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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행복도 측정 '주관적 안녕(subjective well-being)'

浮萍草 2013. 11. 29. 00:00
    "난 존중받으며 산다" 한국 56%<짐바브웨 72%
    대선에서 국민행복시대를 약속한 박근혜 후보가 당선되었다. 사진은 대선 전날인 지난해 12월 18일 박 후보의 서울 광화문 유세에 몰려든 지지자들. / 중앙포토
    은 사람들은 큰 집과 비싼 차를 손에 넣으면 행복해질 수 있다고 여기기 때문에 돈을 벌기 위해 전력투구한다. 정녕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을까? 행복경제학(happiness economics) 연구자들이 답을 찾고 있는 핵심 질문이다. 초창기 행복경제학에서 금과옥조처럼 여긴 이론은 이스털린 역설(Easterlin paradox)이다. 미국 경제학자인 리처드 이스털린은 제2차 세계대전에 패망한 뒤 급속한 경제 발전을 이룬 일본 사람의 삶에 대한 만족도를 분석했다. 1950년부터 1970년까지 1인당 소득은 7배나 늘어났지만 삶에 만족하는 일본인은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부유해졌지만 행복해진 것은 아니었다. 1974년 이스털린은 ‘경제성장이 반드시 삶의 만족도를 높여 주지는 않는다’는 연구 결과를 발표하였다. 이스털린 역설을 뒷받침하는 연구 결과는 한두 개가 아니다. 미국 심리학자인 데이비드 마이어스는 2000년 미국 인구조사 자료를 사용하여 개인의 경제 능력이 행복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2000년 미국인의 구매능력은 1950년 이후 3배로 늘어났지만 스스로 행복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은 50년이 지나서도 달라지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다.
    ㆍ돈으로 삶의 잔재미 살 수 없는 까닭
    돈이 많으면 호의호식할 수 있을 테지만 삶의 즐거움까지 실컷 누리게 되는 것은 아니라는 논문도 발표되었다. 벨기에 심리학자인 조디 큐오이드바흐 주도하에 여러 나라 학자가 참여한 공동 연구에서 부유한 사람일수록 살아가는 재미를 만끽하는 능력이 부족하다는 결과가 나왔다. 2010년 ‘심리과학(Psychological Science)’ 6월호에 발표된 논문에서 돈이 많으면 가장 비싸고 귀한 것만을 소유할 수 있지만 돈이 끝내 사소한 행복을 누릴 수 있는 능력도 파괴한다고 주장했다. 돈으로 욕망을 채우고도 삶의 잔재미를 느낄 수 없는 까닭은 일상생활에서 행복을 갈망하는 수준이 갈수록 높아지기 때문이라고 설명되기도 한다. 2010년 월간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온라인판 8월 10일자에서 미국의 행복학 전문가인 손저 류보머스키는 돈이 많은 사람이 돈으로 행복을 살 수 있다고 믿게 되면 갈수록 낭비를 일삼게 되므로 결국 삶을 즐기는 능력을 훼손하게 된다고 주장했다. 미국인의 20%가 2년마다 자동차를 새로 바꾸지만 행복감이 오래 지속되지 않는 것처럼 돈이 삶의 만족도를 끌어올리는 것은 아니라고 덧붙였다. 우리나라의 경우 역시 이스털린 역설이 적용될 것 같다. 2005년부터 지구촌의 행복을 측정하는 갤럽 세계 여론조사(Gallup World Poll)에 따르면 행복하다고 대답한 국민의 비율이 GDP가 8402달러인 1993년이나 2만2489 달러인 2011년이나 똑같이 52%로 나타났다. 한편 문명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마사이족이 선진국 사람들 못지않게 삶에 만족하며 행복하게 살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남아프리카의 유목민족인 마사이는 진흙집에서 수돗물이나 전기도 없이 수렵채집을 하며 산다. 미국의 심리학자인 에드 디너(사진 위)는 15년 동안 마사이족의 마을을 여러 차례 찾아가서 그들이 비록 문화생활을 향유하지 못하지만 하루하루 아주 즐겁게 살아 가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 미개사회의 부족민이 문명사회의 현대인과 똑같이 삶에 만족한다는 것은 결국 행복이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개념임을 방증한 셈이다. 행복의 본질을 연구하는 분야인 긍정심리학(positive psychology)에서 가장 중시하는 행복의 개념은 ‘주관적 안녕(subjective well-being)’이다. 주관적 안녕은 삶의 만족도 긍정적인 정서 부정적인 정서 등 세 가지 요소로 구성된다. 이를테면 개인적 성취 가족ㆍ친구와의 관계 학교ㆍ직장에서의 활동 등 자신의 삶에 대해 만족도가 높을수록 행복감ㆍ즐거움 같은 긍정적 정서를 자주 느낄수록, 슬픔ㆍ권태 같은 부정적 정서를 적게 경험할수록 행복한 삶이라고 보는 것이다.
