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陰.陽地의性

웨딩 에세이 3 신데렐라의 후일담

浮萍草 2007. 10. 31. 14:25

신데렐라의 후일담 그해 여름 나는 런던의 빅토리아 코치스테이션에 혼자 멍하니 앉아 있었다. 여행을 시작한지 닷새가 지나 어느덧 몸은 시차엔 적응했지만 아직도 마음은 심한 환절기에 시달리고 있었다. 향수병이라는 이름의 감기에 딱 걸리기 좋은 면역 결핍의 상태. 그 상태로 나는 도버해협을 건너는 페리호에 올라탔고 쌀쌀한 바닷바람이 그래서 더 차게 느껴졌다. 자기의 윈드브레이커를 선뜻 벗어주는 낯선 남자의 호의를 차마 거절하지 못해 꼬박 6시간 을 얘기하며 함께 배에서 내리는 일도 경계하지 않았다. 게다가 작별한 그와 노트르담성당 앞 수십만 관광객 사이에서 다시 만나는 우연까지 겹치 면서 난 상황에 승복했다. 결국 긴 여행이 끝나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후유증에 시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의심했다. 한국 남자들보다 1피트쯤 더 큰 그의 키와 보기 드문 공감대만이 부담스러운 것이 아니었다. 나를 간절히 기다리고 있는 사람이 있음에도 이렇게 마음이 흔들릴 수 있다는 것 그 자체에 나는 갈등했다. 내가 너무 내 인생에 소극적인 게 아닌지 이게 정말 내 인연이 확실한 건지…. 나를 옹호해줄 조건들은 찾아보면 널려 있었다. 그러나 신기한 일이었다. 여행이 끝나고 내 마음의 환절기도 끝나고 나니 나는 자연스럽게 깨달을 수 있었다. 그건 그냥 한때의 열정이고 생이 주는 마법의 순간이었다고 내 남자와 함께 쌓은 지난날의 두터운 먼지는 헛된 것이 아니었다는 걸. 그리고 여행은 그렇게 철저한 비 일상의 영역이었다는 걸 말이다. 비·일·상. 그것은 골프 경기를 보면서도 눈물 흘리는 임산부의 호르몬이나 15초면 점멸하는 불꽃놀이, 혹은 1시간 반이면 끝나는 로맨틱 무비처럼 별로 믿을 만한 게 아니다. 그리고 우리는 또 안다. 일상의 탈출이나 낭만,로맨스…. 그런 단어들이 결혼이란 단어와 한 문장에 들어간다는 게 생각보다 흔한 일이 아님을 아는 사람들은 안다. 결혼은 완전무결하게 일상의 문제다. 지독할 정도로 철저하게 우리가 결혼을 가지고 소녀같은 기대를 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우리에게 창의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우리가 진정 성인이 됐다는 증거이기 때문이다. 성인은 여행지에서 만난 인연에게 더 이상 큰 기대를 하지 않는다. 만일 우리가 늘 환절기 같은 상태로 몸과 마음이 면역 결핍인 나른한 채 살아간다면 우리 의 둔탁한 일상은 엉망이 될 것이다. 그래도 납득하기 힘들다면 한번쯤 신데렐라의 후일담을 상상해보자. 신데렐라와 왕자가 꿈같은 신혼을 즐기던 어느 날 왕자의 어머니 즉 신데렐라의 시어머니 가 전화도 없이 들이닥쳤다. 집안 꼴이 이게 뭐냐고 혀를 끌끌 차던 시어머니는 역시 어미 없이 큰 애들은 티가 난다며 집안 구석구석을 다니며 여기저기 타박을 놓았고 마냥 자기편일 줄 알았던 왕자는 모른 척 했다. 신데렐라가 임신을 하자 왕자는 근처에도 오지 않았고 태어난 아기가 예쁘다고 하면서도 기저귀 한번 갈아주지 않았다. 부부싸움 하는 횟수는 점점 늘어났고 결국 왕자는 젊고 신선한 왕궁 하녀와 바람을 피우기 시작했다. 신데렐라는 욕구불만으로 식탐이 늘어 45kg하던 몸무게가 70kg이 되었다. 시어머니는 아직도 신데렐라가 해온 예물이 별 볼일 없었다고 잊을 만하면 말해 염장을 질러댔고 시누이 공주들은 더 교묘했다. "재투성이 하녀였던 주제에 인생역전 했지 뭘"하며 다 들리게 흉을 보고 다녔다. 아이가 다 컸다고 느낀 어느 날 신데렐라는 이혼 소송 준비를 하려 했는데 하필 보증을 잘못 선 왕자가 모든 재산을 날리게 되자 불쌍해서 같이 살아주기로 하고 주저앉았다. 그리고 혹시 눈치 챘는지. 신데렐라의 후일담은 우리가 재밌게 보는 <위기의 주부들>과도 닮아있다는 걸. 로맨틱하거나 운명적이진 않지만 충분히 그런 지루한 일상을 함께 헤쳐 나가고 내 등을 토닥여주고 청소기라도 힘껏 돌려줄 줄 아는 그런 사람과 결혼을 앞두고도 당신이 불안하다 면 한번 더 되물어 보자. 앞으로 최소한 50여 년 동안 살면서 이 사람은 날 얼마나 행복하게 해줄 사람인가가 아니라 날 얼마나 화나게 하지 않을 사람인가 자문해 보는 것 이런 삭막한 질문이 당신의 판단을 확고 하게 할 수도 있을 것이다. 50여 년의 생활을 함께 할 동반자와 사는 일상 그것이 결혼이다. 우리의 수명이 길어진다면 그 생활이 60년이 될지 70년이 될지 알 수 없다. 상상이 가는가? 결혼전문지 Wedding21 글 : 공선옥 danm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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