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퍼스트 펭귄

20 서울 낙원동 실버영화관 김은주 대표

浮萍草 2014. 6. 30. 09:51
    2000원에 행복을 팔다 … 노년들의 시네마 천국
    자막 키우고 음식물 반입도 허용 좌석 점유율 85%로 국내 최고 고비 때마다 곳곳서 도움의 손길 3000만원 든 봉투 내민 단골도
    ▲ 서울 낙원상가 4층에 있는 실버영화관에선 55세 이상의
    실버 세대라면 누구나 2000원에 명작 한 편을 볼 수 있다.
    상영작 포스터 앞에 선 김은주 실버영화관 대표.
    사진 SK케미칼
    침상을 물리자마자 화장대 앞에 앉았다. 자두색 립스틱으로 포인트를 주고 연노란 상의에 하얀 긴치마를 받쳐입었다. 마무리는 꽃술이 달린 넓은 챙모자. 신도림역에서 지하철을 타고 종로3가역에 내렸다. 바지런히 걸음을 옮겨 도착한 곳은 낙원상가 4층 실버영화관. 매표소 앞에서 한참 줄을 서 표를 끊었다. 안경자(79·가명) 할머니였다. “나는 실버영화관이 좋아. 대학 다닐 때 봤던 영화를 다시 볼 수 있거든.” 영화상영 프로그램 안내를 들춰보며 말을 이었다. “‘황태자의 첫사랑’이네 남자 주인공 노래도 기억해. 대학 친구 첫사랑이 꼭 여기 남자 주인공같이 생겼었어. 교생실습도 같이 하던 그 친구는 지금 뭐 하려나. 이 영화 할 때 컨디션이 좋아야 나와서 볼 수 있을 텐데….” 이기철(81) 할아버지는 일주일에 한 번 실버영화관 오는 날엔 멋쟁이가 된다. 지난 27일도 선글라스에 화려한 무늬 셔츠 챙이 빳빳한 중절모로 스타일을 냈다. 매표소에 들러 2000원을 내고 표를 끊었다. 이날은 잉그리드 버그먼과 율 브리너가 출연한 ‘아나스타샤’를 볼 참이다. 그는 “집이 성남이라 좀 멀긴 하지만 이렇게 밖에 나올 때마다 옛 생각도 하고 콧바람도 쐬고 젊어지는 것 같다”며 종종걸음으로 극장으로 향했다. 백발의 어르신들이 각각의 인생 이야기를 안고 찾아오는 이곳은 우리나라 좌석 점유율 1위 ‘실버영화관’ 이다. 한 해 평균 좌석점유율 85%. 국내 대형 영화관의 점유율이 통상 25% 정도인 걸 감안하면 ‘기록급’ 성적이다. 상영작은 비비언 리가 출연했던 ‘안나카레니나’, 오드리 헵번과 게리 쿠퍼가 호흡을 맞췄던 ‘하오의 연정’ 같은 옛 영화. 할리우드의 블록버스터가 아닌 옛 작품을 틀어주고도 인기몰이를 하는 낙원동 300석 규모의 작은 실버 영화관의 성공 비결을 김은주(39) 대표를 통해 들어봤다. 김 대표는 “어르신법(法)을 따랐을 뿐”이라며 실버영화관의 옛이야기부터 꺼냈다. 처음부터 어른신들 전용 극장을 해보려던 건 아니었다.
    우연찮은 계기로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영화판에 뛰어들었다. 아버지의 퇴직금을 과감히 투자해 2004년 충무로 스카라극장 경영을 맡은 것이 시작이었다. 하지만 연이 짧았다. 정부가 스카라극장을 근대문화재로 등록하려 하자 ‘재산가치’가 줄어들 것을 염려한 건물주가 벽을 허물었다. 그렇게 사업을 접고 몇 년 뒤. 제안이 들어왔다. 낙원동의 작은 ‘허리우드 극장’을 해볼 생각이 있느냐는 거였다. 월세만 1500만원. 자신이 없었다. 하지만 스카라극장 시절 함께 일했던 70, 80대 어르신 직원들과 함께 일할 수만 있다면 좋겠단 생각에 2009년 1월 ‘사회적 기업’으로 덥석 시작을 했다. 그가 생각한 타깃 고객은 ‘어르신’들이었다. 마땅히 갈 곳이 없는 노년층을 위한 영화관을 만들면 의미 있는 일이 될 것 같았다.
    ▲ 매일 오전 9시20분쯤이면 오전 10시30분에 시작하는 1회 영화표를 사려는 노년층 관객들로 매표소 앞엔 긴 줄이 생긴다(아래 사진). 사진 SK케미칼

