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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 성호 이익 (上)

浮萍草 2014. 7. 9. 15:21
    허약 체질 성호 이익, 이걸로 83세까지 장수
    ▲ 성호 이익
    선 후기의 대표적인 실학자로서 <성호사설(星湖僿說)>을 지은 성호 이익(星湖 李瀷·1681-1763) 선생을 아십니까? 성리학에서 출발하였으나 천문,지리,율학,산학,의학 분야까지 능통한 그야말로 박학다식한 분이었습니다. 부친이 평안북도 운산에 귀양을 가서 당시로서는 상당히 늦은 나이인 54세에 낳은 막내아들이었습니다. 늙은 부친에게서 태어난 데다 부친이 이듬해에 유배지에서 세상을 떠난 탓인지 어려서부터 몸이 허약해서 10세까지 글을 배울 수 없을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도 무려 83세까지 장수했던 비결이 뭘까요?
    ㆍ허약하게 태어났지만 장수할 수 있었던 주된 비결은?
    남인에 속했던 형이 서인에게 몰려 장살되자 과거를 포기하고 낙향하였기에 벼슬살이에서 오는 스트레스를 받지 않았던 것도 장수 요인 중의 하나인 것 같습니다. 그리고 의학에도 능통하였기에 체질에 맞는 음식을 먹으며 건강관리를 잘 했던 것도 비결이 됩니다. 그러나 가장 큰 비결은 절식(節食), 소식(小食)한 때문으로 보입니다. 살림이 어려워서 농사짓기에 전력을 기울여 그것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검소한 생활을 하면서 잡곡밥에 된장, 고추장, 김치, 나물 등으로 이루어진 소박한 식단으로 적게 먹었던 것이죠.
    ㆍ성호 선생에게 절식이 필요했던 이유는?
    <성호사설>에 이런 구절이 나옵니다. “나는 천성이 책을 좋아해 날마다 끙끙대며 읽느라고 베 한 올,쌀 한 톨 내 힘으로 장만하지 않는다. 천지간의 좀벌레 한 마리란 말이 어찌 나같은 존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니랴? 요행이 선대가 남기신 전답이 있어서 몇 섬 몇 말을 거둔다. 게서 나오는 식량을 절약하여 많이 먹지 않는 것으로 첫째가는 경륜이자 양책을 삼는다.
    무릇 한 그릇에서 한 홉의 쌀을 덜어낸다. 하루에 두 그릇 먹으면 두 홉이고 한 집이 열 식구라면 두 되가 될 것이다. 일만 가구가 사는 군이라면 이천 말이나 되는 많은 식량이 쌓인다.” 이익 선생이 이런 말을 한데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양에서는 가장 많이 먹는 나라였기 때문입니다.
    ▲ 왼쪽부터 영조, 우암 송시열, 퇴계 이황.

    ▲ 성호사설
    ㆍ조선 사람들의 대식(大食) 정도는?
    성호사설에 “우리나라 사람들이 많이 먹으려고 드는 습성은 천하에서 제일간다. 근래에 유구(琉球·오키나와)에 표류해 간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들이 ‘너희 나라 사람은 항상 큰 사발에다 쇠숟가락으로 밥을 떠서 마구 퍼먹어대는데 그렇게 먹고서야 어찌 가난하지 않을 수 있겠는가’라며 비웃 고 한다. 예전에 우리나라에 표류해 온 자가 있어 우리 풍속을 잘 알고 하는 말이다. --- 어려서 배불리 먹는 습관이 들면 위장이 차츰 커져서 채워지지 않으면 굶주림을 느낀다. 차츰차츰 습관이 들어 차츰차츰 굶주림을 느끼면 굶어죽는 사람도 생길 것이다. 습관이 들어 위장이 커지는 사람이 있다면 습관이 들어 위장이 작아지는 사람도 반드시 있을 것이다. -- 비록 늘 굶을 수는 없다 하더라도 너무 과하게 먹는 음식을 덜어내는 것이야 불가능하겠는가?” 얼마나 많이 먹었으면 이런 말을 했겠는지 짐작이 갑니다. 그런데 당시 밥을 많이 먹은 것은 반찬을 적게 먹었던 탓이 있기도 했습니다.
    ㆍ일본, 중국과 비교되는 조선 사람들의 식사량
    임진왜란 때 왜군은 바다 건너 원정을 나온 터라 군량미 보급이 부족했지만 조선군에 비해 훨씬 적게 먹었기에 오래 버틸 수 있었습니다. 한 끼 식사에 조선군은 쌀 7홉(당시 한 홉은 60cc 정도)이었는데 일본군은 고작 2홉밖에 되지 않았다는 것이죠. 실제로 조선은 동북아 3국 중에서 가장 밥을 많이 먹은 나라였기에 대식국(大食國)으로 불리었습니다. 다른 나라에서 하루 먹을 양식을 한 끼에 다 먹었다는 것이죠. 일본에 다녀온 김세렴이란 사람이 보고하기를“왜인들은 한 끼에 쌀밥 두어 줌밖에 먹지 않더이다”고 했고, 청나라에 다녀온 실학자 홍대용은 “그들의 밥그릇이 꼭 찻잔만 하더이다”고 했습니다.
    ㆍ소식해서 장수한 옛사람
    조선의 임금 중에서 가장 장수한 영조대왕(83세)이 소식가였죠. 영조는 가뭄이 들면 하루 다섯 번 먹던 수라를 세 번으로 줄이고 반찬 수도 반으로 줄였으며 심지어 간장만으로 수라를 받기도 했습니다. 조정 대신들 중에도 청빈하고 검소하게 살았던 분들 중에 장수한 분들이 많습니다. 청백리에 선정된 분들 중에 상당수가 장수했는데 황희(90세) 맹사성(79세) 이원익(88세) 김상헌(83세) 등입니다. 그리고 우암 송시열,퇴계 이황,다산 정약용 같은 분들도 소식했고 장수했던 분들이죠.
    Premium Chosun         정지천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kyjjc19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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