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敢言異說, 아니면 말고

女子는 男子를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

浮萍草 2014. 4. 4. 09:22
    男心은 '화장을 고치고' 절절한 가사에 뭉클하지만
    화장대 앞 女心은 자신에게 주어진 사회적 역할 따져
    남성이여, 역할 잊고 나만의 공간에서 삶을 성찰하라
    김정운 그림
    쩌다가 아주 어쩌다가 노래방에 갈 때가 있다. 내 친구 귀현이는 무조건 왁스의 '화장을 고치고'부터 부른다. 조금 오래된 노래지만 들을 때마다 참으로 구구절절하다. 가슴이 거의 10m 높이에서 갑자기'뚝' 하고 떨어지는 느낌이다. 자기를 버리고 떠난 남자를 기약 없이 기다리며 '세월에 변해버린 날 보고 실망할까 봐'화장을 고친다는 여자 노래다. 정말 사랑스럽지 않은가? 왜 우리는 50년 넘도록 그런 여자 한번 못 만나봤을까! 노래 후렴구는 더 슬프다. 왜 자신을 버리고 연락 한번 없었느냐고 모질게 따지겠다던 여인은 이내 마음을 바꾼다. 그리고 오히려 자기가 더 미안하다고 한다. 자신은 아무것도 해준 게 없고'그저 받기만 했을 뿐'이라며 고마워하기까지 한다. 세상에 어찌 여인의 마음이 이리 곱고 예쁠까? 노래가 후렴구에 이르면 귀현이는 스스로 감동하여 꺽꺽거린다. '어떻게든 우린 다시 사랑해야 해' 하며 따라 부르는 사내들의 눈가에는 눈물까지 비친다. 만약 우리의 아내들이 이 모습을 봤다면 기막혀하며 '아주 놀고들 있네!' 했을 거다. 그러나 비 맞은 개털같이 숭숭 비어있는 머리를 한 50대 초반의 배 나온 사내들은 자신을 위해 화장을 고치고 있을 여인이 어딘가에 있으리라는 희망을 절대 포기 하지 않는다 어떻게든 그 여인을 만나겠다는 일념으로 '화장한 여자' 노래는 계속된다. 임주리의 '립스틱 짙게 바르고', 강애리자 또는 송윤아의 '분홍 립스틱' 등등. 지불한 노래방 예약 시간이 끝나고 노래방 주인이 서비스로 주는 20분 추가마저 끝나면 어깨 처진 사내들은 집으로 향한다. 더 이상 남편의 귀가를 기다리지 않는 아내는 이미 취침 중이다. 리무버,클렌징오일,폼클렌저 순서로 아주 깔끔하게 화장을 지운'생얼굴'이다. 아내는 절대 남편을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 그런다고 쓸쓸해해서는 안 된다. 그 가슴 시린 노래 '화장을 고치고'는 전제부터 틀렸기 때문이다. 영국의 한 잡지에서 조사해 보니 여자들은 하루에 적어도 9번 이상 자신의 화장에 대해 생각한다고 한다. 여성 30%는 잠자기 직전까지 화장에 대해 생각한다고도 했다. 3명 중 1명은 화장하지 않고는 집 밖으로 절대 나가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10명 중 3명은 아이를 학교에 데려다 줄 때 립스틱이라도 꼭 바른다고 했다. 무슨 뜻인가? 여자의 화장은 남자와는 별 상관 없다는 이야기다. 오히려 다른 여자들 때문에 화장한다는 대답이 많았다. 남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다른 여자들보다 더 멋지게 보이려고 자존심 때문에 화장한다는 것이다. 한국보다 화장에 훨씬 둔감한 영국 여인네들 이야기다. 여자는 남자를 위해 화장하지 않는다. 여자에게 화장은 연기자의 분장과 마찬가지다. 주어진 사회적 맥락에 맞춰 화장의 톤을 결정하고, 입을 옷 분위기에 따라 색조를 결정한다. 남자는 그 맥락에 포함되는 작은 요소 하나에 불과하다. 화장대 앞의 여자는 무대 위의 연기자처럼 끊임없이 자신에게 주어진 역할에 대해 생각한다. 맥락에 따라 달라지는 자아에 대한 성찰이 가능하다는 이야기다. 서정주 시인이 노래한'거울 앞에 선 내 누님'처럼 여자의 '맥락적 사고'는 시간이 흐를수록 확장된다. 그래서 나이 들수록 여자가 남자보다 훨씬 건강하고 현명하며 지혜롭다. 화장을 지우며 자신의 다양한 역할을 성찰할 수 있는 무대 뒤의 화장대가 있기 때문이다. 미국 사회학자 어빙 고프먼(Erving Goffman)은'자아(自我)'를 무대 위의 연기자에 비유한다. 현대 심리학에서 전제하고 있는 일관되고 통일된 자아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비판이다. '상호작용과 의례(儀禮)'에 관한 미시적 연구를 통해 고프먼은 주어진 상황에 따라 '여러 자아'가 제각기 다르게 구성된다고 주장한다. 이때 무대 위의 '여러 자아'를 끊임없이 성찰하고 상대화할 수 있는 무대 뒤의 공간이 필수적이다. 즉 분장을 하고 분장을 지우는 '배후 공간'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다. 무대 위나 무대 뒤의 어느 한쪽만 진짜 삶이라고 하는 이분법적 사고를 해서는 안 된다. 무대 위의 다양한 역할이 실재하는 삶이듯 무대 뒤의 삶도 진짜라는 거다. 수용소나 정신병원의 삶이 고통스러운 이유는 무대 뒤 즉'배후 공간'이 허용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숨을 공간이 없다. 실제로 나치하에서 유태인 강제수용소를 겪었던 아동심리학자 베틀하임(Bettelheim)은 수용소 생활의 가장 큰 고통으로 '배후 공간의 부재'를 들고 있다. 모든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나는 수용소의 삶에 적응하지 못한 사람은 대부분 죽어 나갔다. 살아남은 장기 수감자들의 심리적 상황은 더 처참했다. 어떤 것도 숨기지 못하고 부모에게 모든 것을 내맡길 수밖에 없는 어린아이처럼 수용소의 나치 친위대를 부모처럼 믿고 의지하는 퇴행적 행태를 보였다는 것이다.
    김정운 문화심리학자
    한국 남자들에게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회적 역할을 떨어내고 차분히 앉아 생각할 수 있는 '배후 공간'이다. 권력 관계에 따라 모든 것이 결정되는 무대 위의 삶만 진짜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나치 친위대에 제 모든 것을 맡기는 수용소의 장기 수감자처럼 권력에 모든 것을 맡기는 퇴행적 행태를 보이지만 그러한 자신의 삶을 전혀 돌아보지 않는다. 고속도로 위의 자동차처럼 그저 앞으로만 달린다. 고속도로에는 돌아설 수 있는 배후 공간이 없다. 멈춰 서서도 안 된다. 그래서 누가 추월하면 그렇게 분노하는 거다. 설령 누가 끼어들겠다고 깜빡이 신호라도 보낼라치면 오히려 속도를 더 높인다. 못된 게 아니다. 도무지 숨을 곳이 없는 한국 남자들의 지질한 반항이다. 뒤로 돌아설 수도 그렇다고 마냥 앞으로만 달리기도 두려운 이 땅의 사내들은 매일 밤 지하로 내려간다.
    그곳에는 화장을 수시로 고치는 여인들로 가득하다. 그래서 룸살롱이 죄다 지하에 있는 거다. 흠 조금 슬프지 않은가?
    Premium Chosun ☜       김정운 문화심리학자·여러가지문제연구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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