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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포경쟁 이야기

浮萍草 2014. 12. 10. 09:25
    경쟁은 생명체의 숙명인가
    라마 ‘미생’이 하도 화제이기에 바둑을 좋아하는 필자는 도대체 어떤 내용인지 궁금해서 한 번 봤다. 
    참고로 미생(未生)은 바둑용어인데 아무리 생각해도 바둑규칙을 모르는 사람이“아 그런 말이구나!”하고 개념을 이해하게 만들 수 없을 것 같아 설명은 포기한다. 
    그런데 드라마 한 회분을 보고 나서는 이건 아니다 싶었다. 
    옛날 ‘TV손자병법’ 같은 코믹한 요소가 있는 직장 드라마라고 생각했는데 너무 절박한 분위기에 좀 질렸다고 할까. 
    치열한 생존경쟁이 벌어지고 있는 직장의 삭막함을 부각하기 위해 도입한 것 같은 화면의 푸른색조(촬영카메라 렌즈에 파란색 필터를 끼운 것 같다)도 계속 이어지니 무척 
    피로했다. 
    “아니야. 진짜 그래.”
     “연구소지만 나도 회사생활 했는데 본사라도 설마 그 정도겠냐?”
     “야, 솔직히 넌 너무 편하게 지냈잖아...”
    며칠 전 옛 직장상사분이 모친상을 당해 장례식장에 갔다가 입사동기를 만났다. 
    대기업 본사 경험도 있는 친구이기에 ‘미생’이 너무 과장된 거 아니냐는 얘길 했다가 한 소리 들었다. 
    연구소 근무가 본사보다 느슨한 건 맞지만 필자는 정도가 좀 심했다는 말이다. 
    좋은 상사 만나서 온실 속 화초처럼 보호받으며 서너시면 일을 끝내고 차 한 잔 마시며 책이나 논문을 읽다가“어, 여섯시네”하고 퇴근하는 게 일상이었으니 해야 할 일이 
    많아 야근이 잦았던 (당시 아파트 기숙사에 같이 지냈던) 이 친구로서는 그때 모습이 아직도 기억에 남았나 보다. 
    물론 필자도 은혜를 아는 동물인지라 퇴사하고 16년이 지났음에도 모친상 소식에 혹한을 뚫고 대전까지 내려간 것이다.
    드라마 ‘미생’의 모습이 과연 전형적인 대기업의 상황인지는 지금도 갸웃하지만 치열함의 차이는 있을지라도 사람 사는 곳에 경쟁이 없을 수는 없을 것이다. 
    물론 필자처럼 ‘참 좋은 시절’(필자가 퇴사하기 6개월 전인 1997년 말 IMF 사태가 터지면서 종쳤다)을 만나면 한동안 유유자적할 수도 있지만 평생 그런 운을 갖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따라서 당시 필자 같은 사람은 어느 날 갑자기 보호막이 걷히면(예를 들어 인사이동으로 후원자가 떠나면) 얼마 못 버티고 조직에서 도태될 가능성이 크다.   
    그렇다고 경쟁 없이 좋은 게 좋은 거라고 일은 능력대로 하되 결과물은 구성원 전체가 공유하는 사회가 더 바람직하냐 하면 꼭 그렇지도 않은 것 같다. 
    인간이라는 존재가 꿀벌처럼 개체성을 포기한 채 오로지 공동체의 선을 위해서 평생을 살 수 있게 만들어진 것 같지가 않다. 
    죽어라고 일하는데 옆 사람이‘난 능력이 안 되니까’라며 팽팽 놀면서 똑 같은 월급을 챙겨간다면 부당하다는 기분이 들 것이다. 
    필자와 꽤 친한 친구임에도 20년 가까이 된 일을 즉각 기억해내 핀잔을 주는 것처럼. 
    20여 년 전 구소련과 동구권 몰락을 봐도 그렇고 오늘날 북한이 꽤 넓은 땅을 가지고도 2500만 명이 먹을 식량을 생산하지 못해 쩔쩔매는 것도 경쟁이 없는 사회의 만성적인 
    의욕상실이 한 원인일 것이다. 
    (문맥상 순서를 바꿔) ‘불급유과(不及猶過)’ 즉 모자람은 지나침과 같이 안 좋다는 말은 경쟁에도 해당하지 않을까. 
