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꽃이야기

이념 속에 핀 꽃들

浮萍草 2013. 10. 24. 22:39
    "진보정의당, 黨名 ‘민들레당’ 검토 伊 좌파의 ‘올리브 동맹’에서 착안 
    민주당·문재인, 담쟁이·달개비 애착 左派, 꽃 이념화나 상징 좋아하고
    右派, 그냥 좋아하거나 취미로 즐겨 꽃은 좌우·이념 무관… 피었다 질 뿐"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꽃 이름을 당명으로 쓰는 정당이 나올지도 모르겠다. 진보정의당은 오는 21일 전당원대회에서 2기 지도부를 구성하면서 당명도 개정할 예정이다. 새 당명 후보를 사회민주당 민들레당 정의당 등 3개로 압축해 놓았는데 당원들의 선택에 따라 민들레당이라는 당명이 나올 수도 있는 것이다. 이 진영의 민들레 사랑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지난해 10월 창당 때도 당명을 민들레당으로 하자는 주장이 적지 않았다. 2009년 야4당이 '반MB연대'공조를 논의할 때 당시 노회찬 진보신당 대표는 연대 이름을 '민(民)들레 연대'로 하자고 제안하기도 했다. 이탈리아 중도좌파들은 1995년'올리브 동맹'이라는 정치연합을 결성해 1996년과 2006년 두 차례 총선에서 승리했다. 그들이 이탈리아 국민에게 친숙한 올리브 나무를 상징으로 삼은 것에 착안해 우리 국민에게 친근하고 서민적인 민들레를 당명으로 하자고 제안하고 있는 것이다. 민들레는 밟아도 밟아도 견디며 꽃을 피우는 끈질긴 생명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정치적 상징으로 탐을 낼 만하다. 지난 5~6일 서울 홍익대 앞 롤링홀에서 공연한 노래패'꽃다지'노래 중'민들레처럼'이 있다. 좌절을 느끼거나 자존심 상해도 참아야 할 일이 있을 때'무수한 발길에 짓밟힌대도 민들레처럼…','특별하지 않을지라도 결코 빛나지 않을지라도…'라는 대목을 들으면서 위안을 얻을 때가 있다.
    이 노래에는 투혼 해방 같은 직설적인 운동권 용어도 나오지만 그냥 서정적인 노래로 들어도 괜찮다. 이 노래패는'노래를 찾는 사람들(노찾사)'과 함께 민중가요를 부르는 양대 산맥이다. 꽃다지는 겨우내 움츠리고 있다가 초봄 양지바른 곳에서 작고 노란 꽃을 피우는 들풀이다. 민들레와 비슷한 이미지여서 노래패 이름으로 쓰는 것 같다.
    일러스트=박상훈 기자

    민주당 특히 문재인 의원은 담쟁이와 달개비에 애착을 보이고 있다. 잘 알려진 대로, 지난해 대선 때 문재인 후보는 캠프 이름을 담쟁이 캠프라고 했다. 대선 출마선언문에서도 '저것은 넘을 수 없는 벽이라고 고개를 떨구고 있을 때/담쟁이 잎 하나는 담쟁이 잎 수천 개를 이끌고 결국 그 벽을 넘는다'는 도종환 의원의 시 '담쟁이'를 인용하기도 했다. 덩굴식물인 담쟁이가 벽을 타고 넘는 것을 정권 교체의 벽을 넘는 것으로 상징화한 것이다. 문 후보는 지난 대선 때 단일화 과정에서 안철수 후보와 만날 때마다 서울 정동에 있는 음식점 '달개비'를 이용했다. 달개비는 요즘 연보라색 꽃을 피우는 흔하디흔한 잡초 중 하나다. 그는 지난해 11월 한국기자협회 초청 토론회에 참석한 자리에서도 달개비를 화제에 올리며"신비롭고 예쁜 꽃 달개비를 요즘 식물학자들이 '닭의장풀'이라 부르는데, 달개비라는 이름이 얼마나 예쁘냐"며 "(그 식당이) 달개비란 이름을 써서 참 고맙다"고 말했다. 닭의장풀은 주로 닭장 주변에 자란다고 달개비는 꽃이 닭의 벼슬을 닮았다고 해서 생긴 이름이다. 국가식물표준목록은 닭의장풀을 정명(正名)으로, 달개비는 이명(異名)으로 표기하고 있다. 엉겅퀴도 자주색 꽃과 날카로운 가시 때문에 '민중의 저항'을 상징하는 꽃으로 쓰였다. ' 엉겅퀴야 엉겅퀴야 철원평야 엉겅퀴야 난리통에 서방 잃고 홀로사는 엉겅퀴야'로 시작하는 시 '엉겅퀴꽃'이 있는데 이 시로 만든 창작민요를 들은 기억이 있다. 이처럼 꽃을 이념화해 상징으로 삼은 쪽은 주로 좌파들이다. 꽃을 싫어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나 우파들은 그냥 꽃을 좋아하거나 취미 등으로 즐기는 편인 것 같다. 새누리당이 꽃을 선거에 이용했다거나 여권 인사가 야생화 마니아라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다. 또 좀 거칠게 말하면, 좌파들은 야생화를, 우파들은 대체로 원예종 꽃을 좋아하는 것 같다. 꽃을 이념화한 것은 최근의 일은 아니다. 한국은 물론 중국과 일본 등 동아시아에서는 매·난·국·죽을 지조와 절개의 상징으로 여겨 사군자(四君子)라 불렀다. 특히 조선시대 문인들은 사군자가 뜻을 굽히지 않는 선비와 같다고 여겨 시와 그림의 소재로 즐겨 사용했다. 퇴계 이황은 임종 직전 가솔들에게 "저 매화에 물을 주어라"는 유언을 남겼을 정도로 매화를 아꼈다. 꽃을 이념화하거나 정치적인 상징으로 사용하는 것에 대해 비판이 있을 수 있겠지만 살벌한 대립에서 살짝 비켜나 다소나마 여유를 찾을 수 있는 방식이라는 생각이 든다. 또 꽃으로 접근할 경우 관념적인 용어를 쓰는 것보다 이해하기 쉬운 측면도 있다. 다만 정서적인 접근이 지나치면 본질을 가릴 수도 있을 것 같다. 꽃 자체야 이념이나 좌우가 어디 있겠는가. 꽃들이야 어떤 꽃이든 주어진 환경에 적응하면서 종족 번식을 위해 맹렬하게 피었다가 질 뿐이다. 그런 꽃들 앞에서 좌파, 우파 같은 이념적인 얘기를 하는 것 자체가 미안할 따름이다.
    Chosun         김민철 사회정책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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