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세상 바꾸는 체인지 메이커

<40>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

浮萍草 2014. 10. 5. 09:54
    차량 공유는 시작에 불과 … 모든 운송수단 공유 꿈
    우버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은 문제적 인간이다.칼라닉을 인터뷰한 매체들은 하나같이 그를 집요하고 공격적이며 자기중심적인 인물로 그리고 있다.어쩌면
    바로 그렇기에 우버처럼 논쟁적인 비즈니스를 밀어붙일 수 있는 것일 게다. [사진 위키피디아]

    즘 세계에서 가장 변화가 빠른 도시는 미국 샌프란시스코가 아닐까. 지난달 8~10일 그곳에서 열린 세계 최대 스타트업(초기 창업기업) 콘퍼런스 ‘테크크런치 디스럽트 SF(TechCrunch Disrupt San Francisco) 2014’에 다녀왔다. 지난 3월 방문 때만 해도 그 정도는 아니었는데 이번에 보니 우버(Uber)·리프트(Lyft)를 비롯한 차량 공유 서비스가 완전히 대중화돼 있었다. 업체 간 경쟁으로 인해 가격 또한 크게 내려가 우버의 여러 서비스 중 하나인 ‘우버X’를 이용하면 일반 택시 반값으로 시내 어디든 갈 수 있었다. 스마트폰에서 전용 앱을 열면 주변에 있는 우버 차들이 지도에 즉각 표시된다. 이어 목적지를 입력하면 예상 요금과 함께 그곳까지 타고 갈 우버 차의 운전자 이름·얼굴·차종과 이용자들이 평가한 별점까지 뜬다. 신청한 지 대개 5분 안에 차가 도착하는데 목적지를 설명할 필요도 팁을 얼마 줄지 고민할 필요도 없다. 차에서 내리면 미리 등록해 놓은 신용카드에서 요금이 빠져나간다. 말 한마디 하지 않고도 차를 이용할 수 있으니 외지인에겐 이보다 편리할 수 없다. 이런 우버의 인기와 위상은 콘퍼런스에서도 확연했다. 첫날, 첫 세션의 주인공부터가 이 회사 창업자 트래비스 칼라닉(travis kalanick·38)이었다. “택시업계와 자동차제조사 리프트 같은 경쟁자들까지 도대체 우버의 적은 몇 개냐?”는 대담자의 질문에 칼라닉은 특유의 거만한 듯 여유로운 태도로 답했다. “글쎄 말이다. 우버의 비즈니스 성격이 파괴적(disruptive)이기 때문이다. 어디를 가든 적이 있고 그들과 싸워야 한다. 어쨌거나 미국 대부분의 도시에서 이겼다.”
    ㆍ공유경제의 대명사로 급성장
    우버가 승승장구하고 있음은 각종 수치가 말해 준다. 2012년만 해도 우버가 진출한 도시는 세계적으로 12곳에 불과했다. 현재는 44개국, 170곳에 이른다. 기업가치는 180억 달러로 추정되며 매달 약 5만 명이 우버 운전자로 신규 등록한다. 하지만 이는 곧 우버의 ‘적들’ 또한 크게 늘었음을 뜻한다. 서울시만 해도 우버코리아가 여객자동차운수사업법을 위반했다며 경찰에 고발했다. 독일 베를린과 함부르크 법원은 우버 서비스 중 일반 운전자와 승객을 연결하는 ‘우버팝’ 및 ‘우퍼X’에 대해 영업 금지 판결을 내렸다. 미국 로스앤젤레스와 샌프란시스코의 검찰 또한 일종의 카풀 서비스인 ‘우버풀’에 대해 경고 서한을 보냈다. 이 정도면 열기가 한풀 꺾일 법도 한데, 칼라닉에 대한 실리콘밸리 여론은 여전히 뜨겁고 긍정적이다. 남들은 보지 못한 기회를 포착해 강력한 의지와 놀라운 실행력으로 기존 질서를 뒤엎고 새 시장을 창출하는 것.실리콘밸리가 추앙하는 기업가 정신 혹은 ‘창조적 파괴’의 가장 극적(劇的)이자 극단적인 사례라 할 만하기 때문이다. LA에서 태어난 그는 어릴 때부터 세일즈맨 기질이 다분했다고 한다. 18세 때 첫 사업을 시작했는데, 우리나라로 치면 일종의 ‘수능 대비 족집게 과외’였다. 이후 캘리포니아주립대 LA캠퍼스(UCLA)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다. 몇몇 친구가 파일공유 서비스 회사 ‘스카워’를 창업하자 여기에 합류한다. 1998년에는 학교까지 그만둔다. 스카워는 한때 1500만 달러 이상의 투자를 유치할 만큼 승승장구했다. 