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스트레스 클리닉

열심히 다이어트 해도 계속 살찐다는 40대 주부

浮萍草 2013. 5. 22. 09:39
    "체중계는 뚱보 스트레스 주는 주범, 당장 치우세요"
    Q 고등학교 1학년 딸과 초등학교 1학년 늦둥이 아들을 둔 40대 중반의 전업주부 입니다. 자녀 학원비 보탤 생각에 틈틈이 번역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남편이 해외 건설 현장에 있어 혼자 애들 키우는 게 힘듭니다. 하지만 감사한 마음으로 지내려 애쓰고 있습니다. 제 고민은 다이어트와 폭식입니다. 제 키는 1m60㎝대 초반입니다. 처녀 때는 50kg 정도였는데 지금은 70kg에 육박합니다. 열심히 다이어트를 해 한때 60kg 밑으로 체중을 줄이는 데 성공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이것도 잠시. 지금은 폭식으로 체중이 더 불었습니다. 초등학교 아들이 엄마가 뚱뚱해 창피하다며 학교에 오지도 말라는데 너무 속 상했습니다. 아침마다 체중계 위에 올라설 때마다 제 한숨 소리에 마루가 꺼집니다. 쉽게 살을 뺄 수 있는 좋은 방법 없을까요. A“식욕 조절 하나 못하다니 난 루저(패배자)야.” 이렇게 생각해선 절대 안 됩니다. 식욕 조절은 의지만으로 통제하기 힘든 생물학적 욕구입니다. 인류가 오랜 세월 멸망하지 않고 생존한 욕구 3개를 꼽으라면 전 남녀 간의 사랑, 자녀에 대한 모성애 그리고 마지막으로 식욕을 꼽겠습니다. 이 세 가지를 마음대로 조절할 수 있다면 당사자는 편할지 모르지만 인류는 존재 하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마음 상하는 사랑 안 하고 화병 생기지 않게 자녀 양육 대충하고, 먹는 게 귀찮아 대충 먹는다면 말입니다. 쉽게 살을 뺄 수 있는 좋은 방법을 물으셨죠 결론부터 말하면 그런 방법은 없습니다. 너무 실망하셨나요. 그러나 건강한 몸을 유지하면서 행복한 마음으로 사는 방법은 있습니다. 다이어트보다 훨씬 쉽습니다. 현대사회에서 비만이 전염병처럼 늘고 있다고 이야기합니다. 비만이 사회 문제가 된 것은 그리 오래 된 일이 아닙니다. 20세기 중반, 즉 백 년도 안 된 일이죠. 왜 이렇게 비만이 늘었을까요. 먹을 것이 풍족해져서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안 먹으면 그만 아니겠습니까. 실제 몸이 배고픈 만큼만 먹으면 다시 말해 신체적 허기만 채운다면 비만이 생길 일은 없을 겁니다. 늘 몸이 느끼는 허기 이상 먹게 돼서 문제지요. 마음의 허기가 문제인 것입니다. 이것을 심리적 허기라고 합니다. 아이들이 말 안 들어 스트레스를 받을 때 식사를 이미 했어도 TV에서 삼겹살이 지글지글 익는 장면이 나오면 식욕이 다시 확 돋았던 경험이 있으시죠. 이건 신체적 허기가 아닙니다. 직장에서 상사한테 깨진 후 속상한 마음에 동료들 붙잡아 막걸리로 1차 하고 치맥(치킨과 맥주)으로 2차까지 했는데도 알 수 없는 허기에 집 앞 포장마차에 또 들어가 우동에 소주 한잔 하는 3차, 이건 신체적 허기와 무관합니다.
