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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얀 마르텔의 『파이 이야기』

浮萍草 2013. 12. 1. 12:46
    “다 읽고 나면 神을 믿게 될 걸” 도발하는 우화소설
    『파이 이야기』의 우리말(왼쪽), 영문판 표지
    금만큼 다다익선(多多益善)이라는 말이 가슴에 와 닿는 시대는 없었다. 다문화·다종교·다인종·멀티미디어·멀티플레이어 등 이 시대는 다(多),멀티(multi)가 앞에 붙은 말들의 전성시대다. 애초에 한자문화권의 일원으로서 사용해 온 ‘많을 다(多)’에는 많다·크다·낫다·뛰어나다·늘어나다·크다, 도량이 넓다는 긍정적인 뜻을 품고 있다. 영어 ‘multi’의 공습이 시작된 지도 오래다. 국어사전에는 멀티가 들어간 외래어가 20개나 나온다. 하지만 다(多)라는 게 사람들의 마음을 항상 편하게 하는 것은 아니다. 다종교 상황은 국내외적으로 갈등을 불러일으키고 있다. 게다가 ‘모든 종교는 나쁘다’는 공세적 무신론도 힘을 얻고 있다. ‘다종교 리스크’는 세계 거의 모든 지역과 나라를 위협한다. 얀 마르텔이 지은『파이 이야기(Life of Pi·2001』(이하『파이』)는 종교 간 갈등과 종교 대(對) 반종교의 구도가 빚어내고 있는 혼란에 한 가지‘솔루션’을 제시한다. ‘모든 믿음을 믿자’는 것이다. 마르텔의 메시지는 뜨거운 호응을 얻었다. 30여 개 국어로 번역된 『파이』는 1000만 부 이상 팔렸다.
    2012년 9월에 나온 영화 ‘파이’는 올해 2분기 초반을 기준으로 6억 달러의 매출을 올렸다. 영화 ‘레미제라블’의 4억4000만 달러를 앞질렀다.
    ㆍ같은 이름 영화로 만들어져 흥행 성공
    저자 얀 마르텔은 프랑스어를 사용하는 캐나다 퀘벡
    주 사람이지만 영어로 작품 활동을 한다.
    [사진 위키피디아]
    『파이』는 ‘모든 신앙인 vs 불가지론자’라는 전선(戰線)을 설정해 신앙이 달라서 생기는 갈등을 해소한다. 게다가 ‘모든 신앙인’에는 어떤 종교의 신자들뿐만 아니라 무신론자·마르크스주의자도 포함된다. 뭔가 믿고 있기 때문이다. 논리를 연장하자면 과학을 종교로 삼는 것도 좋다. 『파이』의 ‘적수(敵手)’는 아무것도 믿지 않는 사람들이다. 우화적 소설인 『파이』의 이야기 구조는 뇌 운동이 충분히 될 만큼 복잡하다. 한 단락으로 요약한다면 이런 내용이다. 때는 1977년 인도. 주인공은 16세 인도 소년 파이 몰리토르 파텔이다. 힌두교를 믿는 이 소년은 우연히 기독교를 만났다. 이슬람도 만났다. 힌두교·기독교·이슬람을 한꺼번에 믿기로 작정한다. 프랑스의 식민지던 인도 퐁디셰리에서 동물원을 운영하던 소년의 집안은 70년대 인도의 정치 혼란을 피해 캐나다로 이민을 가기로 결정한다. 승선한 배가 아무런 이유 없이 침몰한다. 파이는 구명보트에서 227일을 ‘리처드 파커’라는 이름의 벵골 호랑이와 공존하다 살아남아 멕시코 해변에 닿는다. 마르텔의 말에 따르면『파이』는 “종교·믿음·상상력”에 대한 책이다. 파이가 꺼리는 이들은“신(神)과 종교에 대해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지껄이는”사람들이다. 상상력이 없는 사람들이다. 상상력이 없으면 종교라는 신비에 접근할 수 없다. 상상력은 차갑고 딱딱한 현실을 이긴다. 신의 현존은 인간에게 최고의 선물이다. 파이의 정신적 스승은 “모든 종교는 참되다(All religions are true)”고 한 마하트마 간디다. 의심은 종교라는 선물을 못 받게 하는 장애물이다. 의심은 신앙으로 가는 한 단계로서는 괜찮다. 의심 없는 신앙은 없다. 그러나 의심을 인생철학으로 삼는 것은 ‘부동성(不動·immobility)’를 운송수단으로 삼는 것과 같다는 게 파이의 생각이다. 미국·유럽 사람들의 경우에는 대부분 기독교·무신론·불가지론에서 출발해 다른 종교를 들여다본다. 파이가 인도 청소년이다 보니 『파이』는 힌두교에서 출발해 기독교와 이슬람으로 나아간다. 바로 이 점이 서구 독자들에게 신선했을 것이다. 기독교권의 대중적 정서는 이슬람이 폭력적이라는 것이다.
