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푸드 이야기

하얀라면의 저주… 올인한 삼양·팔도의 잘못된 선택

浮萍草 2013. 8. 13. 21:26
    대박꿈 좇다 추락
    일러스트 이철원
    2013년 라면의 판도가 완전히 바뀌었다. ‘농심’(회장 신춘호)의 시장점유율 1위는 여전하다. 하지만 오랫동안 변하지 않던 삼양식품(회장 전인장) 오뚜기(회장 함영준) 팔도(대표 최재문)가 벌이는 업계 2~4위 지도가 요동치고 있다. 한국에 라면을 처음 소개한 원조 삼양식품이 끝을 모르게 추락하고 있는 사이 라면 회사 이미지보다 토마토 케첩과 마요네즈 회사로 더 잘 알려진 오뚜기의 시장점유율 성장세가 폭발적이다. 한때‘꼬꼬면’으로‘하얀국물 라면’돌풍을 일으키며 라면 시장 판도 변화를 촉발했던 팔도(2012년 한국야쿠르트 에서 분리) 역시 추락세를 보이며 라면 업계가 격랑에 휩싸여 있다. 오뚜기가 시장 2위로 올라선 건 지난해 10월이다. 당시 오뚜기의 시장점유율이 시장조사업체 AC닐슨의 조사에서 12.2%를 찍으며 12%에 그친 2위 업체 삼양 식품을 넘어섰다. 이때만 해도 웬만해선 시장 순위가 바뀌지 않는 라면업계의 특성상‘일시적 현상’일 가능성이 우세했다. 이 조사가 있기 불과 넉 달 전인 2012년 6월(상반기) 조사에서 삼양식품의 시장점유율은 15.6%였고 오뚜기는 11.1%였다. 시간이 갈수록 오뚜기의 상승세와 삼양식품의 추락세는 극명해졌다. AC닐슨의 2013년 1분기 조사에서 라면업체들의 시장점유율은 농심이 69.9%,오뚜기가 12.8%,삼양식품이 11.1% 였다. 팔도는 6.5%였다. 오뚜기와 삼양식품의 시장점유율이 1.7%포인트 차로 더 벌어진 것이다. 더욱이 지난 2분기 실적까지 포함된 2013년 상반기 조사에선 농심이 67.7% 오뚜기가 13.2%인 반면 삼양식품은 11%를 기록했다. 특히 팔도의 점유율이 8.1%까지 올라오면서 삼양식품은 꼴찌인 팔도에까지 위협받고 있다. AC닐슨 조사에선 삼양식품이 그나마 라면 시장 3위 자리를 지키고 있지만 또 다른 시장조사업체 링크아즈텍의 조사에선 상황이 더욱 우울하다.
    링크아즈텍에 따르면 올 3월까지 시장점유율(판매량 기준)은 농심 69.9% 오뚜기 13.7% 삼양식품 10%, 팔도 6.3%였다. 5월 조사 결과는 농심 63.2% 오뚜기 15.5% 팔도가 11.1%였던 반면 삼양식품은 10.2%였다. 삼양식품이 만년 꼴찌 팔도에조차 역전당한 것이다. 가장 최근 조사인 6월까지 시장점유율은 농심 61.6% 오뚜기 15.3% 팔도 12.4% 삼양식품 10.7%였다. 오뚜기는 고사하고 삼양식품과 팔도와의 점유율 격차도 갈수록 벌어지고 있는 것이다. 라면은 한번 굳어진 시장 판도가 특별한 이슈가 없는 한 웬만해선 변하지 않는 대표 산업이다. 시장이 더 이상 성장하지 않는 대표적‘정체 산업’이기에 플레이어들 간 순위 변화나 점유율 변화 가능성이 더욱 낮다. 삼양식품은 꼭 50년 전인 1963년 9월 한국 최초 라면인‘삼양라면’을 선보인 이후 1980년대 중반까지 1위를 유지해 왔다. 그 이후로는 농심 세상이다. 농심은 24년 이상 1위를 지키고 있다. 농심이 판도를 뒤집은 건 1989년‘우지라면’ 사건이다. 1980년대 중반 이후 삼양라면과 농심은 시장점유율 1위를 놓고 엎치락뒤치락했다. 