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를 망친 건 욕망인가 인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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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계절에 따라 읽기 좋은 책이 있다.
아지랑이가 아른아른 피어 오르는 이 무렵에는『보바리 부인(Madame
Bovary)』이 제격이다.
주인공 에마는 풋풋한 봄처녀 내음을 물씬 풍기며 등장한다.
그녀는 젊고 아름다울 뿐만 아니라 늘 뜨거운 환상에 사로잡혀 있다.
시골생활에 따분해하던 에마는 의사인 보바리와 결혼한 후에도 곧 권태를
느낀다.
“맙소사,내가 어쩌자고 결혼을 했던가?”
그러고는 다른 남자를 만났더라면 어떻게 됐을지 상상한다.
“무도회의 광채를 만끽하면서 가슴이 터질 듯하고 관능이 활짝 피어나는 생활을 하고 있을 거야.”
참 철딱서니 없는 생각 같지만 그럴 수도 있다.
현실에 안주하려고만 든다면 그게 어디 젊음인가?
에마에게는 그러나 운이 따르지 않았다.
서둘러 결혼한 남편 보바리는 성실하지만 눈치 없고 둔한 남자였다.
“샤를이 하는 말은 거리의 보도처럼 밋밋해서 거기에는 누구나 가질 법한 뻔한 생각들이 평상복 차림으로 줄지어 지나갈 뿐 감동도,
웃음도, 몽상도 자아내지 못했다.
그녀는 너무나 흔들림 없는 이 평온과 태연한 둔감,그녀 자신이 그에게 안겨주고 있는 행복에 대해 그를 원망하고 있었다.”
그녀는 자신의 실패한 결혼생활을 보상받기 위해 아들을 갖고 싶었다.
남자로 태어나면 적어도 자유로울 수 있고 온갖 정념의 세계, 온갖 나라를 두루 경험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러나 여자는 끊임없이 벽에 부딪힌다.
수동적이고 순종적이어야 하는 여자는 육체적으로도 약하고 법률의 속박에 묶여 있다.
여자의 의지란 모자에 달린 베일 같아서 끈에 매여 있으면서도 사방에서 불어오는 바람에 펄럭인다.
여자는 늘 어떤 욕망에 이끌리지만 인습이 그녀의 발목을 붙잡는 것이다.”
에마는 딸을 낳았다.
그녀는 로맨스 소설처럼 불 같은 연애를 꿈꾼다.
“연애란 요란한 번개와 천둥과 더불어 갑자기 찾아오는 것이라고 에마는 믿었다.
하늘에서 땅 위로 떨어져 인생을 뒤집어엎고 인간의 의지를 뿌리째 뽑아버리며 마음을 송두리째 심연 속으로 몰고 가는 태풍과도
같은 것이라고 말이다.”
하지만 그녀가 만난 애인 둘 다 그녀를 배신한다.
로돌프는 이기적이고 야비한 바람둥이였고 레옹은 나약하고 소심한 사내였다.
4월의 햇빛이 선반 위의 도자기들을 간지럽게 비추고, 어린 딸은 잔디밭에 뒹굴던 어느 봄날 친정아버지가 칠면조를 보내온다.
한없이 행복해야 할 이 순간 작가는 묻는다.
도대체 누가 그녀를 이토록 불행하게 만들었느냐고.
“그 시절은 얼마나 행복했던가! 아 자유! 희망은 넘쳐났고,또 환상은 얼마나 풍성했던가! 이제 환상은 하나도 남지 않았다!
그녀는 처녀 시절과 결혼, 연애,이렇게 삶의 과정을 하나씩 거쳐오면서 새로운 영혼의 모험에 그것들을 다 써버리고 말았다.
마치 길가의 여관에 묵을 때마다 가진 것을 조금씩 비워놓고 온 나그네처럼 그녀도 인생길 구비구비에서 그것들을 끊임없이 잃어
버린 것이었다.”
에마는 욕망에 눈이 어두워져 사치와 허영에 빠져들고 결국 고리대금 업자의 빚 독촉에 시달리다 비소를 먹고 죽는다.
얼마 뒤 보바리도 죽고 어린 딸은 가난한 친척집에 맡겨져 방직공장에서 일을 한다.
『보바리 부인』의 줄거리는 이처럼 단순하다.
사실 이 작품은 실제로 있었던 ‘들라마르 사건’을 바탕으로 했다. 끔찍한 것일수록 오히려 평범한 법이다.
귀스타브 플로베르는 5년에 걸쳐 이 작품을 썼다.
작가가 소설 한 편을 남기기 위해 얼마나 많은 피와 땀을 쏟아야 하는지 그는 한 편지에 이렇게 적었다.
“이 빌어먹을 보바리 때문에 나는 괴롭다 못해 죽을 지경이다.
보바리가 나를 때려 눕힌다.”
그는 현대소설의 스타일을 만들어냈다.
신혼 초 남편 보바리가 아침 잠자리에서 바라본 아내 모습을 보자.
“그는 베개를 베고 나란히 누워 보닛 모자의 타원형 귀덮개에 반쯤 가린 그녀의 금빛 빰 위에 솜털 사이로 햇살이 비쳐 드는 것을
바라보고 있었다.
그렇게 가까이서 보니 그녀의 두 눈이 더 커 보였다.”
그런데 에마가 로돌프에게 함께 도망치자고 할 때의 모습은 완전히 달라진다.
“그녀의 눈꺼풀은 사랑에 빠진 나머지 눈동자가 꺼져 들어간 기나긴 시선을 위해 일부러 새겨놓은 것 같았고 뜨거운 숨결로 인해
작은 콧구멍은 벌름거렸고 약간 거뭇한 솜털에 빛이 닿아 그늘진 두터운 입술 끝을 위로 당겼다.”
『보바리 부인』은 약제사 오메가 “이제 막 레지옹 도뇌르 훈장을 받았다”는 문장으로 끝맺는다.
오메는 상투적이고 진부한 지식을 늘어놓으며 돈과 이익만 밝혔던 인물이다.
그가 마침내 명예까지 거머쥔 것이다.
‘보바리슴’이란 스스로를 있는 그대로의 자신과 다르게 상상하는 것을 말한다.
이것은 환상이 자아내는 어리석음이자 에마와 오메,어쩌면 우리 모두가 다 갖고 있는 허영일지도 모른다.
☞ Sunday.Joins Vol 262 ☜ ■ 박정태 굿모닝북스 대표 북 칼럼니스트
草浮 印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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