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타/백제.신라

한반도에 있다는 동예·옥저는 황하 이북에 있었다 (7부)

浮萍草 2014. 5. 31. 06:00
    신라가 차지했던 옥저, 불내, 한, 예는 산서성 동남부 황하변 
    ▲ 길림성 집안에 있는 환도산성 안내 비석 ©편집부
    <북사>와<수서>등 중국의 여러 사서에 “신라는 고구리의 동남쪽에 있으며,한나라 낙랑 땅에 있었다. 옥저(沃沮)·불내(不耐)·한(韓)·예(濊)의 땅을 차지하였으며 백제에 부용(附庸)하였다.”라는 기록이 있고, <후한서 권85 동이열전 제75>에 “예는 북쪽으로 고구리와 옥저에 접하고, 남쪽은 진한과 접하고 동쪽으로 대해 서로는 낙랑에 접한다.”는 기록이 있다. 위 기록들에서 신라가 차지한 낙랑과 옥저·불내·한·예는 서로 인접한 지명임을 알 수 있는데 이 중에서 불 내는 고구리 동천태왕 때 위나라 관구검이 침략해 고구리의 도읍인 환도성(丸都城)을 불태우고 환도산에 이르러 불내성(不耐城)이라는 기념비를 세우고 돌아간 곳이라고<삼국사기>에 기록되어 있다. 그런 불내가 어디인지는 옥저·한·예의 위치를 알면 추정할 수 있다. 불내 즉 환도성은 과연 어디일까?
    ㆍ1. 예(濊)의 위치는 어디인가?
    <수경주 권10 탁장수(水經注 濁漳水)>에“탁장수는(산서성 동남부)상당군 장자현 서쪽 발구산에서 나오고,장수는 발구산 남쪽 산기슭이 만나는 녹곡산에서 나온다. 탁장수는 동으로 진류현 남쪽을 흘러 그 성 동쪽을 지나면서 꺾여 동북쪽으로 흘러 강수가 있다. 강수는 동북쪽으로 흘러 둔류현 고성 남쪽을 지나고 동북쪽으로 장수로 흘러 들어간다.”는 기록이 있고, (원문) 浊漳水出上党.长子县西发鸠山.漳水出鹿谷山.与发鸠连麓而在南。东迳陈留县南.又屈迳其城东.东北流有绛水注之.绛水东迳屯留县故城南.东北流入于漳,
    ▲ 국사교과서의 옥저와 동예는 한반도 동해변 © 편집부
    “청장수는 장무현 고성 서쪽을 지나니 옛 예읍(濊邑)이다. 여기에서 한 지류가 나오니 곧 예수(濊水)로 동북쪽 참호정을 지나 두 지류로 나뉜다. <위토지기>에 말하기를, (발해군의) 장무군에서 다스렸으며 옛 장무고성이다. 또 동북쪽에서 두 강으로 나뉜다. 한 물은 우측에서 나와 정이라 했고 한 물은 북으로 흘러 호라 했다. 소위 예구(濊口)이다. 청장수는 급하게 흘러 동쪽으로 바다로 들어간다.”는 기록이 있어 청장수가 지나는 곳에 예(濊)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원문) 清.漳迳章武县故城西.故濊邑也。枝渎出焉.谓之濊水。东北迳参户亭.分为二渎。《魏土地记》 曰:章武郡治。故世以为章武故城.非也。又东北.分为二水。一水右出为淀.一水北注呼池,谓之濊口。 清漳乱流,而东注于海。 이번에는 위 탁장수와 청장수가 어디인지를 <중국고대지명대사전>으로 알아보도록 하겠다. “탁장수: 장하의 상류로 발원지가 두 군데이다. 북쪽 발원지는 산서성 심현 서북쪽 천봉령이고, 남쪽 발원지는 장자현 서남 발구산에서 나와 장치현 동남 까지 동류하다가 북쪽으로 방향을 바꿔 로성현과 양원현을 지나 북쪽에서 발원한 물길과 만나고 여성현 까지 동북쪽으로 흘러 소장수에 합쳐진다. 다시 동남쪽으로 방향을 바꿔 흘러 로성과 여성,평순을 지나 하남성 섭현으로 들어가 청장수와 합쳐진다. (이하생략)” (원문) 浊漳水: 漳河之上游也.有二源.北源出山西沁县西北千峰岭.南源出长子县西南发鸠山.东至长治县治东南, 改北流经潞城.襄垣二县与北源合.又东北流至黎城县与小漳水合.改东南流经潞城.黎城.平顺入河南涉县, 合于清漳。《周礼职方氏》冀州.川曰漳.浸曰汾潞。《后汉书郡国志注》“上党记曰:潞.浊漳也。” 阚驷曰, .潞水为冀州浸.即漳水也。世人亦谓浊漳为潞水。 “청장수 : 장하의 상류로 산서성 평정현 남쪽 대민곡이 발원지이다. 서남쪽으로 흘러 화순의 경계로 흐르다 꺾여 남쪽으로 흘러 요현을 경유해 서장수와 합쳐져 하남성 섭현 으로 들어가 탁장하와 만나 합쳐진다.”고 기록되어 있다. (원문) 清漳水: 漳河之上游也.源出山西平定县南大黾谷.西南流入和顺境.折南流迳辽县.合西漳水入河南涉县, 与浊漳河《汉书地理志》沾县大黾谷,清漳水所出。沾县大黾谷,清漳水所出。
    또한 <수경주 권9 기수(水經注 淇水)>편에 “청하 역시 동북으로 흘러 예수(濊水)가 나오는 예읍(濊邑) 북쪽을 지난다. 동북으로 흘러 향읍 남을 지나고,청하는 동으로 흘러 두 물길로 갈라진다. 지류는 나룻터 우측에서 나온다. 동쪽으로 흘러 한 무제의 옛 대북을 지난다.”는 기록이 있는데 이 물길들은 어디를 흐르는 강일까? (원문) 清河又东北,濊邑北。濊水出焉。又东北.过乡邑南。清河又东.分为二水.枝津右出焉。东迳汉武帝故台北。 즉 탁장수는 산서성 남부에 있는 장치시 장자현에서 발원해 산서성 남부를 흘러 동남쪽에 있는 하남성 섭현에서 청장수와 합쳐지는 강이고 청장수는 산서성 중동부 에서 발원해 남쪽으로 흐르다 하남성 섭현에서 탁장수와 만나는 강이다. 따라서 청장수가 지나는 예읍(濊邑)은 산서성 동남부에 있다고 하겠다. 더 넓게 보아 산서성 동남부와 황하 북부 하남성의 동부 일대가 바로 예와 맥과 옥저의 땅인 것이다.
    ▲ 지금도 그 이름 그대로 산서성 동남부에 남아있는 탁장수와 청장수와 기수