그러다 1989년 11월 ‘삼양식품이 라면 제조에 공업용 우지(소의 지방)를 썼다’는 검찰 발표와 수사로 삼양식품 이미지가 완전히 추락했다. 1997년 8월 대법원까지 간 재판에서 삼양식품의 무죄 판결이 나왔지만 대세는 이미 결정난 뒤였다. 60%대에 육박하던 시장점유율이 1989년 말 이후 15%로 추락했다. 그런데 지난해 10월 삼양식품은 24년을 지켜왔던 시장점유율 2인자 자리마저 빼앗긴 것이다. 최근에 왜 라면 시장의 판이 뒤집히고 있는 것일까? 업계 관계자들은 ‘특별한 일 없이 시장이 급변하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위에서 말한 대로 1963년 이후 라면 시장 판도 변화는 딱 한 번 있었다. 이때는 삼양식품의 ‘우지파동’이란 대형 사건이 있었다. 1989년 삼양식품이 그랬듯 2013년 라면 시장 판도에서 심각한 타격을 입을 수 있었던 곳은 1위 업체인 농심이었다. 2012년 농심의 대표 라면 ‘너구리’에서 1급 발암물질 ‘벤조피렌’이 검출된 것은 큰 악재였다. 당시 농심은 시중에서 라면을 급하게 회수해야 했다. 벤조피렌은 올해도 또 문제가 됐다. 올초 농심이 라면 수프 원료로 사용하려던 중국산 고추씨기름에서 벤조피렌이 검출됐다. 시장점유율 70%에 육박하는 농심 라면에 대한 소비자 반응은 1989년 삼양식품을 뒤흔들었던 우지파동 때와는 전혀 달랐다. 1급 발암물질 벤조피렌 사건이 터진 그 시점에 농심 점유율이 4~5% 떨어진 것 외엔 별다른 판도 변화가 없었다. 발암물질 안전성 유해 논란에도 불구하고 소비자 선호도와 시장 변화가 거의 없을 만큼 라면 시장의 변동성이 낮다는 것을 다시 확인시켜 준 것이다. 업계 관계자들은 업계 순위를 뒤집는 대형 요인은 없으나 주목해야 할 부분이 있다고 말한다. 먼저 삼양식품의 전략적 판단 실수가 거론된다. 2012년 삼양식품이 시장 트렌드에 너무 민감하게 대응했다는 것이다. 2011년 이후 기존 주력 제품을 제쳐두고 트렌드성이 강한 신제품 라면의 마케팅과 영업에 전력을 쏟다가 큰 시장인 기존 라면 시장마저 놓쳤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 대형마트에서 라면을 구입하고 있는 소비자. photo 조선일보 DB

    2011년 하반기부터 2012년 중반까지 라면 시장에는, 전통적인 맵고 붉은 라면 대신 희고 담백한 이른바‘하얀국물 라면’이 인기를 끌었다. 팔도가 개그맨 이경규씨를 동원해 하얀국물 라면인‘꼬꼬면’의 홍보와 마케팅 영업에 돈을 쏟아부으며 하얀국물 라면 붐을 만들었다. 당시 주간조선도 ‘꼬꼬면 25년 라면공식 깨다’(2011년 9월 26일자) 기사를 통해 하얀국물 라면의 인기를 소개하기도 했다. <11쪽 이미지 참고> 하얀국물 라면의 인기가 올라가자 업계 1위 추격에 목말라 있던 삼양식품이 하얀국물 라면 판에 뛰어들었다. ‘나가사끼 짬뽕’을 내놓으며 총력전에 나섰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패착이란 분석이다. 하얀국물 라면에 모든 것을 건 삼양식품과 팔도의 점유율이 처음에는 올라갔다. 