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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6 죽음

浮萍草 2013. 12. 29. 22:00
    죽음 생각할수록 세속적 성공보다 영혼의 해방 중시
    꽃은 생명, 해골은 죽음, 모래시계는 시간을 상징한다. 그림은 필리프 드 샴페인(1602~74)의 작품. 사진 위키피디아
    “죽음은 육체로부터 영혼의 해방이다”(플라톤) “죽음은 삶과 평등하다”(장자)“죽음은 삶의 완성이다”(니체)“인간은 죽음을 향해 나아가는 존재이다”(하이데거), “인간은 자신이 죽어가고 있다는 것을 아는 유일한 동물이다”(볼테르). 사람은 누구나 반드시 죽는다. 단지 우리가 언제 어떻게 죽을지를 모르고 있을 따름이다. 그러나 대부분 죽음을 인정하지 않거나 죽음의 공포에 맞서면서 삶을 영위하고 있다. 인류학자들은 죽음에 대한 거부ㆍ공포가 인류 문명과 문화의 시원이라고 분석한다. 인류는 죽음을 극복하기 위해 문명을 일으켰다는 것이다. 가령 생존에 필수적인 식량을 얻기 위해 농업을 발명하고 옷과 집을 만들기 위해 산업을 발전시키고 질병을 치료하기 위해 의술과 약품을 개발했다. 물질문명의 발달은 한마디로 생명 연장 방법을 궁리하는 과학과 기술에서 비롯되었다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문명의 비약적인 발전에도 불구하고 인류가 죽음의 공포로부터 완전히 벗어날 수는 없다. 문명과 더불어 문화가 발달된 것도 그 때문이다. 요컨대 문화의 목적은 비록 육체가 소멸하더라도 정신만은 영속할 것이라는 믿음을 사람들에게 심어주어 죽음에 대한 두려움을 떨쳐버리게 하는 데 있다는 것이다. 대표적인 사례가 종교의 융성이다. 또한 문화는 우리가 사멸할 수밖에 없는 존재인 동물의 일종임을 망각하게끔 하는 여러 관습을 만들어냈다. 이를테면 아무 데서나 배설하는 동물과 달리 남의 눈에 띄지 않는 장소에서 대소변을 보는 화장실 문화가 생겼다. 들짐승처럼 몸에서 악취가 풍기지 않도록 옷을 걸치게 되었다. 발정만 하면 다짜고짜 짝짓기하는 동물과 달리 은밀한 시간과 공간에서 섹스를 하는 것도 인간이 동물처럼 죽음을 피할 수 없다는 사실을 은폐하기 위해 비롯되었다는 견해가 설득력을 얻고 있다.
    ㆍ자부심 높이면 죽음에 덜 부정적
    문화가 죽음의 부인에서 출발했다는 견해를 이론으로 정립한 인물은 미국의 문화인류학자인 어니스트 베커(1924~74)이다. 1973년 그는 『죽음의 부인(The Denial of Death)』을 펴냈다. 베커가 49세에 암으로 요절한 직후 74년 퓰리처상을 안겨 준 이 명저는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세 명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86년 미국 애리조나대의 제프 그린버그 콜로라도대의 톰 피스츠진스키 스키드머 칼리지의 샐던 솔로몬 등 3명은 베커의 학설을 지지하는‘공포 관리 이론(TMT:Terror Management Theory)’을 창안했다. TMT는 우리의 행동과 믿음의 대부분이 죽음에 대한 공포에 의해 유발된다고 전제하고 우리가 공유한 문화가 이러한 공포로부터 우리를 방어해 준다고 주장한다. TMT는 인간이 죽음의 문제에 대처하는 심리 상태를 분석하는 이론이다. 이를테면 인간이 결국 죽게 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기 때문에 피할 수 없는 공포에 직면했을 때 표출되는 정서적 반응을 이론적으로 설명한다. 지난 20여 년 동안 진행된 400여 개의 공포 관리 이론 연구는 대부분 부정적 측면인‘죽음 현저성(mortality salience) 가설’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죽음 현저성이란 사람들이 죽음에 대해 생각하면 훨씬 극단적인 판단을 내리게 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예컨대 죽음 현저성은 집단에 대한 귀속감을 조장하여 민족주의나 인종차별을 강화하거나 전쟁·테러·폭력·순교 같은 과격한 행위를 지지하도록 만든다. 요컨대 죽음 현저성 가설에 따르면 사람이 죽음을 부인하게 되면 온갖 부정적 행동을 일삼게 마련이다. 1997년 공포 관리 이론 창안자 3명은 ‘인성과 사회심리학 저널(Journal of 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1월호에 발표한 논문에서 죽음 현저성에 의해 야기된 부정적 효과를 감소시키려면 자신의 삶을 소중하게 여기고 스스로 높은 가치를 부여하는 마음가짐, 곧 ‘자부심(self-esteem)’을 고양시킬 수밖에 없다고 주장했다. 자부심이 증대되면 그만큼 죽음 현저성 효과를 감소시킬 수 있다는 것은 자부심이 강한 개인일수록 죽음과 맞서 싸우는 과정에서 부정적 행동을 덜하게 된다는 뜻이다.
