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漢字 世上을 말하다

蟬不知雪<선부지설>

浮萍草 2013. 9. 29. 10:46
    을 쓰는 걸 업으로 삼는 필자가 피할 수 없는 게 있다. 
    글에 대한 반응이다. 
    많은 경우 이는 댓글의 형태로 나타난다. 
    찬반 양론도 많고 칭찬과 비난도 다양하다. 
    그중 필자가 잊지 못하는 댓글 하나가 있다. 
    “야 이 친구야, 이걸 글이라고 썼냐. 
    공이나 제대로 차라.” 필자의 이름이 한국 축구 국가대표로 명성을 날린 이와 같은 데 착안한 댓글이다. 
    한편으로는 씁쓸하고 또 한편으로는 우스워 고소(苦笑)가 절로 나온다.
    솔직히 좋은 기분은 아니지만 그런 비난을 받을 때마다 성어 하나를 떠올리며 마음을 고쳐 먹는다. 
    선부지설(蟬不知雪)이 그것이다. 
    매미(蟬)는 눈(雪)을 알지 못한다는 말이다. 
    여름 한철 사는 매미가 어떻게 겨울의 눈을 알 수 있을까. 
    견문이 좁다는 뜻이다. 
    필자는 이 성어를 되뇌며 스스로 공부를 더하자는 반면교사(反面敎師)로 이용하곤 한다. 
    이와 비슷한 말로 하충어빙(夏蟲語氷)이 있다. 
    여름 동안에만 사는 벌레가 어떻게 겨울의 얼음을 이야기할 수 있느냐는 것이다.
    척택지예(尺澤之鯢)도 같은 쓰임새의 말이다. 
    작은 못 안에 사는 송사리라는 뜻으로 소견이 좁은 경우를 가리킨다. 
    우리가 보다 자주 쓰는 표현으로는 우물 안의 개구리를 뜻하는 정중지와(井中之蛙)나 정저와(井底蛙)가 있다. 
    우물 속에서 하늘이나 별을 본다는 정중관천(井中觀天), 정중시성(井中視星)도 다 같은 뜻이다. 
    '우물이 아닌 대롱을 통해 하늘을 엿본다’는 관중규천(管中窺天)이나‘대롱 구멍을 통해 표범을 보니 표범 무늬 일부분밖에 보이지 않는다’는 뜻의 관중규표(管中窺豹)
    도 비슷한 쓰임새의 말들이다.
    이려측해(以蠡測海)는 표주박으로 바다를 잰다는 것으로 옅은 이치로 심오한 이치를 헤아리려 할 때 쓰는 말이다. 
    지식인이라면 이런 이려측해의 잘못을 범하지 않을까 노심초사하지 않을 수 없다. 
    또 세상 일을 모르는 소인을 비유할 때 자주 쓰는 술 단지 속의 날벌레라는 뜻의 옹리혜계(甕裏醯鷄)도 경계 대상이다. 
    괜한 시비를 거는 댓글에 대해선 ‘연작부지천지지고(燕雀不知天地之高)’의 태도가 어울린다. 
    제비나 참새 무리가 어찌 천지의 광대함을 알겠는가. 
    비슷한 말로는 연작안지홍곡지지(燕雀安知鴻鵠之志)도 있다. 
    제비나 참새 따위가 어찌 큰 기러기나 고니의 뜻을 알겠느냐는 뜻이다.
    
    Sunday.Joins Vol 342     유상철 중국전문기자 scyou@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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