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자연사 이야기

<11> 공룡의 탄생과 자격

浮萍草 2014. 6. 22. 09:08
    ‘龍’자 돌림 익룡·어룡, 몸구조 달라 공룡 대우 못 받아
    ▲ 공룡으로 흔히 오인되는 선사시대 대형 동물들.이들은 모두 공룡이 아니다.공룡의 조건을 갖추지 못했기 때문이다.공룡은 ①중생대에 살았던 ②육상 ③파충류
    가운데 ④엉덩이·뒷다리를 혁신해 저산소 환경에 적응한 동물을 일컫는다.
    는 자연사박물관에서 일한다. 특별한 일이 없는 한 거의 매일 전시장에 나가 한두 가족에게 전시 해설을 한다. 이 일을 2년 넘게 하면서 재밌는 사실을 하나 발견했다. 거의 모든 가족이“공룡은 왜 멸종했어요?”라는 질문을 한다는 것이다. 질문을 하는 사람들은 이미 답을 알고 있다. 6500만 년 전 뜬금없이 거대한 운석이 지구에 충돌했고 그 여파로 공룡이 사라졌다는 사실을 모르는 사람이 요즘 어디 있겠는가? 내가 놀라는 일은 아무도“공룡은 왜(어떻게) 생겨났어요?”라고 묻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말 궁금한 일 아닌가! 멸종. 무서운 말이다. 하지만 생명의 역사에서 멸종은 특별한 사건이 아니라 일상에 불과하다. 보통 100만 년마다 10~20%의 종(種)이 사라진다. 매년 0.00001~0.00002%의 종이 멸종하는 셈이다. 이것을 배경멸종이라 한다. 하지만 고생대 페름기 말, 불과 100만 년 사이엔 지구상에 살던 생물의 95%가 멸종했다. 지구 역사상 전무후무한 대멸종이 일어난 것이다. 고생대에 이어지는 중생대는 트라이아스기(期)→쥐라기→백악기로 구분된다. 대멸종 이후 시작되는 트라이아스기(2억5100만~2억 년 전)의 지구 표면은 생명이 비워진 무주공산(無主空山)의 세계였다. 비어 있는 생태적 지위가 있다면 반드시 누군가가 차지하고 만다. 이는 물이 스펀지의 틈새를 채우는 것처럼 당연한 일이다. 대멸종 후 누군가는 그 자리를 점해야 했다. 그 자리를 공룡이 점유한 것이다. 그런데 왜 공룡이었을까?
    ㆍ공룡 출현 무렵엔 산소 농도 희박
    공룡들이 등장하기 전 트라이아스기의 풍경을 한마디로 표현하면 ‘헐떡거림’이었다. 코뿔소 크기의 디키노돈트는 거의 꼼짝도 하지 않고 우거진 초목의 잎을 뜯어 먹고 산다. 그런데도 마치 격렬한 사냥을 마친 육식동물마냥 숨을 헐떡거린다. 아르마딜로를 닮은 아이토사우루스 역시 거의 움직이지 않는 동물이다. 조금이라도 움직이면 힘들어 하고 금세 숨이 차오른다. 이들이 헐떡거리는 데는 이유가 있다. 트라이아스기의 대기 중 산소 농도는 오늘날의 21%보다 훨씬 낮은 10~15% 수준이었다. 오늘날 3000m 이상 고지대의 산소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된다. 이제 진화의 가장 강력한 선택 압력은 낮은 농도의 대기 산소라는 것이 분명해졌다. 산소가 별로 없는 세계에선 경쟁하고 먹고 새끼를 기르기 위해 충분한 산소를 확보하는 일이 무엇보다 중요했다. 대멸종은 생물 진화의 결정적인 기회였다. 무주공산에 살아남은 동물들에게 새로운 몸 설계를 창조할 기회가 생긴 것이다.
    ▲ 고생대 페름기의 파충류 캅토리누스(위).몸통 옆에서
    나온 다리는 파충류의 전형적 특징이다.다리구조 때문에
    걸을 때 S자 형태로 출렁이는 몸통은 허파를 압박해
    호흡을 방해한다.
