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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부 직장편 - 5 직접 만나본 여성 리더들

浮萍草 2013. 10. 30. 13:12
    “아무리 힘든 일 시켜도… ‘못하겠다’는 말 하지마라”
    일러스트레이션 김수진 기자 soojin@donga.com
    “여자는 필요 없습니다. 박지원을 저희 팀으로 보내실 거면 신입사원을 한 명 더 주십시오.” 1995년 SK건설에 갓 입사한 박지원 사원(44·여·현 해외건축견적부장)의 부서 배치 날. 모든 팀장은 ‘거부’를 선언했다. 당시는 여사원이 3년차쯤 돼 제 몫을 할 때면 결혼으로 사직서를 내는 일이 많았던 시절. 이런 문제를 한두 번씩은 겪은 팀장들은 여사원에 대해 좋지 않은 시각을 갖고 있었다. 결국 박 씨는 남자 동기 한 명과 함께 팀에 들어갔다. 일종의 ‘깍두기’였던 셈이다. 그는 3년차 사원 때 대리 과장 없이도 지방 건설현장에 혼자 출장을 내려갈 정도로 똑 부러진 사원으로 인정을 받았다. ‘ 언제 그만두나 보자’며 작정하고 힘든 일을 건네는 선배들을 묵묵히 견뎌 벌써 입사 20년을 눈앞에 뒀다. 지금은 ‘여성 출입 금지’ 간판이 붙은 중동의 각종 프로젝트 현장을 거침없이 누비며 실력을 인정받는 SK건설의 여성 리더로 성장했다. 요즘 각 기업에서는 1990년대 초·중반 입사한 ‘깍두기 박지원’ 같은 여성 신입사원들이 남성이 대부분인 기업에서 부장 임원으로 성장해 조직을 이끌고 있다.
    ㆍ여성적 리더십이란
    2000년대 이후 국내 기업에서 여직원 비율은 점점 늘고 있다. 여성 비율이 늘어나면서 조직 내 여성 상사의 리더십 직무 스타일에 대한 해석도 분분하다. 여성적 리더십이란 공감하고 포용하는 리더십, 남성적 리더십이란 과감하고 밀어붙이는 리더십이라는 스테레오 타입’도 있다. 그렇다면 실제 현장에서 일하는 여성 간부들은 어떤 생각을 갖고 있을까. 국내 주요 기업에서 크고 작은 조직을 이끌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여성적 리더십’에 대한 의견을 들어봤다. 국내 여성 펀드매니저 1세대 격인 삼성자산운용 민수아 밸류주식운용 팀장(42·여)은 1995년 LG그룹 공채로 LG화재 주식운용팀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때는 매일 술도 마시고 야근도 했지요. 회사에서 인정받는 리더들은 술도 잘 마시고 카리스마가 있는 사람들이었어요. 그때 나는 ‘아, 나는 성공하긴 틀렸구나’ 생각했죠.” 직장 초년병 시절 민 팀장의 눈에는‘좋은 리더=엄격하고 무서운 리더’였다. 1990년대까지 국가와 기업 모두 한창 성장을 달리던 시기 대한민국 사회가 요구하던 리더십의 공통점은 ‘카리스마’였다. 한때 민 팀장도 그런 리더십을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던 적이 있지만 연차가 쌓이며 생각이 달라졌다. 직장이라는 곳은 리더가 이끄는 곳이 아니라 모두가 협업해 문제를 해결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민 팀장은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지만 지금은 배가 산으로도 가봐야 성공하는 시대”라고 말했다. “조직원의 창조적인 생각을 이끌어 내려면 리더가 남자든 여자든 소통하는 리더십이 중요합니다. 문제는 리더십의 특성이지 성별의 차이가 아닙니다.” SK건설 박 부장은 “요즘 회사에서 가장 유능한 리더는‘가만히 앉아 있어도 후배들이 몰리는 사람’”이라고 했다. 즉 좋은 리더는 남녀 불문하고 후배의 고민을 공감하고 잘 경청해 준다는 것. 조직생활에서 정보는 곧 힘인데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모이면 그 사람에게 정보가 쌓이기 때문에 힘이 생긴다는 것이다.