    죽음을 깊이 생각한 사람은 젖을 먹이는 모습에
    불편을 느낀다고 한다. 사진 위키피디아
    어쨌거나 TMT 연구 초창기에는 대부분 죽음의 부인이 초래하는 부정적 측면에 초점을 맞추었다. 가령 동물적 본성을 드러내는 행동은 우리에게 죽음이 숙명임을 떠올리게 하므로 그런 행동을 혐오하게 된다는 연구 결과가 발표되었다. 2007년 미국의 심리학자인 캐시 칵스는 ‘인성과 사회심리학 회보(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Bulletin)’ 1월호에 실린 논문에서 죽음에 관한 글을 쓴 실험 대상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젊은 여인이 음식점에서 젖가슴을 드러내놓고 아기에게 모유를 먹이는 장면을 보고 훨씬 더 강하게 불쾌감을 나타냈다고 보고했다. 이는 인간이 죽음을 피할 수 없는 동물이라는 사실을 상기시키는 행동으로부터 멀어지려는 심리 상태를 나타내는 반응으로 풀이된다. 이런 현상은 노인과 신체 장애인에 대한 반응에서도 확인되었다. 죽음을 연상한 실험 대상자가 그렇지 않은 사람보다 섹스의 육체적 쾌락에 대해 관심을 덜 갖는다는 연구 결과도 발표되었다. 한편 죽음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과정에서 긍정적 효과도 나타난다는 연구 결과가 잇따라 발표되고 있다. 2007년 미국 켄터키대의 심리학자인 너선 드월은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11월호에 공포 관리 이론을 검증한 실험 결과를 발표했다. 드월은 대학생 432명을 둘로 나누어 각각 다른 내용을 주문했다.
