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에도 찻잎을 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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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여덟에 쓰러져 반쪽 몸을 가누지 못했다.
우연찮게 만난 발효차를 마시며 무뎌진 신경이 소설처럼 살아났다.
살길이구나 싶어 차 공부를 시작했다.
백연골 발효차를 만드는 전남 보성군 노동면 금호리의 문정자(58)씨 얘기다.
희열은 잠깐, 군에 다녀온 아들이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사고를 당했다.
수중작업을 하던 중 동료 셋을 구해 놓고 혼자만 빠져나오지 못했다.
시름에 빠져 살던 어느 날,그간 방치해 놓았던 차 덩어리가 눈에 들어왔다.
자연발효돼 뜻밖의 향과 맛이 났다.
퍼뜩,엄마를 살리려 아들이 남긴 선물이란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차는 운명처럼 다시 구원의 손을 내밀었다.
봄부터 가을까지 찻잎을 네 번 딴다.
여기에 철 따라 나는 감잎·뽕잎·약쑥·칡순·아카시아꽃·박하·도라지 등이 들어간다.
발효 과정에서 쓴맛은 숨고 순한 맛이 올라온다.
우리 바깥양반이 고등학교 때부터 담배를 피웠어요.
이 차를 마시며 기미도 없어지고 폐까지 깨끗해졌지 뭐예요.
땡볕에 그을린 구릿빛 손으로 차를 우리며 문씨가 하하하 웃는다.
보성강가 대숲 속에 차 밭이 있다.
인근의 천년 고찰 보림사 야생차 씨앗으로 일군 밭이다.
그림 위쪽 구불구불한 물길이 일림산에서 출발하는 보성강이다.
산꼭대기 남쪽에 떨어진 빗방울은 6㎞만 흐르면 바다로 드는데 한 뼘 위에 떨어지면 180㎞를 돌고 돌아야 짠물과 만난다.
일림·활성·봉화산 줄기가 바다와 들을 가르고 있어서다.
강은 북진, 동진, 북동진을 거듭하며 주암호를 거쳐 곡성의 압록에서 섬진강과 만난다.
이 강물이 거쳐 가는 보성·구례·하동이 모두 차로 한몫하니 보성강은 차의 강이다.
철길 따라 오른쪽으로 가면 벌교다.
지금 갯벌에서는 찬바람 불 날 기다리며 꼬막들이 한창 살을 불리겠다.
함께 간 다큐멘터리 감독 장상일의 드론이 차 밭에서 추락해 읍내를 찍지 못했다.
항공사진과 지도를 놓고 재해석한 그림이다.
비행기 모는 저 아가씨는 찻잔을 들고 조종간을 잡았네요.
묘기가 그만입니다.
그만 떠들고 차나 한잔하라고요? 아, 네.
☞ Joongang Joins ☜ ■ 글·그림 안충기 중앙일보 기자 newnew9@joongang.co.kr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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