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文化財사랑

전통사상 속 공감과 배려

浮萍草 2015. 8. 14. 17:46
    ㆍ타고난 공감과 배려 저 유가에서는 인간의 공감능력과 그에 따른 배려를 인간의 타고난 본성으로 여겼다. 타고난 공감능력과 배려정신은 바로 인仁을 말한다. 『 맹자(孟子)_』에서는 이를 ‘측은지심(惻隱之心)’을 통해 설명한다. 만약 지금 우리 눈앞에서 한 어린아이가 우물에 막 빠지려고 한다면 그 순간 우리는 어떠한 계산도 하지 않고 그 아이를 구하기 위한 행동을 하게 된다는 것이다. 맹자는 자기 이익을 계산하지 않고 순간적으로 발동하는 이 순수한 마음이 측은지심이고 이것이 곧 우리 마음속에 공감과 배려가 타고난 것이라는 증거라고 하였다. 물론 위기의 순간에도 다른 이의 어려움을 모른 척하는 경우가 없다고 할 수 없지만 이것은 사욕에 의해 인 이 끊어진 것이고 만약 이런 자가 배려하는 사람들 앞 에서 부끄러워하거나 자기 잘못을 숨기려든다면 그것 자체가 타고난 본성의 싹이 조금 남아있다는 증거가 된다고 한다. 이런 의미에서 맹자(기원전 371~289경)는 측은지심이 없다면 그는 사람이 아니라고 하였고 맹자보다 앞서 인仁사상을 펼친 공자(기원전 551~479경)는 인仁이 없거나 너무 힘들어서 이 마음을 실천하지 못하는 사람은 보지 못했다고 하였다. 불가에서는 이 세상이 모든 존재자들이 상호 의존적으로 존재하는 연기(緣起)구도 속에 놓여있다고 본다. 샤카무니 붓다(석가모니, SakyamuniBuddha)는 이를 나뭇가지 세 개가 잠시 기대어 서있는 것에 비유했다. 가령 함께 서 있는 세 개의 나뭇가지에서 어느 하나만 빼내도 세워져있던 그 형상은 없어지고 나뭇가지들이 모두 쓰러지고 마는것처럼 모든 존재는 인연에 따라 서로 의존한 채로 잠시 그 상태로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세 개의 나뭇가지처럼 세상 존재들은 모두 일시적인 조합이며 언제든 변할 수 있으므로 이것이 고정되어있다고 생각해서는 안 된다. 그런데도 이 속에서 변하지 않는 것을 찾고 집착하는 것 때문에 존재자들에겐 늘 고통이 따른다. 모든 존재는 이런 고통에 처해있기 때문에 너나할 것 없이 같은 처지이고 너를 통해서 나를 보며 나를 통해서 너를 볼 수 있다. 이런 구도 속에서는 나를 위하는 것과 남을 위하는 것이 구조적으로 차이가 없기 때문에 서로를 위해주어 기쁨을 나누고(자 慈) 고통을 덜어주는 (비,悲) 것이 모두를 구원하는 길이다. 불교의 자비는 공감하고 배려할 수밖에 없는 모든 존재자들의 의존적 상태에서 비롯되고 우리가 근원적 고통에서 벗어나는 효과적인 실천법이 되는 것이다. 도가에서도 마찬가지다. 도교사상의 바탕이 되는『노자』와『장자』를 보면 우주의 원리인 대도(大道)는 만물을 낳고 길러주지만 만물 앞에서 주인노릇하지 않고 억지로 끌고가지 않으며 만물이 저대로 자연스럽게 이루도록 한다고. 따라서 최상의 도를 닮은 최상의 덕은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같지만 저절로 다 이루게 하는 무위자연(無爲自然)이다. 또 모든 만물의 가치는 도의 관점에서 보면 모두 동등하기 때문에 내가 더 낫다는 생각을 지니는것은 매우 어리석은 처사이다. 『 장자』의 우화를 보면 몸에 장애가 있는 도인들이 많이 등장한다. 도가에서는 타자를 공감하고 배려하되 배려하는 것을 자랑하거나 공을 자처하지 않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본다.
    ㆍ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
    유가에서는 공감하고 배려하는 마음인 인仁이 기본적으로 하늘이 만물을 낳고 살리는 마음(天地生物之心)과 같다고 보았다. 공감과 배려의 마음인 인仁의 의미는 자기 진심과 성의를 다하는 충(忠)과 나의 마음을 미루어 남의 마음을 헤아리는 서恕로 풀이된다. 이때 나를 미루어 남의 마음을 잘 헤아린다는 것은 내가 하기 싫은 일은 남에게도 시키지 않는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다산 정약용(丁若鏞,1762~1836)은 인仁의 글자 모양이 인(人)과 이二의 결합이고 옛 전서에서 인(仁)을 인인(人人)으로 썼다는 사실을 들어 인仁이란 두 사람 사이 에서 실행되는 도리라고 보았다. 또 공자의 제자 번지(樊遲)가 공자에게 인(仁)에 대해 묻자,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라고 답한 내용을 바탕으로 인(仁)이란‘사람을 향한 사랑’이고‘사람과 사람의 지극 함’이라고 규정했다. 따라서 자식과 부모, 형과 아우, 신하와 임금 그리고 위정자와 백성이 서로 두 사람의 관계를 형성하고 이속에서 사랑하는 마음을 행하면 그것이 곧 인仁이라고 하였다. 인(仁)이라는 것은 멀리 있는 고차원적 원리가 아니라 타인과의 관계에서 진정으로 공감하고 배려하며 사랑하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옛 선비들은 가장 가까운 인간관계인 부모 자식 간의 애정은 말할것도 없고 부부간의 애정과 도리를 매우 중요시했다. 특히 부부가 있어야 부모 자식의 관계가 형성되기 때문에 부부를 인륜의 시작으로 보았다. 퇴계 이황(李滉,1501~1570)은 가정불화를 겪고 있던 제자 이함형에게 편지를 써서 부부의 도리에서 군자의 도리가 시작되므로 아내를 배려심과 공경심으로 대하며 박대하지 말라고 당부하기도 했다. 유가에서 이러한 타인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일상 속에서 가까운 가족에서부터 이웃,사회,심지어 동물들에게까지 확장된다. 한편 불가나 도가에서는 모든 존재가 애초에 동등하기 때문에 차별 없s는 배려정신이 필요하다고 본다. 나와 가까운 타인에게 집착하여 또 다른 타인을 차별하는 경우를 경계한 것이다.
    ㆍ사회에 대한 공감과 배려
    1809년 빙허각 이씨(憑虛閣李氏,1759~1824)가 지은『규합총서(閨閤叢書)』에는 밥 먹을 때 생각해야 할 다섯 가지 사항,즉 식시오관(食時五觀)이 나온다. 이 가운데 밥상 앞에서 먼저 이 음식이 어디서 왔는지 음식을 만든 사람들의 공을 생각하고,욕심내지 않으며 내가 그것을 먹을 만큼 착한 일을 했고 그런 자격이 되는지를 생각해보라는 말이 있다. 또 전라남도 구례의 99칸 명문 양반가인 운조루(雲鳥樓)에 가면 나무로 된 쌀독 마개에 ‘타인능해(他人能解)’라는 글이 쓰여 있다. 그것은 누구라도 마개를 풀어 쌀을 퍼 갈 수 있다는 말이다. 운조루의 주인인 류이주(柳爾,1726~1797)는 사람들에게 잘 보이지 않는 곳에 쌀독을 두어 쌀을 가져가는 사람들의 부담을 덜어주었다고 한다. 또 논산명재고택(중요민속문화재 제190호)도 밥 짓는 연기가 동네 멀리까지 보이지 않도록 굴뚝을 낮게 하고 추수한 나락을 대문 밖에서 곧바로 옮기지 않고 일부러 마당에 일주일 정도 쌓아두어 누구든 가져갈 수 있 게 하였다고 한다. 이 런 사례들은 모두 일상 속에서 내가 아는 주변 사람들뿐만 아니라 사회 전체로 공감과 배려를 확장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는 유가나 불가에서 모두 볼 수 있는 사례들이다. 공감과 배려를 개인에서 사회로 확장하는 것은 더 좋은 사회를 만들려는 우리 전통에서 매우 중요한 부분들이었다. 뿐만 아니라 사회적으로 약자의 위치에 선 자들에 대한 배려도 각별했다.

