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기획ㆍ특집

혐오·모멸감 확산, 계층 갈등...이런 ‘한국인의 마음’ 때문

浮萍草 2015. 12. 3. 15:14
    한국공동체의 위기 초래하는 '이웃효과'란...
     한국의 갑을(甲乙)관계는 역설적이게도 甲이 아니라 乙에 의해 지속되는 체계로 변한다.  마치 연쇄고리처럼 먹이사슬 관계에서 乙에게는 자신이 또 우위에 설 수 있는 병(丙)과 정(丁)이 있다.
     ⊙ 한국의 계층갈등 원인은 분배보다 인정과 무시 같은 마음의 문제로 봐야  ⊙ 한국사회는 ‘사회적 무시’라는 독특한 갈등구조를 갖고 있어  ⊙ 2010~2014년 세계가치관(WVS) 조사에서 한국은 타(他)집단에 불(不)관용적 태도 보여
    갑은 칼자루를 쥔 사람, 을은 칼날을 쥔 사람으로 풍자된다.
    근 ‘갑(甲)질’ 논란을 빚은 백화점 직원 무릎 꿇리기가 발생하자 지난 11월 2일 정부가 보호책을 내놓았다. 고객의 폭언·폭행·성희롱으로 우울증에 걸린 감정노동자(판매·관광·안내·간호 등 주로 고객 상대 서비스 종사자)를 산업재해로 인정한다는 ‘산업재해보상법 시행령 ·시행규칙’ 개정안을 입법예고한 것이다. 갑을(甲乙)관계는 이제 한국사회의 대표적인 계층갈등의 주요 양상이 됐다. 다양한 차별과 무시의 경험들,그로 인한 박탈감과 분노,불의(injustice)의 감정표출 등 ‘도덕감정’의 문제가 사회통합을 해치는 원인이 된 것이다. 한국사회는 이제 분배와 같은 경제적 문제만으로 계층갈등을 분석하기 어려운 나라가 됐다. 분배보다 ‘인정’과 ‘무시’ 같은 마음의 동학(動學) 내지 누군가에게 인정받기 위한 ‘인정투쟁’이 사회갈등을 푸는 분석틀로 부각한 셈이다. 한국인의 마음을 통해 계층갈등을 분석하는 시각은 국민대통합위원회(위원장 한광옥)가 최근 공개한〈한국사회의 계층갈등과 해소방안 연구 보고서〉에서 나타 났다. 이 연구는 연세대 김호기 교수(사회학)와 서울대 사회발전연구소 고동현 박사,한림대 김영범 교수(사회학),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대 최성수 박사 등이 공동 으로 참여했다. 한국사회는 왜 계층갈등의 문제를 분배(distribution)의 문제를 넘어 마음의 영역인 인정(recognition)으로 봐야 할 단계에 이르렀을까. 그동안 사회과학에서 감정은 부차적이거나 비합리적인 영역으로 취급받았다. 김호기 교수는 “인정이란 분석틀은 분배의 문제로 분석할 수 없는 계층갈등의 주관적 인식적 측면에 대한 분석을 하는 데 유용하다”고 설명한다. 소득,임금,부의 격차 등 구조화한 불평등이 사회적 자원의 재분배를 둘러싼 계층갈등을 초래한다는 논의는 계층갈등의 구조적 원인을 보여주기에 적합하지만, 그것이 개인과 집단의 인식과 행동을 통해 어떻게 표출되는지를 포착하기에 불충분하다는 이유에서다. 국민대통합위 통합가치부 관계자의 말이다. “예를 들어 경제적 불평등 자체가 행동을 유발하는 것이 아니라, 이를 매개로 한 모욕감이나 부당한 대우에 대한 분노가 행동을 이끄는 것입니다. 특히 한국사회는 ‘사회적 무시’라는 독특한 갈등구조를 갖고 있기 때문에 더욱 그렇죠.” ㆍ한국사회의 인정-무시 질서와 계층갈등의 양상
    정부는 앞으로 감정노동자들의 우울증도 산업재해로 인정할 방침이다. 캠페인을 벌이는 감정노동자들. ‘웃다가 병든 사람들, 우리는 감정노동자’라는 피켓이 눈길을 끈다.

