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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커뮤니티 맵핑 ‘우샤히디’ 설립자 오리 오콜로

浮萍草 2013. 6. 2. 07:00
    수많은 제보 실시간 취합, 인터넷 지도에 담다
    오픈소스 맵핑 플랫폼‘우샤히디’설립자이자
    구글의 아프리카 정책 책임자인 오리 오콜로가
    2010년 9월 열린 ‘클린턴 글로벌 이니셔티브’
    콘퍼런스에서 발언하고 있다. [블룸버그 뉴스]
    난달 27일 몸담고 있는 은행권청년창업재단이 오래 매달려온 일 하나가 첫 번째 능선을 넘었다. 서울 테헤란로 인근에 국내 최초 창업 생태계 허브 ‘D.캠프(D.CAMP)’를 연 것이다. 소재지를 정하기까지 고민이 많았다. ‘어떤 지역이 최선일까?’ ‘임대료가 싼 곳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 문제를 단번에 해결해 준 건 인터넷에서 찾은 지도 한 장이었다. 구글맵에 주요 스타트업(초기 벤처기업)과 투자회사,관련 기관들의 위치가 표시돼 있었다. 수많은 이가 자신이 아는 관련 데이터를 직접 입력해 완성한 것이었다. 제1 밀집지역은 테헤란로 인근,둘째 신사동 가로수길 주변,셋째 홍대앞,넷째가 광화문과 종로 일대였다. D.캠프가 삼성동 삼릉공원 옆에 들어서게 된 연유다. 이렇듯 소스코드가 공개된 인터넷 지도 위에 다수의 네티즌이 각종 정보를 직접 올릴 수 있도록 하는 걸 ‘오픈 소스 인터넷 맵핑 솔루션’이라고 한다. 집단지성과 위치정보,인터넷 지도 서비스가 결합해 놀라운 결과물을 만들어 낸다. e메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 문자메시지 등 다양한 채널로 취합한 정보를 실시간 시각화한다. ‘시민 저널리즘’ 혹은 SNS 정치혁명의 진원지로 꼽힌다. 그 시작에는 한 아프리카 여성이 있다. ㆍ케냐 빈민 출신 … 하버드 나와 일류 로펌 입사
    오리 오콜로(Ory Okolloh·36). 케냐 나이로비 태생의 변호사이자 시민운동가, 파워 블로거다. 미국 경제전문지 포브스는 지난해 6월 그에게‘아프리카에서 가장 성공한 여성’이라 는 칭호를 붙여줬다.
    2008년 세계 최대 지식 콘퍼런스 TED에서 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솔직히 고백했다. 이는 세 단어로 요약 가능하다. 빈곤, 부패, 질병. 탈출이 쉽지 않은 늪에서 벗어날 수 있었던 건 남다른 행동력과 적극성, 무엇보다 책임감 덕분이었다. 오콜로의 부모는 교육열이 남달랐다. 하루 벌어 하루 살기 힘든 살림에도 그를 가톨릭계 사립학교에 보냈다. 학비를 제때 못 내 수업 참여를 금지당하곤 했다. 이후 오콜로는 최고 명문교인 국립케냐고등학교 입시를 치렀다. 결과는 1점차 낙방. 혹 무슨 방법이 있을까 싶어 교장을 만난 부녀는 굴욕적인 취급을 당했다. 내세울 것도, 연줄도, 심지어 성(姓)조차 없는 아버지를 교장은 대놓고 업신여겼다. 자신보다 성적 낮은 특권층 자녀들이 학교에 입학한 걸 알고 오콜로는 다짐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구걸하는 삶을 살지 않겠다고. 2주 뒤 입학시켜주겠다는 연락이 왔지만 오콜로는 거부했다. 공부에 매진해 미국 펜실베이니아주의 명문 피츠버그대에 진학했다. 하버드 로스쿨 학생이던 1999년 아버지가 에이즈로 사망했다. 주말 직전 병이 악화됐는데 현금도,문 연 은행도 없어 사흘간 물 주사만 맞다 저세상으로 갔다. 변호사가 되고 세계 6대 로펌 중 하나인 커빙턴&벌링에 입사한 뒤에도 아버지 죽음과 고향 아프리카의 아픈 현실은 그를 놓아주지 않았다. 2003년 케냐 개혁을 지향하는 블로그(kenyanpundit.com)를 개설했다. 