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문득 돌아본 그때 그곳

<11> 황학동 만물시장

浮萍草 2013. 6. 8. 00:00
    “여기서 못 구하는 건 없지”… 탱크도 만든다던 추억의 ‘만물상’
    한 도시의 지나온 시간을 헤아리는 방법은 무엇이 있을까. 
    우선 오랜 건축물을 찾아보면 된다. 
    닳아서 없어지기 전까지 혹은 일부러 부수지 않는 한 건물은 그 자리에 서 있다. 
    다른 하나는 인간의 흔적을 담은 오래된 물건을 파는 시장을 찾으면 된다. 
    사람은 죽어 없어져도 쓰던 물건은 남는다. 
    나무와 벽돌 콘크리트 같은 딱딱한 재료로 세운 건물과 온갖 자잘한 용도의 물건들은 외려 짧은 인생의 허망함을 비웃는다. 
    한 동네의 랜드마크가 된 건물이란 얼마나 소중한가. 
    지금 별 쓸모가 없는 물건이라도 다시 보게 되면 얼마나 반가운가. 
    기억의 모습으로 여전히 남아있는 공간을 바라보고 옛 물건을 다시 만지작거리는 즐거움은 소중하다. 
    너무나 쉽게 과거의 흔적을 부수어 버리는 서울이란 도시의 냉정함 때문이다.
    중고품 마니아들이 숨겨진 보물을 찾기 위해 황학동 풍물시장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은 청계천 고가도로 철거로 동대문운동장으로 이전하기 전의 황학동 거리.
    / 문화일보 자료사진
    때 황학동은 서울의 귀퉁이었다. 지금은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구분일지 모른다. 종로구 장사동 출신인 나의 외할아버지는 문안 사람과 문밖 사람을 엄격히 구분했다. 사대문 안에 사는 사람만이 진짜 토박이 서울 사람이란 자부심은 대단했다. 얼추 신상이 파악되면 바로 ‘문밖 것들’로 깔보던 영감님이다. 그 기준으로 보면 동대문 바깥의 황학동은 단연코 서울의 변방임이 맞다. 황학이 노닐던 동네가 황학동의 유래라 한다. 논밭이 펼쳐졌던 문밖 동네 황학동은 이제 고층 아파트가 들어선 도심이 되었다. 이젠 이 근처에 들어서면 알고 있는 랜드마크가 하나도 없다. 인간 내비게이션을 자처하던 내가 남북을 구분하지 못해 쩔쩔 맨다. 복개된 청계천 위에 세워진 삼일고가도로는 정비된 하천이 되었다. 좌우에 들어선 우중충한 잿빛 건물들은 유리로 반짝이는 최신 유행의 명품아파트로 바뀌었다. 천지개벽의 변화가 일기 전 이곳은 암울하고 칙칙한 가난한 서민들의 동네였다. 청계천을 따라 들어선 판잣집들은 끝을 모르게 이어졌다. 1960년대에 이곳을 지나던 삼일고가도로는 그야말로 서울의 성장을 확인시키는 상징이기도 했다. 문제는 고가도로 옆의 풍경이랄까. 고가도로에서 내려다보이는 황학동 일대의 모습은 보여서는 안 될 서울의 치부로 여겨졌다. 믿거나 말거나 황학동 일대에 아파트가 들어선 일화가 있다. 당시 고급호텔이던 워커힐과 군 장성을 위한 골프장(중곡동 어린이 대공원자리)을 가기 위한 최단 코스는 삼일고가도로였다. 군부독재 시절 높으신 분께서 이곳을 지나칠 때마다 지저분한 동네를 보고 눈살을 찌푸렸다나. 알아서 기어야 하는 참모의 눈치가 이를 흘려버릴 리 없다. ‘하면 된다’가 거의 국시로 여겨지던 시절 바로 멋진 아이디어를 떠올리게 된다. 보기 싫은 동네를 가릴 아파트를 세우기로 한다. 