    2010년 서울에서 연설 중인 에드 디너.
    디너는 주관적 안녕(SWB) 개념으로 여러 나라의 행복도를 측정한 연구 결과를 여러 차례 발표했다. 특히 2010년 8월 한국심리학회가 서울에서 개최한 ‘2010 대외국제심포지엄’에 참석하여 기조 논문으로 발표한 ‘한국에서의 불행(Unhappiness in South Korea)’은 디너의 전문적 식견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디너는 이 논문의 첫머리에서“한국은 주관적 안녕의 측면에서 바람직한 상태가 아니다”라고 단언하며 130개 국가의 13만7214명을 대상으로 실시된 ‘갤럽 세계 여론조사’의 결과를 그 근거로 제시했다. 그는 한국과 주관적 안녕을 비교하는 대상으로 세계 최고의 부자 나라인 미국 가장 행복한 나라로 손꼽히는 덴마크 경제 대국으로 이웃 나라인 일본 세계 최빈국의 하나인 짐바브웨 등 4개국을 골랐다. 삶의 만족도를 10점 만점 기준으로 측정한 결과는 덴마크 8.0, 미국 7.2, 일본 6.5, 한국 5.3, 짐바브웨 3.8로 나타났다. 디너는 한국이 세계 평균치(5.5)를 밑돈다는 사실을 상기시키면서 한국이“소득은 세계 상위 국가이면서 행복을 느끼는 감정은 세계 하위 수준이어서 놀랍다”고 털어놓았다. 디너의 분석에 따르면 한국인의 주관적 안녕 수치가 소득 수준에 비해 낮은 까닭은 크게 두 가지 때문이다. 하나는 물질주의이고, 다른 하나는 사회적 자본(social capital)의 취약성이다. 먼저 물질주의의 경우, 한국 사람이 5개국 중에서 물질적 가치를 가장 소중히 여기는 것으로 밝혀졌다. 한국은 물질적 가치를 평가하는 정도를 10점 만점으로 측정한 결과 7.24로 나타나 훨씬 잘 사는 미국(5.45)과 일본(6.01)은 물론이고 심지어 아주 가난한 짐바브웨(5.77)보다 높은 수치였다. 이처럼 경제적 성공에 삶의 목표를 두게 되면 아무리 많은 재산을 모으더라도 항상 부족하다고 여길 터이므로 만족스러운 삶을 꾸려나가기 어려울 것이다. 물질주의의 포로가 되면 가령 나눔이나 사회봉사의 소중함을 알 까닭이 없으므로 행복감을 맛볼 수도 없다. 디너는 “소득이 올라가더라도 한국에서 주관적 안녕을 끌어올리는 해결책이 될 수 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정치인과 국민 모두 경제에 강력한 초점을 맞추지만 한국에서 보듯이 일단 한 국가가 물질적 번영의 수준에 도달하게 되면 사회적으로 더 많은 관심을 기울여야 할 다른 측면이 많다”고 덧붙였다.
