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수 아래, 열반에 든 스승과 애통한 제자들
| ▲ 2~3세기, 대영박물관, 영국 런던. |
부처님은 오랫동안 중생들을 위해 법을 설한 후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말라족이 다스리는 꾸시나라에서 열반에 드셨다.
부처님의 일대기 가운데 부처님의 열반은 다른 장면과 달리 독립된 경전을 갖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열반경’은 크게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는데 대승불교의 ‘열반경’과 초기불교의 ‘열반경’이 그것이다.
부처님의 입멸을 소재로 한 불전도 가운데 간다라 열반 도상이 중요한 것은 불교계에서 처음으로 옆으로 누운 사자(死者)로 부처님
을 표현했다는 점이다.
횡와(橫臥)의 부처님을 중심에 배치한 간다라 열반도는 부처님께서 열반하기까지 일어난 여러 이야기를 한 장면에 압축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간다라 열반 도상의 가장 큰 특징인 부처님이 옆으로 누운 자세를 취한 이유를 ‘해심밀경소’에서는“부처님께서 누워서 열반에 들고
앉아서 열반하지 않은 것은 속임수를 여의었다는 것을 나타내려 했기 때문이다.
만약 부처님께서 앉아서 열반에 들었다면 곧 믿지 않는 이는 ‘이것은 바로 속임수이다.
어떻게 죽은 사람이 단정히 앉을 수 있단 말인가?’라고 말할 것이다”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것은 누구나 부처님이 될 수 있다는 것을 몸소 보여준 것이며 일겁(一劫)을 더 머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열반에 든 부처님의
유지(遺志)가 잘 담겨 있다.
즉 모든 것은 항상하는 것이 없고 변한다는 제행무상(諸行無常)을 몸소 보통 사람의 모습으로 보인 것으로 신비화된 고승의 열반
모습과 대비되는 대목이다.
두 그루 사라수 사이에 놓인 침상 위에 열반에 든 부처님이 있다.
침상 앞에 등을 보이고 앉아 있는 인물은 마지막 제자 수밧다로 생각되며,바닥에 쓰러져 있는 인물은 스승의 열반을 애통해 하는
아난이다.
아난을 위로하는 아나율의 그 앞에 서 있으며,아나율 뒤에는 부처님의 호위자였던 금강저를 든 금강역사가 손을 올린 채 슬퍼하고
있다.
부처님의 발치에는 부처님의 열반 소식을 이교도로부터 전해듣는 대가섭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부처님 뒤에는 슬픔에 잠긴 말라족의 다양한 모습이 드라마틱하게 표현되고 있다.
☞ Beopbo Vol 1121☜ ■ 유근자 박사 한국미술사연구소 연구원
草浮 印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