잔디가 자랄 수 없는 계절에 페인트를 칠해서라도 푸른 잔디를 만들던 재주는 이렇게 발휘된다. 졸속행정의 표본이 될 청계천변 7층 높이의 삼일아파트는 이렇게 세워졌다. 아마도 가리개용 병풍 역할의 아파트 규모로는 최대가 아닐까. 삼일아파트 뒤 예전 판잣집들은 혜택을 보지 못했다. 대신 커다란 건물이 앞을 가려 대낮에도 볕이 들지 않아 컴컴한 어둠의 동네가 되었다. 그래도 사람들의 끈질긴 삶은 이어진다. 아파트 뒤로 이어진 골목은 새로운 용도를 찾아 변신의 방법을 찾아갔다. 시장골목엔 이전에 취급하던 농산물 대신 잡동사니와 중고물품을 취급하는 가게들이 늘어났다. 사람들이 사는 한 물건의 쓸모는 없어지지 않는다. 넘치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이 있을 뿐. 부자 동네의 쓰레기엔 쓸 만한 물건들도 끼어있게 마련이다. 재개발로 헐려지는 동네에서 수습된 물건들도 있다. 이를 모아 가난한 사람들을 위한 좌판을 벌였다. 60년대엔 베트남 파병 용사들이 전리품으로 가져온 일제 전자제품이 넘쳤다.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 등장하는 아카이 릴 테이프 데크도 눈에 띄었다. 소니, 마란츠 상표라면 최고의 대접을 받았다. 독일에서 광부와 간호사로 일하던 이들이 본국으로 보내온 유럽의 물건들도 이곳에 나돌았다. 평소 보지 못한 신기한 전자제품과 은제 식기 백설공주 풍의 도자기 인형을 어디서 볼까. 1970~80년대엔 중동 건설 붐을 따라 근로자로 파견된 이들이 가져온 물건들이 넘쳤다. 로렉스, 오메가 금딱지 손목시계 별로 써먹을 데가 없을 것 같은 커피 메이커들이 쌓여갔다. 1990년대 이후엔 온통 중국 물건들이 넘쳐났다. 호랑이 고약 정체를 알 수 없는 정력제 불법복제된 CD와 DVD…. 만물상, 벼룩시장에서도 이젠 중국제 없으면 돌아가지 않는 세상이 되었다. 황학동 만물시장은 원래 청계천변의 도로에서부터 뒤쪽으로 형성되어 있었다. 날을 잡아 이곳을 어슬렁거리는 재미가 쏠쏠하다. 작심하고 물건을 고르려면 하나도 건질 게 없다. 재미삼아 있어도 그만, 없어도 그만인 태도가 중요하다. 물건을 파는 이가 품목을 정해놓지도 제대로 분류되어 있는 것도 아닌 탓이다. 반드시 눈에 힘 빼고 어슬렁거려야 물건은 내게로 온다. 생필품을 구하기 위해 이곳에 오는 이는 드물다. 있다 하더라도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보관상태가 의심스러운 물건이기 십상이다. 아니다 쓸 만한 게 있기는 하다. 바로 옷과 구두 같은 물건들이다. 잘만 고르면, 남이 입던 옷을 찜찜해하지만 않는다면 별의별 패션의 주인공이 된다. 애리조나 카우보이들이 쓰는 창이 큰 펠트 모자 이지 라이더들의 트레이드 마크인 징 박힌 검정 가죽 재킷과 부츠도 있다. 골목을 옮기면 골동품을 취급하는 가게들도 몇 있다. 동서양의 골동품들이 섞여 있기도 하다. 무당들이 썼음 직한 삼지창과 방울 여염집의 살림인 함지박 퀴퀴한 냄새의 온갖 고물들이 풍기는 기괴한 사연을 상상하며 보는 게 재미다. 잘 아는 친구 하나는 자신의 카페를 장식할 물건을 고르기 위해 황학동을 이용한다. 그야말로 잘 고르면 장땡인 황학동의 골동품 가게는 눈썰미 하나로 보물찾기가 가능한 곳이다. 꽤 오래 전 드디어 마누라가 황학동에 눈을 돌리기 시작했다. 