그러나 강력한 경쟁자인 ‘냅스터’가 나타나고, 몇몇 콘텐트 기업이 천문학적 규모의 저작권 소송을 제기하면서 결국 파산하고 만다. 칼라닉은 2011년‘실패’를 주제로 한 콘퍼런스 ‘페일콘(Failcon)’에서 당시 자신의 상태를 이렇게 설명했다. “하루 14시간씩 침대에 누워 있곤 했다. 그리고 게임을 했다. 이길 때까지, 허세를 부리는 심정으로.” 침체기는 오래가지 않았다. 2000년 그는 스카워 창업자 중 한 명인 마이클 토드와 새 사업을 시작한다. ‘레드 스우시’라는 콘텐트 전송 최적화 회사였다. 사업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창업자들 간에도 갈등이 싹텄다. 둘은 사사건건 서로를 탓하며 으르렁거렸다. 결국 토드가 회사를 떠나고 말았다. 직원 대부분이 그를 따라나섰다. 칼라닉은 그만큼 인기가 없었다. 미국 경제전문지 ‘비즈니스 인사이더’에 따르면 그는 잰 체하며 매사를 자기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에고(ego) 그 자체’이자 지칠 줄 모르는 수완가라고 한다.
    ㆍ매사를 유리한 쪽으로 해석하는 성격
    녹록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칼라닉은 포기하지 않았다. 3년간 월급 없는 생활을 견뎠다. 비용 절감을 위해 2006년 회사를 태국으로 옮기는 모험까지 감행한 끝에 2007년 드디어 기회를 잡는다. 네트워크 컴퓨팅 기업인 아카마이로부터 인수 제안을 받은 것이다. 회사가 2300만 달러에 팔리면서 칼라닉은 백만장자가 됐다. 그의 캐릭터에 진저리를 치며 떠났던 옛 동료들까지 수혜를 입었다. 칼라닉의 집요함이 빛을 발한 순간이었다. 이후 투자자로서 실리콘밸리의 젊은 야심가들과 어울리던 그는 새 사업 기회를 발견한다. ‘실시간 모바일 운수 서비스’, 바로 우버였다. 사실 우버의 아이디어를 처음 낸 사람은‘스텀블어폰’공동창업자 개럿 캠프였다. 캠프 역시 2007년 회사를 이베이에 매각함으로써 거부가 됐다. 2009년 캠프가 회사를 꾸린 직후 칼라닉이 가세했다. 처음 둘은 라이언 그레이브스라는 젊은 개발자를 최고경영자(CEO)로 내세웠다. 하지만 2010년 6월 서비스가 출시되고 사용자들로부터 열광적인 반응을 얻게 되자 칼라닉은 돌연 그레이브스에게 CEO 자리를 양보할 것을 요구한다. 사실 우버는‘창업 초짜’인 그레이브스가 끌고 가기엔 지나치게 무거운 짐이었다. 그레이브스는 이 요청을 두말없이 받아들인다. 덕분에 그는 우버의 총괄매니저 자리는 물론 지분까지 지킬 수 있었다. 칼라닉의 ‘에고’에 맞서지 않은 덕에 억만장자의 대열에 끼게 된 것이다. 많은 이가 우버를 단순한 택시 대체 혹은 차량 공유 서비스로 생각한다. 칼라닉의 야망은 그보다 훨씬 크다. 영역을 막론하고 사람뿐 아니라 무엇이든 실어 나르는 ‘운송 플랫폼’을 지향한다. 실제 우버는 이삿짐 운반부터 생필품 택배, 도시락 배달 서비스로까지 그 영역을 확장하고 있다. 요즘은 이 회사 운송 시스템을 활용한 제3의 스타트업(Third Party) 창업도 활발하다. 첨단 정보기술(IT)을 활용해 전통산업의 혁신을 꾀하는 온·오프라인 연결점 비즈니스의 대표 기업인 셈이다. 실제 연결점 비즈니스 기업들은 뛰어난 데이터 분석력을 앞세워 운수업뿐 아니라 금융·에너지·교육·농업 등 주류 산업 영역에 큰 변화를 일으키고 있다. 요컨대 거스를 수 없는 대세인 셈이다. 기존 업계의 만만찮은 반발과 법적 이슈들에도 불구하고 결국은 우버 혹은 우버와 유사한 방식의 비즈니스가 시장을 바꾸게 되리라고 보는 이유다.
    Sunday Joins Vol 395 ☜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naree@dcam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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