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환경생태 물바람숲

나와 지구의 건강을 위하는 '걸어서 출근하기'

浮萍草 2015. 10. 7. 22:14
    3년 반 체험해 보니 육체적, 정신적 만족감 커…공원길과 대중교통 결합이 요령
    자동차 중심의 도시 절감…횡단보도 자동차 양보 없고, 이면도로 가운데로 걸으면 '불법'
    대중교통수단을 적절히 이용하면 걷기 쾌적한 길을 중심으로 출근 경로를 짤 수 있다. 사진은 여의도 윤중로 벚꽂길
    람은 걷는 동물이다. 300만년 전 아프리카에 살았던 인류의 조상 오스트랄로피테쿠스는 두뇌 크기는 침팬지만 했지만 이미 직립보행했다. 걷기는 인간다움의 가장 근원적 특성이다. 걷기 좋은 계절이 왔다. 이런저런 걷기 행사도 많고 둘레길과 산책로도 여기저기 뚫려 있지만 효과를 보려면 반짝 걷기가 아니라 생활화해야 한다. 걸어서 출퇴근하는 것이 유력한 방법이다. 걷기와 대중교통수단을 적절히 이용하면 걷기 좋은 곳이 의외로 많고 따로 스포츠센터 등에 다니지 않아도 돼 추가로 드는 시간도 많지 않다. 습관이 되면 빼먹을 리도 없고, 무엇보다 출근길이 훨씬 즐거워진다.
    처음 걸어서 출근할 때 건너던 원효대교. 매일처럼 변하는 한강의 자연을 관찰하는 일이 신기했지만 강은 넓고 자동차 소음은 시끄러웠다. 걷다 보면 도시가
    얼마나 자동차 중심으로 짜여 있는지 실감하게 된다.

    직장 동료의 권유로 걸어서 통근한 지 3년 반이 됐다. 처음에는 서울 동작구 대방동 집에서 한강 다리를 건너 마포구 공덕동 회사까지 약 8㎞를 걸었다. 1시간45분쯤 걸리는 긴 거리였다. 차를 타고 건널 때는 몰랐는데 한강이 이렇게 넓은지 새삼 놀랐다. 날마다 조차의 영향으로 물 흐르는 속도가 달라지고, 물고기가 물 밖으로 뛰어오르는 모습도 신기했다.
    걸으며 매일 달라지는 자연을 관찰하는 것은 걷기의 중요한 미덕이다. 홍수 때 부분적으로 물에 잠긴 밤섬의 모습.

    기상 상태에 따라 달라지는 한강의 풍경을 구경하는 것도 큰 재미다.

    여의도공원 산책로에 심겨진 쪽동백이 만개했다

    여의도공원 산책로에서 죽은 채로 발견된 도롱뇽.공원 조성 때 흙속에 알 또는 성체 상태로 옮겨왔던 것으로 추정된다. 겨울을 앞두고 이동하다가 밟혀죽은
    것으로 보인다.

    몇 달 뒤 걷는 구간을 여의도 샛강생태공원에 이어 여의도공원 끝까지 가서 버스를 타고 출근하는 경로로 바꾸었다. 철마다 바뀌는 꽃과 나무를 감상하며 한 시간쯤 공원길을 걷는 건 하루의 낙이 됐다. 회사까지 직선거리가 2㎞인 마포구 대흥동으로 이사한 뒤로는 경의선 숲길과 효창공원을 연결한 노선으로 거리를 3㎞로 늘려 45분 거리를 출퇴근 때 걷고 있다.
    경의선 철도를 지하화하고 지상 부분에 조성한 경의선 숲길. 많은 직장인들이 이 길을 이용해 통근한다.

