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스트레스 클리닉

너의 농담이 내겐 진담같이 들려

浮萍草 2015. 10. 28. 12:06
    개그를 다큐로 받아들인다는 20대 여성의 고민
    Q (괜히 정색한다 핀잔 듣는 대학원생)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20대 후반 여성 입니다. 저는 학창 시절 왕따를 당한 적이 있습니다. 당시의 트라우마 때문에 사람 사귀는 게 두렵고 무서워서 피해 다녔습니다. 그러다가 사람을 만나기 위해 조금씩 노력하기 시작했죠.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없애기 위해 제 나름대로 생각해낸 방법이 상대의 말을 잘 들어주는 것이었습니다. 사실 전에는 제가 제 얘기만 하는 성향이 있었거든요. 지금은 대화할 때 상대방의 말을 진지하게 받아들이려 노력합니다. 그런데 상대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면서 공감하고 제 마음에서 우러나오는 진심 어린 모습을 보일 때 “넌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질 못한다”“농담한 건데 뭘 그리 정색해요”라는 말을 들을 때가 있습니다. 그런 말을 들으면 당혹스럽습니다. 특히 제가 진지하게 한 말에 대해 사람들이 박장대소하며 웃을 때 더 그렇습니다. 왜 웃느냐고 물어보면 제가 하는 말이 ‘웃기다’고 하더라고요. 그럴 때면 무척 화나고 웃는 사람들이 예의 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농담과 진담을 구분하는 법, 그리고 기분 나쁜 농담을 들었을 때 받아치는 법을 알고 싶습니다. ㆍ진짜 농담과 마음을 떠보는 농담 A (혼자만 그러면 지칠거라는 윤 교수) 나는 진지하게 말하는데 상대방이 ‘농담에 뭐 그렇게 정색을 하느냐’고 반응하면 기분 나쁠 수밖에 없습니다.
    사실 농담과 진담은 그렇게 확연하게 구분되는 것이 아닙니다. 농담이 더 깊은 진담일 수 있기 때문에 기분이 더 안 좋을 수도 있는 것입니다. 농담의 사전적 정의는 ‘실없이 놀리거나 장난으로 하는 말’입니다. 정의로만 보면 농담이 좋은 소통법은 아닌 셈이죠. 그러나 실제 우리가 나누는 대화를 살펴보면 농담의 비중이 상당합니다. 매우 중요한 결정을 내려야 하는 비즈니스 미팅이나 한 나라 대표자 간의 대화에도 농담이 사용됩니다. 가벼운 농담은 분위기를 풀어줍니다. 또 중요한 결정에 대해 상대방의 마음을 슬쩍 떠보거나 내 마음 일부를 드러내는 데도 활용됩니다. 이렇게 되면 농담이 농담이 아니죠. 진담보다 더 진한 게 농담이 될 수 있습니다. 이적·김동률씨가 함께 한 카니발이라는 그룹의 ‘농담’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다음은 그 노래 가사의 일부입니다. ‘나를 휘저었죠, 나는 흔들렸죠, 헛된 상상들은 자꾸 넘쳐만 갔었죠. 하지만, 누굴 탓할까요. 내가 바보였죠, 그냥 흘러가는 말에 휩쓸렸던 거죠, 그랬죠. 웃어 볼까요, 조금 낫나요, 그저 웃으면 좋은 추억이죠.’ 우린 농담을 가볍게 여기지만 이 노래 가사를 보면 전혀 가볍지가 않네요. 마음에 상당히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실제 대화에서도 농담이 농담이 아닌 경우가 많죠. 연인 관계를 예로 들어볼까요. 둘 사이의 진도가 잘 나가고 있다고 생각하며 결혼 계획까지 세우고 있는 남자에게 어느 화창한 가을날,여자 친구가 툭 말을 던집니다. “우리 그만 만날까.” 남자는 깜짝 놀라“뭐라고 했어”라고 되묻습니다. 여자 친구는 “아니야, 못 들었으면 됐어. 그냥 날씨가 너무 좋아 쓸데없는 농담을 했어”라고 합니다. 데이트를 마치고 집에 오니 남자의 귀에 여자가 말한 “우리 그만 만날까”가 증폭되어 환청처럼 계속 들립니다. 농담이 농담이 아니게 되는 거죠. 정신분석의 시작으로 불리는 프로이트도 농담에 관심을 기울였습니다. 농담에는 꿈만큼 사람의 무의식이 포함되어 있다고 프로이트는 말합니다. 사람의 무의식이 사회적으로 표현되는 형태가 바로 농담이라는 겁니다. 농담엔 내 마음도 모르는 진실이 담겨 있을 수 있다는 것인데요. 