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SU/그림 읽어주는 남자

곽충서의 ‘설제강행도’

浮萍草 2016. 1. 10. 15:44
    눈이 갠 후 강을 건너다
    설제강행도(雪霽江行圖)’,곽충서,975년,69.2×74.1cm,
    미국 넬슨 갤러리 소장.
    국 북송시대 문인화가 곽충서(郭忠恕)의 대표작 ‘설제강행도(雪霽江行圖)’는 눈이 갠 후 강을 건너는 배를 묘사한 작품입니다. 당시 배의 구조가 워낙 세밀하게 묘사돼 있어 마치 설계도를 보는 것 같습니다. 또 곳곳에서 일하고 있는 뱃사람들의 모습이 그림에 활력을 더합니다. 가로세로 길이가 비슷해 정사각형에 가까운 화폭 위에 중앙부터 하단부까지 그려진 두 척의 배는 쌍둥이 처럼 나란히 완만한 곡선을 그리며 넘실대는 파도 위에 떠 있습니다. 배의 중심에는 돛대가 높이 솟아 있고 그 아래는 온통 선실입니다. 갑판은 오른쪽 배꼬리 쪽에 거의 보이지 않을 만큼 작은 규모입니다. 배 난간 곳곳에 묶인 줄들이 돛대에 팽팽하게 감겨 있어 긴장감을 주면서도 안정적인 삼각형 구도를 연출합니다. 선실 위에는 짐이 가득 실려 있고,그 사이로 선원들이 배를 끌거나 추위에 몸을 웅크리고 있는 모습도 보입니다. 화면 하단 왼쪽에는 작은 배와 대나무로 엮은 뗏목이 떠 있습니다. 작은 배는 중국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삼판선으로 사람이나 물건을 가까운 거리로 실어 나르는 갑판이 없는 작은 배입니다. 삼판선은 돛을 달아 항해하기도 했지만, 안전성이 떨어져 대부분 해안 근처나 강에서 주로 쓰였다고 합니다. 이처럼 자로 잰 듯 정확하게 그린 그림을‘계화(界畵)’라고 합니다. 주로 궁궐,전각,누대,사찰,정자 등 건물을 정밀하게 그릴 때 사용하는 화풍이지요. 곽충서는 중국 오대(五代) 말과 송대 초기 화가이자 서예가,국자감 주부(國子監 主簿)를 지냈던 학자 입니다. 그는 복잡한 건조물을 정연하게 그리는 계화에 능했다고 합니다. 특히 건축적 비례 및 구성이 정확한 계화와 자연을 묘사한 산수화를 결합해 과학적 요소와 예술적 요소가 어우러지는 회화의 경지를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당시는 사실적으로 그린 그림을 높이 평가하는 분위기가 아니었으나 곽충서의 계화는 이색적이었을 뿐 아니라 그림의 가치도 매우 높았다고 합니다. 그림 상단 왼쪽에는 ‘설제강행도 곽충서진적(雪霽江行圖 郭忠恕眞跡)’이라는 글이 쓰여 있는데 이는 송나라 황제 휘종인 조길(趙佶)의 글로, 어서지보(御書之寶) 라는 어인이 함께 찍혀 있습니다. 또 다른 수장가인 청나라 건륭제의 어인도 있습니다. 현재 이 그림은 미국 캔자스시티 넬슨 갤러리에 소장돼 있습니다.
    Vol 1020 황규성 미술사가 samsungmuseum@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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