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과학은 살아있다

6 창조적 융합

浮萍草 2013. 11. 12. 00:30
    미래형 인재는 ‘오늘 화가, 내일 기술자, 모레 작가’
    스티브 잡스는 융합적 사고로 애플 신화를 썼다. 지난해 3월 스티브 잡스가 아이패드 2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 Apple
    회 전반에 걸쳐 융합(convergence) 바람이 거세게 불고 있다. 서로 다른 학문 기술 산업 영역 사이의 경계를 넘나들며 새로운 주제에 도전하는 지식융합 기술융합 산업융합은 새로운 가치 창조의 원동력이 되고 있다. 21세기 들어 융합 현상이 시대적 흐름으로 자리 잡게 된 까닭은 상상력과 창의성을 극대화할 수 있는 지름길로 여겨지기 때문이다.
    ㆍ지식융합:갈수록 커지는 인지과학 영향력
    인문사회학과 과학기술을 아우르는 지식융합은 그 뿌리를 계산적 견해(computational view)에서 찾아볼 수 있다. 현대과학이 태동한 이래로 주요 연구 수단은 망원경과 현미경이었다. 따라서 자연현상을 분석(analysis)하여 연구 대상의 크기에 따라 다양한 학문을 사다리 모양으로 정돈했다. 가장 작은 실체를 다루는 물리학을 사다리의 맨 아래 계단에 두고 사다리를 따라 올라가면 화학과 생물학 그 다음에 심리학과 사회학이 나타나는 식으로 학문의 위계가 구축되었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특히 1970년대부터 컴퓨터가 학문의 연구수단으로 각광을 받게 되면서 전통적인 연구 방법이 도전을 받게 되었다. 분석 못지않게 통합(synthesis) 능력이 뛰어난 컴퓨터의 출현으로 완전히 새로운 차원에서 다양한 학문 사이의 관계를 재고하게 된 것이다. 전문 분야의 개별적인 연구보다는 여러 학문 사이의 공동 연구가 요구되는 새로운 주제들이 속속 발견됨에 따라 상이한 학문 간의 수평적 융합이 가속화되는 현상이 나타났다.
     

    컴퓨터는 자연현상을 모형화(모델링)해서 시뮬레이션(모의실험)하는 방법을 제공한다. 이러한 컴퓨터 모델링 기법의 등장으로 자연 현상을 컴퓨터를 통해 이해하는 계산적 견해가 출현한 것이다. 계산적 견해에 따르면 물리학의 경우 가령 태양계를 컴퓨터로 간주하고 자연의 법칙은 컴퓨터 프로그램이라고 생각한다. 이를테면 태양의 주위를 돌고 있는 행성(컴퓨터)은 뉴턴의 법칙(프로그램)에 의해 자기의 궤도를 결정(계산)하는 것으로 본다. 생물학에서는 계산적 견해를 적용하여 뇌, 면역계, 생물의 성장에 관한 컴퓨터 모델을 개발하고 있다. 뇌의 신경세포(뉴런)가 정보를 처리하는 메커니즘을 모형화하는 신경망(neural network) 이론 면역계가 정보를 처리하고 경험을 통해 학습하고 기억하는 능력을 컴퓨터 안에서 모형화시키는 이론면역학 생물이 유전정보에 의해 하나의 개체로 발달하는 과정을 모형화하여 컴퓨터 안에서 인공생명(artificial life)의 생성을 시도 하는 계산생물학이 크게 주목을 받고 있다. 계산적 견해에 의해 성립된 대표적인 학제 간 연구는 인지과학이다. 1956년 미국에서 마음을 과학적으로 연구하기 위해 출현한 인지과학은 사람의 뇌를 컴퓨터의 하드웨어 사람의 마음을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것으로 간주한다. 인지과학은 심리학·철학·언어학·인류학 등 인문사회학과 신경과학·인공지능 등 과학기술로 구성된 융합학문이다. 인지과학은 그 역사가 매우 짧지만 여섯 개의 학문에 깊은 뿌리를 두고 있으므로 어느 의미에서는 가장 긴 역사를 가진 과학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인지과학의 방법론과 연구 성과를 활용하는 융합학문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거의 모든 인문사회학에서 인지과학과 융합한 새로운 연구 분야가 나타나고 있다. 