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푸드 이야기

계절감을 입은 가양주 문화를 기대하며

浮萍草 2013. 7. 14. 17:21
    봄에는 이화주, 여름에는 과하주… 계절별 즐기는 전통주
    근 2~3년 사이 수입 맥주 시장이 후끈거리는 것은 아마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이태원 등의 일부 맥주 전문점에서 판매되던 수입맥주는 이제 본격적인 대한민국 시장에 진출, 맥주뿐만 아니라 조금만 더 지불하면 구입이 가능한 커피와 같은 스몰 
    력셔리 시장에도 맹위를 떨치고 있다. 
    대형 마트에 가면 아예 국적별로 맥주가 나뉘어 있는 것은 물론 모 마트에서는 고급 주류의 대명사인 와인 판매량을 제쳤다는 분석조차 나오고 있다. 
    그 중 지속적인 성장을 하는 것은 일본산 맥주인데 일본에서도 맥주 시장은 가장 큰 마켓 쉐어를 가지고 있으며 맥아의 함량에 따라 맥주, 발포주 및 이른바 제3의 
    맥주 등으로 나눠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다. 
    동시에 주류 시장이 약 8조 원인 우리나라에 비해 40조 원이나 되는 일본 주류시장은 소규모 생산의 찌비르(지방 맥주)를 포함한다면 수백 종에 달하는 종류가 있다. 
    일본의 맥주 문화가 무조건 다 좋을 수는 없다. 
    어떻게 보면 일본의 맥주 시장은 소규모 업체인 우리 막걸리 및 전통주업체에 반영하기에는 여러 가지 복잡한 변수가 생길 수 있다. 
    하지만 이것만큼은 우리 막걸리와 전통주가 반영했으면 하는 것이 있으니 바로 계절에 따라 흐르는 주류 문화이다.
    