    일찍이 맹자는 성왕인 주나라 문왕이 항상 ‘나이 들어서 아내가 없는 홀아비(환,鰥),나이 들어서 남편이 없는 과부(과,寡),나이 들어서 자 없는 노인(독,獨),부모 없는 어린아이(고,孤)와 같은 천하의 곤궁한 백성들을 먼저 배려하여 정책을 폈다’고 하였다. 이를 계승하는 유교정치에서는 당연히 사회적 약자의 배려를 우선으로 여겼다. 조선시대에는 매우 위독한 병에 걸린 사람(독질인,篤疾人), 몸에 병이 남아있는 사람(잔질인,殘疾人),고칠 수 없는 병에 걸린 사람(폐질인,廢疾人)들을 먼저 돌보는데 일종의 도우미인 보수(保授)를 보내 철마다 보고를 받기도 하였다. (『세조실록』권9. 3년1월16일) 독질인,잔질인, 폐질인 가운데 상당수는 오늘날 장애인에 해당하는데 이들을 배려하는 정책을 매우 중시하였던 것이다. 집안에 장애인이 있거나 장애인을 돌보는 자들은 군역이나 부역을 면제해주고 잘 돌본 사례에는 포상을, 반대의 경우에는 처벌을 내렸으며 무엇보다 장애인들이 할 수 있는 직업군을 개발하여 자립할 수 있도록 도왔다. 시각장애인인 경우는 국가 행사에서 거문고 타며 시를 읊는 현송((絃誦을) 맡고 이들을 지원하는 기관인 명통사(明通寺)를 통해 정기적으로 기우제를 지내는 일을 맡기도 하였다. 유·불·도 삼교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 전통사상에서 타자에 대한 공감과 배려는 삼교의 공통적인 핵심사상에 해당한다. 나로부터 진정한 공감과 배려를 회복함으로써 더 좋은 공동체를 만드는 것이 바로 삼교가 지향하는 목적이기 때문이다. 우리는 선조들이 남긴 문화유산 곳곳에서 이러한 공감과 배려의 흔적을 확인할 수 있다.


    ☞ 문화재청 ☜        글. 김윤경 한국전통문화대학교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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