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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계에 만연한 조급증에 대한 고찰

浮萍草 2015. 1. 6. 09:40
    끈이론으로부터 물리학을 지키자?
    물리방정식은 실험과의 일치보다 구조의 미가 더 중요하다 - 폴 디랙 간 학술지 ‘네이처’는 매년 마지막호에 그 해에 ‘화제가 된 10명’을 선정하는데,지난 2011년 선정된 사람가운데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 로즈 레드필드 교수는 좀 특이한 경우였다. 뭔가 획기적인 발견을 해서가 아니라 2010년 12월 발표돼 세상을 떠들썩하게 했던 비소박테리아 발견이 엉터리라고 반박해 주목을 받은 과학자이기 때문이다. 천재들의 집합소이자 언론의 보호막에 가려져 있는 미국항공우주국(NASA)의 발표에 딴지를 걸었으니 ‘옷 벗을 각오’를 한 셈이다. DNA 골격으로 인 대신 비소를 쓰는 박테리아가 발견됐다는 당시 발표에 많은 과학자들이 의아해했음에도 ‘설마 NASA가…’라는 생각에 선뜻 나서지 못했다. 결국 비소박테리아는 비웃음의 대상이 됐고 레드필드는 작은 영웅이 됐다.
    지난해 3월 발표된 중력파 검증 실험의 오류 가능성을
    처음 제한 미국 프린스턴대 데이비드 스퍼겔 교수.
    네이처’의 ‘2014년 화제가 된 10명’에 선정됐다.
    프린스턴대 제공
    그런데 지난해 마지막호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었다. 2014년 3월 우주배경복사에서 빅뱅의 중력파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해 세상을 깜짝 놀라게 했던 미국 하버드-스미스소이언 천체물리센터를 중심으로 한 국제공동연구팀(바이셉2 실험)의 발표가 엉터리라는 주장을 처음 제기한 프린스턴대의 천체물리학자 데이비드 스퍼겔 교수가 ‘화제가 된 10명’에 선정된 것. 스퍼겔 교수는 발표가 있고 열흘쯤 지났을 때 관측 데이터에 문제가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고 한다. 즉 우주먼지가 신호에 교란을 준 걸(노이즈) 신호로 해석했다는 것. 지난 9월 유럽우주국(ESA)의 플랭크 위성 관측 결과가 스퍼겔의 주장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나오자 결국 바이셉2와 플랭크 팀은 공동으로 데이터를 다시 분석하기로 했다. 두 사례 모두 획기적인 결론으로 이어지는 데이터를 앞에 두고 조급해진 과학자들이 서둘러 대중매체에 결과를 발표하면서 비롯된 해프닝이라는 자성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비소박테리아의 경우 결론을 반증할,즉 DNA골격에 비소가 정말 들어갔는지 확인할 실험 방법이 있음에도 실험을 외면하고 서둘러 결론을 내렸고 바이셉2의 경우도 데이터 품질에 대한 검증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말이다.
    ㆍ끈이론은 희망사항의 집합에 불과해
    그런데 지난해 ‘네이처’ 마지막호에는 바이셉2 실험 해프닝보다도 더 심각해 보이는 글이 한 편 실렸다. ‘물리학의 정신을 지켜라(Defend the integrity of physics)’라는 도발적인 제목으로 도대체 누가 물리학을 훼손하려고 하나 궁금해 읽어봤다. 놀랍게도 다른 사람들도 아닌 이론물리학의 꽃으로 알고 있던 끈이론연구자들 가운데 일부가 그런 시도를 한다는 것. 아인슈타인의 통일장이론의 꿈을 이어 양자역학과 상대성이론을 통합하는 ‘궁극의 이론’의 후보로 천재 이론물리학자들이 혼신의 힘을 다하고 있는 끈이론 분야는 지난 한 세대 동안 이론물리학계를 이끌고 있고 이를 다룬 교양과학서적들도 스테디셀러로 사랑을 받고 있는 현실을 알고 있는 필자로서는 선뜻 이해가 가지 않는 주장이었다.
