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타워 만한 나무가 남산위에 서 있다면
| ▲ 서울타워와 나무의 기분 좋은 공존. |
서울 한가운데 있는 남산은 숨을 쉬기 위해 수면 위로 올라온 고래처럼,마천루의
숲을 헤집고 솟아오른 거대한 초록빛 생명체 같다.
그 숨결은 서울의 대기에 은은하게 스며들어 잔잔하게 퍼져간다.
남산이 있어 서울은 더욱 서울스럽다.
그야말로 자연이 선물한 축복이 아닐 수 없다.
나는 ‘남산 예찬론자’다.
ㆍ인구밀도 높지만 녹지 많은 서울
서울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가입한 국가의 도시 가운데 인구밀도(2009년
기준 km²당 1만7219명)가 가장 높다.
서울의 인구밀도는 두 번째인 멕시코의 수도 멕시코시티의 2배이며, 일본 도쿄의
3배, 미국 뉴욕의 8배 수준이다.
인구밀도가 높아지면 삶의 질이 그만큼 낮아질 수밖에 없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서울의 녹지율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프랑스 파리나 도쿄보다 높을 뿐만 아니라 영국 런던에 비하면 두 배 이상의 녹지가
있다.
그 이유는 서울이 산에 둘러싸인 분지형 도시이기 때문이다.
서울 안에 있으면 잘 느껴지지 않지만 가까운 산에만 올라봐도 서울이라는 도시
사이사이로 얼마나 다양한 높낮이의 산들이 자리하고 있는지 실감할 수 있다. 그
한가운데 남산이 있다.
지금 남산은 서울의 한가운데에 놓여 있다.
하지만 행정구역 팽창 이전 조선시대의 남산은 한양의 남쪽에서 안산(案山·집터나
묏자리 맞은편에 있는 산) 역할을 하던, 풍수학상 중요한 의미를 가진 산이었다.
삼청동 인왕동 쌍계동 백운동과 더불어 한양 5경이라 불리던 남산 북쪽 기슭은
1890년대까지만 해도 산 중턱 위쪽으론 건물을 세우지 못하게 하던 곳이었다.
왕궁을 엿볼 수 있다는 이유였다.
그래서 임진왜란 당시에는 왜군이 남산에 진지를 쌓기도 했다.
이후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침략하며 남산 기슭에 집착하는 모습을 보였다.
구한말에는 일본공사관과 통감부가, 일제강점기에는 황민화 작업의 구심점이 된 조선신궁이 거대한 규모로 산기슭을 차지하게
됐다.
이 때문에 나라의 안녕을 기원하던 국사당(國師堂)은 인왕산으로 강제 이전됐다.
1945년 광복은 남산에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광복 후 전국 대부분의 신사가 그랬던 것처럼, 조선신궁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신궁이 있던 자리엔 항일민족운동을 기리는 기념물들(안중근기념관과 백범광장 등)이 세워졌다.
여기서 오늘날 우리는 생생한 역사의 반전을 목격하게 된다.
ㆍ신사의 석재들로 꾸민 테이블과 의자
오랜만에 남산을 거닐었다. 예전에 바람 잘 날 없던 남산은 현대에 들어서도 편안하지만은 않다.
교통량 증가로 산을 관통하는 터널을 3개나 뚫었고, 요즘엔 성곽 복원으로 이곳저곳이 파헤쳐져 한창 공사 중이다.
이 산도 언젠가 평안을 찾을 날이 오겠지.
남산은 세계 여러 대도시의 유명한 도시공원들과 견줄 만한, 아니 그 어떤 공원보다 좋다는 확신이 들 만큼 훌륭한 곳이다.
어느 계절에 걸어도 좋지만, 큰길가의 벚나무와 은행나무 덕분에 봄가을에 특히 운치가 있다.
정상의 남산타워(현재는 N서울타워) 앞에서 바라보는 서울은 그 옛날 태조가 왜 이곳에 새 나라의 수도를 정했는지를 알 수 있게
해준다.
한양의 모습이 전혀 남아 있지 않은 아쉬움은 더욱 발전할 미래의 서울을 기대하며 살짝 접어본다.
머리를 들어보니 남산타워가 의연히 서 있다.
나는 가끔 빌딩이나 타워를 보며 만약 이만한 크기의 거대한 나무가 건물 대신 서 있다면 어떤 느낌일까 상상해 보곤 한다.
분명 남산타워의 저녁 야경만큼 멋진 빛깔로 사계절 옷을 갈아입으며 근사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을 텐데!
내려오는 길은 숭의학원이 있는 예장동 쪽을 택했다.
현재 남산원과 숭의학원, 리라초등학교 등이 들어선 부근은 일제강점기 때 경성신사와 내목신사가 있던 곳이다.
아동 보육시설인 남산원엔 남산에서 유일하게 일본 신사의 흔적이 남아 있다.
신사의 석재들로 마당의 테이블과 의자를 꾸며 놓은 것이다.
지금도 꾸준히 일본인들이 자국에서 만든 안내서를 들고 찾아온다고 한다.
나는 그 돌 위에 앉아 종일 산을 오르내린 피곤함을 달래며 남산의 가을을 스케치북에 담았다.
주위 가득한 은행나무 잎들이 바람을 따라 허공에서 노란빛깔 춤을 춘다.
몇몇 아이들이 그 잎을 잡으려고 마당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나 역시 고운 녀석으로 몇 개를 골랐다.
올해의 흔적들. 그리고 이 가을이 가는 걸 아쉬워하며 스케치북을 접었다.
참, 빼먹을 뻔했다.
숭의학원은 일제강점기 때 평양에 있던 기독교 학교로 신사 참배를 거부하고 자진 폐교한 곳이다.
광복 후 서울로 옮겨와 신사가 있던 자리에 보란 듯 자리를 폈다.
역사에는 영원한 승자도, 영원한 패자도 없다.
영원한 가을이 없는 것처럼.
■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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