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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를 일제처럼 '민비'라 부르는 우리나라 1부

浮萍草 2013. 12. 6. 22:03
    민비는 일제가 조선의 왕후를 낮추어 부르던 호칭 
    10월 8일은 118년 전인 1895년 명성황후가 일본놈들에게 처참하게 치욕적으로 시해당한 날로 역사는 이 날을 을미사변(乙未事變)이라 
    기록하고 있다. 
    그러나 이 용어는 대단히 잘못된 역사용어로, 을미사변이 아니라 을미참변(乙未慘變) 또는 을미치욕(乙未恥辱) 또는 을미국치(乙未國恥)
    로 변경되어야 마땅하다. 
    
    리는 그동안 뮤지컬이나 드라마 또는 영화를 통해 명성황후의 최후장면을 많이 보았다. 그래서 대부분 국민들은 명성황후가 일제에 당당하게 맞서다 일본놈들이 휘두른 칼에 맞아 젊잖게 죽어간 것으로 알고 있다. 그러나 실상은 그렇지 않다. 명성황후는 뮤지컬 장면처럼 그렇게 낭만적으로 죽어가지 않았다.
    KBS 대하드라마 '명성황후'에서의 시해장면. 일제는 명성황후를 이렇게
    젊잖게 죽이지 않았다. © 편집부

    뮤지컬 '명성황후'에서의 시해장면. 명성황후는 이렇게 젊잖게 시해당하지 않았다. © 편집부

    명성황후는 일제의 천인공노(天人共怒)할 만행으로 너무나 처참하게 그리고 치욕스럽게 죽어갔다. 한 나라의 왕후가 남의 나라 깡패에게 온갖 수모를 당하고 입에 담지 못할 치욕까지 당하면서 그렇게 처참하게 죽어갔는데 이를 대부분의 대한민국 국민들이 잘 모르고 있다는 것은 국가가 그동안 할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이야기와 같은 것이다. 현재 우리나라는 일제가 조선을 식민지배하기 위해 말살한 역사로 교과서를 만들어 미래의 대한민국을 짊어지고 나갈 청소년들에게 교육하고 있다. 일제는 국조 단군을 신화화하여 수천년의 우리 상고사를 잘라내 버리고 대륙의 대부분을 지배했던 광활한 역사를 좁디좁은 한반도로 가두는 반도사관을 조작하여 조선인들을 바보로 만드는 식민교육을 시켰다. 그 결과 아직도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역사를 모르고 있는 것이다. 현 강단의 역사학자들은 일본의 주구가 되어 아직도 일제의 만행을 들추어내는 것을 대단히 꺼리고 있다. 왜냐하면 대한민국 사학계는 일제 식민사학계의 맥을 이어받았기 때문이다. 일제의 그 숱한 만행 중 ‘핵 중의 핵’이 바로 다름 아닌‘명성황후 시해사건’인 것이다. 비록 이 사건은 우리에게는 치욕 중의 치욕의 역사이기는 하나 반드시 진실을 들추어내어 국민들에게 알릴 필요가 있다. 그래야 잘못된 역사교육으로 역사를 잊고사는 국민들에게 경가심을 불러일으키고 국력이 약해지면 한 나라의 국모(國母)도 이웃나라 깡패들에게 이렇게 처참하고 치욕스럽게 죽어갈 수 있다는 교훈을 되새겨줄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일본의 역사교과서에는 명성황후 시해에 관해 어떠한 구절도 실려 있지 않다. 그래서 일본인들은 이웃나라 국모인 명성황후를 죽인 자들이 자신들인지 전혀 모르고 있다. 일본은 이러한 역사적 사실(만행)을 철저히 감춤으로서 아직도 ‘일본의 조선지배의 정당성’을 강조하려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범인 중 일부 후손이 매년 한국을 찾아와 명성황후의 후손에게“할아버지를 대신해 진심으로 사과드린다.”라는 프로그램이 일본에서 약 10분간 방송되자 일본의 젊은 네티즌들이 들끓기 시작했다. “역사 위조 허위보도다”“황후를 살해한 건 조선인들이었다.”라는 주장을 했고 또 일부 네티즌들은 자신들의 블러그에 이 방송 내용을 놓고 반대 서명까지 받고 있는 실정이다.
    명성황후 시해범의 외손자가 눈물로 참회하며 사과의 절을 하고 있다. © 편집부

