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에 뿔나고 몸엔 오색 털… 길조 상징하는 상상의 동물
| ▲국립대구박물관이 소장한 중요민속문화재 제65호 ‘흥선대원군 기린흉배’.이하응(1820∼1898)의 관복을 장식했던 표장이다.경국대전에 따르면 신 분 관직마다 문양이 다른데 대군은 기린을 수놓은 흉배를 달았다.문화재청 제공 |
요즘 세대는 기린이라면 ‘런닝맨’에 나오는 배우 이광수를 떠올릴지 모르겠다.
키가 크고 날씬한 체구가 아프리카 초식동물(giraffe)을 닮았다고 생긴 별명이다.
원래 기린은 목이 긴 짐승을 일컫는 게 아니었다.
동양에서 기린(麒麟)은 머리에 뿔이 나고 오색 빛깔 털을 지닌 상상의 동물이다.
용, 거북, 봉황과 함께 사영수(四靈獸·신령한 네 동물)로 꼽히는데 태평성대에 모습을 드러내는 길한 동물로 여겨졌다.
기린이 기린이라 불린 것도 이 때문이었다.
중국 명나라 영락제(1360∼1424) 때 동아프리카를 다녀온 환관 정화(鄭和)가 이 동물을 황제에게 바치며 처음 기린이라 소개했다.
성군이 나라를 다스려 기린이 나타났다는 ‘아부’였던 셈. 엄청난 돈을 쓴 항해가 쓸데없진 않았다는 면피용이기도 했다.
근대에 들어 기린이란 명칭은 일본에서 쓰기 시작했다. 20세기 초 이시카와 지요마스라는 동물학자가 정화의 고사를 인용해 공식 명칭으로 사용했다.
지금도 한국 일본 대만은 기린이라 부른다.
그런데 막상 근거를 제공한 중국에서는 이 동물을 ‘장경록(長頸鹿·목이 긴 사슴)이라 부른다.
신화 속 기린도 성품이 온화하다.
중국 옛 문헌 ‘시경(詩經)’이나 ‘광아(廣雅)’에는“짐승은 보통 발 있으면 차고 뿔 있으면 부딪치려 하나 기린만은 어진 성품으로 그렇지 않다”거나“인을 머금고 의를
품어 걸음걸이가 법도에 맞다”고 묘사했다.
유교 사상에서는 기린을 공자(孔子)에 빗댄다.
공자의 어머니가 임신했을 때 홀연히 나타나 위대한 현인의 출현을 예고했다고 한다.
진짜 기린은 결코 예능 프로그램처럼 ‘배신의 아이콘’이 아니다.
물론 배우도 실제 성격이야 다르겠지만.
자료
‘한자의 모험’(비아북) · 한국문화재보호재단
☞ Donga ☜ ■ 정양환 기자 ray@donga.com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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