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스트레스 클리닉

주말이면 꼼짝도 하기 싫다는 30대 중반 '건어물녀'

浮萍草 2013. 7. 10. 09:41
    당신에게 필요한 건 요란한 바캉스 아니라 진정한 휴식
    Q 외국계 기업에서 홍보 일을 하는 30대 중반 여성입니다. 전 요즘 ‘시체놀이’에 빠져 있습니다. 주중에 열심히 일하고 나면 주말엔 꼼짝도 하기 싫어 집에서 시체처럼 누워만 있습니다. 밖에 나가 몸을 움직이면 기분이 좋아진다는 걸 알지만 주말엔 ‘귀차니스트’가 되고 맙니다. 당연히 꾸미지도 않습니다. 누군가는 그런 저를 보고 ‘건어물녀’라고 하더군요. 그런데 마음속에선 계속 ‘어디론가 멀리 떠나라’고 외칩니다. 삶을 즐기라고요. 몸과 마음이 왜 이렇게 따로 노는 건지, 또 어떻게 맘을 먹어야 주말을 알차게 보낼 수 있을지 궁금합니다. A ‘건어물녀’란 『호타루의 빛』이라는 일본만화에서 유래한 말입니다. 직장에서는 매우 세련되게 차려입는 능력 있는 여주인공이 일 끝나면 데이트를 하기는커녕 대충 ‘추리닝’ 입고 집에서 건어물 안주나 즐겨 먹죠. 그러다 보니 삶이 건어물처럼 건조하다 해서 건어물녀라고 부릅니다. 평소 인간관계에 지치다 보니 가급적 관계를 멀리 해서 휴식을 찾는 현대인의 모습이 담겨 있죠. 많은 기업이 최근 직원의 스트레스 관리를 어떻게 할지에 대해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스트레스가 쌓이면 의욕저하는 물론 불면과 불안 등 다양한 부작용이 발생하는데 이렇게 되면 아무래도 업무 집중도나 성취 동기가 약해져 업무 효율이 떨어지기 때문이죠. 그래서 일부 기업은 정신의학자를 동원해 직원들의 스트레스 관리를 하기도 합니다. 그렇다면 스트레스로 인한 각종 부작용을 겪는 직원의 증상이 호전되면 업무 집중도가 다시 증가할까요. 당연히 그럴 거라고 기대합니다. 그런데 막상 현장에서 보면 증세 호전에도 불구하고 회사 업무에 몰입하지 못해 방관자처럼 행동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는 ‘심리적 회피 반응’ 때문입니다. 고통과 통증을 피하려는 건 정상적인 반응입니다. 마음을 피곤하게 하는 걸 아예 안 보고 피해 버리면 삶의 충전에 도움이 됩니다. 그런데 이건 짧은 기간에 그칠 때 얘기입니다. 이런 회피가 장기화하면 문제가 생깁니다. 삶의 즐거움과 고통은 동전 앞뒤 면처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인생의 큰 주제는 일과 사랑이죠. 스스로를 최고의 남자라 생각하는 사람이 자신의 모든 걸 걸고 사랑한 여인에게서 배신당한 후 결심합니다, 다시는 사랑을 하지 않겠다고요. 다시 사랑을 하지 않으면 사랑으로 인한 고통은 물론 없겠죠. 하지만 사랑으로 느낄 수 있는 삶의 행복감도 날아가 버리게 됩니다.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업무 스트레스에 과도하게 짓눌려 대충 일하면 일이 주는 성취감도 사라집니다. 도망치는 게 해결책은 아니라는 말입니다. 만약 건어물녀 증후군 같은 심리적 회피 반응이 일어나고 있다면 이건 뇌가 지쳤다는 신호입니다. 지친 뇌를 보듬어줄 감성에너지를 재충천할 필요가 있다는 메시지를 우리 몸이 보내온 겁니다. 회피는 증상이지 솔루션이 아닙니다. “다 때려치우고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고 호소하는 직장인을 자주 봅니다. 남들이 부러워하는 직장인데 그런 말 하는 걸 듣기만 해도 안타깝습니다. 그만큼 지치고 힘들다는 거겠죠. 멀리 떠나서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면 한 1년이라도 휴직할 수 있게 진단서를 써주고 싶습니다. 