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자연사 이야기

<27> 육상 선수급 조류들

浮萍草 2015. 5. 25. 09:26
    ‘비행 불능’ 코끼리새·타조 … 천적 있었다면 날아다녔을까
    주금류와 사람의 크기 비교 1 타조(아프리카) 2 디아트리마(북아메리카,멸종) 3 코끼리새 (마다가스카르, 멸종) 4 자이언트모아 (뉴질랜드, 멸종) 5 공포새
    (호주, 멸종) 6 모아 (뉴질랜드, 멸종) 7 아메리카레아 (남아메리카) 8 다윈레아 (남아메리카) 9 뉴기니 화식조 (뉴기니, 호주) 10 에뮤 (호주) 11 도도 (모리셔스,
    멸종) 대부분은 비교적 최근인 200~300년 전에, 디아트리마는 1600만 년 전에 각각 멸종했다.
    리는 큰 섬에 대한 로망이 있다. 제주도·뉴질랜드·갈라파고스제도·태즈매니아·마다가스카르 섬 같은 곳 말이다. 큰 섬은 작은 섬이나 육지와는 다른 자기만의 자연 세계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2012년 여름 나는 넓이가 한반도의 네 배나 되는 큰 섬에 있었다. 만화 영화 ‘마다가스카’ 덕분에 여우원숭이와 바오바브나무의 천국으로 알려진 마다가스카르 섬 말이다. 마다가스카르에 가면 꼭 보고 싶은 것이 있었는데 그것은 바로 코끼리새(Aepyornis maximus)였다. 코끼리새라는 이름이 붙은 까닭은 코끼리처럼 커다란 코와 귀가 있기 때문이 아니라 코끼리처럼 굵은 다리로 쿵쿵거리며 돌아다녔기 때문이다. 새라면 모름지기 가느다란 다리를 뽐내야 하는 법인데 코끼리새가 코끼리처럼 굵은 다리를 가져야 했던 까닭은 간단하다. 덩치가 컸기 때문이다. 키는 3m나 되었고 몸무게는 500㎏이나 나갔다.
    ㆍ비행은 조류의 필수 과목이 아니다
    천일야화에는 코끼리새가 코끼리를 낚아채서 날아가는 것으로 돼 있다.
    내가 코끼리새에 대해 막연한 꿈을 꾸게 된 것은 어린 시절 TV에서 본 만화영화‘신바드의 모험’ 때문이었다. 신바드가 섬에 혼자 남게 되었는데 거기서 정체불명의 커다란 알을 구경하다가 괴물 새의 다리에 매달려 어디론가 날아가는 대목이 나온다. 만화의 원작인『천일야화』에는 코끼리를 채가는 거대한 새로 등장한다. 아마도 마다가스카르 섬에 들렀던 아라비아 상인이 커다란 새 이야기를 아라비아에 전했나 보다. 아라비아의 전설에서는 코끼리새가 하늘을 날아다니지만 코끼리새는 아무리 날개를 퍼덕 여도 하늘을 날지는 못한다. 하늘을 날기에는 너무 무겁다. 마다가스카르에 사는 코끼리새는 남아메리카 안데스산맥과 파타고니아에 사는 레아, 아프리카에 사는 타조,뉴질랜드에 살았던 모아와 지금도 살고 있는 키위.호주에 사는 에뮤와 근연종(近緣種·유연관계가 깊은 종)이다. 이런 새들은 날개가 불완전해 날지 못한다. 대신 다리가 길고 튼튼해 걷고 달리기를 잘해서 주금류(走禽類)라고 부른다. 주금류는 공통 조상에서 갈라져 나왔다. 그런데 어떻게 제각기 멀리 떨어진 곳에서 살면서 각기 다른 길로 진화하게 되었을까. 주금류의 분포는 우리에게 몇 가지 질문을 불러일으킨다. 첫째,주금류는 몸집이 커져서 날지 못하게 된 것일까,