    학생 절반에게는 죽음에 관해 숙고하고 죽어갈 때 발생할 것으로 예상되는 일들을 짧은 글로 작성하도록 요청했다. 나머지 절반에게는 불쾌하지만 결코 위협적이지 않은 치통을 생각하며 느낌을 글로 쓰도록 부탁했다. 실험의 목적은 대학생들이 서로 다른 상황에서 나타내는 정서 반응을 비교하는 것이었다. 정서 반응은 의식적인 상태와 무의식 상태 각각을 측정했다. 의식적인 상태에서는 대학생 모두 같은 정서 반응을 나타냈지만 무의식 상태에서는 죽음에 관련된 학생 집단이 뜻밖에도 행복감 같은 긍정적인 반응을 나타낸 것으로 밝혀 졌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숙고하면서 사람들이 슬퍼하기는커녕 행복을 느낀다는 뜻밖의 결과가 나온 것이다. 이 실험 결과는 사람들이 늙어가면서 죽을 때가 가까워 옴에도 불구하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는 이유를 설명해 준다고 볼 수 있다. 드월은 이런 정서 반응이 나타나는 현상은 일종의 ‘심리적 면역 반응(psychological immune response)’이라고 설명했다. 면역은 사람 몸 안에 병원균이 침입할 때 이를 물리치는 저항력이다. 일부 사회심리학자들은 사람 몸뿐만 아니라 마음에도 면역 기능이 있다고 주장했다. 드월은 우리가 자신의 죽음에 대해 생각할 때 뇌가 무의식적으로 행복한 느낌을 촉발시켜 자동으로 의식적인 공포의 느낌에 대처하는 것은 심리적인 면역반응에 해당된다고 분석했다. 2012년 미국 미주리대의 심리학자인 케네스 베일은 월간 ‘인성과 사회심리학 평론(Personality and Social Psychology Review)’ 온라인판 4월 5일자에 실린‘죽음이 삶에 유익할 때(When Death is Good for Life)’라는 논문에서 대다수 TMT 연구 결과와 달리 죽음을 생각한다고 해서 반드시 공포를 느끼거나 부정적 행동을 하는 것은 아니라 고 주장했다. 베일은 죽음에 대해 숙고하면 오히려 공격적인 행동을 삼가게 되고, 운동을 열심히 하는 등 건강을 더 돌보게 되며 남을 돕고 싶은 마음이 생길 뿐만 아니라 흡연율과 이혼 율도 감소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고 보고했다.
    ㆍ메멘토 모리, 죽음을 생각하라
    공포 관리 이론의 연구는 초기에는 죽음에 대한 공포가 이기적이고 부정적인 행동을 유발하는 측면을 부각시킨 반면에 최근에는 이타적이고 긍정적인 행동을 촉진하는 사례를 소개하고 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이 우리의 행동에 때로는 해로운 영향을, 때로는 이로운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밝혀진 셈이다. 요컨대 우리가 죽음 공포의 양면성에 어떻게 대처하는가에 따라 우리의 삶이 행복해질 수도 있고 불행해질 수도 있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2012년 미국 컬럼비아 칼리지의 심리학자인 마이클 위더맨은 격월간‘사이언티픽 아메리칸 마인드’7·8월 호에 기고한 에세이에서 사람이 갑자기 죽음에 직면하면 삶의 의미를 되새기게 되고 그런 사람일수록 죽음의 공포를 좀 더 쉽게 이겨낼 수 있다고 썼다. 그는 미국에서 수천 명이 죽거나 다친 지진이 발생한 뒤 실시한 조사 결과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지진 발생 지역의 병원 직원들에게 몇 가지 인생 목표의 중요성을 평가하도록 요청한 결과 지진으로 생명의 위협을 생생하게 느낀 사람일수록 돈이나 감투 따위의 세속적 성공보다 가정의 화목이나 이타적인 사회활동 같은 정신적 가치를 훨씬 더 소중히 여기게 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는 날마다 죽음에 노출된 채 살아간다. 가까운 사람들을 영원히 떠나보내는 장례식장에서부터 수많은 사람이 잔인하게 살해당하는 텔레비전 화면까지 온갖 죽음에 익숙해 있다. 심지어는 영화에서 사람이 죽어나가는 장면을 보면서 공포를 느끼기는커녕 박수를 치거나 소리 내어 웃기도 한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의 죽음에 생각이 미치면 금방 두려움으로 전전긍긍하는 무기력한 존재일 따름이다. 위더맨은 “우리가 끝내 죽음을 맞게 될 것이라는 생각을 결코 떨쳐낼 수는 없다. 그러나 그러한 생각을 하면서 공포를 느낄 수도 있고 삶에 감사할 수도 있다. 다행히도 그 선택은 우리 손에 달려 있다”고 강조했다. 메멘토 모리(memento mori). 2001년 국문학자인 김열규 교수가 펴낸 책의 이름으로 사용되어 널리 알려진 이 말은 14~15세기 중세 유럽의 탁발 수도회가 소중하게 여긴 설교 주제로‘늘 네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기억하라’는 뜻을 지닌 라틴어이다. 메멘토 모리. 죽음을 기억하라.
    Sunday Joins Vol 341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inplan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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