경상도 양반집에서 쓰던 목제 제기는 매장의 디스플레이용 받침대로 변신했다. 세련된 모양과 기능의 독일제 ‘바리고’ 온습도계도 여기에서 찾아냈다. 원래의 용도를 버린 옛 물건들은 의외의 공간과 시간 속에서 외려 참신한 기능들을 발휘한다. 세상에 고정되어 있는 것은 없다. 용도를 국한시킨 사람들의 생각이 있을 뿐이다. 바로 옆 골목의 중고 LP 레코드점은 또 어떤가. 대학시절부터 찾았던 이곳의 ‘돌 레코드’다. 바둑에 미쳐 가게 이름도 돌이라 지었다는 사장의 얼굴을 기억한다. 40년 넘게 황학동을 지켜온 뚝심의 사나이는 어느새 머리가 하얗게 셌다. 국내 가요와 라이선스 음반을 주로 취급하던 돌 레코드다. 지금의 주 품목은 CD로 바뀌었다. 바로 옆집인 장안레코드와 함께 다행히 지금도 명맥을 유지하는 게 얼마나 고마운지 모른다. 누군가는 가치의 확신을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언젠가 그 가치는 재발견되고 통용되게 마련이다. 진정 좋은 것이 오래되면 저절로 고전이 되는 순환의 과정을 우리는 경험을 통해 안다. 골목이 바뀌면 오디오 숍이 몇 집 있다. 어디서 찾아냈는지 모를 오래된 기기들이 넘친다. 선한 인상의 ‘영창오디오’ 주인장은 가끔 대단한 물건들을 내놓는다. 파주출판단지의 ‘지지향’ 로비에 있는 거대한 A-4 알텍 스피커를 구해준 공로는 그의 몫이다. 황학동 만물시장을 뒤져 그의 뒷심을 파악한 사람은 누굴까? 바로 이글을 쓰고 있는 윤 뭐시기다. 황학동 순례를 하다 보면 허기를 느끼게 마련이다. 주방용품을 파는 골목 쪽으로 가면 이 나라에서 가장 푸짐한 짜장면을 파는 집이 있었다. 최근 유행하는 세숫대야 냉면보다 더 큰 그릇에 담겨진 짜장면은 맛도 좋았다. 주머니가 얄팍한 보통사람의 주린 배를 채워줄 짜장면의 양보다 푸짐했던 것은 같은 입장의 주인장 씀씀이다. 나는 고등학교 다닐 때 이곳의 짜장면을 먹기 위해 황학동에 들렀던 적도 있다. 짜장면보다 더 맛있는 음식은 지천으로 널렸다. 이상하게도 기억의 맛은 강도를 줄이는 법이 없다. 사람이 바뀌었으니 이젠 맛볼 수 없는 아쉬움만 커진다. 한때 “이곳에서 구하지 못하는 물건은 대한민국에 없다”라는 말이 떠돌았다. 황학동 전체를 뒤지면 탱크도, 미사일도 만들 수 있을 정도였다나. 그야말로 없는 것 빼고 다 있는 만물상 역할을 하던 공급처라 할만 했다. 시대에 따라 시장의 기능은 변하지만 역할은 바뀌지 않는다. 누군가는 필요로 하고 누군가는 공급해야 하는 관계다. 지금도 황학동 만물시장은 장소를 바꾸어 유지되긴 한다. 오랜만에 다시 찾아본 황학동 풍경은 뭔가의 아쉬움이 있다. 달라진 점은 예전과 같은 활력이 느껴지지 않는 점이다. 이젠 지지리 궁상을 떨지 않아도 되는 여유의 모습일까. 모든 것을 컴퓨터 하나로 해결하는 편리에 길들여져서일까. 도시의 아름다움은 세월을 묻혀야 비로소 깊이가 더해진다. 지저분하더라도 불편하더라도 그대로 놔두는 게 잘 하는 짓이다. 세월의 오염은 일부러 만들어내지 못하는 고도의 아름다움이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니 바로 세월의 때를 벗겨버린 낯설음임을 알겠다.
    Munhwa         윤광준 사진작가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