    지난해 ‘네이처’ 마지막호에는 이론물리학의 꽃이라고 여겨지는 끈이론이 오히려 물리학의 정신을 훼손하고 유사과학으로 변질될 조짐을 보이는 현실을 개탄한
    글이 실렸다. - 네이처 제공

    기고문을 쓴 사람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케이프타운대 조지 엘리스 명예교수와 프랑스 파리천체물리학연구소 조 실크 교수다. 이들은 최근 들어 몇몇 물리학자들의 주장이 우려할 수준이 됐기 때문에 이런 글을 쓰지 않을 수 없게 된 상황을 개탄했다. 즉 끈이론을 연구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과학이론이 충분히 우아하고 설명적이면 굳이 실험으로 증명하지 않아도 된다는 얘기가 공공연히 전개되고 있다는 것. 필자들은 이런 주장이 갈릴레오 이래 수백 년 동안 물리학을 지탱해온 대전제를 무너뜨리는 위험한 발상이라고 주장한다. 과학철학자 칼 포퍼의 요약에 따르면 이 대전제란 어떤 주장이 과학적 이론이 되려면 반증가능해야만 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신이 존재한다’는 질문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반증할 방법이 없기 때문에 과학적 이론이 아니라는 것. 반면 양자역학의 역사를 보면 양자론의 확률론적 해석을 반증할 수 있는 실험 아이디어가 나왔고 실험을 통해 반증 아이디어가 틀렸다는 게 확인되면서 과학적 이론으로 입지를 더욱 굳혀나갔다. 반면 그 유명한 끈이론은 사실 과학적 이론이라고 부를 수 없다는 게 필자들의 주장이다. 지금으로서는 입증도 반증도 할 어떤 실험방법론도 생각할 수 없다는 것. 끈이론은 수학적으로 깔끔하게 네 가지 기본힘을 통합할 수 있는 유일한 이론이지만 점이 아니라 아주 작은 끈의 형태인 입자들이 11차원에 존재한다는 전제부터가 현재로서는 검증할 방법이 없다는 것. 끈이론은 우리가 경험하는 물리세계인 4차원(3차원 공간과 시간)을 뺀 7차원이 돌돌 말려 숨어있다고 해석하는데 아직까지 누구도 여분의 차원을 관측하지 못했을뿐 아니라 관측할 방법도 없는 게 현실이다. 물론 끈이론에서도 적어도 원리상으로는 실험적으로 시험해볼 수 있는 내용들이 있다. 예를 들어 입자가속기로 초끈이론의 핵심인 초대칭입자를 찾는 실험이 진행 되고 있다. 지난 2008년 가동에 들어간 유럽입자물리연구소(CERN)의 거대강입자가속기(LHC)가 초대칭입자 사냥에는 실패했지만 힉스입자 검출에 성공하면서 초대칭입자를 검출할 수 있는 더 큰 규모의 가속기(둘레 100km에 이르는) 건설에 대한 논의가 활발하다. 그러나 규모가 커질수록 천문학적 비용이 들어가기 때문에 성사 여부도 불확실하고 설사 지어지더라도 여기서 초대칭입자가 검출되지 못하면 사실상 실험으로 입증할 방법이 없다. 그렇더라도 끈이론 학자들은 초대칭입자의 질량이 가속기의 충돌 에너지보다 크기 때문이라고 하면 되므로 큰 문제는 아니다. 이런 상황에서 물리학자이자 철학자인 리처드 다위드(Richard Dawid)는 한 발 더 나아가 끈이론처럼 아름다운 이론은 굳이 실험으로 증명할 필요가 없다는 주장을 하고 있다는 것. 즉 지난 30년 동안 더 나은 대안이 나오지 않은 상황에서 아직까지 살아남았기 때문에 이제 끈이론이 옳다고 봐도 된다고. 이에 대해 필자들은 엉뚱한 데 찬 공을 골로 만들려고 골대를 옮기는 꼴이라고 반박했다. 데이터가 뒷받침하지 않으면 아무리 아름다운 이론이라도 잘못된 길을 가고 있는 것일 수 있다고 반박한다. 프톨레마이오스의 지구중심설(천동설)이나 프레드 호일의 정상상태우주론 이 그런 예들이다.
    ㆍ우주 개수는 사실상 무한?
