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환경생태 물바람숲

갈증 풀려고 한 시간 15회 짝짓기하는 ‘쌀 벌레’

浮萍草 2016. 2. 19. 12:06
    극도로 건조한 곡식창고 환경서 수분 확보 위한 행동
    수컷은 수분 상실로 수명 단축 대가…세계적 곡물 해충
    인도와 호주가 원산이지만 전 세계 곡물창고로 서식지를 넓힌 거짓쌀도둑거저리 성체. 사진=Peggy Greb, 위키미디어 코먼스

    거짓쌀도둑거저리의 짝짓기 모습.
    사진=Professor Matthew Gage
    ‘거짓쌀도둑거저리’란 낯선 이름을 가진 딱정벌레가 있다. 길이 2~3㎜에 적자색 광택이 나는 곤충인데 실물을 보면 많이 본 벌레임을 알 수 있을 것이다. 인도와 호주가 원산인 이 곤충은 더운 지방에 살지만 춥지 않고 먹을 것이 많은 곡물 창고를 주 서식지로 삼았다. 현재 세계에서 가장 중요한 곡물 해충의 하나다. 오래 보관한 쌀독이나 밀가루 포대에서 어리쌀바구미나 화랑곡나방과 함께 발견할 수 있다. 이 딱정벌레는 곡식 도둑으로서뿐 아니라 생물학자들에게는 ‘섹스 광’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암컷은 수컷을 가리지 않고 별다른 사전 의식도 없이 짝짓기에 돌입한다.  암컷은 한 번 짝짓기로 140일까지 산란을 할 수 있다. 그러나 짝짓기는 끝없이 이어져 한 시간에 15번까지 한 기록도 있다.  왜 이렇게 짝짓기를 자주 하는 것일까. 생물학자들은 그동안 잦은 짝짓기가 암컷에게 번식 성공률을 높이거나 우수한 유전자를 자손에 물려주려는 혜택을 주는 것으로 간주해 왔다.
    거짓쌀도둑거저리. 따뜻하고 축축한 아열대 지방에서 살다가 온대지방의 건조한 쌀창고에 살게 되면서 극한 환경에 적응하는 일환으로 잦은 짝짓기를 하게
    됐다.사진=Eric Day, Virginia Tech, 위키미디어 코먼스

    엘리자베스 드로지-영 미국 시라큐스대 생물학 박사과정생 등 연구자들은 이 딱정벌레가 사는 극단적 환경이 이런 행동을 낳지 않았을까 하는 가설을 세웠다. 이들은 정교한 실험을 구성해 암컷이 거듭된 짝짓기로 얻을 수 있는 이득이 무언지 충분한 정자 확보,산란 촉진, 영양분 섭취, 수분 섭취 등 네 가지 가정을 세워 확인했다.  이들은 과학저널 <행동 생태학> 최근호에 실린 논문에서 네 가지 가능성 가운데 수분 섭취가 잦은 짝짓기의 원인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물 부족을 정액 속 수분으로 보충했다는 얘기다.  곡물 창고는 해충에게 최고의 환경인 것 같지만 실은 먹이만 넘칠 뿐 극도로 건조하고 단조로운 환경이다. 곡물 사이의 틈새를 터널처럼 이용해 살아가는 이 딱정벌레는 극단적인 환경에 적응하느라 이런 생식 행동을 진화시켰다고 연구자들은 보았다. 드로지-영은 “보통 암컷에는 적정한 수준의 짝짓기가 있고 그 한도를 넘어서면 암컷은 더는 짝짓기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이 딱정벌레는 그렇지 않았다.”라고 이 대학 보도자료에서 말했다.
    저장한 쌀에서 생겨난 거짓쌀도둑거저리. 사진=최원교-나비대장, 다음 블로그 '한국 토종벌레 속삭임'

    실제로 연구자들은 실험을 통해 암컷이 더 많은 짝짓기를 할수록 번식 성공률이 높아지는 이득을 얻는 것으로 나타났다. 반대로 수컷은 잦은 사정으로 수분을 잃어 수명이 짧아지는 대가를 치렀다. 연구자들은 “일반적으로 수컷이 암컷에 적정 수준 이상의 짝짓기를 강요하는 것과 반대 현상”이라고 밝혔다. 곡식창고로 옮겨와 갑자기 문란해진 딱정벌레에는 이유가 있었던 셈이다.   ■ 기사가 인용한 논문 원문 정보   Elizabeth M. Droge-Young et. al., Extreme ecology and mating system: discriminating among direct benefits models in red flour beetles, Behavioral Ecology (2015), 00(00), 1.9. doi:10.1093/beheco/arv191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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