    아니면 날지 못하게 된 대신 몸집이 커진 것일까. 둘째, 마다가스카르·호주·뉴질랜드·남아메리카에 온 초기 주금류는 날아서 왔을까, 아니면 걸어서 왔을까. 모든 새가 날아야 하는 것은 아니다. 새는 공룡이고 공룡은 날지 못한다. 공룡이 진화해 새가 되었다기보다는 새가 바로 공룡이라는 게 현대의 학설이다. 공룡을 분류하는 방법이 여러 가지 있는데 조류형 공룡과 비(非)조류형 공룡으로 나눌 수도 있다. 비조류형 공룡은 중생대 말에 모두 멸종했고, 조류형 공룡은 지금도 여전히 살아있다. 조류형 공룡은 대부분 비행 기술을 터득했지만 여전히 날지 못하는 조류형 공룡이 남았다. 주금류가 바로 그들이다. 주금류는 대부분 육식 포유류가 없는 고립된 지역에 산다. 마다가스카르에는 코코넛 같은 코끼리새의 먹이는 풍부했던 반면 천적이라고는 기껏해야 악어라든지 몽구스가 진화한 포사(fossa) 정도에 불과했다. 포사는 아프리카 대륙이라면 사자 정도의 지위를 가진 동물이지만, 크기는 삵보다 크고 표범보다는 작은 정도다. 마다가스카르 고유종으로 전 세계 어디에도 유사한 동물이 없다. 섬에 사는 동물은 몸 크기가 특징적으로 변한다. 몸이 커지든지 작아지든지 양방향 중 한쪽을 향해 거의 직선적으로 변화가 일어난다. 쥐처럼 작은 포유류는 덩치가 커지고, 큰 포유류는 작아지는 경향이 있다. 이것을 ‘섬(island)의 법칙’이라고 한다. 섬은 포식자가 거의 없고 먹이도 풍부해 다른 종과의 경쟁도 심하지 않다. 이런 상황에서는 설치류처럼 작은 포유류는 몸집이 커지는 쪽으로 진화하는 게 자연스럽다. 설치류는 개체수가 지나치게 많아지면 자동적으로 번식률이 줄어들어 환경에 부담을 주는 일도 없다. 그런데 큰 포유류는 다르다. 하마·사슴·돼지처럼 발굽이 갈라져 있는 우제류(偶蹄類)는 개체수를 조절하지 못한다. 같은 환경에 개체수가 늘면 발육이 부진하고 결국 몸집이 작아지는 방향으로 진화한다. 섬에서 이런 경향이 명확하게 나타나는 까닭은 유전자 풀(pool)이 원래 작고, 다른 유전자가 유입되기도 어렵기 때문이다.
    ㆍ주금류 몸집 점점 커졌지만 키위새는 예외
    코끼리새를 비롯한 주금류도 몸집이 커지는 방향으로 나아갔다. 천적이 없는 상황에서 굳이 비행 기술을 익힐 필요가 없었다. 예외가 있다면 뉴질랜드에 살고 있는 키위다. 키위는 몸집이 작은 주제에 날지도 못해 우리를 헷갈리게 하지만,키위는 처음에 컸던 덩치가 진화하면서 작아진 경우다. 몸집에 비해 거대한 알의 크기가 그 증거다. 키위는 굴을 파고 야행성 생활을 했다. 육상 포유류가 없는 뉴질랜드에서 새로운 생태적 지위를 차지한 셈이다. 19세기까지만 해도 자연학자들은 주금류가 원래 날지 못하던 조상에서 왔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했다. “ 아니 저렇게 커다란 새들이 아프리카에서 뉴질랜드까지 어떻게 걸어서 갈 수 있단 말인가”. 여기에 답하지 못한다면 당연히 코끼리새·에뮤·모아·키위의 조상은 모두 날아서 그 지역에 갔어야 한다. 그리고 대략 500만~1000만 년 전 사이에 비행 능력을 잃었을 것이라고 추측했다. 모든 사람이 ‘예스’를 외칠 때 혼자 ‘노’라고 대답하는 것은 리스크(위험)가 크다. 대신 맞을 경우엔 리턴(보상)도 큰 법이다. “그 많은 주금류들이 비행 기술을 각각 상실했다는 것은 쉬운 일인가”라는 질문을 한 자연학자가 있었다. 그의 이름은 앨프리드 월리스(Alfred Wallace, 1823~1913). 그는 아마존 강 유역과 말레이 제도를 탐사하면서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동물 사이에 단절현상이 있다는 사실을 발견해 지도에 월리스 선(Wallace Line)을 그은 사람이다. 월리스는 동물 종의 분포와 지리학의 연관을 연구해 ‘생물지리학의 아버지’로 불린다. 뿐만 아니라 독자적으로 자연선택설을 제안해 찰스 다윈을 당황하게 만들기도 했다.