    한편 우주론자인 션 캐럴(Sean Carroll,생물학자 션 캐럴이 아니다)을 대표로 하는 몇몇 물리학자들이 주장하는 다중우주(multiverses)도 문제가 많은 개념이라고 한다. 즉 우리가 사는 우주는 엄청난 숫자의 우주 가운데 하나일 뿐으로 그 밖에는 전혀 다른 물리법칙을 따르는 우주가 무수히 존재한다는 주장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양자다중우주를 제안하는 물리학자들은 ‘슈뢰딩거의 고양이’가 실제 일어나는 현상이라고 주장한다. 방사성동위원소 붕괴 여부에 따라 독가스 방출 여부가 결정되고 그에 따라 고양이가 죽느냐 사느냐가 결정되는 ‘슈뢰딩거 고양이’는 양자역학의 확률론 아이러니를 상징한다. 그런데 우리가 일상에서 이런 상황에 접할 때마다 양자진공이 생성돼 각각의 결정에 따른 또 다른 우주가 전개된다는 것. 이렇게 생긴 우주가 거의 무한한 숫자로 존재하지만 양자역학적으로 서로 의사소통할 수 없기 때문에 그 실재를 테스트할 방법은 없다는 것. 필자들은 이런 수학적 말장난이 최첨단 과학으로 둔갑해 대중매체를 현혹시킨다고 우려하며 물리학자들은“무한은 수학적 완결성을 위해 필요한 개념이지만 물리 세계 어디에도 존재하지 않는다”는 수학자 다비트 힐베르트의 말을 유념해야 한다고 충고했다. 글 말미에 필자들은 학술지 편집자들에게 당부의 말을 남겼다. 즉 실험적으로 테스트할 방법이 없는 사변적인 연구결과들은 물리학이 아니라 수학의 범주로 취급해야한다는 것. 그리고 현재로서는 끈이론을 어떤 대통일이론이 있을지도 모른다는 약속어음 정도로 볼 수밖에 없다고 촌평했다.
    ㆍ마을에서 벌어지는 유일한 게임
    글에서 끈이론과 다중우주론에 대한 비판적 문헌으로 소개한 참고문헌을 보니 2006년 출간된 ‘Not Even Wrong’이라는 책이 눈에 띈다. 물리학을 공부하다 수학으로 전향한 피터 보이트라는 사람이 쓴 책으로 알고 보니 2008년 ‘초끈이론의 진실’이라는 제목으로 국내에도 번역됐다. 필자의 해석이 맞다면 원서 제목이 너무 모욕적이라(끈이론이 틀리다고 말할 가치조차 없다는 뜻이므로) 이런 책이 나왔는지도 몰랐다는 게 오히려 의아했다. 지난 주말 책을 읽어보니 충격적인 내용들로 가득했다. 그리고 지난 연말 ‘네이처’에 실린 글에서 비난한 일부 끈이론자들의 사고방식이 10여 전에도 번성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결국 지난 10년 사이 별로 변한 게 없다는 말이다. 끈이론을 바라보는 저자의 시각을 간단히 요약하면 이렇다. 물리학에서 수학적 아름다움의 승리를 대표하는 예가 (올해 100주년이 되는) 아인슈타인의 일반상대성이론과 1928년 발표된, 슈뢰딩거방정식과 특수상대성이론을 결합한 폴 디랙의 디랙방정식이다. 1919년 에딩턴이 일식관측실험으로 빛이 휘는 걸 확인했고 1932년 칼 앤더슨이 우주선(cosmic ray)에서 반물질인 양전자를 검출해 각각의 이론이 검증됐다. 그러나 아인슈인은 인생 후반기 30여년을 통일장이론 연구에 전념했지만 결국 별 소득을 거두지 못했다. 그런데 1980년대 중반부터 연구되기 시작한 끈이론도 같은 길을 걷고 있다는 게 저자의 시각이다. 즉 일반상대성이론이나 디랙방정식 같은 승리를 꿈꾸고 있지만 지난 20년 동안(책을 기준으로) 끈이론이 제시한 예측가운데 실험적으로 검증가능한 결과가 전혀 없다는 것. 이런 상황이 10년이 더 지난 지금도 마찬가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끈이론이 이론물리학계를 주도하는 현실에 대한 저자의 해석도 충격적이다). 한 마디로 ‘마을에서 벌어지는 유일한 게임(The only Game in Town)’이기 때문이라는 것. 즉 표준모형 이후 이론물리학 분야에서는 끈이론 외에는 마땅히 연구할 게 없다는 말이다. 그리고 끈이론에 입문하기 위해서는 다년 간 엄청난 공부를 해야 하기 때문에 일단 발을 담그면 그동안 투자한 게 아까워서라도 떠나기 어렵다고 한다. 문득 수년 전 KAIST 수학과의 한 교수가 당시 기자였던 필자에게 보낸 e메일이 생각났다. 끈이론의 허구성을 주장한 글이었는데 당시 필자는 ‘수학자분이 왜 이런 글을…’이라고 생각하며 모르는 체했다. 그때 ‘초끈이론의 진실’을 알고 있었다면 좋은 기획거리가 됐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Dongascience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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