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强兵在治<강병재치>

浮萍草 2013. 11. 25. 14:16
    대 갔던 아들이 휴가차 집에 와 자기 부대의 장군 자랑을 늘어놓는다. 
    “한번은 제 다리에 종창이 생겨 고름이 흘러나왔습니다. 
    그것을 본 우리 장군이 입으로 직접 고름을 빨아 주었습니다.” 
    그 말을 들은 노모는 통곡을 하기 시작했다. 
    아들은 어머니의 울음에 어리둥절할 뿐이었다. 
    훗날 이웃 사람이 ‘아들 앞에서 왜 그리 울었느냐’고 묻자 노모는 이렇게 답했다. 
    “내 남편도 그 장군 휘하에 있었지요. 
    역시 종창이 났는데 장군이 고름을 빨아줬다고 합니다. 
    남편은 장군을 위해 몸을 바쳐 충성했고 결국 선봉에 서서 싸우다 죽고 말았습니다.” 
    노모는 장군의 ‘병사 사랑’이 남편에 이어 아들을 또 사지로 몰아넣을 것임을 알고 통곡한 것이다. 
    『손자오기열전(孫子吳起列傳)』에 전해지는 얘기다.
    그 장군의 이름이 바로 전국시대 정치가이자 전략가였던 오기(吳起·BC 440~BC 381)다. 
    ‘오기병법(吳起兵法)’으로 잘 알려진 그는 행군할 때도 일반 사병과 같이 걸었고 잠도 같은 막사에서 잤다. ‘
    함께하는 리더십’인 셈이다.
    오기가 그렇다고 자애롭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군법을 어긴 장병은 가차없이 단죄했다. 
    한번은 병사 하나가 멋대로 돌진해 적장의 머리를 베고 왔다. 
    당연히 상을 받아야 했지만 오기는 그를 즉결처분했다. 
    ‘법령이 명확하지 않고, 상벌이 믿을 바가 못된다면 백만 대군도 쓸 데 없다(法令不明, 賞罰不信, 雖有百萬之軍亦無益)’는 게 그의 신조였다. 
    그는 ‘강병의 조건은 수의 많고 적음에 있는 게 아니라 다스림에 있다(强兵不在多而在治)’라고도 했다.
    오기는 역사상 처음으로 시험을 통해 군사를 뽑았다. 
    완전무장을 한 채 12개의 석궁과 50발의 화살 사흘치 식량을 들고 한나절 사이에 백 리를 완주할 수 있는 자를 정예병(武卒)으로 뽑았다. 
    공자의 제자인 증자(曾子)로부터 유학(儒學)을 배운 오기는 국민·정부·군 사이의 화합을 강조했다. 
    ‘국민과 나라가 화합하지 않으면 군사를 낼 수 없고(不和于國, 不可出軍) 국민과 군사가 화합 없이 작전을 짤 수 없다(不和于軍, 不可出陣)’고 했다.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3주년이다. 
    우리 군에 오기(吳起)와 같은 믿음직한 리더십은 있는지 국민·정부·군의 화합에 이상은 없는지 돌아보게 된다.
    
    Shindonga Sunday.Joins Vol 350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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