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힐링 시대 마음의 고전

22 존 밀턴의 『실낙원』

浮萍草 2013. 12. 15. 11:44
    이상향으로 돌아가는 방법 제시한 대서사시
    『실낙원』의 우리말(왼쪽·문학동네, 2010), 영문판
    (피어슨 롱맨 2판, 1997) 표지
    한 처음, 큰 처음에 ‘낙원’이 있었다. 공자의 요순시대 마르크스의 원시 공산주의 사회 그리스도교의 에덴동산이 있었다. 지금은 섹스리스(sexless)가 된 부부에게는‘밥만 같이 먹어도 좋은’‘손만 잡아도 좋은’연애 시절 신혼 초가 있었다. 다가올‘낙원’‘유토피아’는 역사의 처음에 있었다는 것 그 처음이 미래에 다시 온다는 게 어쩌면 인류의 보편적 역사 인식이다. 왜 낙원이 지옥이 됐을까. 그리스도교에 따르면 불순종(不順從) 때문이다. 불순종이 죄의 정체요 본질이다. 첫 불순종을 일컬어 원죄라고 한다. 불순종이란 무엇인가. 초심의 상실이라고 볼 수 있다. 어떤 초심인가 국민의 뜻에 절대 복종하겠다는 사원들에게 행복을 주겠다는, ‘ 마님의 돌쇠’로 살아가겠다는 초심이다. 초심은 섬김이다.
    ㆍ‘죄=불순종’ 문제 정면으로 다뤄
    불순종의 원인은 무엇일까. 자만심 때문이다. 자만심이란 무엇인가. 내가 그래도 가장이다, 내가 그래도 나라에서 회사에서 제일 높은 대통령 최고경영자라는 생각이다. 그 결과 지상낙원을 약속한 국민 수백만 수천만명을 죽음으로 몰고 가며 사원들을 함부로 자르게 된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낙원이라는 이상향 유토피아로 다시 돌아갈 수 있을까. 믿음이나 철학, 이념에 따라 방법이 다르다. 아담의 불복종 때문에 낙원에서 쫓겨난 것이니 신(神)의 아들 예수의 순종을 본받으면 복낙원(復樂園·Paradise Regained)이 된다는 게 그리스도교의 논리다. 이상향을 복원하는 사람들은 겸손하고 겸허하다. 통상적으로 말한다면 유럽·미국을 이해하기 위해 필요한 독서물은 호메로스의 일리아드 오디세이 기독교 성경, 셰익스피어 희곡이다. 서구의 내로라하는 지식인들도 호메로스·성경·셰익스피어를 다 읽은 이는 많지 않다. 딱 한 권을 읽는다면 뭘 읽어야 할까. 이 셋 중 하나가 아니라 존 밀턴(1608~74)의『실낙원(Paradise Lost』(1667, 1674)을 읽으면 된다. 이 셋에 버금가는 책이다. 버금간다는 것은“으뜸의 바로 아래가 되는 것”이다. 『실낙원』은 1등 같은 2등이다. 종합적으로는 1등이다. 근대오종(近代五種)인 승마·펜싱·사격·수영·크로스컨트리 모든 종목에서 2등을 하면 종합 1등이 거의 확실시되듯 말이다. 불순종은 신과 인간, 아내와 남편, 자식과 부모, 국민과 통치자를 갈라놓는다. 『실낙원』은 모든 악의 근원인 불순종의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다. 순종은 사실 별게 아니다. 권력의 요구에 따르는 것이다. 하느님, 대한민국, 와이프 같은 ‘권력자’들이 요구하는 것은 아주 ‘사소한’ 것들이다. 창세기와 『실낙원』에 따르면 에덴동산에 있는 ‘지식의 나무’ ‘생명의 나무’의 열매를 따먹지 말라는 것이다. 양말을 뒤집어서 아무 데나 벗어놓지 말라는 것이다. 헌법을 지키고 애국가를 부르고 국기에 대한 맹세를 하라는 것이다.
