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기획ㆍ특집

거북선을 처음 본 美 海軍 提督이 感歎을 한 理由는…

浮萍草 2016. 3. 4. 21:33
    리더십의 條件 - 行政적 禮節에 對하여
    해군사관학교를 방문한 Greenert 제독 부부에게 거북선을 안내하고 있는 필자
    늘은 제가 어떤 만남을 통해서 생각하게 된 리더로서 갖추어야 할 덕목을 살펴보려 합니다. 해군사관학교 박물관장으로 근무하면서 다양한 손님들을 만나기도 하고 안내를 하는 경험을 하였습니다. 오늘 얘기할 만남은 2010년 8월 24일로 기억됩니다. 이날은 美해군참모차장 Greenert 제독 부부를 안내하였는데,박물관을 견학하고 나서 거북선 입구에 들어서면서“머리를 조심하셔야 합니다”라고 하자 Greenert 제독님은“왜 조심해야 합니까?”라고 하시기에 저는“머리는 다쳐도 괜찮은데 거북선이 다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라고 했더니 모두 한바탕 크게 웃으신 후 견학이 시작되었습니다. 저는 입구에 들어서자 “이 문을 들어서기 전까지는 2010년 8월 24일이었는데 이제 타임머신을 타고 1592년을 경험하고 있습니다”라고 한 후 이곳저곳을 역사 적인 사실에 비추어 설명하기 시작하였습니다. Greenert 제독님은 여러 곳에 관심을 가졌지만,특히 거북선의 노에 호기심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서양의 노는 옆으로 노출되어 있기 때문에 영화 <벤허>의 장면처럼 노를 부러뜨리는 전술이 사용되기도 하였습니다. 하지만 거북선의 노는 80° 각도로 들어가 있기 때문에 외부에서는 보이지 않아서 노를 부러뜨릴 수 없었다는 설명을 듣고 난 후 직접 노를 저어보기도 하였습니다.
    노선시대에 대표적인 전투함으로 사용되었던 로마 해군의 3단노선(Trireme).노가 3열로 배치되었기 때문에 3단노선으로 부르게 되었다.레판토해전 당시
    기독교 연합함대는 8단노선까지 보유하고 있었다.

    거북선에 대해서는 2층 구조설과 3층 구조설이 있지만 공통점은 거북선의 노가 80° 각도로 기울어져 있다는 점이다.따라서 거북선의 노는 외부에서 보았을 때
    윗부분만 보이기 때문에 서양에서 사용했던 노를 부러뜨리는 전술은 사용할 수 없었다.

    거북선의 노를 직접 저어보고 있는 Greenert 제독.평소에 존경해 오던 이순신 제독이 만든 거북선의 노를 젓는 경험을 한 오늘을 잊을 수 없을 것이라며 기뻐
    했다