    도마뱀은 다리가 몸의 옆에서 뻗어 나왔다. 그래서 넙다리(다리에서 무릎 관절 위 부분) 뼈가 거의 수평이고 몸을 땅에 바짝 낮춘 자세를 취한다. 이런 구조는 운동에 불리하다. 도마뱀은 물결치는 S자 모양으로 몸과 꼬리를 양 옆으로 흔들면서 앞으로 나아간다. 이때 네 발은 몸의 정중앙선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있다. 도마뱀은 뛸 때 몸이 양 옆으로 물결치면서 흔들리는 충격이 허파와 흉곽에 그대로 전해져 호흡을 방해한다. 도마뱀과 도롱뇽은 걷는 동안엔 숨을 쉴 수 없다. 숨을 더 쉽게 쉬게 하는 해답은 넙다리 뼈를 수직 방향에 가깝게 세워서 다리를 몸 아래에 두는 것이다. 그러면 몸이 땅에서 높이 들어 올려지고, 걷는 동안에 몸이 양 옆으로 출렁이면서 허파를 압박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네 발 자세를 버리고 두 발로 달리면 상체에서 일어나는 호흡과 하체에서 일어나는 이동은 완전히 분리된다. 그래서 두 발 동물은 빠른 속도로 달리면서도 숨을 쉴 수 있다. 약간의 이점이라도 있으면 생존율은 높아지는 법이다. 저(低)산소 상태에서 효율적으로 호흡하는 동물은 세계를 지배할 수 있었다. 그 주인공이 바로 공룡이다. 공룡은 몸에서 곧바로 내려온 두 개의 다리로 걸었다. 최초의 공룡 가운데 하나인 헤레라사우루스는 몸집이 작았고 완전히 두 발로 걸었다. 마주 볼 수 있는 엄지가 있어서 손으로 물건을 쥘 수 있었다. 이들이 도구를 사용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손은 먹잇감을 잡거나 식물을 채집하는 데 유리했다. 두 손으로 먹이를 잡아 들고 뛸 수도 있었다. 초창기 공룡들은 뒷다리로만 걸어 다닌 두 발 보행자였다. 두 발 보행은 공룡 초기 진화의 견인차였다. 육식 공룡의 앞다리와 앞발은 쥐고 할퀴기 좋도록 변형됐다. 나중에 이 앞다리를 날개로 변형시키면 새가 돼 날아오를 수 있다. 나중엔 브라키오사우루스나 스테고사우루스처럼 네 발로 걷는 초식공룡도 등장하지만 이들 역시 두 발로 걷던 조상의 후손이다. 초기의 두 발 공룡들은 다시 두 집단으로 나뉘어 진화했다. 트라이아스기 공룡 가운데 한 종(種)이 엉덩이뼈를 개조해 앞쪽을 향해 있던 치골을 뒤로 돌렸다. 치골이 앞으로 향해 있던 종류를 용반류, 치골이 뒤로 돌아간 종류를 조반류라 한다.
    성공적인 몸 설계가 새로 등장하면 대개 이 설계를 이용하는 새로운 종이 단기간에 폭발적으로 나타난다. 하지만 공룡은 그렇지 않았다. 매우 더디게 늘어났다. 왜냐하면 대기 중 산소 농도가 여전히 낮았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낮을 때는 산소 농도가 높을 때보다 종의 다양성이 떨어진다. 그래서 트라이아스기에 공룡이 처음 등장한 이후에도 오랫동안 다양성이 높아지지 않았다. 쥐라기 말에 가서야 공룡의 수가 많아지기 시작했다. 이 추세는 백악기 끝까지 계속됐다. 쥐라기와 백악기에 두드러진 공룡 다양성의 확대 역시 산소 수준의 증가 덕분으로 해석할 수 있다. 쥐라기부터는 공룡의 덩치가 커지기 시작했다.