심리철학 인지심리학 인지언어학 계산언어학 인지인류학 인지고고학 인지종교학 행동경제학 인지경제학 등 철학에서 경제학에 이르기까지 인지과학이 여러 학문에 미치는 영향은 갈수록 증대하는 추세이다. 한편 신경과학에 의해 마음의 물리적 기초가 밝혀지기 시작함에 따라 여러 분야에서 융합학문이 태동했다. <그래픽 1> 먼저 뇌 연구와 인문사회학의 융합으로 사회신경과학 신경경제학 신경신학 신경미학 신경윤리학이 출현하였다. 사회신경과학은 인간의 사회적 인지 및 행동의 기초가 되는 생물학적 메커니즘을 탐구하기 위해 사회심리학과 신경과학이 융합한 분야이다. 신경경제학은 경제학에 신경과학과 심리학을 융합해 인간의 선택과 의사결정을 연구하는 분야이다. 신경신학은 인간이 영성을 주관적으로 체험할 때 뇌 안에서 발생하는 현상을 연구하여 영성과 뇌 사이의 관계를 밝히려는 학문이다. 신경윤리학은 신경과학의 발전에 따라 필연적으로 야기되는 윤리적 문제를 성찰하려는 시도이다. 뇌 연구와 과학기술의 융합으로 새로운 연구 분야가 형성되었다. 대표적인 사례는 계산신경과학과 신경공학이다. 계산신경과학은 뇌의 기능을 신경계를 구성하는 물질이 정보를 처리하는 과정 곧 계산에 의해 설명하기 위하여 컴퓨터 과학과 신경과학이 융합하여 출현한 분야이다. 신경공학은 사람의 뇌를 조작하는 기술이다. 신경공학은 뇌의 질환을 치유하는 것이 주요 목적이지만 결국에는 정상적인 사람의 뇌 기능을 향상시키는 쪽으로 활용 범위가 확대될 것임에 틀림없다. 신경공학의 대표적인 기술은 뇌-기계 인터페이스(brain-machine interface)이다.
    ㆍ기술융합:나노·BT·IT의 상호의존적 결합
    기술융합은 전통산업과 첨단산업 첨단기술과 첨단기술 사이의 울타리를 넘나들면서 신기술과 신제품을 쏟아내고 있다. 기술융합의 확산을 결정적으로 촉발시킨 것은 2001년 12월 미국 과학재단과 상무부가 융합기술(convergent technology)에 관해 공동으로 작성한 정책문서이다. 이 문서는 나노기술(NT) 생명과학기술(BT) 정보기술(IT) 인지과학(CS) 등 4대 분야(NBIC)가 상호 의존적으로 결합되는 것을 융합기술이라 정의하고 기술융합으로 르네상스 정신에 다시 불을 붙일 때가 되었다고 천명하였다. 르네상스의 가장 두드러진 특징은 학문이 전문 분야별로 쪼개지지 않고 가령 예술이건 기술이건 상당 부분 동일한 지적 원리에 기반을 두었다는 점이다. 이 정책문서의 표현을 빌리면 르네상스 시대에는 여러 분야를 공부한 창의적인 개인이 ‘오늘은 화가 내일은 기술자 모레는 작가’가 될 수 있었다. 이 문서는 기술융합이 완벽하게 구현되는 2020년 전후로 인류가 새로운 르네상스를 맞게 되어 누구나 능력을 발휘하는 사회가 도래할 가능성이 높다고 장밋빛 전망을 피력했다. 기술융합을 선도하는 분야는 정보기술이다. <그래픽 2> 먼저 정보기술은 자동차, 조선, 건설, 전력 등 전통산업과 융합하여 경쟁력 향상에 일조한다. 이른바 굴뚝 산업에 접목되어 자동차 산업에서는 지능형 자동차 조선 산업에서는 디지털 선박 건설 분야에서는 스마트 빌딩 전력 분야에서는 스마트 그리드 (지능형 전력망) 등 새로운 산업을 창출한다. 또한 정보기술은 발전을 거듭하여 디지털 컨버전스 방송통신 융합 유무선 통신융합 만물의 인터넷(Internet of Things)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만물의 인터넷은 일상생활의 모든 사물을 네트워크로 연결해서 인지·감시·제어하는 정보통신망이다. 미국의 경우 2025년까지 이 세상에 존재하는 물건은 무엇이든지 만물의 인터넷에 연결될 것으로 전망된다. 