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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인왕산 선바위

浮萍草 2012. 11. 13. 06:00
    정도전-무학 儒佛 기싸움… 결국 도성안에 포함안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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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왕산 선바위를 찾아가는 길은 그리 만만치는 않다. 
    지하철 독립문역에서 내려 고층 아파트 옆 가파른 경사의 축대길을 땀을 뻘뻘 흘리고 올라가면 일주문(一柱門)이 보이고, 이내 
    수없이 많은 절집들을 만나게 된다. 
    무속신앙에서 말하는, 인왕산과 국사당, 선바위의 기운이 뿜어내는 위력을 실감하는 순간이다. 
    여러 절집을 지나 선바위에 다다랐다. 
    한 젊은 여인이 열심히 치성을 드리는 옆으로 멀찍이 떨어져 앉아 스케치북을 폈다. 
    고요한 산 위에서는 절을 할 때 나는 옷깃 부딪히는 소리와 염주를 돌리는 가느다란 소리까지 들리는 것만 같았다.
    ○ 승려가 참선하는 모습 닮아
    조선의 수도인 한양은 성곽도시였다. 예로부터 종묘와 사직, 궁궐을 조성하고 그것을 보호하는 성곽을 쌓는 일은 건국의 중요한 과정 중 하나였다. 오늘날 서울성곽으로 불리는 성벽은 내사산(內四山)이 되는 네 개의 산(북쪽의 북악산,동쪽의 낙산,남쪽의 남산,서쪽의 인왕산)을 연결해 한양을 감싸는 모습으로 만들어졌다. 후에 점차 도시가 확장되면서 도심 부근의 성곽은 대부분 철거돼 사라졌다. 그나마 산 위의 성곽은 그 모습이 비교적 잘 남아 있어 다행스러울 따름이다. 성곽은 방어적인 성격을 갖는 구조물이었지만, 한 나라의 수도(정확히는 그 경계)를 나타내는 상징적 의미도 지니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 성곽의 위치를 정할 때 여러 의견이 충돌할 수밖에 없었다. 마치 오늘날 시(市) 경계나 지하철 노선의 위치를 정하는 일 같았다고나 할까. 조선 초기에는 인왕산에 있는 선바위를 놓고 무학대사와 삼봉 정도전이 설전을 벌였다. 선바위는 마치 승려가 고깔과 장삼(검은 베로 만든,품과 소매가 넓은 승려의 웃옷)을 입고 참선(參禪)을 하고 있는 모습을 닮았다 고 해서 ‘선(禪)’자가 붙은 불교풍의 이름을 갖게 됐다. 그런데 ‘불씨잡변(佛氏雜辨)’의 저자이자 숭유억불(崇儒抑佛·유교를 숭상하고 불교를 억누름) 정책의 선봉장이었던 정도전은 이것 이 그냥 보고 넘길 문제가 아니라고 보았나 보다. 양측은 선바위가 도성 안에 있으면 불교가 흥하고, 성 밖에 놓이면 유교가 흥하게 될 것이라는 생각으로 대립을 벌였다. 태조 이성계는 왕사(王師) 무학대사와 개국공신 정도전의 의견 사이에서 쉽게 성벽의 위치를 결정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 눈이 펑펑 내린 후 어느 날 산에 가 보니 특이하게도 지금의 도성 안쪽으로는 눈이 모두 녹아 있는데 바깥쪽으로는 그대로 쌓여 있는 것이 아닌가. 태조는 이것을 하늘의 계시로 여겨 눈이 녹은 경계를 따라 성터를 정했고 결국 선바위는 성곽 밖으로 밀려나고 말았다. 무학대사는 이를 보고 “이제 중들은 선비의 책 보따리나 짊어지고 다니는 신세가 되었구나”라고 한탄했다고 한다. 태조가 눈 녹은 자리를 보고 성곽 자리를 정했다는 것은 한양의 도성을 설성(雪城)이라 부르게 된 계기가 되기도 했다. 여기서 설성이란 말이 훗날 ‘설울’이 되었고, 다시 ‘서울’이 되었다는 추측이 나왔다.
    ○ 자연스레 서울 경계 안으로
    조선이 사라지고 서울이 확장되면서 선바위는 자연스레 서울 경계 안으로 들어왔다. 선 하나가 그어지는 것에 울고 웃었을 많은 이들, 그리고 그 기준이라는 것이 덧없기만 하다. 문득 절을 하던 여자가 고개를 파묻고 엎드린 채 미동조차 없다. 한층 더해진 적막. 무 슨 일일까. 아마도 그녀에게 선바위의 내력 같은 건 애당초 중요치 않았을 것이다. 그저 외면하고픈 무거운 현실이 자신의 바깥에 놓이도록 선을 긋고 싶지 않았을까. 얼마나 지났을까. 찰나였을까, 혹은 영겁이었을까. 발아래 내리깔린 서울 도심이 소리 없는 아우성처럼 현실감 없이 아득하게만 보였다. 선바위도, 그녀도, 스케치를 하고 있던 나까지 모두 바위가 되어 버린 것만 같았다. 그때 어디선가 푸드득 비둘기 떼가 날아와 선바위 꼭대기에 앉았다. 현실이 선을 넘어 다시금 천천히 움직이기 시작했다. 그녀가 다시 일어섰다. 그리고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조용히 절을 이어 나갔다. 왠지 그 모습은 오래전, 아주 오래전부터 줄곧 그래왔던 것처럼 자연스럽고 차분하게만 느껴졌다.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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