    걷기가 건강에 얼마나 좋은지 정확히 말하긴 힘들지만 분명히 효과가 있고 개인적으로 매우 만족한다. 정신적인 만족도 못지않다. 자동차를 이용하지 않고 걷거나 자전거로 통근하는 것은 육식을 줄이는 것과 함께 유엔이 시민에게 권고하는 가장 효과적인 온실가스 감축 방법이다. 환경부의 계산을 빌리면,매일 2㎞를 승용차를 타지 않고 통근할 때 연간 520㎞를 걷는 셈이어서 휘발유 58ℓ를 절감해 연료비 9만3000원을 줄일 수 있다. 이산화탄소 배출량은 138㎏ 주는데, 이는 30년생 소나무 20그루를 심은 것과 마찬가지다. 자신의 건강과 함께 지구를 지키는 데 일조하는 것이다.
    한강 공원. 큰 하천변에는 대개 쾌적한 보행로가 조성돼 있어 이를 이용해 출근 경로를 짜는 것이 좋다.

    그런데 걸어본 사람이라면 걷기가 마냥 즐거운 일만은 아니라는 것을 알 것이다. 도시가 자동차를 위해 설계된 곳임을 뼈저리게 느끼게 된다. 처음 이면도로를 걷다가 공원으로 걷는 경로를 바꾼 이유도 그랬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를 15개 건너야 했는데 ‘목숨을 걸고’ 건너야 하는 곳이 여럿 있었다. 횡단보도 앞에서 기다린다고 빠르게 달려오던 차가 정지해 주는 일은 거의 없었다. 줄지어 오는 차를 한없이 기다릴 때도 있다. 도로교통법은 횡단 중인 보행자가 있으면 일시정지하도록 규정하고 있지만, 자동차는 속도를 늦추지 않는다. 미국 보스턴시는 신호등이 없는 횡단보도에서 횡단하거나 횡단하려는 보행자에게 양보하지 않는 운전자에게 200달러의 벌금을 물린다. 많은 선진국 도시가 이런 보행자 우선권을 인정하는 추세이다. 유럽에서 횡단보도 근처에만 가도 차가 멈춰 오히려 놀란 경험이 있을 것이다.
    신호등 없는 횡단보도는 보행자에게 큰 위험이다. 선진국처럼 보행 우선권이 보장돼야 한다. 사진=홍용덕 기자

    새벽부터 밤늦게까지 먼 거리를 출퇴근하느라 허덕이는 이들에게 걸어서 통근하는 것은 한가한 얘기로 들릴지 모른다. 그러나 이면도로를 걷는 것은 결코 여유로운 행위가 아니다. 우리나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가운데 교통사고 사망자 가운데 보행자 비율이 39%로 가장 높다. 2013년 서울에서 발생한 371건의 보행자 교통사망사고 가운데 절반 가까이가 이면도로에서 일어났다. 서울에서 보도와 차도가 분리돼 있지 않은 이면도로는 전체 도로의 3분의 2를 차지한다. 기막힌 현실은, 이면도로의 주인도 자동차라는 사실이다. 도로교통법 제8조 제2항은 보도와 차도의 구분이 없는 도로에서 보행자는 차량 진행방향과 반대편으로 그것도 길 가장자리에 그어놓은 노란 금 바깥으로만 다니도록 돼 있다. 이면도로 한가운데를 걷는 행인은 모두 법을 어기고 있는 것이다. 길 가장자리가 아닌 곳으로 가다 자동차와 부닥치기라도 한다면 보험처리 때 보행자가 대개 30%의 책임을 진다. 그런데 주차된 차와 적치물 탓에 이 법을 지키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이면도로에서조차 사람은 자동차 통행의 방해물 정도로 간주되고 있다.
    걷기와 자전거를 온전한 교통수단으로 인정해 전체 교통시스템에 반영하는 것이 선진국의 추세이다. 그래야 굳이 공원을 돌지 않고도 이면도로를 이용해
    빠르고 안전하게 통근할 수 있다

    걷기와 자전거가 온전한 교통수단 대접을 받아야 한다. 공원으로 돌지 않고 가까운 이면도로로 안전하게 통근할 수 있는 도시야말로 인간적인 도시다.
    Ecotopia Hani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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