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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역대 큰스님들, 왜 진관사를 사랑했나

浮萍草 2013. 7. 29. 00:00
    “마음편히 공양 잡수길”
    탄허스님은 맑은국수에 호박채 고명 관응스님 바루에는 늘 고추장 올려야
    은사 진관스님 가르침 계호.법해스님 실천행
    조선 수륙도량 전통 이어 종교.국경 넘어선 포교 비법은 ‘충성’ 아닌 ‘정성’

    지금으로부터 정확하게 42년 전인 1971년 7월27일
    수행결사체 ‘청맥회’ 스님들이 진관사에서 진관스님과 사진을 찍었다. 앞줄 왼쪽부터 진관스님, 지관스님, 광덕스님, 일타스님. 사진제공=진관사
    원도 묵호포교당에서 여고시절 내내 스님들 문하에서 공부하고 시봉했던 소녀(現 진관사 주지 계호스님)는 졸업하기 무섭게 머리를 깎고 그 해 여름 서울 진관사 에서 행자생활을 시작했다. 1968년 7월께다. 당시 동국대 이사장 서운스님이 진관사를 찾은 어느날 진관사에 원래 있었던 채공은 부리나케 공양을 준비했다. 충청도 출신이었던 채공이 된장찌개를 끓이는데 영 마음에 안들었다. 보다못한 강원도 행자는 팔을 걷어부치고 묵호포교당에서 갈고닦은 ‘저력’을 보여줬다. 된장에 고춧가루를 약간 뿌려 칼칼하고 짭잘하게 끓였을 뿐인데 아니나 다를까 서운스님은 “이토록 기막힌 된장맛의 주인공이 누구냐”며 강원도 행자를 불러 앉혔다.
    얼마 전 독일 상공회의소 관계자들의 진관사를 참배하고 공양을 함께 했다. 진관사 총무 법해스님이 기념선물을 전달했다.

    갓 출가한 행자였지만 야무지고 정갈한 말과 행동을 지켜본 서운스님은 옆에 있는 진관스님(現 진관사 회주)에게 말했다. “진관아, 이 행자를 나중에 인연이 되면 강사를 만들어라.” 일찌감치 스님들로부터 <초발심자경문>을 배우고 염불과 참선도 익히면서 학창시절을 보낸 계호스님은 교육자 집안에서 자라 교대에 가라는 주변권유를 뿌리치고 출가사문의 길에 들었다. 그 날 동국대에서 학업에 정진하라는 서운스님의 제안에도 계호스님은 “출가발심한 마음을 지키고 싶다”며 자신의 뜻을 굽히지 않았다. 서운스님의 마지막 한마디, “요것봐라! 선근이 있구만!” 계호스님은 운문사 강원을 졸업하고 1973년 다시 진관사에 걸망을 풀었다. 중간중간 운문사에 머문 때도 많았지만 이때부터 은사 진관스님을 모시고 진관사에 살면서 진관사에 머물다 간 역대 큰스님들을 정성껏 시봉했다. 탄허스님 자운스님 석주스님 향곡스님 관응스님 월산스님 춘성스님 영암스님 경봉스님 묘엄스님…. 이제는 만날 수 없는 스님들인데 계호스님은 이들 큰스님의 음식취향을 지금도 깨알같이 꿰뚫고 있었다. 탄허스님은 맑은 국수를 좋아하신다. 다시마에 버섯 가죽나물 말린 것으로 국물을 내 호박채를 고명으로 얹으면 끝이다. 이 때 호박채는 절대 볶지 않고 그냥 채썰어 아주 조금 올린다. 자운스님은 심심하면서 달작지근한 튀김요리를 즐겨드셨다. 잣미음, 흑임자미음, 대추미음을 쑤어드리면 참 좋아하셨고 오후불식을 하셔서 저녁에는 두유 한 컵만 들었다. 석주스님은 뜨거운 음식을 절대 드시지 않았다. 미음이나 밥도 한소쿰 식혀서 올렸고 매운 음식을 안드시고 시원한 냉면을 상당히 좋아하셨다. 칠보사에 사셨지만 입맛이 없으면 진관사에 오셨고, 언제나 말없이 오셨다가 말없이 가셨다. 관응스님은 음식에 기름이나 애간장 넣는 것을 불허했다. 집간장에 고춧가루만 양념으로 했고 상에는 언제나 고추장을 올려드렸다. 진밥보다 된밥을 좋아하셨다. 월산스님은 순두부찌개와 버섯조림을 가장 잘 드셨고 춘성스님은 국수를 한바루 삶아드리면 남김없이 드시는 대식가였고 진관사에서 끓이는 팥죽을 상당히 즐겨 했다. 영암스님은 무조건 밥이 꼬실해야지 진밥은 절대 드시지 않았고….
     