팔도의 경우 2011년 초중반 6~7%이던 점유율이 2012년 초 12%대까지 올랐고 2011년 12월과 2012년 1월 오뚜기를 밀어내고 업계 3위가 됐다. 특히 뒤늦게 ‘나가사끼 짬뽕’ 카드를 꺼내들며 하얀국물 라면의 홍보와 마케팅 영업에 모든 것을 쏟아부은 삼양식품은 이전 12~13%대이던 시장점유율을 2012년 1월 16.6%까지 끌어올렸다. 대성공이었다. 문제는 하얀국물 라면의 인기가 채 2년을 가지 못한 것이다. 키움증권의 식품 담당 애널리스트 우원성씨는“하얀국물 라면은 전형적인 트렌드 제품”이라며 “삼양식품이 특정 트렌드 제품에 너무 민감하게 집중했다”고 했다. 그는 “개당 ‘정가 1000원’ 이상인 라면을 고급라면으로 분류하는데 하얀국물 라면은 전형적인 고급라면”이라고 했다. 2011년부터 시작된 삼양식품과 팔도의 마케팅·영업으로 하얀국물 라면에 대한 소비자 호기심이 커지며 라면값치곤 고가인 하얀국물 라면의 구매가 늘었다. 덕분에 2011년과 2012년 초 삼양식품과 팔도의 점유율 상승과 실적개선이 가능했다. 하지만 국내 경기침체가 지속되면서 가계의 식음료 비용 축소 현상이 뚜렷이 나타났고 이것이 1000원대 이상 고급라면 수요에 타격을 줬다. 이때 하얀국물 라면에 집중한 삼양식품과 팔도가 가장 큰 타격을 입은 것이다. 하얀국물 라면의 시장점유율 변화는 극적이다. 2011년 12월 전체 라면 시장의 17%까지 점유율이 올라갔지만 올 3월부터 1%대로 폭락했다. 우 연구원은 “최근 침체된 경기 영향으로 (가계의) 소비 자체가 안 좋다”며“이것이 반영된 듯 라면 시장에서 낮은 가격대의 라면 판매가 증가하고 있다”고 했다. 1000원 이하 라면 수요가 늘며 대표적 고가 라면인 하얀국물 라면의 수요는 그만큼 급감했다는 것이다. 결국 좋지 않은 경제 상황이 기존 중저가 제품에 주력한 농심과 오뚜기에는 실적과 점유율을 최소한 유지시켜 주거나 끌어올린 반면 하얀국물 라면에 집중했던 삼양식품에는 심각한 시장점유율 추락을 불러왔다는 것이다. 그리고 삼양식품의 기존 점유율을 그대로 빼앗아간 것이 바로 오뚜기라는 것이다. 삼양식품의 주력 제품인 하얀국물 라면 나가사끼 짬뽕의 정가는 1000원인 반면 오뚜기의 주력 제품인 진라면의 정가는 700원에 불과하다. 익명을 요청한 한 증권사 연구원은“(식품산업에서) 트렌드 제품은 소비자 기호 시장과 전반적 경제 상황 변화 등으로 언제 또 다른 트렌드로 바뀔지 예측하는 게 사실상 불가능하다”며“때문에 유행을 타는 특정 제품에 영업과 마케팅을 집중하는 것은 위험하다”고 했다. 그는“식품산업에서 트렌드 제품은 호기심에 의해 소비되는 경향이 크다”며“하지만 호기심이 식으면 판매량이 감소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2011~2012년 하얀국물 라면 판매 급증은 시장에서 쉽게 찾을 수 없던 하얀국물 라면이 일시에 등장했고 이경규씨 등 연예인과 삼양식품, 팔도 등이 이를 소비자 호기심을 자극하는 방식으로 홍보와 영업을 했기 때문에 가능했다. 하지만 수십 년 맵고 붉은 라면에 길들여진 소비자 입맛이 몇 번 맛본 하얀국물 라면의 호기심을 금방 사그라들게 했고 때문에 하얀국물 라면의 전성기는 채 2년을 가지 못했다는 것이다.
    주간조선 2011년 9월 26일자.당시
    는 하얀라면의 인기가 폭발적이었다.