    ㆍ키 3m, 500kg 코끼리새, 인간 탓에 멸종
    서대문자연사박물관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에서 코끼리새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새알이 전시되어 있다.가장 큰 것이
    코끼리새의 알이다
    찰스 다윈의『종의 기원』이 출간된 지 17년이 지난 1876년 월리스『동물들의 지리적 분포』에 마다가스카르·뉴질랜드·남아메리카·아프리카의 주금류가 모두 공통 조상에서 유래했을 것이라고 썼다. 주금류는 육식성 포유류가 출연하기 이전에 진화한 오래된 새로,위험한 적의 공격에서 벗어난 지역 에서만 보존돼 있는 것이라고 월리스는 생각했다. 하지만 이렇게 커다란 새들이 도대체 어떻게 아프리카에서 뉴질랜드까지 걸어서 갔는지는 설명하지 못했다. 모든 의문을 풀어준 사람은 독일의 기상학자 알프레트 베게너(Alfred Wegener, 1880~1930)였다. 베게너는 1915년 『대륙과 해양의 기원』에서 ‘판게아’라는 초대륙이 존재했고 약 2억 년 전에 분열한 뒤 표류해 현재와 같은 위치와 모습이 되었다는 대륙이동설을 주장했다. 날지 못하는 주금류는 중생대에 아프리카에서 남극 대륙을 가로질러 뉴질랜드로 걸어갔다. 그것은 곤드와나 대륙의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옮겨가는 것에 불과했다. 곤드와나 대륙은 현재의 아프리카·마다가스카르·인도·호주·남극·뉴질랜드·남아메리카를 포괄하는 대륙이었다. 현재 남반구 전체 대륙이라고 보면 된다. 아프리카와 남아메리카가 분리된 9000만 년 전에는 초기 주금류가 이미 전체 곤드와나 대륙에 퍼져있었다. 같은 시기에 코끼리새의 조상도 아직 곤드와나 대륙에 속해 있던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했다. 곤드와나 대륙 곳곳에 살았지만 대부분은 사라졌고 섬으로 분리된 마다가스카르에만 살아남았다.
    코끼리새의 조상은 아프리카 대륙에도 살았지만 초식성 포유류가 풍부해짐에 따라 육식성 포유류도 늘어났고, 건조한 기후로 인해 숲이 줄고 초원이 늘면서 대륙 에서는 코끼리새 조상은 경쟁력을 잃었다. 다른 주금류들도 마찬가지다. 섬에서만 살아남았다. 타조가 아시아와 유럽에서는 멸종했지만 아프리카에서 살아남은 것은 오히려 놀라운 일이다. 달리는 속도, 발로 차는 능력 같은 여러 가지 특성을 갖춘 덕일 것이다. 코끼리새에게 마다가스카르는 천국이었다. 하지만 기원전 350년 경부터 위기가 찾아왔다. 뛰어난 항해술로 이스터섬·하와이제도 등 태평양 곳곳을 점령한 말레이어족 계열 민족이 인도양을 건너 마다가스카르에 도착한 것이다. 당연히 생태계에 재앙이 닥쳤다. 하지만 그런대로 명맥은 이을 수 있었다. 17세기 프랑스인이 마다가스카르 섬에 나타났다. 18세기가 되자 코끼리새는 한 마리도 남지 않게 되었다. 공룡과도 함께 살았고 대륙이동도 견뎌낸 어마어마한 크기의 새가 작은 인간들 손에 사라진 것이다. 나는 마다가스카르의 수도 안타나나리보에 가면 자연사박물관에서 코끼리새의 골격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보지 못했다. 자연사박물관에 코끼리새의 골격이 없는 게 아니라 아예 자연사박물관 자체가 사라져버린 것이다. 잦은 군사 쿠데타로 혼란에 빠진 가운데 어느 부패한 군사정권이 모든 전시물을 외국인에게 팔아넘겼다고 한다. (이 이야기를 전한 통역은 ‘그럴 수도 있지. 뭘 놀라고 그래’라는 표정을 지었다.) 코끼리새는 알의 크기도 당연히 거대했다. 역사상 세계에서 가장 큰 세포인 코끼리새의 알은 큰 것은 지름이 30~40㎝, 둘레가 1m, 부피는 8L에 이른다. 서대문자연사박물관 1층 홀에는 붉은머리오목눈이(뱁새)에서 코끼리새의 알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크기의 수십 종의 새 알을 한눈에 비교할 수 있는 전시코너가 있다. 코끼리새 알은 언뜻 보기에도 달걀 200개 정도의 크기다. 공룡 알보다도 훨씬 컸다. 코끼리새는 지구에서 사라졌다. 이제 다음 차례는 누구인가. 우리는 정녕 섬을 섬으로 남길 수는 없는 것인가.
    Sunday Joins Vol 428 ☜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