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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잃은 슬픔을 이겨내는 법

浮萍草 2015. 12. 9. 10:40
    ㆍ가슴에 묻은 아이에 대해 얘기해보세요, 슬픔은 나누는 것
    Q (늦둥이 딸 떠나 보낸 40대 엄마) 제게는 일곱 살 딸이 있었습니다. 아이는 올해 4월 하늘로 떠났습니다. 결혼 5년 만인 마흔 살 되던 해에 하느님이 주신 선물처럼 제게 왔던 아이입니다. 완벽하다는 말은 좀 그렇지만 뭐 하나 나무랄 게 없던 아이였습니다. 다정다감하고, 의젓하고, 재능 많은, 또 남들이 다 미인이라 할 정도로 예뻤습니다. 그런 아이가 지난해 3월부터 소아암을 치료하기 위해 독한 항암제를 6번이나 바꿔가며 투병생활을 시작했습니다. 마지막 약이 조금 반응을 보일 무렵 체력이 바닥난 아이는 중환자실도 아닌 집에서 제가 자고 있을 때 제 곁에서, 숨을 거뒀습니다. 왜 그날 저녁 급변한 아이의 상태를 눈치채지 못했을까, 그날 새벽 응급실에만 데려갔어도 죽지는 않았을 텐데. 자책과 그리움의 시간이 지금까지 계속되고 있습니다. 남편은 안 피우던 담배를 피우기 시작했고, 저도 그 날 이후 골초가 됐습니다. 별거 아닌 담배지만 지금까지 버틸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인 것 같습니다. 아이를 화장한 후 납골당에 안치하고 지금까지 매일 찾아가 인사합니다. 납골당은 집에서 차로 15분 거리에 있습니다. 그 애를 보낼 마음의 준비가 안 돼서, 또 생기발랄했던 그 아이의 원을 풀어주기 위해 내년 4월까지 매일 갈 생각입니다. 모두 말리지만 제가 살아날 방법이라 생각합니다. 어차피 어디에 있든 그 애를 벗어나지 못하니까요. 주변에서 종교의 문을 두드려 봐라, 취미를 가져라, 운동해라 등 여러 가지 조언을 해주지만 다 듣기 싫을 때 우연히 강남통신을 보고 e메일을 보내게 됐습니다. 아무쪼록 도움 말씀 바랍니다. A 마음에 가두면 망가지는 추억(올해 아버지와 작별한 윤 교수) 더 긴 사연이었는데 지면 사정상 요약해서 실었습니다. 어려운 사연입니다. 뭐라 답을 드려야 할지 생각이 잘 떠오르지 않네요. 심리 분석이 필요한 사연도 아니죠. 아이를 먼저 떠나 보낸 엄마의 슬픔을 이해하는데 무슨 분석이 필요하겠습니까. 사람이 겪을 수 있는 최대치의 고통이고 슬픔입니다. 그래서 사연으로 소개하는 것을 망설였습니다. 위로한답시고 함부로 말할 주제가 아니기 때문이죠. 그런데 이 분으로부터 아주 짧은 e메일 한 통이 더 와 사연을 통해 강남통신 독자들과 만나게 해드려야겠다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조금 전 아이를 보낸 엄마가 e메일을 보냈는데, 중앙일보에 실어 주세요. 감사합니다’란 내용이었습니다. 다시 한 번 본인의 이야기를 실어 주기를 요청하신 거죠. ‘자신의 슬픈 이야기를 왜 세상에 보이려고 할까’ 궁금한 분들 계실 것 같네요. 이런 극도의 슬픔은 나누지 않으면 내부에서 해결하기가 어렵습니다. 그래서 내 의지와 상관없이 무의식적으로 내 슬픔을 외부에 보이고자 하는 욕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실제로 그 슬픔을 내 안에 그냥 두었다간 내 감정과 과거의 소중한 기억마저 다 망가트릴 수 있습니다. 현재도 미래도 망가지고 몸도 망가지게 됩니다. 토크쇼에서 힘든 과거사를 이야기하는 연예인들을 볼 때 인기 얻으려고 ‘쇼하는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할 수 있습니다. 실제 그런 경우도 있을 겁니다. 그러나 모두가 연기하는 건 아닐 것이라 생각합니다. 미디어를 통한 간접적인 만남에서도 사람은 위로를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과의 실제 만남에서 느껴지는 깊이는 없어도 다수의 사람과 네트워킹되는 느낌이 상당한 위로를 가져오는 것을 경험하게 됩니다. 저도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습니다. 한 교양방송에서 올해 아버지를 떠나 보낸 사실을 이야기하는 저를 발견하고 스스로 깜짝 놀랐습니다. 방송에서 제 이야기하는 것을 매우 꺼리는 편이었는데, 저 스스로 제 속의 슬픔 이야기를 했으니 말이죠. 제 의식 안쪽에 그 슬픔을 꺼내고 싶은 마음이 있었나 봅니다. 보이지도 않는 사람에게 내 이야기를 했는데 위로받는 느낌이 찾아와 신기했습니다. 오늘 사연의 주인공도 강남통신 독자들과 마음이 연결되어 위로를 받았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ㆍ사별 후 충격·생각·우울·회복 4단계 거쳐