    ▲ 원래 산서성 동남부에 있던 옥저·예·맥이 역사왜곡을 위해 한반도 동해변으로 지명이동 되었다. ©편집부

    2. 한(韓)은 어디인가?
    광개토태왕 비문의 수묘인연호에 한과 예가 같이 언급된 것으로 보아 한과 예는 서로 인접한 가까운 지명임이 틀림없다. 한은 번조선왕 기준이 위만에게 쫓겨 달아나 그곳에서 한을 세우고 왕이 되는 곳이다. 이 한이 나중에 삼한인 마한·진한·변한으로 나뉘게 되고 마한(馬韓)은 백제로 발전하고 변한(弁韓)은 가야, 진한(辰韓)은 신라로 발전하는 것이다. 예의 땅을 지나는 청장수와 만나는 탁장수의 발원지인 상당군(上黨郡) 장자현은 위만에게 패한 번조선의 기준(箕準) 왕이 달아나 한을 세운 곳이다. 청주 한씨의 상징적 인물인 한명회의 군호가 상당군이다. 기자의 후손인 기준을 중시조로 모시고 있는 청주 한씨 대부분은 본향을 충북 청주시 상당구로 알고 있으나 이는 조선왕조 때 지명이 옮겨진 것으로 원래 한씨의 뿌리가 되는 기준 왕의 진짜 상당군은 산서성 동남부 장치시 장자현에 있었다.
    ▲ 기자를 시조로 모시고 제사를 올리고 있는 청주 한씨 © 편집부

    <중국고대지명대사전>에서 상당군에 대한 설명은“전국시대 한의 땅으로 진시황이 천하를 병합하고 상당군을 설치했는데 산서성 동남부 장자현 서쪽에 있다. 후한 말 동탁이 난을 일으킨 치소 호소성은 장치현 동남이고 진나라 치소인 로는 산서성 로성현 동북이다. 연나라 모용비의 치소가 산서성 양탄현 동북에 있는 안민성이고 후에 호소성으로 옮겼다.(이하 생략)” (원문) 上党郡 : 战国韩地.秦并天下.置上党郡.其地有今山西之东南部.以其地极高.与天为党.故名。汉治长子.在今山西长子县西.后汉末董卓作乱.治壶关城。 在今山西长治县东南.晋治潞.在今山西长治县东南.晋治潞。在今山西潞城县东北.燕慕容备移治安民城。在今山西襄坦县东北.后迁壶关城.卽汉末旧治也.后魏治安民, 复迁壶关.北周于郡置潞州.隋置上党县为郡治.卽今山西长治县治.宋时郡废。 이렇듯 신라가 차지했던 한(韓)과 예(濊)의 정확한 위치가 산서성 동남부로 밝혀졌으므로 나중에 고구리의 도읍이 되는 환도성인 불내(不耐)도 그 부근에서 찾아야 할 것이다. 중국은 가로x세로 1자의 작은 관구검기공비를 길림성 집안에다 옮겨놓고 그곳이 고구리의 환도성이라는 역사왜곡을 자행하고 있는 중이다.
    ▲ 중국은 관구검기공비를 집안에다 옮겨다놓고 그곳이 고구리 丸都山城이라는 역사왜곡 중

    ▲ 고구리 도읍지로 둔갑한 길림성 집안시 © 편집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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