    정상조직에서 기능이 떨어지는 비정상세포가 생길 경우(앞줄 맨 왼쪽) 주변 정상세포에서 세포자살을 유도하는 신호가 나온다.그 결과 세포자살이 일어나고(앞줄
    왼쪽에서 세 번째) 궁극적으로는 옆의 정상세포에 먹힌다(앞줄 왼쪽에서 다섯 번째). 이 과정에 선천면역계가 관여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사이언스 제공

    ㆍ능력 부족한 세포에게 자살하란 신호 보내
    학술지 ‘사이언스’ 12월 5일자에는 개체 사이의 경쟁이 아니라 한 생명체를 이루는 세포 사이에서도 약육강식의 경쟁이 벌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밝힌 논문이 실렸다. 즉 경쟁력이 없는 세포는 주위의 강한 세포들까지 가세해 매몰차게 도태시켜 버린다는 것. 회사로 치면 정리해고인 셈이다. 능력이 없으면 조직(개체)을 떠나라는 말이다. 물론 개체가 발생할 때 몸 구조가 완성되는 과정에서 세포자살(apoptosis)이 일어나는 건 잘 알려져 있지만 이는 개체 차원의 프로그램이지 세포사이의 경쟁은 아니다. 예를 들어 손의 발생과정을 보면 처음에는 오리발처럼 다섯 손가락 사이가 막으로 연결돼 있다가 세포자살로 막이 없어지면서 따로 노는 손가락이 완성된다. 애초에 다섯 손가락이 따로 떨어져 생기는 게 더 효율적인 것 같지만 그렇지도 않다. 비유하자면 손을 그릴 때 처음부터 손가락단위로 그리면 웬만한 실력자가 아니고서는 제대로 그리지 못한다. 오히려 처음에는 손 윤곽을 그리고 전체적으로 보면서 손가락 자리를 잡아가며 스케치해야 균형 잡힌 손이 나온다. 아무튼 이런 예외적인 상황을 빼면 우리 몸을 이루는 수십 조 개의 세포는 꿀벌처럼 공동체를 위해 서로 협동하는 존재들인 줄로만 알았다. 논문은 초파리의 날개 발생 과정에서 세포들 사이에 일어나는 세포경쟁(cell competition)의 메커니즘을 밝혔다는 내용이다. 유전적 변이로 활력이 떨어진 세포는 주위의 정상 세포로부터 어떤 신호를 받아 세포자살의 길로 들어서는데 이 과정에 선천면역계(innate immunity) 경로가 관여한다는 것. 연구자들은 시원찮은 세포에서 선천면역계 회로에 관여한 유전자를 고장냈다. 그 결과 이들 세포에서 세포자살 경로가 활성화되지 않아 발생과정에서 살아남았다. 선천면역계란 동물에 존재하는 원시적인 면역계로 병균이 침입했을 때 즉각적으로 대응하는 시스템이다. 대식세포가 병균을 잡아먹거나 감염된 세포가 자살해 병균의 확산을 막는다. 우리는 면역계 하면 항체를 떠올리지만 이 시스템이 작동하려면 감염 뒤 수주가 걸리는 적응면역계(adaptive immunity)다(물론 재감염시에는 즉각 작동한다). 결국 세포경쟁에서 선천면역계가 관여한다는 건 우리 몸이 루저 세포를 몸에 침입한 병균에 감염돼 회복불능이라고 판단한 세포처럼 취급한다는 말이다. 세포경쟁이란 현상은 1970년대 처음 발견됐다. 단백질 공장인 리보솜을 이루는 단백질 하나의 유전자가 고장났거나 세포분열을 촉진하는 유전자가 망가진 초파리는 성장이 더디지만 정상적으로 발생해 살아간다. 그런데 배아에서 이런 세포를 정상세포와 섞어 발생시켜 키메라 초파리를 만들 경우 대부분 정상세포로 이뤄진 개체가 나온다. 그 과정을 자세히 들여다봤더니 능력이 더 있는 정상세포가 주변에 있을 때 능력이 떨어지는 변이세포가 죽는다는 즉 세포경쟁이 일어난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울러 정상세포는 변이세포를 잡아먹고 더 왕성히 분열했다. 이런 살벌한 약육강식이 벌어졌음에도 놀랍게도 키메라 초파리의 형태는 완벽했다. 즉 보다 건강한 세포로 이뤄진 개체를 만들기 위한 솎아내기였던 셈이다. 다만 건강한 세포가 어떻게 주변의 시원찮은 세포의 존재를 감지해 이들을 죽음으로 몰아내는 신호를 내보내는 지는 아직 모르고 있다.
