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5 - 2> 연천권-좌상바위

浮萍草 2016. 3. 21. 11:47
    한탄강 '자살바위'는 공룡시대 화산 분화구였다
    중생대 백악기 화산 화구 또는 화도가 굳어 형성…한탄강변 60m 높이로 우뚝 제 이름은 장승 왼편 있다는 뜻의 ‘좌상바위’…강변엔 다양한 지질시대 암석 널려
    좌상바위는 한탄강이 영평천과 만난 직후 크게 휘도는 강변에 위치해 있다. 오랜 기간 지상에서 풍화를 받아 현무암에 세로 무늬가 생겼다. 사진=조홍섭 기자
    천에서 37호선 국도를 따라 전곡읍에 이르기 직전 오른쪽 차창에 독특한 가파른 절벽이 눈길을 사로잡는다. 60m 높이의 어두운 잿빛 절벽이 한탄강이 크게 휘도는 강변에 우뚝 솟아 있다. 이름이 자살바위라는 설명을 듣는다면 더욱 기괴한 느낌을 받을 터이다.  하지만 이곳은 고생대와 중생대, 신생대의 암석과 지형을 한눈에 살펴볼 수 있어 한탄·임진강 지질공원의 지질유산으로 지정된 곳이다. 다양한 지질시대의 암석을 공부할 수 있는 야외 학습장이기도 하다. 연천군 전곡읍 신답리에 위치한(바위를 조망할 수 있는 곳은 강 건너인 연천군 청산면 장탄리 산2-1) 이 바위는 중생대 백악기인 약 9000만년 전 화산활동으로 생겨났다. “당시 한반도에는 격렬한 화산활동이 곳곳에서 벌어졌는데 철원분지를 형성시킨 지각변동과 함께 이곳에서도 화산분출이 일어났다”고 신승원 강원대 지질유산 환경연구소 부소장은 설명한다.
    좌상바위는 커다란 산의 절반이 남은 것으로, 강변은 향한 쪽만 절벽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이 바위는 강변을 향한 쪽은 가파른 절벽이지만 반대편은 둥근 산체가 그대로 있어 마치 산을 절반으로 쪼갠 듯한 형태이다. 신 부소장은 “아마도 산 중간을 단층이 가로지른 것 같다”라며 “지층에 금이 가 약해진 단층선을 따라 하천이 흐르는 일이 종종 있다”라고 말했다. 바위를 이루는 현무암은 고생대 데본기의 변성퇴적암층인 미산층을 뚫고 나왔다. 바위 주변에 화산재가 굳은 응회암이 있고, 그 속에 지름 수십㎝에 이르는 큰 자갈이 섞여있는 것으로 보아 분출 지점에서 멀지 않은 것으로 추정된다. 다시 말해 이 바위는 화산 꼭대기의 화구나, 마그마 방에서 화구로 이어지는 통로인 화도 주변에서 마그마가 굳어 형성됐을 가능성이 크다. 고생대 퇴적층을 중생대 화산활동으로 형성된 용암이 뚫고 나온 뒤 신생대에 다시 용암이 흘렀기 때문에 이 바위 근처 강변에는 이들 시대에 형성된 다양한 암석이 깔려 있다. 몇 분 동안에도 10여 종류의 암석을 모을 수 있다. 이곳이 지질학 야외수업을 위해 애용되는 장소인 이유이다.
    좌상바위 주변 강변에서 모은 서로 다른 지질시대의 암석들.중생대와 신생대 현무암, 중생대 응회암과 화강암, 고생대 편마암 등이 있다. 사진=유완영 박사

    이곳의 중생대 현무암은 한탄강 주변에 흔한 신생대 현무암과 달리 암석의 숭숭 뚫린 구멍에 오랜 세월 동안 암석에서 녹아나온 칼슘 성분이 채워진 모습을 종종 볼 수 있다. 이런 암석은 살구씨 모습과 비슷하다고 해서 ‘행인상 구조’를 지녔다고 하는데,육안으로 신생대 현무암과 구별하는 단서이기도 하다. 이 바위로 진입하는 도로변에서는 과거 하천의 바닥이 지금보다 훨씬 높았을 때 강바닥에 쌓인 자갈층인 하안 단구를 볼 수 있다. 그러나 이 하안 단구는 사유지를 개발하는 과정에서 상당부분 훼손됐다
    일정한 방향성을 지닌 자갈이 깔려있는 하안 단구의 모습. 강이 침식되기 전 또는 지층이 융기됐을 때 강물이 흘렀던 곳을 말해준다. 하안단구의 상당부분은
    축대 등을 쌓는라 사라졌다. 사진=조홍섭 기자

    자살바위는 지질공원을 지정하는 과정에서 ‘좌상바위’라는 제 이름을 되찾았다. 윤미숙 연천군 학예연구사의 설명을 들어보자. “어렸을 때부터 이곳을 ‘자살 바위’로 불렀습니다. 그런데 지질공원으로 지정하느라 주민 말을 들어보니 ‘좌상 바위’가 맞다는 겁니다. <연천군지>를 보니 19세기 초에는 풀무와 닮았다 해서‘풀무산’ 또는 신선이 노닌다며‘선봉바위’로 불렀는데,한국전쟁 때 이곳에서 많은 사상자가 나고 실제로 최근 자살하는 사람도 생기면서‘자살바위’로 부르게 됐습니다.”
    한국전쟁 이후 자살바위로 불리기 시작한 좌상바위. 애초 장승 왼쪽에서 마을 지켜주던 수호신이란 뜻에서 지어진 이름이었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그런데 궁평리 주민들의 말을 들어 보니 마을 오른쪽에 장승이 있어 그 오른쪽에 위치한 바위를 ‘장승 왼쪽 바위’란 뜻에서 ‘좌상바위’로 부르고 마을의 수호신으로 여겼다고 윤씨는 말한다. 자살바위란 이름은 좌상바위란 이름이 잘못 전해져 널리 쓰이게 된 것이다. 지질공원으로 지정되면서 좌상바위는 제 이름과 함께 탄생의 내력까지 얻게 된 셈이다.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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