    앞에 말씀드린 것처럼 자녀를 먼저 떠나 보낸 슬픔을 위로할 만한 말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일반적인 사별 반응에 대해 말씀드리겠습니다. 소중한 사람을 떠나 보내는 경험을 인생에서 어쩔 수 없이 하게 됩니다. 그게 우리 인생이죠. 소중한 사람을 잃었을 때 우리 감성은 ‘애도’ 반응을 보입니다. 애도 반응은 상실감에 대한 정상적인 적응 과정입니다. 애도는 크게 네 단계를 거칩니다. 처음엔 ‘충격’과 ‘부인’의 과정이 찾아옵니다. 부인이란 죽음을 믿지 않으려는 심리입니다. 그리고 나서는 ‘상실’의 느낌이 강하게 찾아옵니다. 슬픔과 그리움의 감성이 나를 압도해 버리죠. 감정 반응이 회색에서 빨강, 그리고 검정으로 왔다 갔다 합니다. 이런 감정 반응은 사별 후 23개월 정도 지속합니다. 그 후 고인에 대해 생각하는 시기가 찾아옵니다. 죽음을 더는 부인하거나 과도한 감정 반응이 일어나진 않지만 생각과 대화 대부분이 고인에게 집중돼 있습니다. 죽음을 부인하지는 않지만 그에 대한 기억과 추억으로 그 사람의 존재감을 자기 곁에 유지하는 것이죠. 6개월에서 1년 정도 이 과정을 거칩니다. 그리고 절망과 우울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고인이 더 이상 자기 곁에 있지 않음을 더 명확하게 인식하게 돼 일어나는 반응입니다. 우울하기도 하고 죄책감과 불안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각 단계가 명확하게 구분되어 찾아오는 것은 아니고 섞여서 나타납니다. 죽을 것 같은 사별의 충격이지만 우리 유전자에는 상실에 대한 회복 능력이 내재해 있습니다. 애도 반응 후에는 회복의 시기가 찾아옵니다. 일상으로 돌아와 정상적인 라이프 스타일을 찾고 새로운 것에 흥미를 느끼게 됩니다. 떠난 간 사람의 흔적이 내 삶에 진하게 남아 있지만 자신의 삶을 새롭게 꾸려나가는 모습을 보입니다. 그러나 사별 후 6개월에서 1년이 지났는데도 회복 단계에 이르지 못하고 계속 애도 반응을 보인다면 정상적인 애도 반응을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런 경우를 ‘지속되는 애도’(prolonged grief)라 부르는데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를 고려해야 합니다. 상실에 대한 스트레스가 과도하게 작용하여 뇌에 기능적인 합병증을 일으킨 것이죠. 심리 치료와 세로토닌 시스템에 작용하는 항우울제가 도움됩니다. 우울증 같은 정서 장애로 이어질 수 있기에 그냥 단순한 애도 반응으로 보고 내버려 둬서는 안 됩니다. 전문가와의 상담이 필요합니다. ㆍ고인에 대해 글로 써보는 것도 도움
    이 경우를 제외한 애도 반응은 정상적인 적응 반응입니다. 슬픈 일은 슬퍼해야 내 뇌 안의 감성 시스템이 슬픔을 이기고 다시 활력을 찾습니다. 가족의 애도 반응을 도울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라면 가족이 상실을 잘 수용할 수 있도록 돕는 겁니다. 망자의 이야기를 계속하면 심리 스트레스를 더 받고 정서적으로 오히려 나쁘지 않을까 생각할 수 있는데 보통은 그렇지 않습니다. 상실을 수용하기 위해서는 떠나간 이에 대해서 함께 이야기하는 것이 도움됩니다. 장례식 동안 영안실에서는 가족들, 그리고 찾아 준 친구들에게 싫든 좋든 고인에 대해 이야기하게 됩니다. ‘어떻게 갑자기 돌아가신 것이냐’ 계속 질문받고 답하게 되죠. 그러면서 떠나감을 수용하게 됩니다. 오래전부터 애도 반응을 관리하는 지혜를 우리 조상들이 습득했다고 생각합니다. 사별에 대한 슬픔과 그리움을 글로 적어 보는 것도 도움이 됩니다. 또 고인의 기념일에 함께 해주셔야 합니다. 아무리 오랜 시간이 지나도 이때만큼은 과거의 기억이 몰려 오며 애도 반응이 강하게 일어납니다. 성급하게 새로운 만남이나 취미를 권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러나 회복의 기미가 보인다면 함께 즐거운 활동을 하는 것, 큰 도움이 됩니다.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yoon.snu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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