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한국문화 대탐사

15 - 2 전통 차(茶) <下>

浮萍草 2014. 5. 25. 10:00
    옛말 된 다반사 … 차 도입 가장 빨랐지만 차문화 급속 위축
    ▲ 서울 인사동길에 위치한 현대식 전통찻집 ‘오설록’에서 손님들이 차를 마시고 있다. 매장 1층에는 즉석에서 덖은 차를 시음하는 코너가 마련돼 있다.
    조용철 기자
    반사(茶飯事). 밥 먹고 차 마시는 것처럼 예사로 있는 일을 이르는 말이다. 그만큼 우리 일상생활에서 차가 널리 애용됐다는 얘기다. 우리나라는 중국 원산지의 차를 세계에서 제일 먼저 받아들였다. 신라와 고려 때는 차 문화가 융성했다. 고려청자에는 미학적으로 빼어난 차 주전자와 찻그릇, 찻잔이 많다. 명절날이나 조상의 생일날 낮에 지내는 제사를 차례(茶禮)라고 한다. 차례상에 차를 올렸음은 물론이다. 초의선사의『동다송(東茶頌)』보다 무려 340년이나 먼저 나온 차 예찬서『다부(茶賦)』의 저자 한재 이목(寒齋 李穆·1471∼1498) 선생은 일찍이 차에 매료된 차인 이다. 그는 관혼상제의 사례(四禮)에 관한 참고서『사례편람(四禮便覽)』을 편술했는데 ‘제례편(祭禮編)’ 기제홀기(忌祭笏記)에 철갱봉다(撤羹奉茶:국을 물리고 차를 올림) 의식을 기록했다. 홀기란 대중의 집회제례 등 의식에서 그 진행 순서를 적어둔 기록물이다. “우리 이씨 종중에서는 그 기제홀기에 근거해 제사상에 차를 올립니다. 한재 선조께서는 생전에 차를 즐겨 드시며 일곱 가지의 효능을 일렀지요. 한 잔을 마시니 메마른 창자가 눈 녹인 물로 씻어낸 듯하고 두 잔을 마시니 마음과 혼이 신선이 된 듯하고 석 잔을 마시니 두통이 없어지며 호연지기가 생겨나고, 넉 잔을 마시니 기운이 생기며 근심과 울분이 없어지고 다섯 잔을 마시니 색마가 도망가고 탐욕이 사라지며 여섯 잔을 마시니 세상의 모든 것이 거적때기에 불과해 하늘나라에 오르는 듯하고, 일곱 잔은 절반도 마시기 전에 맑은 바람이 옷깃에 일어난다고요. 생전처럼 감흥하시라고 지금도 제사 때마다 일곱 주발의 차를 올려오고 있습니다.” 대전에 사는 이세병 종중회장이 확인해주었다. 이제 차례상이나 제사상에 차를 올리는 한국인은 거의 없다. 다반사라는 말은 여전히 쓰이지만 밥 먹고 마시던 차는 커피로 대체됐다. 2012년 통계에 따르면 한국인은 1인당 연평균 2.17㎏의 커피를 마셨다. 일본(3.29㎏)보다는 적지만 대만(1.03㎏),중국(0.01㎏)보다 압도적으로 많은 양의 커피를 마시고 있다. 국내 커피시장 규모는 4조1300억원으로 2200억원가량 되는 전통차시장의 20배에 달한다. 세계 커피시장은 약 83조원,차시장은 95조원가량이다. 한국은 세계 커피시장의 5%,차시장의 0.2%를 차지한다. 국내 차 소비량은 중국과 인도·일본·미국은 물론 유럽 대부분의 나라보다 훨씬 적어 50위권 밖이다. 국내 차 생산량은 2000t으로 중국(162만t)이나 인도(99만t), 케냐(38만t)는 물론 일본(7만8000t)에 크게 못 미치는 형편이다. 생산량이야 기후조건에 좌우된다지만 소비량은 다르다. 차를 단순한 음료가 아니라 수기치인(修己治人)이나 다선일여(茶禪一如) 사상과 결부해 마셔온 유교와 불교문화 전통이 무색할 지경이다. 한국차인연합회에서는 국내 차인이 500만 명 이상이라고 주장하지만 통계로 보면 한국인은 거의 차를 마시지 않는다. 대신 커피를 스무 배 이상 즐겨 마시거나 대용차를 약간 마시는 정도다. “녹차는 커피에 비해 카페인도 적고 몸에 좋은 성분이 많아 세계 10대 건강식품이라고 하죠. 