    ㆍ예수 vs 사탄의 팽팽한 대결 구도
    쉽다고 보면 아주 쉬운 순종을 뒤로 하고 ‘아담’이 하느님의 명령을 거역하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 『실낙원』은 명쾌하게 설명한다. 권력 때문이다. 빛의 천사 루시퍼는 하늘나라에서 넘버 2였다. 그런데 하느님이 섭섭하게도 예수를 천사들의 우두머리로 삼는다. 분노한 루시퍼는 자신을 추종하는 천사들을 이끌고 ‘쿠데타’를 시도한다. 이에 예수가 직접 나서 3일에 걸친 건곤일척(乾坤一擲) 혈투―각종 신무기가 동원된―를 끝내고 반군을 제압한다. ‘사랑의 원자탄’으로 말이다. 이제 사탄이 된 루시퍼와 그 추종자들, 즉 타락한 천사들은 지옥으로 쫓겨간다. 예수와 사탄의 대접전은 아직 끝난 게 아니었다. 천국보다 더 찬란한 지옥의 건설을 꿈꾸는 사탄에게 기쁜 소식이 들려왔다. 하느님이 지구라는 행성에 에덴이라는 천국을 만들었다는 것이다. 어둠의 제국을 확장하고자 사탄은 친히 에덴으로 나선다. 에덴으로 가보니 꿀맛 같은 신혼의 단꿈에 젖어 있는 아담과 이브가 있었다. 이 신혼부부는 음탕함(lust)이라고는 전혀 찾아볼 수 없는 원초적 섹스를 즐기고 있었다. 행복한 부부의 모습을 보니 사탄은 부아가 치밀었다. 뱀의 모습으로 이브에게 접근했다. “이브 그대는 여신처럼 아름답다”며 사탄은 세 치 혀를 굴려 이브를 유혹했다. 말하는 뱀을 보고 놀란 이브에게 사탄은 ‘지식의 나무’의 열매를 따먹은 후 말을 하게 됐다며 이브를 이렇게 설득했다. 미물인 뱀도 말을 하게 됐는데 하물며 인간이 열매를 먹게 되면 하느님처럼 된다고···. 아담은 그날따라 이브에게 줄 화환을 만드느라 이브와 떨어져 딴 데 있었다. 이브에게 돌아온 아담은 모든 것을 알아챘다. 아담은 절망했지만 ‘같이 죽고 같이 살자’는 심정으로 열매를 먹는다. 사랑하는 짝을 위해 의리를 지킨 것이다. 에덴에서 쫓겨나게 된 이브는 죽어버릴 생각까지 한다. 그러자 천사 미카엘이 나타나 이들에게서 태어날 모래알 같은 자손, 왕국과 제국들의 화려함을 아담에게 보여준다. 하느님의 아들이자 아담·이브의 먼 후손인 예수의 성육신(成肉身)과 수난과 죽음 부활 그리고 재림으로 완성되는 에덴 하느님 나라의 복원을 보여준다. 이 원초적 부부는 새로운 희망으로 무장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해 에덴을 나선다.
    이러한 스토리 라인의『실낙원』을 지은 밀턴은 청교도다. 『실낙원』을 집필한 목적은“하느님 방식의 정당성을 인간에게 입증”하기 위해서였다. 그의 신앙은 ‘이단적’이기도 했다. 정통파 교회의 삼위일체 신앙과 다른 생각을 품었다. 예정설을 부인하고 만민구원설을 표방했다. 제도화된 교회보다는 신자 개개인의 신앙과 성경 해석을 중시했다. 밀턴은 우주의 모든 존재는 ‘사랑받기 위해 태어났다’고 본 듯하다. 밀턴이 그리는 사탄은 매우 ‘사랑받을 만하고(lovable)’ 쿨(cool)한 존재다. 『실낙원』 비평의 출발점은 바로 이런 너무나 인간적이고 정감 있는 사탄을 그린 밀턴이 사실은 사탄 도당(徒黨)의 일원이 아니었는가 하는 의구심이다. 밀턴은『실낙원』으로 르네상스와 종교개혁, 헬레니즘과 헤브라이즘의 성과를 모두 종합하고 뛰어넘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놀라운 것은 소리를 잃은 베토벤이‘장엄 미사곡’을 남겼듯이 어렸을 때부터 책을 너무 열심히 봐 1652년 밝음을 완전히 잃은 밀턴이『실낙원』을 남겼다는 것이다. 『실낙원』의 후편인『복낙원』(1671)에 대해서는『실낙원』보다 못하다는 의견이 다수지만 오히려 시성(詩聖) 밀턴의 백미라는 의견도 있다. 독자의 요구로 집필하게 된『복낙원』은 예수가 사탄으로부터 받은 유혹과 최종적 승리를 그리고 있다.
    Sunday.Joins Vol 353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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