    ▲ (左) 진관사의 전통을 계승하고 문화를 알리는데 주력하는 계호스님(사진 오른쪽)과 법해스님.  ▲ (右) 작년 추석 때 진관사 주지 계호스님이 지역어르신 1000여
    명을 초청, 곤드레밥 등을 준비해서 만발공양을 올렸다.

    20~30년 전 절에 잠시 머물었던 큰스님들의 입맛을 줄줄 외는 계호스님의 눈가는 촉촉하게 젖어 있었다. 사형사제간으로 만나 수십년 계호스님과 함께 한 길을 걸어온 법해스님(現 진관사 총무)도 “그 시절 큰스님을 시봉했던 공덕으로 오늘의 진관사가 있다”고 했다. 언제나 예고없이 오셔서 말없이 떠나셨던 스님들은 일분일초라도 늦어지면 당신들이 직접 도량석을 돌았고 푹신한 이불을 거부했으며 이른바 ‘과잉충성’을 경계했다. “시자의 시자를 살 일 있느냐”며 시자 두기도 꺼렸던 스님들이다. 입적에 들기 전“진관이가 쑨 팥죽이 먹고 싶다”던 춘성스님을 위해 은사 스님과 정성을 다해 팥죽을 쑤었던 기억 평상시 즐겨드셨던 호박과 만두를 빚어 부산 감로사 를 찾아갔더니 한 그릇 맛나게 드시고는 한달 후 입적하신 자운스님…. 한평생 수행정진으로 삶을 일관했던 큰스님들에게 공양을 올리면서 온마음을 다해 시봉했던 진관사 스님들은 지금도 스님들이 거처했던 ‘동별관’에 들어서면 그시절 큰스님이 걸어나오시는 것만 같다고 했다. 이제는 다 무너져가는 허름한 전각이지만 쉬 허물수가 없다고 했다. 요즘말로 그토록 ‘까칠한’ 스님들이 단지 음식맛 좋다고 진관사를 찾았을까. 계호스님과 법해스님이 늘어놓은 사연들을 맞춰보면 당시 큰스님들에게 진관사는 ‘제2의 고향’이나 다름없었다. 언제든지 찾아가면 고향집 누이같은 스님들이 단조롭지만 맛깔스런 상차림으로 입맛을 되살려주고 넘치지도 부족하지도 않은 편안함을 선사했으리라. “일없다” “놔둬라” 했는데도 큰스님 시봉한답시고 고집스럽게‘충성’하는 사람들을 탐탁해하지 않았던 스님들이기에 고향집처럼 푸근하고 조용한 진관사를 좋아하지 않을 수 없었을게다. “그저 오시는 스님들마다 마음 편하게 공양 잡수고 쉬다 가시게 하자”는 은사 진관스님의 가르침 역시 제자들에게 적잖은 영향을 끼쳤다. 큰스님들의 호평을 받은 만큼 진관사에선 크고작은 불교행사가 줄을 이었다. 1983년엔 자운스님을 증명으로 지관스님의 ‘계율법석’이 열려 전국의 율사 스님들과 계율을 가르치는 강사들이 몰려오는 통에 공양간이 ‘난리법석’이 되기도 했다. 성철스님, 일타스님, 광덕스님 등 큰스님들의 수행결사체인 ‘돌무더기회’, ‘청맥회’ 등도 서울에 오게되면 어김없이 진관사를 찾았다. 총무원에 귀한 손님이라도 예방하면 공양은 무조건 진관사가 맡았다. 심지어 1981년 속칭 ‘큰손’ 장영자가 대형불상을 시주한다며 마련한 ‘빅이벤트’가 수많은 스님들이 참석한 가운데 진관사에서 치러지기도 했다. 