    인정이란 사람들의 차별과 무시의 경험을 포착, 일상생활에서 나타나는 계층갈등의 미시적 구조를 드러낸다. 다른 예로 ‘차별철폐’와‘고용보장’을 외치는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목소리에는 단지 경제적 이해관계뿐만 아니라 사회적 존재로서 제대로 인정받기 위한 열망이 담겨 있다. 생산과 분배의 차원이란 경제적 관점만으로 사회갈등을 풀어 내기 어려운 구조가 한국사회다. 한국인은 일상의 다양한 영역에서 사회적 인정이 부정되는 ‘사회적 무시’에 노출돼 있다. 사회적 무시는 자신과 이웃에 대한 긍정적 관계를 망치고 훼손한다. 행복과 삶의 질이 떨어지는 이유도 사회적 무시에서 비롯된다. 돈 없다고 무시당하고, 못 배웠다고 무시당하고, 무능하다고 무시당하고 비정규직이라고 무시당하는 한국사회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인정과 무시의 문제는 한국 시민사회의 규범적 도덕적 취약성을 보여주는 창(窓)이다. 김 교수팀은 “계층갈등의 양상이 한국사회에서 독특하게 재현되는 방식이 갑을관계”라고 설명한다. 원래 갑을관계는 경제활동에서 계약관계를 일컫는 말이지만 한국사회에서 이 말은 불공정성과 사회적 차별과 무시의 관계를 드러내는 대명사로 풀이된다. 최근 사회심리학 이론에 따르면 감정은 인지적 매개 없이 즉각적으로 나타나는 본능적이고 보편적인 반응이 아니라 상호 공유하는 사회적 의미로 해석된다. 더 이상 감정은 개인심리학 영역이 아니라는 얘기다. 감정은 대상에 대한 인지적 이해와 평가에 의존한다. 특히 불의에 대한 분노는 ‘도덕감정’을 형성하는 핵심 계기로 작용한다. 이 과정에서 분노는 단순히 개인적 복수심을 넘어서 사회적 감정으로 바뀔 수 있다. 김 교수는 “무시당한 개인의 분노와 수치심은 수동적 감정에 그치지 않는다. 차별과 무시를 초래하는 왜곡된 인간관계를 복원하려는 적극적인 저항과 사회운동을 추진할 수 있는 감정적 에너지를 제공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 ‘도덕감정’은 개인적 무시 경험을 집단 전체의 경험으로 해석하는 데 영향을 미칠 수 있으며 사회적 투쟁을 이끄는 데 기여한다. 단적인 예가 온라인 네트워크를 통한 감정의 집단적 형성 및 확산이다. 서울대 고동현 박사는 “인터넷과 SNS가 감정의 집단적 형성 및 확산의 네트워크로서 기능한다. 나아가 온라인 네트워크는 감정의 성격을 변화시키고 있다”고 설명한다. 오프라인에서 내재돼 있거나 표출되더라도 순간적으로 사라졌던 감정이 온라인에서는 텍스트로 저장되고 ‘가시성(可視性)’을 가지면서 공개적으로 드러나는 다소 공적(公的) 성격을 띠게 된 것이다. 한국사회에서 이른바 ‘갑질’에 대한 분노와 같은 집단적 감정이 표출되고 쉽게 정서적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은 온라인 네트워크에서 확인되는 감정의 거센 흐름과 연관이 있다. ㆍ혐오가 일상화한 나라