    ㆍ구성원 적체되면 조직의 암이 돼
    이에 앞서 학술지 ‘네이처’ 5월 22일자에는 세포경쟁의 또 다른 존재이유를 밝힌 논문이 실렸다. 즉 세포경쟁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을 경우 즉 도태돼야 할 세포들이 죽지 않으면 이들이 암세포로 바뀌어 결국 암이 생긴다는 것.하는 일도 없이 월급만 축내는 직원들을 방치했가는 이들이 암적 존재가 돼 결국 조직이 와해될 수도 있다는 경영의 비유가 실제 우리 몸에서 일어나고 있다는 말이다. 역시 면역계가 관여된 현상으로 포유류인 생쥐를 대상으로 한 연구결과이므로 사람에서도 이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높다. 적응면역계의 일꾼인 T세포와 B세포는 각각 흉선(thymus)과 골수(bone-marrow)에서 배출된다(T와 B는 생산공장 표시다). 그런데 사실 T세포는 골수에서 흉선으로 온 줄기세포(전구세포)가 분화해 만들어진 것 우리 몸의 입장에서 T세포는 소모품이므로 평생 만들어져 공급돼야 한다. 골수에서 흉선으로 싱싱한 줄기세포가 들어오면 아직 흉선에 남아있던 시들한 줄기세포와 경쟁해 죽게 만들고 자신이 분열하고 분화해 T세포가 된다. 흉선은 끊임없이 신입사원을 뽑으면서 동시에 기존 사원들을 정리해고시키는 회사인 셈이다. 그렇다면 흉선에 있는 오래 된 줄기세포들은 정말 더 이상 쓸모없는 존재들일까.
    면역세포인 T세포는 골수에서 공급된 줄기세포(전구세포)가 흉선에서 분열, 분화해 공급된다. 이때 골수에서 온 줄기세포는 흉선에 있던 줄기세포와 세포경쟁을 벌여
    그 자리를 차지한다(왼쪽).만일 골수에서 줄기세포가 오지 못하게 하면 흉선에 있던 줄기세포가 한 동안 역할을 하지만 결국에는 암세포로 바뀐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오른쪽). - 네이처 제공

    연구자들은 골수에서 흉선으로 줄기세포가 가지 못하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흉선에 있는 줄기세포들이 분열하면서 여전히 T세포를 공급했다. 신입사원을 안 뽑아도 회사는 굴러갈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런데 곧 놀라운 현상이 일어났다. 즉 흉선에 있는 줄기세포의 일부가 암세포로 바뀌면서 백혈병이 생긴 것. 증상을 보니 사람(주로 어린 아이)에서 발생하는 급성 T세포 림프구성백혈병과 매우 비슷했다. 이런 유형의 백혈병은 골수에서 세포경쟁이 제대로 일어나지 않은 결과임을 시사하는 발견이다. 줄기세포가 흉선에 오래 머물면 왜 암세포로 바뀌는지는 아직 잘 모른다. 능력이 모자란 것도 서러운데 이를 따뜻하게 감싸주지는 못할망정 돈 몇 푼 쥐어주고 내보내는 사회가 야속하기만 하다. 하지만 인간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에서는 강자만이 살아남을 뿐 일말의 동정심도 없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세포 차원에서도 마찬가지임을 최근 연구결과가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인간사회에서는 복지라는 개념이 있어 사회적 약자가 어느 정도 보호받는 것 아닐까. 세포경쟁 현상에서 흥미로운 사실은 능력이 부족한 세포를 뛰어난 세포와 붙여놓으면 세포자살의 길로 들어서지만 따로 떼어놓으면 비록 활력은 떨어질지라도 정상적으로 살아간다는 점이다. 조직에서 낙인이 찍혀 오늘내일하는 삶을 살며 스트레스를 팍팍 받는 사람들은 (경제 측면에서) 삶의 질은 좀 떨어지겠지만 과감하게 벗어나 인간의 존엄성을 지키며 살아 가는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남들이 어떻게 평가하든 난 소중하니까.
    Dongascience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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