    하지만 돈이 문제였다. 무작정 114로 전화를 걸었다. 대기업의 사회적 기업 담당자와 통화가 연결되는 데만 며칠이 걸렸다. 겨우 담당자 이름을 알아낸 뒤 5곳의 기업에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일주일 뒤. SK케미칼에서 전화가 걸려왔다. “찾아가도 되겠느냐”는 것이었다. 관객이라곤 하루 20여 명이 고작인데 어떻게 보일까 걱정이 앞섰다. 다음 날 찾아온 SK케미칼 직원은 극장을 둘러보고 아무 말 없이 돌아갔다. 안 되는구나 싶어 낙담을 하던 찰나, 전화가 걸려왔다. “돕고 싶다”는 것이었다. 제안은 파격적이었다. 매달 1000만원을 지원해주겠다는 것이었다. 김 대표는 그 돈으로 영화 상영을 위한 저작권을 구입했다. 하지만 손님은 늘지 않았다. 매달 적자가 2000만원씩 났다. 집을 담보로 대출을 받고 차를 팔았지만 포기할 순 없었다. “그동안 해오던 방식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에 눈높이를 어르신들께 맞추기 시작했다. 영화 상영 전엔 직접 나가 인사를 하고 ‘실버영화관’을 소개했다. 컴컴한 극장 통로엔 어르신들이 언제든 붙잡고 일어설 수 있게 봉을 설치했다. 자막도 새롭게 만들었다. 옛 영화들은 음향이 고르지 않았던 터라 “잘 안 들린다”는 지적들이 있었다. 안 되겠다 싶어 대본을 구해 밤새워 자막을 만들었다. 자막 위치도 일반 높이보다 조금 높게 올리고, 맨 뒷자리에서도 잘 보일 수 있게 글씨도 키웠다. 밤새워 자막을 만들어 처음으로 틀던 날 관객들이 영화를 보며 눈물을 훔치는 게 보였다. “이제 됐다” 싶어 흥이 났다. 영사기 투자도 아끼지 않았다. 최신 기계로 바꾸고 옛 작품이더라도 최신 고화질(HD) 버전으로 구입했다. 주머니가 가벼운 어르신들을 감안해 극장에 음식도 들여올 수 있게 했다. 입소문이 나자 관객이 점점 늘기 시작했다. 하루 3번 상영하던 걸 4번으로 늘려나갔다. 이듬해인 2010년엔 처음으로 좌석이 매진되기 시작했다. 2011년에 15만 명, 2012년 18만 명으로 관객이 늘어나더니 지난해엔 23만 명이란 기록을 세웠다. 관객은 늘었지만 입장권이 2000원이라 수지타산은 늘 맞지 않았다. 월세가 밀려 갔다. 한 달에 8편 남짓한 영화를 2~3일씩 돌아가며 상영하는 식으로 운영하다 보니 영화 저작권을 끊임없이 구입해야 영화관이 돌아갔다. 저작권료는 3000만원씩 하는데 수중에 돈이 없었다. 지인에게 돈을 빌리러 가기로 한 날. 영화관 손님인 박상기(67)씨가 그를 찾았다. “밥을 먹자”는 것이었다. 박씨는 식당에서 3000만원이 든 봉투를 건넸다. 영화관 운영이 어렵다는 사정을 전해들은 박씨가“실버영화관을 문닫게 할 수는 없지 않으냐”며 돈을 융통해 준 것이었다. 김 대표는“차용증도 받지 않고 돈을 빌려주는 손님 때문에 펑펑 울었다”면서“열심히 일해 3개월 뒤에 그 돈을 갚을 수 있었다”고 말했다. 실버영화관이 자리를 잡아가면서 그에겐 ‘성공한 국내 첫 문화예술 사회적 기업 1호’라는 수식어가 따라붙기 시작했다. 그는 자신의 성공비결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라고 했다. “‘어떻게 하는 게 좋을까?’라고 고민하는 사이 어르신들이 누릴 수 있는 시간은 그만큼 줄어들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요즘은 어르신들을 위한 ‘미용실’을 구상 중이다. 영화관을 유일한 나들이 삼아 ‘치장’하고 나오는 어르신들을 가까이서 지켜보다 떠오른 아이디어다. 미용실을 하다 은퇴한 분들을 고용하고 머리를 매만지는 법 화장하는 법을 알려드릴 수 있는 곳을 만드는 것이 꿈이라고 했다. 그는“세상이 잘되도록 하는 일은 묻지마 기부가 아니라 도움이 필요한 분들의 눈높이를 맞춰주는 일”이라며“진정성을 갖고 한다면 사회적 기업도 성공할 수 있다”고 말했다.
    Joongang Joins ☜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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