    ㆍ봄, 여름, 가을 겨울이 달라지는 일본 맥주 문화
    일본의 맥주 광고를 보면, 늘 계절마다 달라지는 것을 볼 수 있다. 단순히 광고만 달라지는 것이 아닌, 제품의 라벨이 바뀐다. 봄에는 벚꽃 여름에는 바다 가을에는 단풍 겨울에는 밤하늘에 빛나는 별을 수놓은 모양의 제품들이 출시된다. 물론 이러한 광고에는 감성이 같이 오는 TV광고 역시 따라온다. 지금이야 많이 개선되었지만, 한때 단순히 춤추고 마시고, 취하는 대한민국 모 대기업의 CM과는 다른 모습을 보여준다.
    일본 기린 맥주의 가을 한정판 맥주 광고. 출처 기린맥주 홈페이지
    ㆍ계절감을 입은 주류문화는 오히려 우리가 더 다채로워
    가양주에는 배꽃이 필 무렵 즉 늦은 봄에서 초여름에 즐기는 이화주라든지, 발효되는 약주에 소주를 첨가하여 더운 여름에 보존성을 좋게 한 과하주 등 수백종이 문헌에 기록에 남겨져 있다. 겨울에만 술 빚기를 하는 사케와 달리 봄 여름 가을 겨울에 수확되는 꽃과 곡물 그리고 약재로 빚은 전통주 문화를 생각하면 오히려 우리가 더 계절감에 대한 주류 문화가 다채로운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이치라고 볼 수 있다. 여기에 막걸리를 이야기하자면 최근에 판매되는 일반적인 쌀 막걸리가 아닌 밀 막걸리가 대표적인 여름 막걸리라고 할 수 있다.
    음력 9월 9일 중앙절의 세시주로 내려오는 국화주. 출처 (사)한국전통주연구소
    ㆍ여름이야말로 최고의 활약을 펼치는 밀 막걸리의 성질, 그 이유는?
    가을에 파종하여 겨울을 지나 봄에 추수하는 밀의 대표적 특징은 바로 찬 성질이 있다는 것 밀은 연간 평균 기온이 3.8℃ 이상이면 지대에서 경제적인 재배가 가능할 정도로 대표적인 찬 성질의 곡물이다. 따뜻한 봄, 여름, 가을을 지내는 쌀과는 확연한 성질의 차이가 있는 것이 밀 막걸리이다. 보리로 만든 맥주가 가장 많이 팔리는 시기가 바로 여름인데 보리 역시 겨울을 지나 추수되는 대표적인 찬 성질의 곡물인 만큼 자연스럽게 맥주 역시 여름 시장이 가장 커진 것이라 볼 수 있다. 즉 잘 만든 밀 막걸리는 여름의 맥주 시장을 대체할 수 있는 잠재력 역시 가지고 있는 것이다.
    경기도 양평군 지평 막걸리. 여전히 밀 막걸리로 유명한 곳이다
    ㆍ추억의 밀 막걸리, 하지만 편견 속에 사로잡혀 있기도 한 정감 어린 술
    1960년대부터 1990년대 전까지는 기본적으로 쌀로 막걸리를 비롯한 술 제조가 금지되었던 만큼 대한민국 대부분의 양조장은 밀로 빚은 막걸리를 만들어 왔다. 2000년대 들어 쌀 막걸리가 대두하면서 다수의 밀 막걸리는 자취를 감추고 있지만 실질적으로 1960년대~80년대에 막걸리를 즐긴 사람들은 대부분 밀 막걸리에 대한 애수와 편견을 동시에 가지고 있다. 이유는 당시의 밀 막걸리는 전국적인 유통이 없었던 만큼 위생 및 관리에 대한 개념이 적었던바 다양한 균의 잠입이 쉬웠고 그래서 잡균에 노출된 밀 막걸리가 시큼 하다는 이미지도 남겨 놓은 것이다. 과실향이 풍부한 밀 맥주를 생각하면 이해되듯이 잘만 만든 밀 막걸리는 그 어느 막걸리 보다 신선한 과실향 역시 즐길 수 있는 다. ㆍ밀 막걸리는 정말 잘 흔들어야
    중력분 박력분 등 다양한 밀가루가 있지만 밀은 확실히 쌀보다 훨씬 잘 뭉친다. 그래서 추억이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막걸리의 두툼한 덩어리를 많이 기억하고 있다. 덩어리가 나오면 괜히 미관상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이 있어 맛을 떠나 밀 막걸리만큼은 잘 흔들어 마시라고 하고 싶다. 특히 여름에 지방에서 택배를 받는 경우는 어김없이 뭉쳐져 있다. 밀 덩어리가 뭉쳐져 있다고 해서 문제시하기 보다는 그냥 그대로 밀 막걸리의 특징을 너그럽게 이해하는 것도 막걸리 문화를 즐기는 방법 중 하나다. ㆍ계절감이 넘치는 우리 술 문화를 기대하며
    여름이란 계절적인 특성으로 밀 막걸리를 화두로 삼았지만 막걸리의 문화를 더욱 발전시키기 위해서는 계절적인 요소가 무척 중요하다. 현재 가을의 햅쌀 막걸리, 겨울의 데워 마시는 막걸리 등 새로운 문화가 지속해서 나오고는 있지만 아직 일반 소비자 모두가 인식하기에는 시간이 좀 걸릴 듯 하다. 모든 음식에는 제철이 있다. 논 두렁이에 있는 냉이조차도 봄을 알리는 제철음식이다. 가장 만들기 어려운 음식인 우리 술에도 제철이 없다는 것은 앞뒤가 안 맞는 말이다. 대중적이고 친근한 이미지가 있는 막걸리로 좀 더 우리술 문화가 계절이라는 옷을 입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언젠가는 자연스럽게 앞서 설명한 늦은 봄에 이화주를 빚고 한여름에는 과하주를 만들어 자연이 준 발효라는 선물 아래 풍류문화를 알고 즐기는 음주문화 가 정착될 수 있게 말이다. 결국은 문화란 누가 시작했느냐가 아닌 누가 즐기느냐에 따라 그 주인이 결정 난다고 한다. 사시사철에 따라 풍류를 즐기며 술빚기를 달리 했던 우리 조상들이 만들어 놓은 문화를 단지 술이라는 이름으로 경시했다면 이제는 잘 보존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자랑 스러운 대한민국 문화유산으로 다시 돌아오길 기대한다.
    Food Chosun     글·사진 : 명욱 주류문화 칼럼니스트 mw@jurojur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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