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역사 속 불교

14. 대강백 경운 스님 입적

浮萍草 2013. 6. 20. 07:00
    1936년 11월11일 선암사서
    한국 근대불교의 화엄 종주
    학식·수행 높아 생불로 추앙
    임제종 설립해 일제에 저항
    경운 스님(1858~1936).
    운 원기(1858~1936) 스님. 일제시대 만해 스님 등과 더불어 임제종을 설립해 한국불교의 정통성을 지켜냈을 뿐 아니라 당대 최고의 강백이자 근대한국불교의 화엄 종주로 추앙받던 스님이었다. 그럼에도 스님은 근대한국불교사에서 크게 조명 받지 못했다. 스님은 1950~60년대 비구·대처간 갈등 끝에 사실상 태고종이 차지한 선암사 문중 이었기 때문이다. 조계종으로선 선암사 문중이었던 경운 스님을 주목할 이유가 없었고 태고종 선암사 역시 스님을 조명할 여력이 되지 못했다. 자연 경운 스님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질 수밖에 없었다. 이런 가운데 최근 태고종 선암사를 중심으로 ‘경운원기 선양실천회’(위원장 호명 스님)가 구성돼 처음으로 스님의 사상과 행장을 새롭게 조명하는 학술대회를 준비 하고 있다. 내년 6월 개최 예정인 학술대회에서는 ‘경운 원기의 불교사적 위상(법산 스님)’을 비롯해‘근대 선암사와 화엄종풍(차차석 교수)’,‘화엄종주 경운원기의 사상(신규탁 교수)’,‘근대 경운원기의 활동(김경집 교수)’,‘경운원기의 서화에 나타난 예술세계 (진철문 교수)’ 등의 주제논문이 발표된다. 경운 스님은 1852년 경상도 웅천에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불교에 깊은 관심을 가졌던 스님은 열일곱 살 되던 해 지리산 연곡사 에서 환월 스님을 은사로 출가했다. 이후 스님은 교학을 체계적으로 배우겠다는 발원을 세우고 선암사 대승강원에 입학했다. 당시 대승강원에는 조선말기 호남의 대표적 강백이었던 함명 태선으로부터 강맥을 계승한 경붕 익운 스님이 주석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 곳에서 10여 년 간 경붕 스님의 지도를 받은 경운 스님은 서른 살 되던 해 마침내 스승으로부터 강석(講席)을 물려받았다.
    비교적 젊은 나이에 강주의 자리에 올랐지만 스님은 교학에 대한 뛰어난 이해와 해박한 지식으로 명강의로 유명세를 탔다. 경운 스님으로부터 강의를 듣기 위해 전국에서 많은 학인 스님들이 선암사로 몰려들어 북새통을 이룰 정도였다. 갑자기 많은 학인들이 선암사에 몰려들자 스님은 계단을 다시 세워 지계 전통을 곧추 세웠다. 어려서 서당을 다녀 유학에 조예가 깊었던 스님은 박학다식과 함께 명필로도 유명했다. 특히 스님의 뛰어난 글씨체를 이미 전국적으로 소문이 났고 급기야 1880년 명성황후가 직접 ‘법화경’을 사경해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당시 왕후의 명을 받은 경운 스님은 통도사에서 3개월간 한 글자를 쓸 때마다 한 번씩 절을 하면서 ‘금자법화경’을 사경했다. 그런가 하면 1896년 스님은 선암사에서 6년간 일행삼배(一行三拜)하며 ‘80화엄경’을 모두 사경하기도 했다. 스님은 일제로부터 나라를 빼앗긴 뒤에는 조선불교의 전통을 지키려 부단히 노력했다. 특히 스님은 이회광 등 친일 승려들이 조직한 원종이 일본 조동종과 연합맹약을 맺고 조선불교를 장악하려 하자 “원종의 행위는 한국불교를 일본불교로 개종시키려는 매종이조(賣宗易祖)의 망동”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와 동시에 스님은 석전·만해·진응 스님 등과 함께 1911년 1월15일 순천 송광사에서 총회를 열고 조선불교 임제종을 설립해 한국 불교를 일본불교에 종속시키려는 음모를 막아냈다. 일제가 1912년 사찰령을 반포,조선 임제종을 해체시키자 스님은 대중포교를 위해 송광사와 함께 순천에 있던 환선정(喚仙亭,조선 시대 무예시험장)을 매입해 그곳에 포교당을 건립했다. 특히 스님은 이곳에서 백련결사를 주도하면 한국불교의 수행전통을 계승했다. 그런가 하면 서울 각황사에서 포교사로 활약하며 수많은 대중들을 교화했다. 이 때 법문을 들은 불자들은 학식과 수행이 뛰어난 스님을 생불(生佛)로 추앙할만큼 크게 존경했다. 1929년 조선불교청년회가 한국불교를 통일하기 위해 개최한‘조선불교선교양종승려대회’에서 초대 교정으로 선출된 것도 스님에 대한 대중들의 절대적인 신뢰가 있었기에 가능했다. 개화기와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대강백으로 추앙받았던 경운 스님.석전,진응 등 훗날 한국불교의 대표적 강백으로 명성을 날렸던 스님들을 제자로 뒀던 경운 스님은 1936년 11월11일 오전 11시 선암사에서 원적에 들었다.
    법보신문 Vol 1171         권오영 기자 oyemc@beopbo.com

      草浮
    印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