하루 10잔 이상 마시면 위암 20% 간암 45% 폐암 54%의 억제효과가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몸에 좋아도 차라는 건 기호식품인데 맛이 없으면 안 마시게 돼 있어요. 오랜 차의 역사와 문화에 비해 훨씬 후발주자인 커피는 다양한 메뉴를 개발해 선풍적 인기를 끌고 있잖아요? 요즘 녹차라테나 녹차프라푸치노 블렌딩 차가 젊은 층의 사랑을 받고 있어서 그나마 다행입니다. 차 업계가 영세하니까 서로 힘을 모아 연구개발과 다큐멘터리 제작,이미지 광고를 적극적으로 해서 커피시장의 절반만이라도 차지했으면 좋겠습니다.” 김종태 티젠 대표의 바람이지만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한다. 차인들과 업계의 이해와 주장이 서로 달라 뜻을 모으기가 쉽지 않다는 것이다. 전통차의 대중화는 산업화와 직결된다. 아모레퍼시픽 창업자 장원 서성환(2003년 작고) 회장은 차 문화가 사라져가는 현실이 안타까워 1979년부터 ‘아름다운 집념’으로 통하는 녹차사업을 시작한다. 적자를 감수하고 고집해온 녹차사업은 이제‘오설록’이라는 고유 브랜드로 성장했다. 전국 백화점 매장 41개 인사동과 압구정동 등에 있는 티 하우스 12개가 커피전문점 천하에서 전통차 보루 역할을 하고 있다. “우리나라 차 산업이 발전하지 않는 건 ‘선의의 경쟁자’가 없어서입니다. 돈이 안 되니까 기업은 하려 들지 않죠. 오설록 하나뿐인 셈이고 영세농이 대부분입니다. 오설록은 티백 현미녹차보다 격을 높여 잎차 중심의 블렌딩과 프리미엄사업에 중점을 둬요. 서성환 선대 회장의 창업정신을 기리고자 하는 거죠. ‘일로향’ 같은 고급 수제차는 연간 3000통만 만들고 나머지는 기계차지만 블렌딩에 집중해요. ‘삼다연’이라는 상품은 인기가 좋은데 잎차에 고추균을 넣고 삼나무 통에서 100일간 발효시켜요. ‘ 제주 영귤’도 블렌딩 차죠. 오설록은 드디어 올해를 티핑포인트(tipping point)로 흑자전환하며 밝은 전망을 하게 됐습니다. 지난해 회계매출은 공시기준 600억원이고 올해는 20억원 정도 이익이 날 것 같습니다. 우리로서는 매우 반갑고 고마운 희소식입니다.”
    오설록 박순용 상무
    오설록사업부 박순용 상무는 국내 최초로 제주도 차박물관에 덖음솥을 설치,운영해 호응을 얻고 있다고 했다. “차 덖는 걸 현장에서 고객이 직접 보고 그윽한 차향을 음미하도록 한 것이죠. 1년에 120만 명이 제주도 차 박물관을 찾는데 그중 100만 명은 덖음 차를 마시고 가요. 평소 종이컵에 현미녹차 마시던 고객들이 덖음솥 현장을 체험하고 잎차에 빠져듭니다. 인사동 오설록 티 하우스에도 덖음솥이 있어요. 고객의 40%가 외국인이죠. 외국인들이 브랜드를 가져가고 싶어 하고 국내외 프랜차이즈 요청도 많죠. 우리 차의 대중화를 프랜차이즈 커피숍처럼 해서는 세계 차 문화를 선도할 수 없다고 보고 신중합니다.” 차인들은 인문정신과 고품격 문화를 말하지만 지금 우리는 녹차와 너무 멀어졌다. 절집 스님들은 차를 많이 마신다고 믿지만 사실은 유럽의 목사나 신부들보다 적게 마신다. 유럽 목사신부들은 홍차 매니어다. 홍차의 종주국 역시 중국이다. 바리스타학과 40여 개 대학, 커피 교육기관 500여 개 바리스타 자격증 소지자 17만 명. 중국에서 차를 제일 먼저 받아들인 이 ‘신생 커피 공화국’에 차학과가 있는 대학은 하나도 없다. 차시장이 성장해야 차 교육기관도 성장한다.