    감정이 도덕적 차원에서 옳고 그름의 대상이 될 때,감정은 선과 악이라는 이분법을 부추기는 집단동원의 논리로 왜곡되어 활용될 수 있다. 이럴 경우 사회적 약자는 자본과 국가에 의한 피해자임을 강조하고, 원한과 복수심에 빠져 또 다른 가해자가 될 수도 있다. 이 같은 적대적 인정투쟁의 부정적 측면은 마이클 프렐의 ‘언더도그마(underdogma)’라는 개념으로 설명된다. 언더도그마는 ‘힘이 약한 사람이 힘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선하고 고결하며,반대로 힘이 강한 사람은 힘이 강하다는 이유로 비난받아 마땅하다’는 왜곡된 신념을 담고 있다. 어느덧 한국사회는 혐오가 일상화한 나라가 됐다. 다양한 혐오표현의 회자와 특정집단을 상대로 한 혐오를 담은 공격행위를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른바 일베(일간베스트)를 비롯해 여성,동성애,이주민,특정지역 등에 대한 혐오와 증오의 언어와 공격적 행동들이 대표적인 사례다. 또 ‘노인충’ ‘맘충’ ‘자전거충’ 등 특정 집단에 ‘충’(벌레)이라는 말을 붙여 비난하는 경향도 최근 목격된다. 사람을 벌레로 부르는 호명 방식은 혐오라는 정서가 우리 사회의 한 흐름을 형성하고 있음을 나타낸다. 김영범 교수는 “혐오가 어떤 특정 문제집단에 한정된 독특한 정서인 것 같지만,사실 표현의 정도와 양상이 다를 뿐 혐오는 점차 지배적인 정서로 우리 사회에 자리 잡고 영향력을 더해 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나와 다른 이들에 대한 공격적 혐오는 사회적 불안의 또 다른 표현에 다름 아니다. 특히 타자(他者)에 대한 공격인 혐오의 감정이 자신에 대한 부정인 모멸의 감정과도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점은 주목할 만하다. 김호기 교수는“불안한 사회에서 다수의 사회적 약자들은 자신의 존재가치를 부정당하는 모멸감을 번번이 느끼게 된다. 정당하게 대우받지 못하고 업신당한다는 모멸감과 수치심은 자기 삶을 방어하기 위해서라도 결국 타자에 대한 혐오와 공격이라는 심리적 반작용으로 나타나게 된다”고 지적한다. 이러한 혐오와 모멸감은 한국 공동체의 위기를 상징적으로 드러내는 감정이라 할 수 있다.
    ㆍ계층갈등이 심각한 또 다른 이유
    희소(稀少)자원 둘러싼 격한 경쟁이 ‘이웃효과’ 불러와 김호기 교수팀은 한국사회 갈등이 심각성을 더하는 이유로 사회적 밀도가 높은 사회적 관계망에서 특징을 찾는다. 인구밀도가 높은, 좁은 관계망에서 살며 집단주의 문화가 팽배한 곳이 한국이다. 자연히 자신과 타인을 견주고 비교하는 경우가 많아지게 된다. 이 경우 감정의 문제가 발생한다. 상대적 박탈감을 더 많이 느끼기 때문이다. 이웃효과(Neighbors effect)라는 말이 있다. 카를 마르크스는“집은 클 수도 작을 수도 있다. 주변의 집들이 똑같이 작다면 문제될 게 없다. 만약 자기 집 옆에 궁전이 솟아오르면 그 집은 갑자기 오두막으로 위축된다”고 했다. 경제학자 찰스 킨들버거(C. P. Kindleberger)는 저서《광기,패닉,붕괴,금융위기의 역사》에서 ‘친구가 부자가 되는 모습을 지켜보는 것만큼 사람의 판단력을 흐리는 것은 없다’고 했다. 인간은 타인과 자신을 비교하면서 자책하거나 교만해지는 법이다. 김 교수팀은 “오늘날 희소자원을 둘러싼 경쟁은 상대적인 것이기에 상대와 비교해 더 나은 위치를 차지하려는 치열한 경쟁이 한국사회에서 벌어지고 있고, 그에 따라 갈등도 더욱 격해지고 있다”고 분석한다.