    배가 고프다고 말하지만 사실은 머리가 고픈 것입니다. 식욕을 조절하는 중추는 뇌 안쪽, 시상하부라는 곳에서 담당합니다. 식욕조절시스템을 보면 인간 창조의 목적이 행복이 아닌 도(道)에 있지 않나 싶습니다. 식욕 스위치가 꺼지려면 식욕조절 중추와 연결된 두 가지 시스템이 동시에 만족을 느껴야 합니다. 하나는 포만감(satiety) 시스템이고 또 하나는 삶의 만족을 느끼는 보상(reward) 시스템입니다. ‘아 배 부르다 내 삶도 만족스러워’란 생각이 들면 포만감과 삶의 보상이 모두 충족 돼 식욕 스위치가 꺼집니다. 그런데 ‘엄청 부르지만 지금 내 삶은 내가 원하던 근사한 삶이 아니야’라고 느낀다면 포만감 시스템만 만족하고 보상 시스템은 충족하지 않은 겁니다. 이럴 경우 심리적 허기로 바뀌게 됩니다. 몸에 필요한 에너지는 이미 충분히 확보했으나 마음의 허기를 채우기 위해 합법적 마약인 달콤한 탄수화물과 부드러운 지방에 손이 가게 되는 것이지요. 삶의 심리적 허무와 통증을 음식으로 달래는 겁니다. 그러기에 심리적 허기에 의한 비만을 음식중독(food addiction)이라 부르기도 합니다. 음식이 정말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수 있냐고요. 그럼요. 식욕은 성욕만큼 쾌감과 진통 효과가 강하진 않습니다. 하지만 음식 먹는다고 간통죄 걸릴 위험이 없으니 접근성·다양성 그리고 지속성 등에 있어 성욕보다 훨씬 사회화하고 발달된 욕구 충족용 마약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주변에 새로 생기고 어느 날 없어지는 수많은 음식점들 먹는 게 단순히 생존 활동이라면 이렇게 식문화 산업이 발달하지는 않았겠죠. 먹는 즐거움은 영혼의 슬픔을 잠시나마 잊게 해줍니다. 먹는 재미는 포기할 수 없는 삶의 중요한 쾌락입니다. 문제는 과도하면 몸과 마음을 망가뜨린다는 것이죠. 비만은 당뇨 고혈압 뇌심장질환 그리고 암의 원인이 됩니다. 몸에 나쁜 것으로만 치면 외도가 아닌 비만에 죄를 물어야 할 상황입니다. 균형이 깨진 음식에 대한 탐닉은 빠른 쾌락을 추구합니다. 문제는 빠른 쾌락은 내성이 생긴다는 점입니다. 더 강하고 많은 양의 음식을 먹어야 마음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우정과 자연 즐기기 같은, 내성 없는 느린 쾌락에는 만족을 느낄 수 없는 뇌 상태가 돼버립니다. 중독된 뇌(addicted brain)는 좀비처럼 본질적 가치를 읽어버린 삶을 살게 합니다. 좀비가 얼마나 열심히 일합니까. 그러나 행복해 보이지는 않습니다. 사연 주신 분, 먼저 체중계를 버리세요. 체중계를 볼 때마다 몸에서 스트레스 호르몬이 뿜어져 나와 식욕이 더 당깁니다. 스트레스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생존을 위해 존재하기 때문에 스트레스가 지속되면 식욕을 더 느낍니다. 우리 감성 시스템은 느낌으로 주변 상황을 판단하기에 이게 보릿고개로 인한 스트레스인지 비만으로 인한 스트레스인지를 구분하지 못합니다. 스트레스를 받으면 살기 위해 무조건 지방을 축적합니다. 번역 작업, 남편 없이 혼자 아이를 양육하는 것 모두 삶의 스트레스입니다. 체중계까지 나를 괴롭히게 하지 마세요. 그리고 하루 10분이라도 운동을 하세요. 격한 운동 안 하셔도 좋아요. 따뜻한 햇살을 느끼며 나른함을 즐기는 걷기 운동으로 충분합니다. 이것으로 살이 빠지겠느냐고요. 당연히 안 빠집니다. 그러나 몸과 마음은 건강하게 지켜 줍니다. 먹는 즐거움을 못 느끼고 굶으며 고생하는 말라깽이보단 기분 좋은 통통한 몸이 더 사랑스럽습니다. 건강에도 후자가 당연히 더 낫습니다. 마지막으로 음식을 피하지 말고 더 즐기세요. 먹는 느낌에 몰입하는 겁니다. 그러기 위해선 천천히 먹어야 합니다. 밥 알 하나하나를 음미하면서요. 빨리 먹는 식사는 생존·쾌락 시스템을 작용시킵니다. 뇌를 중독되게 합니다. 심리적 허기를 채울 수 있는 지속적인 만족은 느린 쾌감에서 옵니다. 가능하면 혼자 먹지 말고 속마음을 터놓을 수 있는 좋은 분과 훈훈하게 마음을 나누면서 느리게 식사하세요. 그럴 시간이 없다고요. 마음만 바쁜 것 아닐까요. 천천히 식사할 시간이 없는 이가 세상에 몇 명이나 될까요. 살기 위해 허겁지겁 먹으면 영혼이 없는 좀비의 삶입니다. 날씬한 몸매 따윈 잊고 최고의 감성 쾌락인 식욕의 아름다움을 좋은 사람과 느리고 따뜻하게 마음껏 향유합시다. 하루에 운동 10분만 잊지 말고요. 다음 주엔 비만 걱정에서 탈출할 보다 구체적인 라이프스타일 팁을 알려 드리겠습니다.
    Joongang.Joinsmsn         윤대현 서울대병원 강남센터 정신건강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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