정보기술과 생명공학기술의 융합도 활발하게 진행된다. 인간게놈프로젝트(HGP)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출현한 생물정보학을 중심으로 시스템생물학과 합성생물학이 등장한 것이다. 생명공학기술 역시 여러 분야와 융합하여 생물의학 생물정보학, 시스템생물학, 생체전자공학 생체조직공학, 합성생물학을 출현시켰다. 생명공학기술과 나노기술이 융합된 나노바이오 기술은 궁극적으로 나노의학 시대를 열게 될 전망이다. 특히 나노기술의 발전에 힘입어 생물체로부터 영감을 얻어 문제를 해결하거나 생물을 본뜨는 기술인 자연중심기술이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자연중심기술은 생물학·생태학·나노기술·재료공학·로봇공학·인공지능·인공생명·신경공학·집단지능·건축학·에너지 기술을 망라한 융합기술이다. 자연을 스승으로 삼고 인류 사회의 지속 가능한 발전의 해법을 모색하는 자연중심기술은 녹색기술의 한계를 보완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청색기술(blue technology)이라 불리기도 한다. 또한 과학기술이 문화예술과 융합하여 문화콘텐츠의 부가가치를 높이고 있다.
    ㆍ산업융합:기술+제품+서비스= 부가가치
    융합기술로 신산업을 창출하거나 전통산업을 고도화하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산업융합이 요구된다. 산업융합은 기술, 제품, 서비스가 서로 융합하여 새로운 부가가치를 창출하는 방향으로 전개되는 추세이다. 대표적 사례로는 여러 제품끼리 융합된 스마트폰을 들 수 있다. 다양한 휴대장치의 기능을 합쳐놓은 애플의 아이폰이 거둔 성공은 산업융합의 중요성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애플의 성공 신화는 전적으로 스티브 잡스(1955~2011)의 융합적 사고에서 비롯되었다. 2011년 3월 잡스는 아이패드 2를 발표할 때 대형 스크린에 리버럴 아츠(교양과목)와 테크놀로지의 교차로 표지판을 띄우면서“교양과목과 결합한 기술이야말로 우리 가슴을 노래하게 한다”고 말했다. 현대 대학의 교양과목에는 인문학·사회과학·자연과학·어학 따위의 모든 학문이 포함된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는 잡스의 말을, 인문학과 기술을 융합하여 스마트폰처럼 세상을 바꾼 제품을 만들었다는 의미로 받아들이고 있다. 어쨌거나 인문학적 상상력을 정보기술에 접목한 잡스의 융합적 사고가 애플 제품의 세계 시장 석권을 일구어낸 원동력임은 분명한 사실이다. 잡스의 융합적 접근 방법에 충격을 받은 국내 기업은 물론 정부 당국은 산업융합의 중요성을 절감하고 지식경제부 산하의 한국산업기술진흥원을 중심으로 다각도로 대책을 궁리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융합은 21세기 한국 사회의 발전을 이끌어 갈 새로운 패러다임으로 자리매김하고 있다. 지식융합은 대학, 기술융합은 연구소 산업융합은 기업에서 각각 새로운 아이디어 콘텐트 제품 서비스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이러한 융합의 물결을 주도할 사람은 자신의 분야를‘깊이 탐구하고’관련 분야와 ‘널리 소통하는’ 융합형 인재일 것임에 틀림없다.
    Sunday.Joins Vol 291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inplan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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