    ㆍ초기 공룡엔 새끼 낳은 간접 증거도
    트라이아스기의 공룡 알은 발견된 것이 없다. 현재 남아 있는 것은 대부분 백악기의 것이다. 이는 백악기의 공룡 알이 새알처럼 단단한 탄산칼슘 석회질로 돼 있는 것과 달리 쥐라기와 트라이아스기의 공룡 알은 현생 파충류의 알처럼 가죽질이었을 가능성을 시사한다. 심지어 일부 초기 공룡은 새끼를 낳았다는 간접 증거도 있다. 백악기의 공룡 알은 새알과 마찬가지로 석회질이지만 표면은 다르다. 매끄러운 새알과 달리 공룡 알에선 대개 세로의 능선이나 마디가 보인다. 그 덕분에 흙으로 덮어도 알과 알 사이에 공간이 생겨 공기가 흐를 수 있었다. 백악기의 공룡 알이 많이 발견되는 것은 어미가 알을 낳자마자 온도를 높이기 위해 흙으로 덮어서 화석화될 가능성이 높았기 때문인 것으로 해석된다. 석회질 알은 장점이 많다. 포식자가 깨뜨리기 어려울 정도로 단단하다. 알 껍데기에서 녹아 들어가는 탄산칼슘은 배아의 뼈가 성장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렇다면 트라이아스기와 쥐라기 공룡들은 왜 석회질의 알을 낳지 않았을까? 혁신이란 새롭고 튼튼한 것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환경에 가장 잘 적응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낮을 때는 거북과 대부분의 도마뱀처럼 양피지질(羊皮紙質)의 알을 낳는 것이 유리했다. 석회질 알은 어미로부터 빠져나올 때까지는 알 속으로 산소가 들어가지 않기 때문에 어미가 오랫동안 지니고 있을 수 없다. 하지만 양피지질의 알은 산소가 쉽게 투과되기 때문에 오랜 기간 알을 산도(産道)에 보관할 수 있다. 따라서 산소 획득이 어려운 캡슐 안에 싸여 있는 시간을 줄일 수 있게 된다. 높은 곳에 사는 현생 도마뱀은 종종 태생(胎生 새끼가 독립해 살 수 있게 될 때까지 수정란이 모체 안에서 자라는 것)한다. 온도가 너무 낮아서 배아(胚芽)의 발달이 늦어지는 환경에 적응한 것이다. 이를 보면 트라이아스기엔 아예 태생을 한 공룡도 있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공룡들은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높아지는 백악기까지 석회질 알이란 혁신을 미룬 것이다. 이때 성급하게 석회질 알로 전환했다면 공룡은 일찌감치 지구에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ㆍ엉덩이·뒷다리 혁신이 공룡의 기본
    트라이아스기가 시작하기 전까지 이미 세 차례의 대멸종과 일곱 차례의 중간 멸종이 일어났다. 멸종의 시기엔 공통점이 있다. 대체로 온도가 높았거나 대기 중 산소 농도가 낮았다. 이유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지구의 역사에서 이산화탄소와 산소의 농도는 서로 반비례했다. 대기 중 산소 수준이 높으면 이산화탄소 수준이 낮았고 산소 수준이 낮으면 이산화탄소 수준이 대체로 높았다. 페름기 말 대멸종은 높은 온도와 낮은 산소 농도가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동시에 일어난 결과였다. 뜨거운 저산소 세계! 동물들에겐 이런 낭패가 없었다. 뜨거운 세상에선 대사 반응이 빨라진다. 빠른 대사 반응을 유지하기 위해선 많은 산소가 필요한데 대기 중엔 산소가 오히려 적었다. 멸종을 겨우 면하고 트라이아스기에 진입한 일부 동물은 우선적으로 뜨거움을 피하기로 했다. 바다로 돌아간 것이다. 바다가 아무리 더워졌다고 해도 육지보다는 시원했기 때문이다.
    엄청난 종류의 중생대 육상동물은 발을 물갈퀴나 지느러미로 바꾸고 바다로 돌아갔고 몸집을 키웠다. 하지만 크고 무섭게 생겼다고 모두 공룡인 것은 아니다. 공룡으로 분류되려면 몇 가지 자격조건을 갖춰야 한다. 첫째, 중생대에 살았어야 한다. 등에 돛을 달고 고생대를 누볐던 디메트로돈이나 신생대에 살았던 매머드는 공룡이 아니다. 이들은 공룡보다 오히려 인류에 더 가까운 친척이다. 둘째, 육상에 살았어야 한다. 중생대에 하늘을 날던 익룡은 새도 아니고 공룡도 아니다. 마찬가지로 바다에 살았던 수장룡·어룡·모사사우루스는 물고기도 아니고 공룡도 아니다. 셋째, 특수화된 엉덩이와 뒷다리를 가진 파충류여야 한다. 악어와 도마뱀은 중생대에 육상에 살았던 파충류지만 몸 아래로 곧게 난 다리가 없기 때문에 공룡이 아니다. 요약하자면 엉덩이와 뒷다리를 혁신해 고온·저산소라는 최악의 상황에 적응하는 데 성공한 중생대 육상 파충류만이 공룡인 것이다.
    Sunday Joins Vol 380 ☜        이정모 서대문자연사박물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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