    거북선을 둘러 본 후 저는“간단한 퀴즈 하나를 내도 되겠습니까?”라고 하자 주위가 조용해졌습니다. “역사상 무게가 가장 무거웠던 군복이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질문하자 Greenert 제독님은 중세시대의 갑옷이 아니냐며 답을 하셨습니다. 실제로 중세시대 갑옷은 투구 무게만 30kg 정도 되었습니다. 그래서 투구를 쓰고 이동하지는 못하고 들고 다니다가 전투할 때만 잠시 쓰고 다시 들고 다녔던 것입니다. 저는“예,의미있는 답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한국 해군장교가 입고 있는 동정복(Uniform Blue)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하자 이유를 물으셨습니다. 저는 “한국 역사상 수많은 외침이 있었는데 16세기 말에 일본이 침략해서 위기의 상황이 있었습니다. 이때 이순신 제독이 거북선을 만들어서 조국을 누란의 위기에서 구해냈습니다. 이때부터 한국에서 충무공 이순신 제독은 가장 존경받는 인물 중에 한 사람이 되었으며 한국해군과 해병대를 이 충무공의 후예라고 부릅니다. 그래서 지금도 이 충무공의 정신을 기리는 의미에서 동정복 단추 가운데 6척,넥타이 핀에 1척,정모에 3척,항해과 장교 기장에 2척,모두 12척의 거북선을 몸에 지니고 다닙니다. 그래서 저는 가장 무거운 군복이라고 생각합니다”라고 했더니 모두 재미있다고 크게 웃으셨습니다. 저는 한 마디 덧붙였습니다. “이건 농담이 아니라 정말입니다.(It’s not a joke but real.)”라고. 그러고 나서 제가 美해사 생도들에게 보냈던 편지를 파일로 만들어서 준비하였는데 전달하기 위해“해사가 그대의 자랑이듯,그대 해사의 자랑이어라!”는 의미로 “Admiral & Mrs Greenert! As the USNA is your pride, be the pride of the USNA!”라고 하자 차렷자세로 정중하게 자세를 취하셨습니다. 미국에서는 훈장을 전달할 때 자연스럽게 차렷자세를 취하기도 합니다. 중령 앞에서 대장이 차렷 자세를 취하였으니 주위 사람들이 놀란 것은 당연하였습니다. 이틀 뒤에 미국에서 Greenert 제독님으로부터 감사 카드가 왔습니다. 카드에는 “편지를 아내와 몇 번 읽었는데 많은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저희 가족은 편지 파일을 서가 가운데 두고 오는 사람들에게 자랑하고 있습니다. 美해군사관학교와 해군은 조 교수님의 리더십을 공유할 수 있어서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꼭 다시 만나고 싶습니다”라는 내용과 함께.이후 Greenert 제독님은 20011년부터 4년 동안 美해군참모총장 임무를 수행하는 동안 수차례 한국을 방문하기도 하였습니다. 저는 이 카드를 생도들에게 강의시간에 보여 주면서“이 카드의 의미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라고 물었습니다. Greenert 제독님은 견학 후에 저에게 안내해 주어서 감사하다는 인사와 함께 악수를 하였기 때문에 사실 감사 카드까지는 보낼 필요가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이 카드를 받고 저는“앞으로도 박물관을 찾는 손님들에게 단순한 견학이 아니라 마음과 함께 감동을 전하는 안내를 해야겠구나!”하는 다짐을 하게 되었습니다. 저는 이 일을 통해 우리 사회에서 강조하고 있는 리더십 덕목 중에 중요한 것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 있다는 것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행정적 예절(administrative manner)”입니다. 우리 사회에서는 아직까지 아랫사람이 보낸 편지에 대해서 윗사람이 답장을 보내는 경우는 찾기 힘듭니다. 편지를 확인했는지는 수신확인을 통해서 알게 되지요. 제가 美해사에서 편지를 보냈을 때는 교장님께서 가장 먼저 답장을 보냈습니다. “오늘 이 편지는 내가 기다렸던 바로 그 메시지입니다. 오늘 하루 이 내용을 마음에 새기고 생활하도록 하겠습니다”라는 내용이었습니다. 이 글을 읽고 계시는 여러분도 오늘부터 이 일을 실천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짧은 내용도 좋습니다. 아마 그 답장을 받게 될 사람은 보람을 느끼며 더 열심히 일을 할 것입니다. 더 중요한 것은 그들 또한 여러분의 행동을 하나 둘씩 따라하게 될 것입니다. 저는 32년 동안 해군 가족의 한 사람으로 생활하면서 참으로 많은 사람들을 만났습니다. 만남에서 중요한 것은 관계를 맺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관계를 꾸준하게 유지하는 데는 노력이 필요할 것입니다. 오늘 하루는 2015년 한 해를 보내면서 여러분이 만났던 사람들의 얼굴을 떠올리며 만남의 의미를 새길 수 있는 시간을 가지시길 바랍니다.
      글 조덕현 칼럼니스트

    草 浮
    印 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