    이런 위험성에도 불구하고 삼양식품은 하얀국물 라면에 승부수를 띄웠고 최소 몇 년은 갈 것으로 봤던 하얀국물 라면의 시장 트렌드와 소비자 선호가 예상보다 더 빨리 식으며 문제가 발생한 것이다. 삼양식품이 이번엔 트렌드 변화 속도에 대응조차 하지 못한 것이다. 이트레이드증권 김혜미 연구원은 “하얀국물 라면의 유행이 급하게 식으면서 삼양식품이 기존의 붉고 매운 라면 마케팅을 꾸준히 한 농심과 오뚜기에 밀린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만년 3위 오뚜기의 시장점유율은 왜 갑자기 급등하며 2위까지 올라간 것일까? 아이러니하게도 ‘오뚜기의 라면 제품 마케팅과 홍보,영업 방식이 유행 제품을 미는 것과는 거리가 멀었기 때문’이라는 추정이 나오고 있다. 이트레이드증권 김혜미 연구원은“오뚜기 회사나 오뚜기 제품에서 시장 변화를 주도할 만한 이벤트가 없었다”고 했다. 식품류를 분석하는 다른 시장 관계자들 역시 오뚜기의 라면 시장 점유율 급등과 업계 2위로의 상승을 ‘이변’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오뚜기의 시장점유율 급등에 대해 이트레이드증권 김 연구원은“장수한 제품 위주의 영업 전략이 주효한 것 같다”며“중저가의 진라면 등 소비자에게 익숙한 오래된 브랜드를 마케팅 전면에 내세운 것이 고가의 하얀국물 라면에 빨리 질린 소비자를 끌어 들인 요인으로 보인다”고 했다. 김 연구원뿐 아니라 다른 증권사 식품 담당 연구원들 역시“‘고가의 하얀국물 라면 유행의 빠른 소멸’과 ‘경기침체 지속으로 줄어든 가계의 식료품 비용’이 동시에 맞물리면서 중저가의 붉은 라면 마케팅에 치중했던 오뚜기가 상대적 수혜를 입은 것” 이란 의견을 제시했다. 오뚜기는 지금의 상황을 어떻게 분석하고 있을까? 재미있게도 오뚜기조차 최근 오뚜기 라면의 시장점유율 급등과 업계 2위 로의 상승 이유에 대해 “왜 이렇게 됐는지 잘 모르겠다”는 반응이다.
    오뚜기 홍보실 김승범 과장은"1987년부터 라면을 만들었는데 (지난해 말부터 최근까지) 발표된 라면 시장 점유율은“오뚜기가 따로 시장점유율 상승 원인을 분석 하거나 조사해 보진 않았다”고 했다. 오뚜기는 농심 삼양식품 팔도 등 다른 라면 기업과는 성격이 조금 다른 회사다. 농심 삼양식품 팔도는 라면을 주력으로 파는 라면 전문 회사다. 반면 오뚜기는 라면 회사라기보다 케첩 마요네즈 참기름 즉석짜장과 카레 등 각종 식료품을 주력으로 파는 CJ제일제당과 대상 같은 종합 식료품 기업이다. 김 과장은“오뚜기는 라면이 주력 상품이 아니다”라며“다른 주력 상품들을 두고 특정 상품인 라면에만 공격적 투자를 하거나 마케팅 홍보를 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는 “오뚜기는 트렌드에 민감한 라면 제품을 내놓지 않았다”며“대신 기존 제품이라도 정기적으로 소비자의 의견을 반영해 리뉴얼하거나 연관 상품을 내놓는데 이것이 소비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쳤을 가능성은 있다”고 했다. 그는 진라면 리뉴얼 용기면이던 참깨라면을 봉지라면으로 내놓은 것을 예로 들며 오뚜기가 라면에 대해 1년에 3~4회 소비자 설문을 해 제품에 반영하고는 있다고 했다. 김 과장은“오뚜기는 조미식품이 주력”이라며 “소비자 입맛에 오뚜기 라면과 조미식품의 궁합이 맞으면서 라면 시장 점유율이 동반 상승했을 가능성도 있다”고 했다. 어쨌든 라면 시장의 판이 최근 급변했다. 터줏대감 삼양식품이 추락했고 변방이던 오뚜기가 주류로 떠올랐다. 키움증권 우원상 연구원은 “점유율 순위가 바뀌긴 했지만 시장을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했다. 반면 이트레이드증권 김혜미 연구원은“소비자 입맛이 잘 바뀌지 않는 라면 시장에서 시장을 뺏긴 건 치명적이다. 때문에 향후 시장을 다시 빼앗아 오기가 어렵다”고 했다. 한국인들이 사랑하는 국민식품 라면을 두고 원조 삼양식품이 강자이던 원래 모습을 회복할 수 있을지 오뚜기의 상승이 계속될지 지켜볼 일이다.
    Weekly.Chosun     조동진 주간조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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