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군이 만든 궁궐, 우물가엔 풀숲만 무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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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희궁(慶熙宮)은 조선시대 5대 궁궐 중 가장 알려지지 않은 곳이다.
이를 증명이라도 하듯 입장료도 없는 그곳에는 관람객이 거의 눈에 띄지 않았다.
담도 없이 홀로 서 있는 정문을 지나면 어느새 경희궁의 정전인 숭정전 마당에 당도하게 된다.
○ 광해군이 왕족 집 빼앗아 만든 궁궐
경희궁은 광해군이 만들었다.
원래는 인조의 생부인 정원군의 집이었는데, 집터에 왕기(王氣)가 많다 해서 광해군이 빼앗아 궁궐을 지었다.
흥미로운 사실은 훗날 정원군의 아들이 인조반정으로 왕위에 오르니 집에 왕기가 서려 있다는 말이 정확히 들어맞긴 했다는 것
이다.
경희궁은 처음엔 경덕궁(慶德宮)이라 불렸다.
하지만 영조 연간에 인조의 아버지 정원군이 원종으로 추숭되며 ‘경덕(敬德)’이란 시호를 받자 이와 음이 같다 하여 경희궁으로
이름을 바꾸게 됐다.
경복궁의 서쪽에 있어 서궐(西闕)로도 불렸다.
아이러니하게도 광해군은 자신이 만든 경희궁에서 살아보지 못했다.
그는 1623년(광해군15년) 궁궐 완공 후 이어(移御·임금이 거처하는 곳을 옮김) 준비를 하던 무렵 인조반정으로 쫓겨나고 말았다.
후에 인조는 광해군이 만든 인수궁, 인경궁을 모두 없앴다.
하지만 자신이 태어난 자리에 만든 경희궁만은 보존했다.
경희궁은 1829년(순조 29년) 화재로 대부분이 불탔으나 1831년 중건됐다.
일제는 경희궁 터에 학교(경성중학교)를 만들면서 서서히 궁궐의 존재를 지워나갔다.
대부분의 전각이 헐리거나 팔려나갔다.
1920년대를 지나면서 궁궐은 일부 회랑을 제외하고는 완벽하게 자취를 감췄다.
광복 후에는 서울중, 서울고가 있었으나 학교가 강남으로 이사를 간 후 그 터가 현대그룹에 넘어갔다.
현대는 이곳에 본사를 지으려 했지만 유적 훼손에 대한 비난여론이 높아지자 서울시가 터를 사들였다.
ㆍ○ 궁궐 안 우물 영렬천
경희궁은 낮은 동산 위에 지어졌다.
언덕을 올라가 보면 경희궁 전각 용마루의 수평선과 그 너머로 펼쳐진 마천루의 수직선을 함께 감상할 수 있다.
과거와 현재의 선들이 섞인 오묘한 조화는 세월의 무상함을 넘어 미래를 궁금하게 만든다.
그리 넓지 않은 경희궁에서도 대부분의 사람이 놓치고 가는 곳이 있다.
바로 담장 밖에 있는 ‘영렬천(靈冽泉)’이란 각자가 새겨진 샘이다.
‘서궐도안(西闕圖案)’에도 나와 있는 이 우물은 경희궁 복원 시 숭정전의 위치를 잡을 때 큰 단서를 제공하기도 했다 한다.
영렬천은 위치상으로도 궁궐의 깊숙한 곳에 있어 특별한 우물이었을 것으로 추측된다.
조선시대 궁궐에 대한 기록을 담은 ‘궁궐지(宮闕志)’에는 사계절 물이 마르지 않고, 매우 맑았으며, 여름에도 찼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뙤약볕에 그 물맛이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표지판 하나 없는 우물은 특히 여름에는 풀숲에 가려 찾아보기도 힘들 정도로 방치돼 있었다.
그저 모기가 우글대는 산책로 옆 웅덩이 같은 신세라고 할까.
없는 것을 복원해 나가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있는 것 하나부터 보존해 나가는 것이 더욱 중요한 일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ㆍ○ 절이 된 옛 전각
경희궁에서의 아쉬움에 돌아오는 길에 동국대에 들렀다.
경희궁의 정전이었던 숭정전은 일제강점기 서울에 있던 일본사찰에 팔려 옮겨졌다.
광복 후 그 자리에 동국대가 들어서면서 정각원(正覺院)이라는 법당이 됐다.
건물은 법당에 맞게 내부가 개조된 상태인 데다 너무 낡아 옮기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다.
그래서 경희궁 복원 때는 새 건물을 지어야 했다.
동국대에 가 보면 높은 계단 위에 서 있는 옛 숭정전을 볼 수 있다.
지금은 이곳에서 불자들의 결혼식도 열린다고 하니 억불정책을 썼던 조선 궁궐의 현재가 참 아이러니할 따름이었다.
건물을 한 바퀴 찬찬히 둘러봤다.
뒤편 기단에 누워 늘어지게 낮잠을 자던 늙은 고양이 한 마리가 놀라 깨더니 황급히 풀숲으로 도망을 갔다.
앞쪽에선 한 학생이 계단에 앉아 책을 읽고 있었다.
나도 근처 한 귀퉁이에 자리를 잡고 앉아 스케치북을 꺼내들었다.
조용한 건물 주위로는 학생들만 가끔 오갈 뿐이었다.
한적함은 머릿속에 책장 넘기는 소리까지 선명하게 각인이 되게 했다.
잠깐 하품이 나왔다.
기지개를 한껏 켜고 주위를 둘러봤다.
하루아침에 섬기는 주인이 바뀌어버린 소맷돌(돌계단의 난간) 해태들도, 추녀마루 잡상들도, 답도(踏道·계단)의 봉황들도 꾸벅
졸고 있는 것만 같은 나른한 여름 오후였다.
■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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