같은 해 ‘음잘렌도닷컴(mzalendo.com)이라는 국회의원 감시 사이트를 만들었다. 스와힐리어로 ‘애국’을 뜻하는 음잘렌도는 오늘날 케냐 정치인과 시민들이 직접 소통하는 정치 혁신의 장이 됐다. 2007년, 오콜로는 케냐로 돌아왔다. 높은 연봉과 안락한 삶을 뒤로한 채 아프리카의 현실에 몸을 던지기로 했다. 같은 해 케냐 대통령선거가 있었다. 결과를 놓고 적대세력 간에 유혈충돌이 일어났다. 오콜로는 블로그를 통해 각지의 폭력 사태에 대한 제보를 받기 시작했다. 혼자선 도저히 소화할 수 없을 만큼 많은 정보가 밀려들었다. 오콜로는 정보기술(IT)의 힘을 빌리기로 했다. “인터넷 지도에 사건 발생 지역의 위치를 표시할 수 있는 방법을 찾아달라”고 네티즌에게 호소했다. 캐나다, 가나 등 세계 각지 개발자 10여 명이 나섰다. 이들은 인터넷 화상회의로 의견을 나눠가며 사흘 만에 그럴듯한 인터넷 맵핑 솔루션을 만들었다. ‘우샤히디(Ushahidi)’의 시작이다. 우샤히디는 스와힐리어로 ‘증언’을 뜻한다. 그에 걸맞게 우샤히디는 강력한 언론통제국인 케냐의 현실을 가장 명확하고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정보 창구가 됐다. 지난해 한국을 찾은 우샤히디 프로젝트 매니저 브라이언 허버트는 몇몇 인터뷰에서 “당시 나는 (미국 온라인미디어) Cnet 소속 이었는데 케냐 소식을 알 방법은 우샤히디뿐이었다. CNN도 BBC도 도움이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름 없는 수많은 이의 자발적 참여가 얼마나 강력하고 효율적일 수 있는지를 우샤히디는 세계에 보여줬다. 시민이 직접 뉴스의 생산자이자 소비자가 되는 ‘시민 저널리즘’의 전범이 됐다. IT가 정치 발전, 시민정신 발현, 정보 공유를 통한 재난 해결에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도 증명했다. ㆍ“변화가 오길 바란다면 우리 손으로 일으켜야”
    오콜로는 여기서 그치지 않았다. 우샤히디의 소스 코드를 공개해 세계 누구나 유사 서비스를 구축할 수 있게 했다. 같은 이름의 사회적기업을 세워 기술을 계속 업그레이드하고 세계 각지의 다양한 시도를 지원한다. 서비스 개발, 번역 등 주요 업무에, 여전히 세계 각지의 봉사자들이 온라인으로 참여한다. 2010년 아이티 강진 때는 수백 명의 자원봉사자가 몰려들어 누군가 구조 요청을 하면 위치 추적과 현지어인 크리올어 번역을 통해 생환을 도왔다. 런던 지하철 파업, 워싱턴 대폭설 때도 위력을 발휘했다. 미국의 IT구루 돈 탭스콧은 저서『매크로위키노믹스』에서 대규모 협업이 사회 제도를 바꾸고 새 가치를 창출하는 시대가 왔다고 강조한다. 현대사회가 직면한 복잡다단한 문제를 해결하려면 몇몇 영웅이 아닌 다수의 자발적 협력을 통한 집단지성이 중요하다고 역설한다. 탭스콧은 그 예로 우샤히디를 든다. 협업,개방성,공유,진실성,상호의존성이라는 위키노믹스의 5대 원칙을 이상적으로 구현해 냈다는 평이다. 2011년 오콜로는 구글의 아프리카 정책 및 정부관계 책임자가 됐다.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에서 남편, 세 딸과 산다. 여전히 세계 각지를 돌며 공유와 참여의 가치를 설파한다. TED에서 그는 이런 말을 했다. “나의 비전은 내 딸들을 비롯해 아프리카에서 태어난 모든 아이가 이곳을 떠나지 않고도 원하는 사람으로 자랄 수 있게 하는 것 입니다. 변화가 오길 바란다면 그 변화를 우리 손으로 일으켜야 합니다. 우리(아프리카인)는 우리 대륙을 책임져야 합니다.”
    Sunday.joins Vol 318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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