앞의 예로 돌아가면 화창한 가을 하늘이 주는 자유로움이 내 마음을 억누르고 있던 억압이란 방어기제를 잠시 느슨하게 하면서 ‘툭’하고 마음 한구석에 있던 헤어짐 이란 생각이 언어로 표현된 겁니다. 이럴 땐 이렇게 말한 당사자도 당황할 수 있습니다. 이 경우 제일 좋은 피신처가 농담입니다. “그냥 농담이야”라고 변명하지만 세상에 “우리 그만 만날까”란 농담은 없겠죠. 때론 진실을 포장할 박스로 농담을 활용하기도 합니다. 의도적인 농담이라고 할 수 있겠네요. 대놓고 ‘이건 내 생각이야’라 말하면 자신의 말에 책임을 져야 하는 데다 상대방이 강하게 반응할 수 있으니,권투로 치면 슬쩍 잽을 한 번 날려 상대방의 반응을 보는 겁니다. 농담에 반응이 거세다 싶으면 본격적인 논의에 시간이 더 필요하겠다고 판단하는 겁니다. ㆍ가벼운 관계에선 가벼운 대화를
    오늘 사연으로 돌아가 볼까요. 학창 시절 왕따를 경험한 후 사람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기 위해 모든 대화에 진지하게 임하기 위해 노력하는 분의 사연이었습니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이 농담에 뭘 그렇게 진지하게 반응하느냐고 해 속상한 상황이었습니다. 인간관계의 상당 부분은 대화를 통해 이루어집니다. 대화를 항상 진지하게 한다는 것은 인간관계 전체를 진지하게 유지하려고 한다는 것이죠. 매우 훌륭한 삶의 자세입니다. 더욱이 학창 시절 어려움을 겪으면 숨고 좌절하기 쉬운데 그 아픔을 승화해 더 진지한 인간관계를 맺고자 노력한다는 것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죠. 가치 있는 훌륭한 삶의 자세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염려는 너무 지치지 않을까 하는 겁니다. 남의 말을 진지하게 경청하고 공감하는 것엔 상당한 뇌의 에너지가 소비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상대방도 내 이야기에 같은 강도로 진지하게 공감해준다면 서로 비슷한 에너지를 주고받으며 균형을 맞출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경우는 드물죠. 진지한 쪽의 에너지가 더 소비되기 쉽습니다. 더욱이 진지함에 대해 전반적으로 피곤함을 느끼는 사회이다 보니 대체로 사람들은 가벼운 재미 정도의 감성만 느끼려는 것이 현실입니다. 진지한 콘텐트보다는 재미있는 콘텐트가 더 인기인 이유이죠. 그래서 진지한 사람이 관계 에너지 면에서 손해를 많이 볼 수 있습니다. 뇌의 에너지가 결핍되면 ‘소진증후군’이 찾아올 수 있습니다. 소진증후군은 긍정적인 에너지를 빨아들이는 힘을 약화합니다. 그러다 보면 뇌가 더 지치는 악순환이 생기는 겁니다. 그래서 진지함의 정도를 조절하실 필요가 있습니다. 정말 속내를 터놓고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친구는 누구인지 먼저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한 명이어도 좋습니다. 최대치의 진지한 대화는 그 친구와 나누는 것이지요. 진지한 대화를 나눌 정도는 아니지만 그냥 만나면 가볍게 대화하며 유쾌하게 보낼 수 있는 친구들은 누구인지도 생각해 봅니다. 그 친구들과는 그 정도의 대화만 나누는 것이죠. 매일 헤어지기 싫을 정도로 사랑해 결혼한 부부도 갈등이 있고 내 배에서 나온 자녀도 나랑 잘 맞지 않아 속상한데 하물며 세상의 맺어지는 관계 하나하나가 다 진지할 순 없겠죠. 소중한 사람에겐 그만큼 더 집중하고 그보다 가벼운 관계에서는 그 가벼움이 주는 만남의 기쁨을 즐기는 유연성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때론 잘 모르는 가벼운 관계에서 오히려 진지한 위로를 받을 때도 있습니다. 날 잘 모르기에 솔직할 용기가 생겨서죠.
    Joongang Joins ☜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yoon.snuh@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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