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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代에 역사를 바꾼 다섯 反共 지도자

浮萍草 2015. 11. 19. 12:00
    처칠, 이승만, 아데나워, 드골, 레이건: 70代의 노구를 이끌고 역사를 바꾼 건강의 힘은 육체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사명감에서 우러난 정신력 덕분이 아닐까? 공산주의에 대한 분노가 이런 건강의 비결이었을지도 모른다.
    1. 윈스턴 처칠 1874년 출생, 2차세계대전이 일어나자 66세에 전시(戰時) 총리가 되어 영국을 승리로 이끈 뒤 71세에 물러났다가 77세에 복귀, 81세까지 재임 하였다. 철저한 반공자유민주주의자로서 소련을 견제하였고,'철의 장막'이란 말을 만들었다. 1965년에 91세로 사망하였다. 2차 대전 회고록으로 노벨 문학상을 받았다.
    2. 李承晩 (이승만)
    1875년에 출생,해외 독립운동을 이끌다가 70세에 귀국,공산주의자들의 도전을 물리치고 건국을 주도하였다. 73세에 대통령이 된 후 12년간 재임하였다. 이 기간 반공 자유민주주의 체제를 확립하였고 한국전(韓國戰)을 지도, 자유진영과 조국을 지켜냈다. 건국(建國)과 호국(護國)의 지도자서 두 번 나라를 살린 사람이다. 1965년 90세에 하와이에서 사망. 옥중에서 쓴 '독립정신' 등 여러 권의 책이 있다.
    3. 콘라드 아데나워
    1876년 출생으로 쾰른 시장을 지낸 뒤 나치 독일의 탄압을 받았다가 독일의 패전 후 정계(政界)에 복귀,기독교 민주당을 만들고, 73세이던 1949년부터 87세이던 1963년까지 총리를 지냈다. 1967년에 90세로 사망하였다. 그는 독일이 과거를 청산하고 재무장,Nato에 가입, 서유럽의 일원으로서 소련과 대결하는 데 앞장섰다. 그는 서구를 이간질시키려던 스탈린의 중립통일안을 거부하였다. 천주교 신앙에 뿌리를 둔 그의 반공적 자유민주 노선은 콜 총리 시절에 통일로 결실되었으며 지금도 독일 정치의 주류(主流)이다.
    4. 샤를 드골
    1890년에 출생, 국방차관일 때 프랑스가 독일에 항복하자 런던으로 망명,자유 프랑스 군을 창설,연합군의 승리에 기여,패전국을 전승국 (戰勝國)으로 전환시키는 역전(逆轉)의 주인공이 되었다. 잠시 은퇴하였다가 1958년 알제리 독립 문제로 나라가 내전(內戰) 직전으로 몰리자 국민과 국회에 의하여 다시 불려나와 총리를 거쳐 개헌을 한 뒤 대통령이 되었다. 69세에서 79세까지 대통령으로 재직,프랑스의 정치를 안정시키고 핵무장을 하였으며 독자노선을 걸었다. 그 또한 철저한 반공(反共)공화주의자로서 두 번 나라를 구하였다.
    5. 도널드 레이건
    1911년에 태어난 레이건은 70세에 대통령이 되어 78세에 물러날 때까지 대소(對蘇) 강경정책으로 공산진영의 붕괴를 유도하였다. 그 또한 기독교적 반공자유 투사로서 '죄를 미워하라. 그러나 죄인을 사랑하라'는 신조를 갖고 있었다고 한다. 93세이던 2004년에 사망하였다. 처칠, 이승만, 아데나워는 한 살씩 차이가 난다. 세 사람은 2차 세계 대전 후 소련이 팽창정책을 쓸 때 이를 저지,자유진영을 지켜낸 3大 인물이다. 70代에 정권을 맡아 그런 위업을 이뤄냈다는 공통점이 있다. 드골과 레이건도 70대에 대통령을 지냈다. 70대에 정치 인생의 전성기를 보내면서 세계사를 좋은 방향으로 바꾼 이 다섯 명의 공통점이 있다. 1. 기독교에 바탕을 둔 신념의 반공자유 투사였다. 2. 건강이 출중하였다. 3. 드골을 뺀 네 명은 90 이상 장수하였다. 4. 이들 가운데 이승만과 드골은 두 번 나라를 구했다. 5. 패배를 딛고 頂上에 도달하였다. 6. 처칠, 드골, 이승만은 大문장가였다. 70代의 노구를 이끌고 역사를 바꾼 건강의 힘은 육체에서 나왔다기보다는 사명감에서 우러난 정신력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공산주의에 대한 분노가 이런 건강의 비결이었을지도 모른다. 종교적 신념,건강,지성(知性),경륜이 합쳐지니 나이는 장애물이 되지 못하였다.
           글 조갑제(趙甲濟) 조갑제닷컴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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