이듬해 장 씨는 사기사건으로 쇠고랑을 찼지만. 출재가를 막론하고 진관사에 사람들의 발길이 잦은 인연은 진관사의 오랜 문화이자 전통유산인 수륙재와 무관하지 않다. 진관사는 조선시대 국행수륙재(國行水陸齋)를 여는 사사(寺社)로 지정돼 매년 성대한 의식을 거행한 수륙본찰이다. 조선을 건국한 태조가 억울하게 학살당한 고려 왕족과 친인척 전쟁으로 희생된 이들의 넋을 달래기 위한 명분으로 근본적으로는 자기 후손의 안녕을 도모하고 국가기강을 바로잡아 새 왕조의 기틀을 튼튼히 하려는 목적으로 수륙재를 거행한 것이 계기가 됐다. 이에 한양 인근에 국가 수륙사의 건립을 모색하다 진관사에 무려 59칸의 대규모 수륙사(水陸社)가 건립됐다. 수륙재에 빠질 수 없는 재례음식의 발달로 진관사의 음식맛은 이때부터 국가가 공인한 셈이다. 특히 수륙재에 올리는 두부탕을 위해 두부를 만드는 ‘조포사’가 진관사 내에 설치돼 있었고 국가 차원의 재음식을 보관하는 창고 역시 진관사가 관리했다. 진관사의 음식맛이 어제오늘 얘기가 아님을, 우리나라 맛집의 ‘조상’이자 ‘원조’임을 부정할 수 없는 대목이다. 계호스님은 2006년 진관사 주지로 부임한 이래, 법해스님과 마음을 모아 세운 원력이 있다. 진관사의 역사와 전통 멋과 맛을 감추지 않고 종교와 국경을 뛰어넘어 온세상 대중들에게 알리리라 서원했다. 제일 먼저 천년고찰 진관사의 오늘을 있게 한 지역 어르신들을 모시고 만발공양을 올렸다. 그 옛날 큰스님들 시봉했던 마음으로 공양을 짓고 찬을 만들었다. 사찰음식시연회도 열고 유치원과 아동센터 등을 통한 복지포교도 한층 강화했다. 만인을 힐링하는 방송인 김제동은 지치고 힘들 때마다 진관사에서 하룻밤 쉬면서 스님이 끓여준 구수한 된장찌개에 절밥을 얻어먹고 자신을 힐링한다고 한다. 세계적인 영화배우 리차드 기어는 스님이 빚은 청포묵과 가죽부각을 맛보더니 “원더풀”을 외쳤다. 진관사가 대중들과 호흡하는 가운데도, 진관사에선 1년 365일 내내 1000일 기도가 끊이질 않는다. 올해로 세수 86세인 진관스님은 김치찌개와 겉절이를 즐겨 드시는데 요즘도 날마다 주력에 법화경을 독송하면서 평생정진을 이어간다. 문득 진관사의 ‘원조손맛’의 주인공, 계호스님이 좋아하는 음식이 궁금해졌다. 아침엔 두부조림, 점심엔 두부지짐이, 저녁에 두부장아찌…. ‘두부빛깔’ 계호스님의 피부관리 비결일지도 모르겠다.
    ☞ 불교신문 Vol 2932         하정은 기자 tomato77@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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