    힌두교를 믿는 일반 대중의 입장에서 보면 기독교는 폭력적, 이슬람은 더욱 폭력적인 종교다. 신의 숫자가 힌두교처럼 많지 않은 것도 이들에겐 어색하다. 파이도 그런 편견이 있었다. 파이에게 종교적 상상력의 출발점은 힌두교인 것이다. 예수는 카슈미르에 묻혔다는 풍문도 들어본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기독교의 신이 죽는다는 것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예수의 기적 이야기를 접하고서는 힌두교의 신들은 예수보다 100배는 더 훌륭한 기적을 행했다는 생각도 들었다. 결국 기독교와 이슬람의 신을 믿게 된 파이는 말한다. “그 어떤 사랑하고 있는 사람에게 물어보든 사랑은 믿기 힘들다고 말할 것이다. 어느 과학자에게 물어보든 생명은 믿기 힘들다고 말할 것이다. 어느 신앙인에게 물어보든 신을 믿는 것은 힘들다고 말할 것이다.” 믿기 힘든 것을 왜 믿어야 할까. 파이의 대답은 이렇다. “인생은 이야기다. 여러분은 여러분의 이야기를 선택할 수 있다. 신과 함께하는 이야기가 더 나은 이야기다.” 이야기와 종교의 공통점은 믿음을 요구한다는 것이다. 1963년 스페인 살라망카에서 태어났지만 마르텔은 캐나다 사람이다. 부모가 외교관이라 알래스카·코스타리카·프랑스·스페인·멕시코 등 세계 여러 나라에서 살았다. 성인이 된 다음에도 이란·터키·인도 등 세계 각지를 여행했다. 27세에 전업 작가가 되기 전에는 접시 닦는 일, 나무 심는 일, 경비원과 같은 일을 했다.
    ㆍ오바마도 “신의 존재 증명” 친서 보내
    『파이』로 성공하기 전 마르텔은 두 권의 책을 냈는데 1000부 정도씩밖에 팔리지 않았다. 33세 때 소설 구상을 하기 위해 인도로 갔는데 변변한 직업도 없는 자신의 처지를 생각하니 눈물이 펑펑 나왔다. 뼈저린 외로움이 엄습했다. 많은 경우 진정한 성공은 ‘눈물 젖은 빵’을 먹어 본 후에야 시작된다. 마르텔의 경우에도 그랬다. 갑자기 스토리라인이 떠올랐다. 남부 인도에 있는 모든 동물원을 방문했다. 캐나다로 돌아와서는 1년 반 동안 기독교·이슬람교·힌두교의 모든 기본적 문헌을 섭렵했다. 동물원 생물학(zoo biology)과 동물 심리학 18~19세기 해양 재난사례도 연구했다. 『파이』의 원고를 5개 출판사에 보냈으나 모두 거절당했다. 출판사로부터 여러 번 무시당한 책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은 아니나 많은 베스트셀러가 처음에는 냉대를 받았다는 것을 확인시켜 주는 사례다.
    『파이』는 초반부에 이렇게 약속한다. 이 책을 다 읽은 다음에는 신을 믿게 된다는 것을.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2010년 마르텔에게 친서를 보냈다. 편지에는 “『파이』는 신의 존재와 이야기의 힘에 대한 품위 있는 증명이다”는 말이 포함됐다.
    Sunday.Joins Vol 351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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