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옛글에서 읽는 오늘

저술의 고민

浮萍草 2013. 5. 21. 07:00
    “옛날 학자들은 책이 없어서 걱정이었고 지금 학자는 책이 많아서 걱정입니다. 
    옛날에는 책이 없어도 영웅과 어진 사람이 많이 나왔는데 지금은 책이 많아도 인재가 날로 줄어듭니다. 
    어찌 시대가 서로 다른 때문이겠습니까? 실은 책이 많은 게 빌미가 된 것입니다.”
    담헌 홍대용이 선배에게 보낸 편지글의 일부다.
    담헌은 책을 쓰는 행위가 이기는 데 힘쓰고 박식함을 자랑할 뿐 쓸데없는 빈말이 되는 것을 경계했다. 
    선비란 배운 것을 실행하는 데 힘쓰는 것이 우선이다. 
    실행하지 못하고 밝히지 못하는 처지에서 후세가 걱정되면 부득이 책을 써서 후세 사람들을 깨우쳐 주는 것이다.
    실천과 실심(實心)·실사(實事)를 중시했던 담헌은, 선배가 의례(儀禮)에 관한 책을 쓴 데 대해 불만을 토로했다. 
    예절 동작과 절차에 관해 주석의 주석을 다는 것보다 천문·수학·재정·군사 분야가 더 세상에 도움이 되고 힘쓸 바라고 강조했다. 
    이 편지는 무엇을 쓸 것인가에 관한 문제제기였다.
    다산 정약용은 실행하지 못할 처지에서 부득이 책을 썼다. 
    그는 두 아들에게 자신이 쓴 책을 잘 읽으라고 당부하면서 말했다. 
    “군자가 책을 지어 세상에 전하는 것은 오직 한 사람이라도 알아줄 것을 구해서이다.” 
    “만일 내 책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이가 많은 사람은 아버지처럼 섬기고 나이가 비슷한 사람은 의형제를 맺어도 좋다.”
    책이란 저자의 뜻을 담은 것이고, 읽어줄 독자를 전제하고 있다. 
    그런데 다산은 오직 한 사람의 독자! 단 한 사람만이라도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이 있다면 그를 위해 쓰겠다는 것이다. 
    자신의 뜻에 대한 절실함이 지나쳐 오만함마저 느껴진다. 지나치게 저자 위주의 생각 아닌가?
    다산이 보기에 독서계의 세태는 불만스러웠다. 
    “거칠고 견문이 부족한 책 다수는 세상에 의해 높임을 받고 견실하고 학식이 풍부한 책은 오히려 배척받다 사라졌다.” 
    왜 그런가? 
    “천하에 거칠고 서투른 사람은 많으나 사리를 꿰뚫어 환히 아는 사람은 드물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떻게 책을 쓸 것인가? 
    “우선 스스로 긍지를 가질 수 있도록 힘써야 한다.” 
    “기상을 점검하여 자기의 본령이 섰는지를 확인한 연후에 저술에 임해야 한다.” 
    요컨대 독자에게 영합하려 하기보다 자신에게 충실하고 당당해야 한다. 
    다종다양한 글쓰기와 공간이 존재하는 오늘날 사정은 상당히 다르다. 
    특히 대중성이 강조되고 독자에 대한 배려가 요구된다. 
    그러나 글과 책이 범람하고 판매 부수와 클릭 횟수에 집착하는 것을 보면 담헌과 다산의 경계가 예사롭지 않게 들린다. 
    무엇을 쓸 것인가, 
    독자에 대해 어떤 자세로 쓸 것인가? 
    글을 쓰는 사람에게 여전한 문제다.
    
    Khan    김태희 실학21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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