    “올해 설부터 차례상에 술 대신 차를 올리기 시작했어요. 아버지, 어머니 제사 때도 차를 올릴 겁니다. 차인들에게 간절히 권하고 싶어요. 돌아가신 조상의 간(肝)을 생각해서라도(웃음) 술 대신 차를 올렸으면 좋겠어요.” 방송인 이계진씨가 오늘에 되살려낸‘차례’가 한국 차 문화 르네상스의 예고편이었으면 한다. 취재지원 임보미 아산정책연구원 인턴
    Sunday Joins Vol 376 ☜        김종록 객원기자·문화국가연구소장 kimkisan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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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문화 풍성하게 하는 다례(茶禮)와 다구(茶具)
    “차 예절 너무 엄격하면 오히려 차를 멀리하게 만들 수도”
    ▲ 성균관 다례원 이현주 원장(왼쪽)이 서울 부암동 석파정에서 전통 예법에 맞춰 차 마시는 법을 알려주고 있다. 조용철 기자
    "차가 사람으로 하여금 예를 갖추게 한다”(한재 이목)는 말이 있다. 예부터 차(茶)와 예(禮)는 서로 뗄 수 없는 한 몸이었다. 다례(茶禮) 또는 다도(茶道)가 발전해온 배경이다. 이왕 차를 마실 바엔 제대로 예의를 갖추는 것이 정도일 것이다. 차의 예절은 자리를 잡고 앉을 때, 우려낼 때 마실 때 등 절차마다 다양하게 있다. 그중에서도 마시는 법이 가장 많이 활용된다. 다음은 이현주 성균관 다례원 원장이 추천하는 방법이다. 먼저 두 손을 동그랗게 모아 찻잔을 든 다음 왼손으로 잔이나 받침 바닥을 받친다. 마실 땐 왼 손등으로 차가 목으로 넘어가는 모습을 자연스럽게 가린다. 차는 색과 향을 맡으며 세 번에 나누어 천천히 마시면서 맛을 음미한다. 와인 마시는 법과는 조금 다르지만 분위기가 비슷하기도 하다. 자리를 함께한 사람들과는 다담(茶談)을 나누는 것이 예의다. 이 원장은“별도의 차 마시는 예법이 정해져 있었던 건 아니어서 물건을 다루는 법 등 생활 속의 기본예절을 응용하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오손도손 이야기할 수 있는 4~5명이 차를 마시기엔 적당한 규모다. 초의선사는『다신전(茶神傳)』에서 인원 수에 따른 찻자리를 이렇게 표현했다.
    혼자는 신(神),둘은 승(勝), 서넛이 마시면 취(趣), 대여섯이 모이면 범(泛), 예닐곱은 시(施).다례라는 말을 들으면 왠지 모르게 엄격하다거나 어렵다는 인상이 먼저 떠오르는 것도 사실이다. 차 예절이 차 마시기를 오히려 멀리하게 만들 수도 있다는 우려가 나오는 이유다. 좀 더 간편하게 차를 접하게 하려면 차에 관한 예절도 현대에 맞게 고쳐야 할 것이다. 이 원장은 “지나치게 엄격한 예절에 얽매이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말했다. 하지만 몸에 밴 올바른 예절은 남을 기분 좋게 만드는 법이다. 나라마다 차 문화도 조금씩 다르다. 중정(中正)은 한국 전통차 문화의 중심개념이다. 지나침도 모자람도 없이 곧고 바른 중정의 철학은 조화와 맑음을 지향하는 삶으로 귀결된다. 중국은 차생활의 지향점을 정행검덕(精行儉德)으로 표현했다. 차는 행실이 바르고 검소하며 덕망 있는 삶을 가져다준다는 것이다. 엄격한 다도를 발전시켜온 일본은 화경청적(和敬淸寂)을 중요시한다. 화합과 공경, 맑음과 고요의 선정(禪定) 상태를 도모했다. 이렇듯 동아시아에서 차는 형이상학적인 도덕음료였다. 다례와 함께 다구 또는 다기(茶器)라 불리는 차 도구도 차 문화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 중 하나다. 간편하게 티백으로도 즐길 수 있지만 다구 세트를 갖추어 차를 마시면 한층 고상한 맛을 음미할 수 있다. 다기의 기본은 다관(茶罐)으로 불리는 찻주전자와 찻잔이다. 찻잔은 모양에 따라 다완(茶碗)·다구(茶甌)·다종(茶鐘) 등으로 분류된다. 식힘 사발인 귀가 달린 숙우(熟盂), 물이나 차 찌꺼기를 씻어버리는 그릇인 퇴수기(退水器)도 많이 사용된다. 물을 끓이는 탕관(湯罐), 물바가지(瓢子·표자),물항아리(水桶·수통) 등도 있다. 이 밖에 찻잔받침, 차수저(茶匙·차시)나 찻상·차수건도 필요에 따라 갖추면 된다. 입학·졸업·취업·생일 등 축하 자리나 집들이 때 예를 갖춘 다회(茶會)를 연다면 다담은 더욱 풍성해지고 분위기도 화기애애해질 것이다.
    Sunday Joins Vol 376 ☜        한경환 기자 helmut@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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