    ㆍ OECD 국가들 가운데 집단 간의 관용성 낮아
    한국인의 마음에 대한 객관적 분석은 해외기관의 조사에서 확인할 수 있는데 그 결과는 사뭇 충격적이다. 세계 각국의 ‘마음’과 비교해 한국인의 마음은 건강하지 못하고 다소 비틀려져 있기 때문이다. 국제가치관조사(WVS·World Values Survey)를 보자. WVS는 세계 각국 민간 사회단체와 사회과학자들이 5년 간격으로 각 나라의 가치관을 분석하는 지표다. 2010~2014년 WVS에서 ‘자녀가 가정에서 배워야 할 가치관으로 타인에 대한 관용과 존중이 중요하다’고 꼽은 비율은 한국이 43.3%로 다른 국가에 비해 가장 낮은 수준으로 나타났다. 11개 가치관 항목 중 ‘타인에 대한 관용’ 항목이 미국에서 1순위,네덜란드 2순위,독일 3순위, 일본 4순위로 꼽힌 반면 한국에서는 7순위로 나타나 관용과 존중에 대한 교육이 가정 내에서 그다지 중시되지 않고 있음을 보여주었다. 특히 ‘외국인노동자, 동성애자 등 소수집단을 이웃으로 받아들이겠다’는 관용의 수준은, 한국이 5.9점으로 17개국 중 가장 낮았다. 주관적 소득계층별로 살펴보면, 저소득층 5.7, 중간소득 6.0, 고소득 6.3점으로 주관적 소득계층이 증가할수록 관용점수가 증가하는 경향이 있고 그 차이는 통계적으로 유의했다. 그러나 독일, 스웨덴의 경우 소수집단에 대한 관용과 주관적 소득계층별 평균값의 차이가 통계적으로 유의하지 않은 것과 대조적이다. 즉, 독일과 스웨덴은 주관적 소득계층이 높다고 해서, 자신이 잘살고 있다고 생각하든 그렇지 않든 관용수준에 차이가 없다. 국민대통합위 통합가치부 관계자는 “건강한 시민으로 성장한다는 것은 타인에 대한 존중과 상호인정의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은 사회적 거리감,또는 타 집단에 대한 불관용적 태도가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말했다. 사회적 거리감이 크다는 것은 그만큼 사회적 연대성의 폭과 깊이가 작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 다른 국제조사(OECD Better Life Index 2015)를 살펴보자. ‘ 위기상황에서 도움을 받을 곳이 없다’는 비율이 한국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평균보다 매우 높고 다른 국가와 비교해서도 현저한 차이를 보였다. OECD 국가와 러시아와 브라질을 포함한 36개국 조사에서 한국은 36위로 최하위를 나타냈다. 응답자 중 72%만이 도움을 받을 수 있다고 답한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는 한국사회의 ‘사회적 관계망’이 OECD 다른 국가나 OECD 평균(88%)과 비교해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지표다. 한국사회는 연고형 네트워크가 발달하고 사적 영역의 특수한 신뢰가 높게 나타나지만 정작 도움이 필요할 때 도움을 줄 수 있는 가족·친구·이웃 등의 사회적 관계망이 와해됐음을 보여준다. 사회적 관계망의 취약성은 사회적 협력과 연대성이 매우 취약한 기반 위에 있음을 의미한다.
    ㆍ소득이 아닌 상대소득이 주는 심리적 차별
    국민대통합위 권숙도 부장은 “주목할 점은 경제적 어려움이나 신체적·정신적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 도와줄 사람이 주위에 없다는 비율이 소득계층별로 큰 차이를 보여주고 있다는 점”이라며 “저소득층일수록 사회적 고립감의 비율은 매우 높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했다. OECD가 밝힌 ‘삶의 만족감(Better Life Index 2015)’ 조사에서 한국인의 삶의 만족도는 5.8점으로 OECD 국가들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OECD 국가를 포함한 37개국 중 30위로 하위권에 속한다. 삶의 질이 가장 높은 국가는 덴마크, 아이슬란드, 스위스로 7.5점이며 핀란드, 이스라엘, 노르웨이, 호주 등이 다음 순위다. 소득계층별로 삶의 만족도가 어떻게 나타나는지를 살펴보면,소득이 낮을수록 대체로 만족도가 낮게 나타난다. 