    ㆍ약진하는 여성들
    최근 대기업 임원 인사에서는 여성 인재의 활약이 두드러진다. 올해 1월 인사에서 코오롱그룹은 회사 창립 50년 만에 처음으로 계열사에서 여성 최고경영자를 배출했다. SK그룹에서는 첫 여성 부사장 LG그룹에서는 공채 출신 첫 여성 전무가 등장했다. 공공기관에서도 현재 한 자릿수에 머무르는 여성임원 비율을 15%까지 늘리기 위한 방안을 고심하고 있다. 여성 리더들의 약진 속에 ‘무조건 여자’이기 때문에 승진을 시키는 분위기까지 있다며 남자들이 역차별당하고 있다는 지적까지 나온다. 실력보다는 여성이라 덕을 봐 승진했다는 꼬리표가 달리는 것 역시 장기적으로 여자 후배들을 위해 좋은 방법이 아니라는 지적도 있다. 그러나 다양성과 포용성을 지키기 위해 조직 내에서 여성 비율을 일부러 일정하게 유지하는 회사도 있다. 볼보건설기계는 굴착기 등 중장비를 만드는 회사이지만 전 세계 사업장마다 여성 인력 비율을 정해 엄격하게 유지하고 있다. 면접에도 반드시 한 명의 여성 면접관이 배석해야 한다. 여성 인력 비율이 줄어들면 해당 법인의 인사담당자가 문책을 받을 정도다. 중장비는 주로 남성이 사용하지만 여성 엔지니어들은 굴착기 설계에 남성뿐 아니라 여성의 손의 크기와 다리 길이, 작업 습관도 반영한 제품을 개발하는 데 도움을 준다. 이러한 시각이 반영된 제품은 미국 북유럽 등 여성 굴착기 기사 비율이 높은 곳에서 좋은 반응을 얻는다. 이 회사 인사담당 오숙희 부사장(56)은“국내에는 여성 중장비 기사가 드문 편이지만 세계적으로는 여성 중장비 기사도 많고 앞으로 늘어날 것으로 본다”며 “여성 엔지니어가 여성을 위한 굴착기를 만들 수 있는 것처럼 조직 내 다양성이 커지면 그것이 제품의 질로 연결된다고 믿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여성 비율을 높인다고 조직 내에서 여성은 무조건 배려를 받고 남성만 손해를 감수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육아 문제로 힘들어하던 이 회사의 한 남자 직원은 최근 육아 휴직을 신청하기도 했다. 오 부사장은 “인사관리자는 휴직자가 생기면 대체인력 채용이나 남은 부서원들이 얼마나 힘든지 알지만 누구나 직장생활을 하다 보면 사정이 생길 수 있다”며 “부서원들에게 회사에서 무엇이든 도와주겠다고 직접 설득한다”고 설명했다. 1980년 외국계 화학기업 바이엘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오 부사장 역시 오랜 기간 직장 내 홍일점이었다. 오 부사장은 “외부에서 손님들이 왔을 때 모두가 내가 불쾌해할까 봐 차마 커피 심부름을 시키지 못했다. 하지만 집에 놀러 온 손님을 대접한다는 마음으로 열심히 커피와 차를 타서 날랐다. 이후로 회사 사람들이 나를 달리 보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여성 비율이 10%가 채 안 되는 조직인 현대중공업의 산전기기영업부 나숙인 과장(32·여)은 여성 후배들에게 이렇게 조언한다. “남자들도 하기 힘든 해외 영업처가 담당으로 주어져도 절대 ‘못 한다’는 말은 하지 않았어요. 내가 그 일을 해내지 못하면 내 여자 후배에게 앞으로 그 일이 주어지기 않기 때문입니다. 짧은 기간 내 ‘대박’을 낼 수 있는 일보다 실패로 후퇴하지 말고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는 일을 찾았으면 합니다. 허드렛일일수록 더 열심히 하는 열정도 필요합니다. 남녀 모두 피하고 싶은 일을 여성들이 피하면 ‘여자이기 때문’이라는 말을 여전히 듣는 것도 사실이니까요.” 여성들이 때로 ‘여자의 적은 여자’라거나 ‘여자들은 사내정치를 잘 못한다’는 편견에 시달리는데 이 역시 생각하기 나름이다. SK그룹 SUPEX추구협의회 기업문화팀 김태은 과장(37·여)은“사내정치라는 것은 결국 주변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식인데 여자들은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빙빙 돌리지 않고 솔직하게 말해 오히려 효율적으로 일할 수 있다”며“여직원 비율이 조직에서 늘어나면 ‘사내 정치’의 모습도 소통 중심으로 더 달라질 것이라고 본다”고 말했다.
    ㆍ여전히 힘든 출산과 육아의 벽
    회사에서 성공했다는 여성 리더들에게도 가장 큰 스트레스는 결혼 후 닥치는 출산과 육아로 인한 커리어의 공백,‘일과 가정의 균형’문제다. 무엇보다 한국 사회에서는 승진을 앞둔 시기에 출산휴가 3개월 육아휴직 1년을 결재 받는 일이 사직서를 쓰는 것만큼이나 큰 용기를 필요로 한다. 여성 선배들은 이를 어떻게 극복했을까. SK그룹 김 과장은 “결혼해서 아이를 낳기 전에는 여자인 나조차도 육아휴직 간 여직원들을 보면서‘한직으로 밀려날 위험을 안고 왜 휴직을 할까. 일과 육아를 병행할 자신이 없으니 결국 가정으로 숨는 것 아닌가’ 생각한 적이 있다”고 고백했다. 그러나 지금 그의 생각은 180도 달라졌다. 휴직을 해 아이를 키우는 기간은 결국 삶의 가치를 어디에 두느냐에 따른 개인의 선택이라는 것이다. 앞에 소개한 삼성자산운용 민수아 팀장은“육아는 결국 아이와 나를 둘 다 성숙하게 하는 과정이라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아이를 키우는 과정에서 아이에게는 엄마가 겪는 사회에 대한 지평을 넓혀 주고 엄마 스스로도 조직원에 대한 이해 대인 관계에 대한 이해가 깊어진다는 것이다.
    Donga        이서현 기자 baltika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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