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폐경기 생긴 건 젊은 여자만 좋아하는 남자들 때문?

浮萍草 2013. 7. 9. 18:20
    흔들리는 ‘할머니 가설’
    여성 폐경은 여성 삶에 있어서 또 하나의 전환기다.
    /동아일보 DB
    “이 영화 놓치면 평생 후회하실 겁니다.” 인터넷과 IPTV가 보편화되면서 한 때 주말 밤 황금시간대를 장악했던 외화 프로그램도 어느새 사라졌다. 1970년대 중후반 아직 텔레비전이 흑백이던 시절 일요일 밤 ‘명화극장’을 예고하던 장면이 아련히 떠오른다. 검은 뿔테안경을 쓴 지적인 모습의 영화평론가 고(故) 정영일 선생이 영화 장면을 배경으로 영화에 대해 이런 저런 설명을 하다가 끝에 위와 같은 멘트를 덧붙인다. 정말 당시는 모처럼 텔레비전에서 틀어주는 기회를 놓치면 그 영화를 볼 기회가 한동안 없었다. 어린이였던 필자는 정작 밤늦게 하는 영화를 본 기억은 없지만 정영일 선생의 영화예고 장면은 지금도 눈에 선하다. 그런데 1980년대 ‘사랑방중계’인가 하는 프로그램에서 원종배 아나운서에게 정영일 선생이 해준 한 얘기 역시 강렬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젊은 여성들 몇 명이 있는 거리를 멋진 중년신사가 지나가고 나면 아가씨들은 이 남자를 화제에 올린단다. 그런데 청년들이 있는 거리를 멋진 중년여성이 지나가면 어떻게 될까? 청년들은 그 여성이 지나갔는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당시 정 선생이 무슨 맥락에서 이 얘기를 했는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아무튼 필자는 마치 영화의 한 장면으로 본 것처럼 깊은 인상을 받았다. ㆍ단성 모형 vs 양성 모형
    사람은 동물 가운데 독특한 특성을 여럿 지니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여성의 폐경기다. 물론 몇몇 고래에서 폐경기가 있다는 보고가 있고 사육하는 침팬지에서도 관찰됐지만 포유류 대다수에서는 폐경기를 볼 수 없다. 보통 50대에 폐경기가 되므로 여성들은 생식력이 없는 상태로 평균 30년은 더 사는 셈이다. 물론 요즘 세상에 50대가 넘는 남성이 아이를 갖는 것도 드문 일이지만 아이를 안 갖는 것과 못 갖는 것은 차원이 다른 얘기다. 실제로 몇 달 전 인도에서는 100살에 가까운 노인이 아이 아버지가 돼 화제가 되기도 했다. 그렇다면 왜 여성만 생이 끝나기도 한참 전에 생식력을 잃게 되는 것일까? ‘그거 다 밝혀진 거 아냐?’ 폐경기의 기원에 대해서는 그동안 미디어에서 많이 다뤘기 때문에 이런 생각을 하는 독자도 있을 것이다. ‘할머니 가설(grandmother hypothesis)’로 알려진 설명인데 한마디로 나이든 여성이 직접 아이를 낳는 것보다 자기 아이의 아이 즉 손주를 돌보는 게 결과적으로 유전자를 더 많이 남기기 때문에 폐경기가 진화했다는 것. 맞벌이 부부들이 자녀를 부모님께 맡길 때 좋은 명분이 되기도 하지만 냉정한 계산이 횡횡하는 진화생물학에서 할머니 가설은 약간의 훈훈함이 느껴지기도 한다 (물론 이것 역시 계산의 결과 생식력의 관점에서 더 나은 걸로 나와서 제안된 가설이지만). 학술지 ‘플로스 계산생물학’ 6월호에는 폐경기의 기원을 다른 관점에서 분석한 논문이 실렸다. 캐나다 맥마스터대 생물학과 조너선 스톤 교수팀은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 폐경기는 손주를 돌보려는 여성의 의지에 따른 결과가 아니라 젊은 여자를 선호하는 남성의 취향에 따른 결과라는 별로 아름답지 않은 결론에 이르렀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 폐경기의 기원이 여전히 미스터리라며 지금까지 나온 가설을 표로 만들어 소개했는데 무려 10가지나 된다. 할머니 가설은 그 가운데 하나다. 이 가설들은 크게 두 가지 타입으로 구분되는데 하나는 단성 모형(one-sex model)이고 다른 하나는 양성 모형(two-sex model)이다. 할머니 가설은 진화의 과정에서 폐경의 당사자인 여성만이 관여하므로 단성 모형이다. 폐경기라는 여성의 진화에 남성도 영향을 미친다는 게 양성 모형으로 저자들은 이번 논문에서 양성 모형에 속하게 될 배우자 선택의 취향이 중요한 변수임을 밝혔다.
    컴퓨터 시뮬레이션 결과를 나이에 따른 여성의 생존율과 생식력 변화로 나타낸 그래프 초기 조건(initial fertility, 긴 점선)은 죽을 때까지 생식력이 유지되지만
    남성이 젊은 여성을 선호하게 되면서 나이에 따라 생식력이 있는 비율이 급감한다(YF fertility, ▲이 있는 실선). 반면 생존율은 별 차이가 없다(intial survival(짧은
    점선), YF survival(▼이 있는 실선)).- 플로스 계산생물학 제공

    연구자들은 여성이 죽을 때까지 생식력을 갖고 있다는 초기 조건에서 출발했다. 그리고 남성들도 여성의 나이에 따른 선호도의 차이가 없었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남성들이 젊은 여성들을 선호하게 된다. 한편 돌연변이는 임의로 발생하는데 수명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고 남녀 각각의 생식력에 영향을 미치는 것도 있다. 만일 어떤 돌연변이가 결과적으로 자손 수를 줄이게 된다면 자연도태될 것이고 그렇지 않다면 게놈에 남아있을 것이다. 시뮬레이션 결과 남성들이 여성 나이에 차이를 두지 않을 때 여성 생식력을 손상시키는 돌연변이는 제거됐다. 그런데 남성들이 젊은 여성을 선호하면서부터 이런 돌연변이 가운데 일부가 축적되기 시작했다. 즉 젊은 나이에 발현돼 생식력을 손상시키는 돌연변이는 제거되지만 중년 이후에 발현돼 생식력을 잃게 하는 돌연변이는 남아있었던 것. 이런 돌연변이가 있건 없건 어차피 이 나이면 남성의 선택을 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 결과 폐경기가 나타났다. 연구자들은 논문을 마무리하며“나이든 남성과 여성이 다른 사람(자식이나 친척)의 생식에 도움을 준다는 건 직관적으로 명쾌하지만 이게 폐경기의 진화론적 기원을 설명하는데 꼭 필요한 건 아니다”라고 결론짓고 있다. 정영일 선생이 살아있었다면 이 논문에 대해 다음과 같이 반응하지 않았을까. “당연한 얘길 갖고 뭘 논문까지 쓰고 그러시나. 시간 있으면 영화나 한 편 더 보세요.”
    Dongascience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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