나아가 계층의식에 따라 삶의 만족도도 큰 차이를 보인다. 2013년 통계청 사회조사에 따르면,자신이 상층·중간층·하층에 속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의 삶에 대한 만족도가 각각 77.9%,44.8%,17.0%로 큰 격차를 나타냈다. 현대경제연구원조사(2014)에서도 스스로 중산층이라고 생각하는 ‘체감(體感) 중산층’은 삶의 만족도가 82.3%에 달하는 반면, 체감 저소득층’은 55.5%에 불과하다. 이처럼 같은 소득수준이라 하더라도 계층의식에 따라 삶의 만족도가 큰 차이를 보인다는 점은 흥미롭다. 삶의 만족감 역시 분배와 같은 경제적 문제만으로 설명이 안 되는 상대적 차별의 영역이다. 김호기 교수팀은 “월평균 세후소득이 500만원대의 경우,중산층 의식을 가진 사람들과 저소득층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의 삶의 만족도는 각각 87.0% 59.6%로서 둘 사이의 차이는 27.4%포인트로 큰 차이를 보였다”고 밝혔다. 사실 국가별 행복감에 대한 통계를 보면 한 국가의 소득수준이 일정 수준을 넘어서면 소득증가는 행복에 별로 영향을 주지 않는다고 한다. 그렇다면 ‘소득이 높은 사람들이 대체로 더 행복하다’는 사실은 틀린 추론일까.김 교수팀은 “이런 현상은 절대소득과 상대소득의 차이점에서 발생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사회에서 상대소득이 행복에서 중요한 영역이 되어 가고 있다. 상대소득 격차의 증가는 사회구성원 간 지위경쟁을 심화시켜 불안·우울·자살·스트레스 등과 같은 개인수준의 병리현상을 심화시킨다. ㆍ약자는 자신이 강자인 양 想像해
    차별과 무시의 감정은 적극적인 저항과 사회운동을 추진하는 감정적 에너지를 제공한다. 2015년 9월 23일 민주노총 조합원들이 총파업을 결의한 뒤 청와대로 행진하려다 경찰과 충돌하고 있다.

    김호기 교수팀은 한국사회는 승자독식과 무한경쟁이 뒤얽힌 이중구조의 문제를 보여주고 있다고 분석한다. 특정부문만이 아닌 사회경제 전반에 걸쳐 전방위적으로 우리 사회를 짓누르고 있다는 것이다. 기득권은 높은 진입장벽으로 경쟁을 제한, 일종의 ‘지대추구(rent seeking)’를 행한다. 반면, 경쟁에 배제된 집단은 무한경쟁에 내몰린다. 패자부활의 기회도 보장받을 수 없는 운명이다. 대기업과 중소기업,대형 유통업체와 영세 자영업자,고학력자와 저학력자, 정규직과 비정규직,경력직과 신규 취업자,조직 노동자와 미조직 노동자,교수와 시간강사, 전문직과 단순직,보호된 공공부문과 무한경쟁에 시달리는 민간부문 사이에서 ‘특권과 배제의 이중구조’가 관철되고 있다. 고동현 박사는“취약계층에게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더 많은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고 말한다. 김영범 교수는 “패자부활전이 가능하도록 한때의 실패가 완전한 사회적 배제로 이어지지 않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한국사회는 보다 복잡한 구조를 지닌다. ‘ 힘을 가진 자’로부터 인정받기 위한 약자들의 인정투쟁이 일어나는 곳이다. 사회적 기득권층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오히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집단적 공격이 성행한다. 이 과정에서 약자는 강자에 대한 ‘상상적 동일시’를 통해 마치 강자처럼 행동한다. 상상적 동일시로 자신의 불안을 해소하거나 자신의 허약함을 다른 사람에 대한 공격으로 해소한다. 한국의 갑을관계는 역설적이게도 갑이 아니라 을에 의해 지속되는 체계로 변한다. 마치 연쇄고리처럼 먹이사슬 관계에서 을에게는 자신이 또 우위에 설 수 있는 병(丙)과 정(丁)이 있다. 국민대통합위 관계자는 “결국은 ‘마음의 습속’을 바꾸는 작업이 중요하다”며 “타인에 대한 공감능력과 사회정의에 대한 인식은 교육을 통해 이뤄져야 한다. 학교 교육과정 속에 민주적 시민교육을 정착시키고 다양한 문화 프로그램과 연계해 공공의 시민문화를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밝혔다.
           글 김태완 월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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