    TV 보도는 역사를 위조했고, 허위보도라 하며 반대서명을 받자는 한 일본 네티즌의 블러그 (우리로 치면 아고라) © 편집부

    이렇듯 ‘명성황후 시해사건’은 한.일 양국 간에 역사왜곡이 철저히 되어 있었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하물며 피해자인 한국인들도 명성황후 시해사건의 진실을 잘 모르고 있는데 가해자인 일본인들이 잘 알 리가 없지 않은가 말이다! 역사는 승자의 기록인지라, 당시 승자였던 일제는 ‘명성황후 시해사건’을 철저히 은폐 조작 말살했었다. 거기에 편승하여 이 나라 식민사학계도 종주국(?) 일본의 의사를 숭상하다보니 그렇게 국민들을 호도해 오늘에 이르고 있다. 먼저 인터넷 백과사전에 명성황후 시해사건이 어떻게 기록되어 있는지 알아보기로 하겠다.
    명성황후 시해에 사용된 칼은 일본의 한 신사에 보관되어 있다. © 편집부

    (백과사전 용어해설) “을미사변(乙未事變) : 1895년(고종 32) 일본공사 미우라가 지휘하는 폭도들이 경복궁에 난입하여 민비(閔妃)를 학살한 사건.” 우선 우리 역사학계가 스스로 명성황후를 민비(閔妃)로 부르고 있다는 사실이다. 민비는 일제가 명성황후를 낮춰 부르기 위해 만든 용어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대한민국 국민들은 아직도 명성황후를 “민비 민비” 라고 부르고 있다. 참으로 부끄러운 현실이라 아니할 수 없다. 물론 명성황후가 시해될 때는 대한제국 시절이 아니라 조선왕조 시대이므로 황후가 아니라 왕후가 맞다. (대한제국 때 명성황후로 추존되어 복위된다.) 그런 궁중의 법도를 알 턱이 없는 야만족 일본인들이 예의에 어긋나게 경우에도 없는 ‘민비’라고 함부로 불렀던 것이다. 후궁에게도 이런 식으로 부르면 예의에 어긋나는 법이다. 한국인들이여! 현 일왕가(日王家)의 안주인인 쇼다미치코(丁田美智子)왕후를 일본인들이 뭐라고 부르는지 물어보라! 일본인들은 자기네 왕후를 ‘쇼다비(丁田妃)’라고 부를까? 그리고 우리가 ‘쇼다비’라고 부르면 일본인들은 어떤 반응을 보일까? 일본인들은 절대로 그렇게 부르지 않는다. 자기 격(格)은 자기 스스로 찾는 것이다.
    일왕 부부의 사진.한국의 식민사학계는 아직도 명성황후를 민비로 부르면서 일왕을 천황으로 부르고 있다. © 편집부

    참으로 무지몽매한 대한민국 국민들이라 아니할 수 없다. 일제가 조선의 왕실을 업신여겨 비하해 부른‘민비’란 용어를 해방 후 68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우리는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즉 우리 스스로 우리의 격을 비하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일제는 식민지교육(우민화교육)을 조선인들에게 잘 시켜놓은 것 같아 보인다. 오직하면 일제의 마지막 총독인 아베 노부유키가 아래와 같은 말을 했겠는가! 우리는 아직도 일제의 식민교육(우민화교육)의 영향아래 헤매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아야 할 것이다. 이 일제의 식민교육의 잔재를 털어내지 못하는 한 우리 민족에게 내일(來日)이나 미래(未來)라는 단어는 결단코 없을 것임을 단언하는 바이다.
    마지막 조선총독 아베 노부유끼는 의미심장한 발언을 했다. 그의 말대로 한국인들은 아직도 식민교육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 민족혼인 역사 교육이 잘못 되었기 때문이다. © 편집부

    Greatcorea     高句麗역사저널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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