하면 된다”는 생각에서였다. 문전박대를 받으면서도 1년간 지배인의 집을 매일같이 찾아가“커피맛 한번 봐 달라”고 졸랐다. 안나비니와의 계약이 성사되면서 입소문을 탔다. 이를 계기로 신라호텔에도 커피를 공급하게 되면서 테라로사는 승승장구했다. 2012년 부산·경기(죽전)점에 이어 지난해엔 서울 광화문에 점포를 냈다. 올핸 제주도에도 지점을 낼 예정이다. 지난해 매출은 약 200억원,영업이익은 100억원에 달했다. 김 사장은“테라로사의 경쟁자는 스타벅스가 아니다”며 “천천히, 정교하게,에르메스처럼 최고의 명품으로 인정받는 세계 제일의 커피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
    Joongang Joins     강릉=김현예 기자 / 사진=변선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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