    ㆍ직업 만족도, 덴마크 95% 한국 76%
    디너가 한국인의 주관적 안녕 수치가 낮은 까닭으로 꼽은 다른 하나는 신뢰나 협동 같은 사회적 자본의 열악한 수준이다. 먼저 위급한 상황에서 남에게 도움을 청할 수 있다는 사람의 비율을 조사한 결과 한국(78%)은 덴마크(97%) 미국(96%) 일본(93%) 심지어 짐바브웨(82%)보다 낮게 나타났다. 한국 사람 5명 중 한 명은 위기에 도와줄 사람이 아무도 없다고 응답한 셈이다. 밤에 길을 혼자 걸을 때 안전하다고 느끼는 사람의 비율은 덴마크(82%) 미국(77%) 한국(67%) 일본(62%) 짐바브웨(44%)의 순서이다. 한국 사람의 3분의 1은 밤에 혼자 걸으면 불안을 느낀다는 뜻이다. 남으로부터 존중을 받는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덴마크(94%) 미국(88%) 짐바브웨(72%) 일본(66%)에 이어 한국(56%)은 꼴찌이다. 한국인의 거의 절반가량이 주변 사람들로부터 높이 평가받고 있지 않다고 응답한 것이다. 타인으로부터 인격적 대접을 받지 못하는 사람이 삶에 만족을 느끼고 행복감을 느낄 리 만무하다. 사회적 부패 역시 주관적 안녕에 영향을 미친다. 2009년 세계은행이 평가한 국가별 부패지수에 따르면 180개 국가 중에서 1위는 뉴질랜드이며 덴마크 2위 일본 17위 미국 19위이고 한국은 39위이다. 부패한 나라일수록 신뢰수준이 낮아 상대를 불신하게 되므로 행복한 삶을 영위하기 어렵다. 우리나라의 사회적 자본에 대한 디너의 분석을 종합하면 한국 사회는 위기에 닥쳤을 때 남의 도움을 청하기도 쉽지 않고, 밤에 혼자 걸으면 불안하고 존중을 받으며 살기도 어렵고 부패해서 서로 믿을 수도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적지 않기 때문에 주관적 안녕이 만족할 만한 수준이 되지 못한 실정이다. 이런 사회에서 삶의 질(QOL)이 높을 까닭이 없다. 우선 직업 만족도가 높지 않은 것으로 밝혀졌다. 직업 만족 비율을 보면 덴마크(0.95) 미국(0.87) 일본(0.78) 한국(0.76) 짐바브웨(0.51)의 순서이다. 덴마크에서는 거의 모든 국민이 자신의 직업에 만족하는 반면 한국에서는 25% 정도가 직업에 불만을 갖고 있는 셈이다. 한국 사람은 나라에 대해서도 별로 만족하지 못하는 것 같다. 국가에 대한 만족도를 보면 10점 만점에 덴마크(7.2) 미국(6.0) 일본(5.4) 한국(5.2) 짐바브웨(3.1)로 나타나 한국인의 절반가량이 나라에 불만을 갖고 있는 것으로 드러났다. 디너는 한국인이 직업과 나라에 대해 크게 만족하지 못한 상태이므로 삶의 질이 좋아질 수 없다고 분석했다. 한국 사회의 불행을 진단한 디너의 논문은 “한국에서 필요한 것은 삶의 질과 주관적 안녕을 개선하기 위한 전면적인 계획이다”라고 결론을 맺는다. 디너의 진단과 처방에 동의하건 안 하건 아무도 믿고 싶지 않는 통계가 두 가지 있다. 하나는 2012년 2월 OECD가 발표한 우리 국민의 행복지수가 회원국 32개국 가운데 31위로 간신히 꼴찌를 면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1인당 소득이 2000년 1만1292달러에서 2010년 2만562달러로 1.8배나 높아졌지만 인구 10만 명당 자살률은 2000년 13.6명에서 2010년 31.2명으로 오히려 2.3배가 되었다는 것이다. 2010년 한국에서 하루 평균 42.6명씩 연간 1만5566명이 목숨을 끊어 OECD 국가 중에서 8년째 자살률 1위라는 가슴 아픈 기록을 보유하게 되었다. 우리 사회는 이념ㆍ세대ㆍ계층ㆍ지역 갈등으로 시달리고 청년실업ㆍ비정규직 근로ㆍ조기퇴직으로 생계의 근본이 휘청거리고 있다. 디너의 표현처럼 “많은 한국인이 분노를 터뜨리며 풀이 죽어 있는” 실정이다. 모든 국민이 인간답고 풍요로운 삶을 영위하며 다 같이 행복해지는 ‘국민행복시대’는 언제쯤 실현될는지.
    Sunday.Joins Vol 307     이인식 지식융합연구소장 inplant@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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