하지만 설령 멀리 떠난들 원하는 일은 일어나지 않습니다. 가고 싶은 데가 멀수록 마음은 더 지친 겁니다. 대전보다 부산, 미국보다 아프리카 오지에 숨고 싶을 때 내 마음은 그만큼 더 지쳐 있다는 겁니다. 스트레스 증세로 상담받던 50대 남성이 아내와 여행을 떠나겠다더군요. 일만 하다 보니 아내와 소원해졌는데 관계도 회복시킬 겸 유럽여행을 다녀온다는 겁니다. 너무 지쳐 있을 때는 주변을 돌아볼 에너지가 없습니다. 에너지를 다시 회복하니 비로소 아내가 보인 거죠. 그러나 서글프게도 사이 좋은 부부도 멀리 해외여행을 다녀오면 대부분 대판 싸우고 오기 일쑤입니다. 긴 비행 시간, 타국의 문화적 이질감은 뇌를 더 피곤하게 합니다. 그러다 보니 날카로워져 쉽게 부부싸움으로 이어집니다. 처음엔 분위기가 좋게 흘러도 여행 사흘째 접어들면 아내는 남편 때문에 섭섭했던 과거의 사건을 꺼내기 시작합니다. 남편이 자신을 좀 더 깊이 이해해주기 바라는 마음에서 이러는 겁니다. 그러나 남편 입장에선 술 먹을 돈 다 털어서 기껏 여행을 왔는데 아내가 기억도 안 나는 옛날 이야기를 끄집어내 바가지를 긁으면 돌아버릴 지경이 됩니다. 화해를 위한 여행이 울화통 터지는 싸움터로 바뀌는 거죠. 여름휴가철이 돌아오면 우리는 흔히 “바캉스 가서 푹 쉬고 와, 그래야 일도 더 열심히 하지”라고 말합니다. 바캉스의 라틴어 어원을 보면 ‘자유를 찾는다’라는 뜻이라고 합니다. 그냥 쉰다는 것보다 뭔가 거창하고 철학적입니다. 전 일 잘하려고 바캉스를 가는 게 아니라 바캉스를 가기 위해 일하는 게 더 옳은 생각 같습니다. 그러나 직장인 대부분의 삶을 보면 정신없이 일하다 휴가철이 되면 다급하게 인터넷에서 패키지 여행 상품을 삽니다. 가족을 실망시킬 수 없으니까요. 막상 자유를 느끼는 건 휴가 때가 아니라 휴가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겠죠. ‘다 끝냈다’란 한숨과 함께요. 진짜 휴식은 사실 건어물녀의 삶과 달리 타자(他者)와의 관계에서 이뤄집니다. 자유는 타자와의 결별이 아니라 타자와의 관계 안에서 내가 의미 있는 존재라고 느껴질 때 찾아옵니다. 사람에게 지쳐 사람을 피하면 순간 자유로워진 것 같으나 곧 상실감의 덫에 걸려 자유는 사라져 버립니다. 사람이 자유를 생명처럼 소중히 여기는 것은 어떤 제한도 없이 사랑을 주고받으며 자신의 가치를 느끼기 위한 겁니다. 그런데 현대인은 스스로의 가치를 높여 더 사랑받는 존재가 되려고 치열하게 경쟁하다 보니 오히려 지쳐 버려 회피라는 가짜 자유를 찾습니다. 감성에너지의 충전은 나를 소중하게 여겨주는 타자의 따뜻한 반응에서 시작합니다. 여기서 타자란 꼭 사람이 아닙니다. 자연일 수도 있고, 때론 문화 콘텐트일 수도 있습니다. 몰아서 가는 바캉스보다 하루에 10분, 일주일에 한 시간, 한 달에 하루라도 나만을 위한 바캉스를 가는 게 중요합니다. 정신없이 바쁜 하루를 보내셨나요. 친구 만나 기분 전환할 시간도 없다면 잠시 서점에 들러 시집 한 권 읽으면 어떨까요. 다 읽을 필요도 없습니다. 서점에 가는 발걸음, 그리고 물끄러미 시 한 편 읽는 동안 우리 뇌를 충전할 수 있습니다. 이성에 희생당했던 감성을 위하는 순간이기 때문입니다. 어디론가 멀리 떠나고 싶다고요. 그렇다면 해외여행 말고 주말에 잠시 기차에 몸을 맡기면 어떨까요. 스마트폰은 집에 버리고 말이죠. 아무 생각 없이 멍하게 창문 밖을 바라봅시다. 마치 명상 후에 느껴지는 자유를 맛볼 수 있습니다. 너무 진지하지 않은 친구와의 저녁식사는 어떨까요. 고민을 얘기하면 ‘거봐, 내가 그러지 말랬지’라고 말하는 친구보다는 ‘잘했어 좋은 경험이야 넌 언제나 멋져’라고 해주는 그런 친구요.
    Joongang Joins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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