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新줌마병법

열대야에 부르는 思美人曲

浮萍草 2013. 7. 2. 09:36
    '바빠 죽겠다' 노래를 하더니 張飛보다 억센 아내 쓰러졌네 
    수술실 들어서는 뒷모습에 짓느니 한숨, 지느니 눈물… 
    바가지, 악다구니라도 좋으니 건강하게만 살아주오
    김윤덕 여론독자부 차장
    내는 늘 바빴다. 결혼식 전날까지 출근해 한밤중 퇴근하는 바람에 목욕탕에도 못 다녀오고 웨딩드레스를 입었다. 출산 전야에도 야근을 했다. 애 나오기 전 처리해야 한다며 서류 더미를 짊어지고 온 아내는 이튿날 새벽 양수가 터져 병원에 실려갔다. 지난 현충일에도 아내는 바빴다. 새벽부터 밥 짓고 세탁기 돌리고 청소기 굴리며 부산을 떨더니, 식구들 가을·겨울옷을 정리해야 한다며 장롱을 뒤집었다. 공휴일 늦잠을 망친 남편이 짜증 섞인 목소리로 물었다. "지구 밖으로 여행 가? 웬 수선이야." 아내가 무덤덤하게 말했다. "오늘 입원하잖아. 내일 수술이야." #
    아내가 갑상선암 통보를 받은 건 3개월 전이다. "바빠 죽겠다"와 맞먹는 횟수로 "피곤해 죽겠다"를 입에 달고 살더니 건강검진센터에서 비보가 날아들었다.
    갑상선 오른쪽 날개에 악성으로 의심되는 혹이 보이니 조직 검사를 받으랬다. 바늘로 뽑아 올린 조직에서 암세포가 발견된 날, 아내는 덩치가 산만 한 중학생 아들을 끌어안고 통곡했다. 암 선고를 받고 아내는 더욱 바빠졌다. 아들 녀석을 수퍼에 데리고 다니며 유통기한 보는 법을 가르치고 밥솥에 쌀 안치는 법 세탁기 돌리는 법 은행에서 돈 찾는 법을 가르쳤다. 만일에 대비해 SOS 칠 수 있는 구세주 명단을 A4 용지에 빼곡히 적어 아들 책상에 붙이고 나오면서 아내는 또 훌쩍거렸다. " 장가가는 건 보고 죽어야 하는데…." 남편, 헛웃음을 터뜨렸다. "완치율 98%래. 웬만해선 전이도 안 된다는데 뭔 걱정이야." 순간 괴성이 벼락처럼 떨어졌다. "이게 다 누구 때문인데에에~!" #
    6인실에 자리가 있어 다행이라며 웃던 아내가 다시 우울해진 건, 하도 삶아 줄무늬가 거의 사라진 환자복 때문이었다. "살아 나와 내 옷을 입고 집으로 돌아갈 수 있을까?" "……." "만에 하나라는 게 있잖아 마취에서 깨어나지 않으면 어떡하느냐고." "9999는 깨어나니 걱정 좀 붙들어 매셔." 간이침대에 모로 누운 남편에게 아내가 카톡으로 받은 유머를 들려줬다. "남친과 남편의 차이! 남친일 땐 내 편만 들더니 남편 되니 남의 편만 드네. 남친일 땐 자기 앞에서만 울라더니 남편 되니 저 앞에서 질질 짜지 말라네. 남친일 땐 펜을 꾹꾹 눌러 손편지도 잘 써주더니 남편 되니 펜을 꾹꾹 눌러 카드 전표에 사인만 해대네. 남친일 땐 나 하나밖에 모르더니 남편 되니 소파·리모컨·TV 3종 세트와 사랑에 빠졌네. 완전 웃기지?" "완전 유치해." "당신도 연애할 땐 나밖에 몰랐어." "……." "이럴 줄 알았으면 나도 한혜진처럼 여덟 살 연하랑 연애나 해보고 죽는 건데."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
    수술방에서 호출받은 아내는 짐짓 의연한 표정으로 간호사를 따라나섰다. 수술실로 들어서는 아내의 뒷모습에 남편은 돌연 숙연해졌다. 열린 문틈으로 푸른 수술복을 입고 분주히 움직이는 의료진이 보였다. 어린아이 악쓰는 울음소리에 가슴이 쿵 떨어졌다. 만에 하나 젠장 그놈의 만에 하나! 장비(張飛)보다 억세고 튼튼한 줄 알았던 나의 아내도 아플 수 있고, 죽을 수도 있는 것이었다. 두 시간이 되도록 수술은 끝나지 않았다. 다른 환자들은 '수술종료'라는 초록 불빛으로 잘도 바뀌건만, 아내 이름엔 '수술중'이라는 빨간 불빛만이 명멸했다. 보호자 대기실에는 엎드려 기도하는 사람, 어깨 들썩이며 우는 사람, 멍하니 TV 보는 사람이 있다. 며칠 전 서점에서 집어든 책이 떠올랐다. '사랑'. 난소암에 걸린 아내를 2042일 동안 간병한 남편의 비망록. 복숙이란 여인은 독한 항암 치료를 견디지 못하고 끝내 숨을 거뒀다. 5년 6개월, 입원과 퇴원 100번, 항암 치료 50차례…. 나도 이 남자처럼 할 수 있을까. 영화 '아무르'의 노인 조르주처럼 반신불수 된 아내를 헌신적으로 돌볼 수 있을까. 띵동! 문자가 날아왔다. '수술종료'. #
    퇴원하고 나서 아내는 허구한 날 웃는다. 아침 프로에 유방암을 극복한 여자가 나온 뒤부터다. 매일 두 시간씩 웃어야 암세포를 뿌리째 뽑는다며 "하! 하하! 으하하!"를 반복한다. 냉장고 벽에 웃음 스티커를 붙이면서 아내가 말했다. "암에 걸린 이유 알아냈어. 공부 안 한다고 아들 녀석 윽박지르다 받은 죄야. 이제부턴 자애로운 엄마가 될 거야." 물론 작심삼일이다. 기력보다 불붙은 화물차 성미를 먼저 회복한 아내는 기말고사가 코앞인 아들 방에서 다시 열불을 내기 시작했다. "공부 않고 또 게임한 거야? 여기 좀 봐봐. 고왔던 엄마 목에 칼 주름 생긴 거 보여, 안 보여? 꾀꼬리도 부러워한 엄마 목소리가 돼지 멱 따는 소리 된 거 들려, 안 들려어?" 그런데 이상하지. 마누라의 저 악다구니를 들으니 살 것 같다. 집이 살아 들썩인다. 평생 돼지 목소리로 바가지 긁어도 좋으니 다시 병원 갈 일 없게 해달라고 남편, 하늘 향해 중얼댄다.
    Chosun     김윤덕 조선일보 여론독자부 차장 sion@chosun.com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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